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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부교회 주일낮예배 1부 2 부 설교

관리자 2014-05-12 (월) 15:30 11년전 2563  
2014년 5월 11일(주일) 오전 7시,11시 제주동부교회(담임목사 최철)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에베소서 6 장 5 절 ~ 7 절
제 목 : 철저한 종이 되어 섬기시기를!!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강이 제주동부교회 위에와 속한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임마누엘 성가대위에, 기도하신 강유라 장로님, 성경봉독하신 최진화 집사님, 주님의 부르심과 함께 오늘 담임목사 취임예식을 갖게 될 최 철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 철 목사님의 담임목사 취임예식에 부족한 사람에게 축사를 맡겨주셔서 오려 했는데 올해로 선교 105 년을 맞이하는 영적 역사가 서려 있는 제주동부교회에 말씀까지 전하게 되어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을 은혜롭게 잘 전하는 사역자여서가 아니라 최철 목사님과 제 가족이 미국에서 같은 지역에서 공부한 그런 인연으로 저를 초청한 것 같습니다. 영성이 깊은 은혜의 말씀은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에게서 받으시고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통해 특별히 최철 목사님이 목회를 하면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말씀과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누어야 할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오늘 성경본문 에베소서 6 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감옥에 있으면서 소아시아 에베소에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5 절을 보겠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쓰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그 자유의 복음은 에베소에 사는 종의 신분에 있는 이들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제국의 통치아래 있었고 에베소 역시도 지배계급인 로마의 통치자들과 토착지배층들의 지배계급이 있었고 로마시민들과 같은 자유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부리고 있는 노예계급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한 편으로는 지배계급에게도 전하여졌고 다른 한 편으로는 노예계급에게도 전하여졌습니다. 특별히 복음은 강한 자유의 누룩을 지니고 있었음으로 인해 종들 계층에 환호성과 함께 받아드려졌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는 남녀가 차별이 없고 자유인과 종의 차별이 없다고 전하였습니다. 종들이 교회에 나와서 복음 안에서 자유를 맛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데 그런 믿음이 들어가자 기존에 자신들이 모시던 상전을 무시하거나 상전을 모시는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에베소의 상전들은 저것들 종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더니 시건방을 떨고 마치 자기가 종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무슨 나쁜 사상에 전염이 될까봐 아예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못나가도록 금지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필을 들어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기쁜 마음으로 상전을 섬기되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그렇게 권면한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진행되는 일을 로마의 감옥에서 가만히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상전들과 종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점점 더 증폭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전들 계급에서는 종들이 하는 것을 보고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체시키려는 위험한 바이러스와 같은 종자로 여길 것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화해의 복음이 저들에게 통하여 전해지기 보다는 방해 받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의 발에 끼인 때를 닦아주신 것처럼 사랑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영적으로 유익인가를 깊이 통찰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이 더 성실하게 신실하게 주어진 종의 역할을 잘할 때 저들이 마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저들 종을 통해 복음이 더 잘해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종전의 주장인 그리스도 안에는 종과 자유인의 차별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조화할 것이냐를 놓고 깊게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종이 되셔서 종으로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늘나라는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가 세상에서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종이 되어 섬겨야 하는데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이 되어 섬기라!” 그리고 “섬기되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섬기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섬기라!” 한 것입니다.
 
 
■ 보통 목회자들을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의 직분을 소개하는데 근거합니다. 그러고 보면 최 철 목사님도 “주의 종”입니다. 주의 종은 주님만 섬기는 종이 아닙니다. 위로는 주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주님께서 위탁하신 양떼들을 섬기는 종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셨으니 그 위임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동시에 양떼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이중적 종의 사역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만 섬기고 주님 이외에 다른 성도들에게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서는 그 어느 편으로도 종으로서 사역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본문에 근거하여 우리 최 철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첫째 상전을 섬기듯이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총회본부의 간사와 부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와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였고 여직원들은 평신도였습니다. 밥을 먹는데 한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주의 종이죠!” “그렇지!”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이거든요!” “맞아요 틀려요!” 해서 “맞다!”고 했습니다. “그럼 종이 높아요? 딸이 높아요?” 해서 “당연히 딸이 높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하자마자 “목사님! 커피 한 잔 타 가지고 오세요!” 해서 말없이 커피를 대령해다 바쳤습니다. 주의 종은 높임을 받는 직책이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서도 종은 섬기는 직책이요 땅을 향해서도 종은 사람을 섬기는 직책입니다. 그들을 섬겨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직책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듯이 양떼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섬기는 직책과 직분이 주의 종인 것입니다. 종의 권위와 카리스마는 바로 섬길 때 나오는 것이며 죽기까지 섬길 때 거기에서 진정한 영적 리더쉽이 나오게 됩니다. 최철 목사님께서는 앞으로 담임목사가 되어서 섬기실 때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하신 것처럼 섬기고 또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최 철 목사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둘째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목회란 주로 섬기는 일인데 그 일을 억지로 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 지듯 하면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5 장 2 절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여...” 자원함이란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기쁨으로 라는 뜻입니다. 종이 되어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할 때 보람과 의미가 차오르고 일을 하면 할수록 하늘나라가 가슴 속에 차오르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목회가 그러나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일을 누구에게 맡기고 누가 이 일을 할 꼬? 하였을 때 사역자가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 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일은 상전이 되어 존귀함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순전히 종의 일들로만 채워져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종으로서 사역을 할 때 주님께서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불러 주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그 종의 일들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즐거움을 가지고, 주님께서 나에게 일을 시키셨으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도 가득히 주실 것이라는 기쁨을 가지고 일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할 때 조심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 장 3 절에 뒤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자원함으로 하고 기쁨으로 하되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목에다 힘을 주어 할 때는 종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장로가 임직하고 목사가 담임목사로 취임할 때 축사를 하러 자주 갑니다. 한 번은 담임목사 취임 축사를 하는데 목포시장인 정종득 집사님과 함께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자기가 목포시장이 되어 목포에 있는 교회들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는데 부흥하는 교회와 쇠퇴하는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도 집사로서 머리를 굴려 가만히 따져보니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데는 오로지 두 가지만 잘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로가 목사한테 맞먹으려 하지 않고 목사가 목에다 힘을 주지 않으면 즉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자기가 보니까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서로가 종이 되어 본이 되어 교회를 섬길 때 그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종득 집사님의 지론이었습니다. 저는 강진에 있는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강진읍교회에 부임하여 아직 담임목사 취임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인데 몇몇 집사님들이 교회 사택에 와서 청소도 해 주고 화장지나 필요물품들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을 다하고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한 나이 든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아파트에 사시면서 쓰레기도 줍고 계단 청소도 하고 그러세요!” 정색을 하여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강진읍교회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야 집사부터가 강하고 쎄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오지 말아야 할 교회에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집사가 자기 담임목사한테 농담도 아니고 진담으로 쓰레기르 줍고 청소도 하고 그러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는가? 그런데 강진읍교회에서 3,4 년을 목회하는 가운데 그 집사님은 참으로 착하고 온순하신 분으로 결코 그렇게 말하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뒤엔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아하! 하나님께서 망아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데 내가 자고할까봐 그 집사님을 통해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구나!” 하나님의 음성을 생생히 느끼면서 목회를 하면서 폼잡지 않고 목에다 힘주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마음으로 하였고 은총의 하나님께서 목회초기에 지침을 주신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여 강진읍교회의 목회를 큰 실수 없이 마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최 철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들을 섬길 때 주께 하듯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에 다녔습니다. 나중에 한신대가 종합대학이 되어 한신대학교 신학과로 바뀌어 졌습니다만 4 년 동안 한국신학대학을 다니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2 년 반 동안 다녔습니다. 당시 수유리 캠퍼스 식당이 있었는데 그 식당에서 6 년 반 동안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식판을 받는 정면에 대형 유화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밥을 타려면 반드시 그 그림을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6 년 반 동안 그 그림을 보아왔다면 괄호 열고 (365 곱하기 세끼 곱하기 6년 괄호 닫고 더하기 괄호열고 (183 일 곱하기 세끼 괄호닫고 ) 하면 이론상으로는 7110 번 그 그림을 보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시는 그 그림이 채플실 들어가는 입구에 걸려 있지 않고 왜 식당에 그것도 밥을 타먹는 정면에 걸려 있어 밥을 먹을 때마다 그 그림을 보아야 하는가?” 그러다가 뭔가 가슴에 걸려 오는 것이 어떤 음성과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너도 발을 씻어주어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학교 6 년 반을 다니면서 제가 봉사하는 교회에서 발을 씻어주는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을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일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종이 되어 일하신 것은 하늘 아버지에게 대한 것만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에게도 섬기는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종으로서 일을 할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듯이 성도들의 발을 씻어줄 때가 내가 주님의 발을 씻어드린다는 자세로 봉사하는 것이 바로 주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은총의 하나님께서 제주동부교회를 사랑하셔서 참으로 좋은 목자를 보내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 최철 목사님은 오늘 성경본문 에베소서 6 장 7 절에서 말씀하는 종이 지녀야 할 세 가지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해당되시는 종이기도 하고 그런 종이 더욱 되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최 철 목사님은 여러분들에게 목회자의 권위를 내세워서 목에다 힘을 주고 내리 깔아 누르려 하는 그런 카테고리에 드는 분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착한 형, 착한 동생, 착한 오빠와 같을 것입니다. 성품과 성정으로는 무척 연약한 갈대와 같지만 그냥 갈대가 아니라 깊은 영성이 있는 기도하는 갈대입니다. 바람이 이리 불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불면 저리 흔들리고 그러면서도 흐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는 할지언정 자신이 흔들린다고 결코 바람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깊은 영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 철 목사님은 여러분이 바람에 흔들릴 때 자신 역시 흔들려진 아픔이 있기에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도해 줄 수 있는 목회자입니다. 결코 최 목사님은 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털깍는 자 앞에서 양과 같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가져가려 하여도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양과 같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주동부교회 성도님들이 나서서 지켜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목양의 사명 앞에서는 결코 연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가 약하다고 어머니가 약한 것은 아닙니다. 최철 목사님은 이름이 철이듯이 사명앞에서는 강철과 같이 단단할 것입니다.
 
 
■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지 성도들의 종이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군림합니다. 그것은 틀린 행동입니다. 목자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아버지만 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죄인들을 위하여 봉사하시고 섬기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음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 하셨습니다. 저는 진실로 우리 최 철 목사님이 우리 예수님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니 제가 권면하기 전에 최 철 목사님은 주님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아울러 그 심정으로 제주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실 것이며 기쁜 마음으로 섬기실 것이고 양떼들을 섬기실 때 상전을 섬기듯이 섬겨 양무리의 본이 되실 것입니다.
 
 
■ 교회는 하늘나라의 이 땅에서의 예비적인 모형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나 교역자들이 서로 대접을 받으려고 하고 서로 내 발을 씻어주기를 원하고 특별히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무슨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을 종 부리듯 부린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늘나라의 모형이 되겠습니까? 땅에 널브러져 있는 기타 등등의 세속적인 것들 중하나가 될 것입니다. 권세를 부리고 교역자의 권위를 강조하고 성도들을 부린다면 그런 먹구름 속에서 어떻게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겠습니까? 만일 시무장로님들이나 오랜 신앙의 연조의 중직자들이 내가 이 교회에서 터주대감인데 내가 오랜 세월동안 이 교회에 다녔으니 내가 이만큼 인정을 받아야 하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통용된다면 그곳은 땅의 관료주의 집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주 예수님의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교회의 년조가 더 오래될수록 그리스도의 깊은 신앙인격속에서 더 봉사하려 하고 더 발을 씻으려 하고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하는 자세로 나는 뒤로 숨고 영광은 주님께만 돌리고 여분의 영광이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돌리고 나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싹 빠지고 그런 분위기와 풍토 속에서 하늘나라를 맛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왜 섬기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왜 섬기셨고 사도 바울은 왜 섬기라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함도 있지만 더 깊게는 주님의 구원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어떻게 이루셨습니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하신 것처럼 땅에 구원 있으라! 그렇게 말씀 한마디로 구원을 이루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양탄자를 타고와서 공주를 구하듯이 기적과 이사로 드라마틱하게 마술적으로 구원을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때 조롱을 받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시고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그렇게 처참하게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십자가에 못을 박는 로마군병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였다!”는 조롱을 받으시면서도 저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짓을 알지못하나이다!‘ 중보기도를 하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하신 예수님도 구원을 이루실 때 매맞고 온갖 비난과 욕설을 듣고 말할 수 없이 고난당하고 눈물 흘리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을 최철 목사님은 담임목회를 하시면서 더욱 가슴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담임목사가 되실 최 철 목사님이 믿음의 주시오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그 고난의 길 비아돌로로사의 길을 따라가시고 그렇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의 아픔과 눈물 없이 주님의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최철 목사님의 헌신의 사역과 사랑의 섬김 속에서 제주동부교회 성도들이 우리 예수님의 가슴과 마주치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느끼게 되고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고 결국 예수님을 가슴뜨겁게 사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주님 값주고 피로 사신 이 교회를 섬기시는 최 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려 하는 제주동부교회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한량없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이제 담임목사 취임을 앞두고 있는 최 철 목사님과 사모님께 은혜 내려 주시어 이 제주동부교회와 양떼들을 주님을 섬기듯이 기쁘게 섬기게 하옵시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구원을 이루셨듯이 주님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게 해 주시옵소서! 동부교회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횃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 축도) 이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섬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값주고 피로사신 제주동부교회를 한량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오늘도 능력안에 계셔서 교회를 거룩한 권능으로 채우셔서 이 땅을 하늘나라로 만들어가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섬기셨듯이 예수님과 같이 섬기고 봉사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주님도 잘 섬기고 그 섬김의 정신으로 지역사회도 섬기고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는 제주동부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주님 사랑하셔서 보내주신 최 철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지금부터 언제까지나 임마누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39:53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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