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년 9 월 22 일 (주일) 주일낮예배 오전 11 시 믿음의 교회 (임세훈 담임목사)
성경본문 : 마태복음 5 장 13 절 ~ 15 절
제 목 :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새로워지는 교회!!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환한 빛의 은총이 주님 값주고 피로사신 믿음의 교회 위에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섬기시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 그리고 교회 안의 모든 일꾼들 당회 장로님들과 제직에 속한 모든 분들 위에 오늘은 남신도주일인데 특별히 모든 남신도들 위에 썩어지는 밀알과 같이 헌신봉사하시는 임세훈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오늘 소중한 찬양을 주께 올린 찬양대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제 내일모레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 제 98 회 총회가 군산성광교회에서 개최됩니다. 금번 총회는 새역사 60 주년 총회이면서 WCC 제 10 차 부산총회를 앞두고 있는 총회라 특별한 총회인데 군산노회에서 열리기에 주일날 군산에서 와서 예배를 드려야 겠다 생각했는데 임세훈 목사님께서 주일날 예배에 초청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2 년 전인 2011 년 제 96 회 총회를 바로 앞두고 주일낮 예배에 초청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임세훈 목사님은 총회 국제협력선교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귀한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만 앞으로 교단과 국제협력 선교를 위해 더 귀하게 쓰여지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성도님들도 여러분의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금번 총회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오늘은 총회주제를 말씀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맨 먼저 생각할 것이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를 여실 때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이냐 하면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왜 빛을 창조하셨겠습니까? 빛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다른 것들을 창조하신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 장 30 절에 보면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였는데 빛이 없다면 푸른 색깔이 드러나겠습니까? 그리고 비치 없으면 푸른 채소가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 빛은 모든 생명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입니다. 빛이 있을 때 모든 창조하신 것들이 자신의 자태를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그만큼 소중하였기에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신 것입니다.
□ 빛을 제일 먼저 만드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어떤 느낌이셨을까요? 창세기 1 장 3 절에서 4 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빛을 제일 먼저 만드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최초로 하나님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좋구나!” 하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어려서 성냔으로 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성냥을 켜면 그전에는 전혀 없었던 뜨거움이 생기고 환하게 되고 이렇게 신기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성냥으로 장난하다가 칠량에 있는 집 전체를 태워버릴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 오늘 성경 마태복음 5 장 14 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창세기 1 장의 빛과 마태복음 5 장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창세기의 빛은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빛이고 마태복음의 빛은 단순히 물리화학적인 빛이 아니라 빛이 빛으로서 지닌 어떤 속성을 유비해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였을 때 너희는 누구입니까? 마태복음 5 장 1 절에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너희는 예수님을 산에까지 따라온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산 높은 곳까지 따라온 무리들입니다.
□ 엘살바도르의 주교인 오스카 로메로 주교를 아시죠? 독재정권과 투쟁하다가 결국 교회에서 성찬을 베푸는 예식을 하는 가운데 독재자가 보낸 군인에 의해서 총에 맞아 순교를 합니다. 그가 강론을 할 때마다 엘살바도르의 많은 민중들이 따라왔습니다. 로메로 주교는 여러분들이 교회라 하였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교회를 십자가 첨탑이 있는 건축물을 교회라 부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고 따르는 이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들은 교회의 존재를 사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 장 16 절) 고백하는 그때부터 교회의 존재가 생겨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선포하시며 전도를 하실 때 따라온 무리들이 바로 이미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것은 다시 말하자면 너희 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라 해도 맞는 말씀이고 너희 교회는 세상의 빛이라 해도 정확히 맞는 말씀인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빛이 지닌 역할을 말씀하시면서 15 절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제가 강진 칠량에서 살았을 때 등잔으로 불을 켰습니다. 먼저 사기로 된 흰색 등잔이 있었고 그 등잔에다가 석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창호지를 심지 삼으면 그 창호지가 석유를 빨아올리고 거기다가 불을 붙이면 등경이 약 50 cm 높이에 있는데 불을 밝혀서 할머니는 그 빛을 의지삼아 구멍이 난 양말도 꿰메고 형과 누나는 숙제를 하고 그랬습니다. 석유가 다 떨어지면 석유를 통에다 붓고 그리고 심지의 불이 약해지면 심지를 돋우고 해서 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안 방에는 화롯불이 있었는데 타다가 만 검은 숯을 화로에다 넣어 놓으면 방안이 따뜻해지고 거기에다가 마늘도 구어 먹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했습니다.
□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은 빛을 환하게 밝히기도 하고 열을 내는데 사람에게 여러모로 유익을 줍니다. 과학자들은 빛을 입자라고 하기도 하고 파동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파동이든 입자이든지 빛은 세상에게 유익한 존재 없어서는 결코 안될 존재 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을 때 물론 그 안에 무척 신비한 어떤 복합적인 뜻이 담겨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존재들에게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세상에 있어, 세상에 존재하여 유익한,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라!는 멧세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석유등잔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피같은 석유를 남김없이 내어 주고는 자신의 살과 같은 창호지를 다 태우게 되면서 주변을 환하게 밝힙니다.
□ 그와 비슷한 촛불이 그렇습니다. 초가 타지요! 그러면 촛농이 주르룩 흘러 내립니다. 그러면서 심지가 타면서 점점 키가 줄어들고 몸무게가 줄어들면서 주변을 환히 밝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 이상 키가 적어질 수 없을만큼 작아졌을 때 그것을 사람들은 쓰레기통에 내 버립니다. 초가 타면서 결코 자기를 위해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초가 불을 밝히면서 일을 하면서 키가 더 커진다든지 심지가 더 굵어진다든지 초 자체가 더 아름다워진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 아닌 존재에 환함을 주다가 결국 자신의 존재는 퇴물이 되고 난 다음에 버려집니다. 그렇게 버려진다고 초는 단 한마디도 불평을 하거나 일인시위를 하지 않습니다.
□ 연탄도 그렇습니다. 연탄에 불이 붙여졌을 때 누군가를 따뜻하게 하고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고 마침내 하얗게 재가 되었을 때는 눈비탈에 던져지고 밟혀지고 부숴져서 산산히 조각이 나서 눈길을 걷는 이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합니다.
□ 우리 삶의 주변에는 석유등잔과 촛불과 연탄과 그 존재성이 비슷한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연필이 있습니다. 연필은 제 몸이 깍여지면서 제 몸의 중심이 연필심인데 심이 쓰여지면서 닳아지면서 뭔가 기록을 남기면서 제 살은 떨어져 나가고 제 키는 줄어들면서 자신이 아닌 이를 위해 봉사하다가 몽당연필이 되고 마침내 버려집니다. 특별한 향나무 연필은 자신이 깍여져 나가면서 짙은 향을 뿜어냅니다. 제 아내가 카카오톡에 오늘의 명언이라고 하여 한 문장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물론 누구에게 카톡으로 받았겠지요.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 지우개가 있습니다. 지우개는 누군가 잘못한 것을 온 몸으로 온 몸으로 뒹굴면서 비비면서 자신의 살점이 뚝뚝 떼어져 나가면서 상대방의 허물을 없애줍니다. 지우개가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적어졌을 때 역시 버려지게 됩니다. 비누도 그렇습니다. 비누는 제 몸무게와 체중을 줄여나가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깨끗케 해 주고 때를 씻어주고 얼룩을 지워주고 없애줍니다. 그 일들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감은 점점 적어지고 마침내 분해되고 해체되어집니다.
□ 연필이나 지우개나 비누나 연탄이나 자신이 그렇게 유익한 일을 하면서 결코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 있어!!”, “내가 이렇게 희생하면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있어!”, “내가 말이야 사람들의 잘못을 닦아주고 있고 깨끗하게 해 주고 있어!” 자기 공치사를 하고 자기 의를 드러내 놓고 자기 공적을 주장하거나 자기 존재성을 광고홍보하거나 프로파간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쓰여지다가 버려졌을 때 “왜 날 쓰고 버리는거야! 왜 날 희생양으로 삼는거야” 하고 단 한마디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없어집니다.
□ 연꽃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말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내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 주세요!! 한다면 연꽃은 교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려달라는데 최종목적이 있기 보다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드러내는데 있는 것입니다. 같은 연으로 시작하는 연탄과 연필에게는 그런 교묘함이 없습니다. 그저 말없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쓰여져 희생합니다.
□ 그러고 보니 걸레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몸이 더러워지고 찢겨지고 부숴지고 멍들어가서 자신의 몸이 닿는 곳마다 깨끗함이 남는데 마침내 더 더러질 수 없을 때 아궁이로 들어가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사야 53 장 7 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만일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촛불이라 하시고 너희는 걸레라 하시고 너희는 비누라 하시고 너희는 연탄이라 하시고 너희는 지우개라 하셔도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시면서 자신은 전혀 빛과 상관없는 삶을 사신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이 빛이 되셔서 십자가로 자신을 소멸하시고 자신 아닌 이들을 위해 빛을 밝히셨습니다. 자신을 따른 제자들과 자신을 따라온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톱만큼도 눈꼽만큼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온전히 타자를 위한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향나무연필이 되시고 걸레가 되시고 연탄이 되시고 지우개가 되시고 비누가 되셔서 세상의 죄를 없이하셨고 세상에 온기를 더하여 주셨고 세상에 향기를 내게 하셨고 세상을 환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닦아 주셨습니다.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가 만일 자신을 배불리 하고 자신을 살찌우고 자신을 더 키우고 성장시키고 부흥시켜 나가는 것이 목적일 때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자신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자를 위한 존재이셨듯이 교회는 전적으로 타자를 위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에 유익을 주는 필요한 존재이고 세상에 소용이 되는 존재여야 합니다. 교회가 만일 자신만을 위해 존재할 때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존재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비판이기보다는 그것은 차라리 비난과 욕입니다. 저들은 기독교를 엄청나게 두둘겨 팹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고 목사를 먹사라 부르거나 교인들 피빨아먹고 산다면서 뱀파이어라고 부르고 집사를 잡사로 부르고 평신도를 병신도라 부르고 성경을 똥경이라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너무 한다 싶기도 하지만 바로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욕하고 폄하하는 저들을 향해서 무시하거나 같이 욕하거나 변증하거나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먼저 바라보아야 합니다.
□ 몇 년 전에 제자교회 총회에 갔을 때 신학자 하비콕스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탄생해서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을 때까지는 기독교는 예수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황제 이후로 기독교는 아주 망쳐버렸다! 제일 처음에는 그렇게도 박해받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어 로마제국을 먹어버린 것과 같았는데 실제로는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삼켜 버린 꼴이 되었다! 나중에 기독교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 로마제국과 같이 기독교에도 계급을 도입하여 부제 사제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의 제도를 만들었고 훗날에는 십자군이라는 미명아래 헤아릴 수 없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죽이고 그러지 않았느냐? 교리가 다르다고 화형에 처해 죽이고!! 이는 예수의 사랑과 정신은 간데없고 무력으로 모든 것은 제압하는 실질적인 제국주의가 되지 않았나? 이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의 탈을 뒤집어 쓴 이리라 하였는데 역사적 기독교는 기독교의 탈을 쓴 제국주의가 되고 말았다! 하였습니다. 그의 통찰은 옳습니다.
□ 기독교가 130 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기독교는 성경의 초대교회와도 같았습니다. 순수했고 영적이었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목숨이 단 한 개뿐인 것을 아쉬어 하면서 기쁨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조선 땅의 기독교는 불일듯 일어났고 당시 민중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독교는 엄청나게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빛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의 어둠을 더해 주는 역할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의 무늬만 있지 예수님성은 희박합니다. 계셔야 할 예수님이 없고 대신 성공주의 제국주의 물질주의 바리새주의 세속주의 권력지상주의 부흥성장주의 등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교회의 제 일 모또가 무엇이냐 하면 부흥이요 성장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교회가 무섭게 축소재생산을 해가니 부흥이요 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의 제 일 모또는 부흥이요 성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 있고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이 본래의 일입니다. 성경의 초대교회는 부흥과 성장을 제일 되는 목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고 그저 열심히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었고 그저 열심히 서로 사랑하였고 그저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되어 착하게 살았고 그저 열심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에 전무하였는데 그저 열심히 하늘나라를 전파하였는데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늘어만 간 것입니다. 결코 교인수를 늘리기 위해 기도를 강조하지 않앗고 교회 부흥을 위해 각종 전도를 하거나 무슨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생활의 현장에서 그 말씀대로 착하게 살았고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이면서 선하고 착하게 살았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살았고 누가 저주를 해도 축복을 해주고 누가 핍박하고 악하게 굴어도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선대하면서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을 보는 이웃사람들이 그런 천사와 같은 존재들과 동일시하고 싶어서 그들의 기쁨을 자신들로 누리기 위해 너도 나도 예수를 믿기 시작하니 자연히 성도들의 수가 늘어간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 장 47 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백성들의 칭송을 받은 것은 사도행전의 교회의 성도들이 무슨 종교적인 생활을 잘해서가 아니라 칭송을 받을만큼 세상에서 칭송받을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었기 때문이고 착한 행실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우리를 개독교라 비판하는 세력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쳐주는 예언자라 생각하고 찌르는 가시와 같은 은혜로 감사하게 여기면서 예수님이 없거나 예수님성이 희박한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회개하는 모드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우리가 저들을 공격한다면 더욱 안티기독교로 갈 것이고 저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거나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립니다. 우리가 걸레가 되고 지우개가 되고 연탄이 되어 진정 타자를 위해 존재하다가 사라질 때 저들은 비로소 욕을 멈추고 욕을 한 자신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지금 맛을 잃은 소금인데 사람들이 밟는다고 그 밟는 저들을 비판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소금성을 잃은 우리를 탓하고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저는 우리 믿음의 교회 성도들이 이 땅에 이곳 군산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빛으로 존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교회성도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군산을 환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한 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군산에 믿음의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군산의 온 시내가 예수님의 정신으로 춤추고 노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군산 믿음의 교회 성도들이 한 성도 한 성도가 향나무연필성도님, 비누집사님, 촛불안수집사님, 지우개 권사님, 걸레장로님, 연탄목사님들로 가득하게 되어 덩달아 군산지역의 시민들이 군산 믿음의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군산 믿음의 교회 성도들로 인해 예수님 말씀하신 마태복음 5 장 15 절과 16 절의 말씀이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진실로 군산 믿음의 교회는 예수님 말씀하신 그대고 등경위의 등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존재하고 있어 선한 영향력을 30 배 60 배 100 배 끼치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는 밀가루 서말 속에 심겨진 누룩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군산지역의 교회들과 군산지역의 시민들은 믿음의 교회 성도들을 보고 예수님의 푸르름을 느끼고 예수님의 맑음을 체험하고 보기에 참 좋음을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
□ 그리스도의 빛이 되기 전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빛되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빛 되고자 결심하는 것보다도 먼저 있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내 안에서 사시게 하는 일입니다.
□ 복음성가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 저는 운전을 할 때나 걸어갈 때 이 성가를 반복해서 부르면 주님이 제 안에 들어와 계심을 체험하곤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한다고 노래를 하면 우리가 모르는 어느 사이에 우리 안에 현존해 계십니다. 믿음의 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오늘은 특별히 남심도주일인데 먼저 우리 남신도들부터 남신도가 모범이 되어 항상 주님을 모시고 그 주님을 사랑하면서 그 주님의 빛으로 빛을 비추이면서 그리스도의 빛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면서 신나게 기쁨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따른 저희가 잘못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 먹고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도 저희의 잘못 때문입니다. 저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저희 안에 있는 온갖 죄를 씻어내고 저희 안에 주님을 중심으로 모셔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복내려 주옵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그 중심에 좌정하여 주옵시고 믿음의 교회 성도들 모두가 등경 위의 등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임세훈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은혜 위의 은혜를 나리어 주셔서 이 교회를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게 할 뿐만 아니라 이 교회가 군산지역을 복음의 횃불로 환하게 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새로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복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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