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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때마다 감사! / 강진읍교회 주일낮예배 추수감사주일

관리자 2014-11-17 (월) 22:13 10년전 2329  
2014 년 11 월 16 일(주일) 오전 11 시 주일낮예배 추수감사주일 강진읍교회
 
성경본문 : 빌립보서 1 장 1 절 ~ 6 절
제      목 : 생각할 때마다 감사!
 
 
■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강진읍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은혜의 찬양을 주께 올린 임마누엘 성가대와 정태권 지휘자님 위에 그리고 시온성가대와 차화정 권사님 위에 우리 목사님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서울물을 마셔서 그런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는데 성도 여러분들은 강진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강진읍교회에서 맑은 은혜를 받아서인지 하나도 안늙으시고 젊고 이쁘기만 하십니다. 이병준 장로님은 올해 93 세이신데 쌩쌩하기가 늘푸른 소나무 같으시어 백수감사예배를 꼭 드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강진읍교회를 떠난 지 횟수로는 7 년째이고 오늘까지 센다면 2245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기억해 주시고 늘 친동생 이상으로 생각해주시고 추수감사주일이라면 교회 큰 행사인데 불러주신 김승봉 담임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저의 가정사를 알고 계시는 한 분이 말했습니다. “넌 니 머리털로 신을 삼아 드려도 널 길러주신 어머니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이라” 그 은혜가 어떤 것인지 당시 짐작할 수 없었지만 머리털을 셀 수 없듯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절 낳지 않으셨지만 낳은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며 길러주신 어머님의 은혜를 머리털 잘라서 신을 삼아 드린다 한들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어머님도 그렇습니다. 절 가지셨을 때 치명적인 질병이 있으셨는데 독한 약을 먹으면 태내의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봐 병원에서 주는 약을 버리면서 “하나님 이 아이 꼭 살려주시고 애를 낳을 때까지만 절 살려주세요!” 기도하면서 마침내 저를 낳고 20 일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 은혜를 지금까지 자란 모든 머리털로 다 신을 삼아드린다 한들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머리털로 신을 삼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가 또 하나 있습니다. 2004 년 2 월 강진읍교회에 여러모로 덜 갖추어진 담임목사로 와서 약 5 년 동안 사역하면서 여러분들이 주셨던 은혜와 사랑을, 교회를 떠나온 후에도 아직까지 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제가 만일 머리털로 신을 삼아 드린다한들 그것이 갚음이 되겠습니까? 이 시간 머리 숙여 깊고 깊은 감사드립니다.
 
 
■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일하게 유럽지역에 개척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감옥에서 특별히 빌립보교회를 회상하면서 편지를 쓰려고 보니 바울의 가슴 속에서 기쁨이 샘솟듯 차올라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통해 받은 하늘의 은혜가 너무도 차고 넘쳤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 장 3 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생각할 때마다 이가 갈리고 분통이 터진다고 합니다. 생각함이 분노로 곧바로 연결이 됩니다. 생각함이 기쁨이 되어 긍정적 에너지로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에너지로 표출되고 더 큰 분노로 연이어지게 되어 혈압이 터지고 뇌에 문제가 생겨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의 뇌의 메카니즘은 그 반대였습니다. 로마감옥에서 사도 바울의 뇌의 메카니즘은 <생각⇒은혜⇒감사⇒기쁨>이 연속되는 구조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순간은 은혜를 발견하는 순간이 되고 은혜를 발견하는 순간은 결국 감사하는 순간이 되고 감사하는 순간은 기쁨을 받는 순간이 되고 그 기쁨을 받는 순간은 바울로 하여금 감옥에 있었지만 그곳은 그야말로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곳이었습니다.
 
 
■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면서 주 예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어 나간 것과 같이 저 역시 우리 강진읍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기쁘고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 생각을 시작해 볼까요? 제 뒤에 앉아 계시는 유기문 목사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기문 목사님은 7 대 담임목사님이십니다만 제가 강진읍교회 목사가 되자 후임인 저를 강진읍교회에 필요한 생생한 권면을 해주셨고 때론 자상한 편지를 써서 많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목포에 있는 집에 찾아뵈올 때 제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원로목사회장을 하실 때에는 절 초청해주셔서 이모저모로 챙겨주셨습니다. 총무선거 나섰을 때 목사님은 아시는 투표권이 있는 여러 총대들에게 전화해 주셔서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여든에 가까우신데도 불구하고 젊은이 이상의 건강을 주신 은총의 하나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9 년 후면 강진읍교회 110 주년이 됩니다만 그때도 여상하게 지금처럼 강건하시어 창립기념주일에 축도나 설교로 초청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우리 김승봉 목사님과 사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통 직전 담임목사와 현 담임목사 사이에는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이고 직전 담임목사를 설교강단에 다시 초청하는 일이 무척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저를 친동생 이상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께서는 한빛교회에 담임목사로 계실 때도 당시 유학중 일시 귀국했던 저를 불러 설교하라고 하시고 두툼한 봉투를 챙겨주시어 유학생활에 보탬이 되게 해주셨고 2008 년 총무선거에 나설 때에도 역시 두툼한 봉투를 쥐어주시면서 “물값이나 하시게!” 하셨던 그 부드러운 음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2012 년 총무재선에 나섰을 때 당회를 통하여 꽤 많은 액수의 비용을 마련해 주시고 간절히 기도해주셨던 그 음성, 그 배려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총회에 여러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과 자문을 해 주시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고 강진읍교회에 그동안 여러 번 설교를 하게 하셨고 금번 추수감사절에 또 불러주신 것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은총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저의 직전 담임목사님이셨던 김경식 목사님과 사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강진읍교회에 부임하였을 때 목사님께서 부르셔서 저에게 예루살렘 나무로 만든 십자가인데 거기에는 금고리와 수를 넣어 짠 것을 강진읍교회 표식이라고 주시면서 저에게 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목회는 곧 주님 주신 십자가인데 이것을 주님의 십자가라 생각하고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목회를 하라>고 권면해주셨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는 아들같은 저를 늘 격려해 주시고 세배를 하려할 때에는 그것을 물리치면서 저에게 새해때마다 도서비를 봉투에 담아 주셨음을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은총의 주님께서 김경식 증경총회장님으로부터 깊은 영적인 교훈을 받게 하시고 사모님으로부터는 깊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사랑과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저는 원로 장로님들과 장로님들 먼저 천국에 가신 이형희 장로님을 비롯한 모든 장로님들을 생각할 때마다 장로님들의 깊은 믿음과 실천적 삶으로부터 감화감동을 받았음을 생각하면서 은총의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장로님은 사회복지 선교에 귀한 봉사를 해주시고 어떤 장로님들은 강진에 많은 기장교회들을 개척하셨으며 물질로 공궤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허벌나게 하셨으며 어떤 원로 장로님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여 벌은 돈을 교육관을 짓는 일에 쾌척하시고 어떤 장로님은 사회정치의 영역에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광폭적인 선교를 하시고 어떤 장로님들은 지역사회를 움직여 북한에 쌀 보내는 일에 적극 앞장 서셨으며 어떤 장로님들은 원로가 되셨는데도 성가대 지휘자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시고 장로님들의 헌신과 봉사 뿐만 아니라 신앙의 좋은 모범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이 역시 은총의 주님께서 신실한 종들과 함께 일하게 하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깊은 감사를 주님께 드립니다.
 
 
 
■ 강진읍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칠삭둥이입니다만 저와 같이 못 갖춘 마디가 없고 두서와 원칙도 없이 목회했는데도 저의 허물은 다 감춰주시고 제가 조금 잘한 것이 있다면 크게 광고홍보해 주셔서 큰 십자가 없이 강진읍교회 목회를 하였습니다. 목회하는 동안 여러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여러 성도님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입었습니다. 물론 그 은혜는 성도 여러분들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연고로 또한 주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내려주시는 것이지만 <참으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시편 시인의 노래가 바로 제 노래였습니다. 제가 아플 때 부황도 떠주시고 제 아이 신정이를 가르쳐 주시고 오늘 입고 온 이 체크 양복도 여러분들 중에서 해 주신 것이요 제가 6-7 년 동안 먹어온 양식들도 그리고 요즘의 반찬들도 성도 여러분들 중에 보내주신 것들입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사택에 들어가면 문고리에 “이제 갓 딴 상추와 고추와 가지 오이 등등”을 흰 비닐 보자기에 걸어 놓으셨는데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헤일 수 없이 많은 은혜를 성도 여러분들로부터 받았습니다. 떠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떠나면 그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님들이 그동안 제가 강진읍교회를 떠나온 지 7 년이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파김치 갓김치 묵은 김치 김장김치를 보내주시고 쌀과 보리 현미찹쌀도 보내주시고 고구마 양파 마늘 단감과 비누 치약을 보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그것들을 보낼 수 있도록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허락하신 강진읍교회의 하나님께 또한 강진읍교회 김승봉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강진읍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은 비단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고 마음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강진읍교회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이 저를 강진읍교회에서 교단총무로 파송했다 여기시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주심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로 그 힘인 것 같습니다. 교단총무로 일하면서 지난 6-7 년 동안 정말로 차로만 해도 30 만 킬로를 넘게 다녔고 그동안 기차와 비행기 버스 등등으로 다닌 것을 다 따져보자면 100 만 킬로를 훨씬 넘게 다녔을 것입니다. 지난주에 독일 아놀드샤인에 복음선교연대(EMS) 회의를 다녀왔을 때 움직인 총 거리가 약 20000 km였습니다.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 단 한 번 경미한 사고가 나지 아니하고 두 세 번 코피 흘린 것 외에는 약간 머리가 희어진 것 외에는 아직도 쌩쌩하게 잘 다니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담임목사님 위해서 기도한 후에 교단총무로 파송한 절 위해서도 새벽마다 기도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사야 40 장 31 절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을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저는 일하면서 독수리와 같은 새 힘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그 힘은 하나님께서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새벽제단에서 기도하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새 힘을 부어주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강진읍교회의 과거의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강진읍교회는 1913 년 11 월 17 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정확하게 8 년 전 같은 날인 1905 년 11 월 17 일에 일제의 을사늑약에 의해서 한일합방이 되었습니다. 을사조약과 함께 이 땅은 일제통치의 캄캄함이 시작되었는데 정확하게 8 년 뒤 같은 날에 은총의 하나님께서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의 어둠 짙었을 때 복음의 여명을 오게하기 위해서 강진읍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주께서 강한 팔을 펼치사 강진 땅에 강진읍교회를 세우시어 영적 횃불을 밝히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강진읍교회 역사 1919 년 4 월 3.1 독립만세 사건으로 이기성 외 13 명이 구속된 사건인데 이는 분명히 강진읍교회 수많은 성도들이 삼일독립운동에 대거 참여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강진읍교회가 <삼일독립만세운동교회>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 그 이후에도 강진읍교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한 교회였습니다. 일제하 신사참배 거부로 제 1 대 김윤식 목사님이 구속되셨습니다. 1950 년 8 월 6 일 공산당에 의해 배영석 목사님은 순교당하셨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한창일 때 1976 년 5 대 담임목사님이셨던 윤기석 목사님은 성명서 사건으로 투옥당하셨습니다. 1980 년 5. 18 일 5.18 2 주기 기도회 사건으로 6 대 담임목사이셨던 김경식 목사님과 오늘 기도를 하셨던 김영진 장로님이 투옥을 당하셨는데 그야말로 강진읍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역사 속에서 주님 가신 비아돌로로사를 따라 오른 교회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는 강진읍교회가 지나온 101 년은 참으로 숨가쁘게 흘렀습니다. 일제하 - 해방 - 좌우대립과 투쟁 - 6.25 전쟁 - 휴전 - 이승만 독재 - 4.19 - 박정희 5.16 쿠테타 및 연이은 군사독재 - 5.18 민주항쟁 -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협곡을 지나 거세게 흘러왔던 거칠고 험한 역사였습니다. 꺼져가는 불길도 끄지 아니하시고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는 은총의 하나님께서 강진읍교회를 지금으로부터 101 년 전에 세우시어 특별히 민족에 희망의 등불을 그리고 복음의 횃불을 밝히우게 하시고 한 번도 그 빛이 풍파와 세찬 바람에 의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캄캄한 일제의 억압통치, 군사독재의 군홧발, 공산당 앞에서 순교를 당하면서도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고 성전을 짓고 기도운동을 하면서 은혜의 불빛을 더욱 환하게 밝혀온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오는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지나온 101 년의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그 오랜 세월에도 우리 강진읍교회를 지켜오신 주님께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찬송을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어렸을 때 저는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에서 살았습니다. 50 여년이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때 칠량 앞바다에서 썰물이 되면 사람들은 호미와 차두를 가지고 갯벌로 나갔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호미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갯벌을 호미로 캐면 꼬막과 반지락들이 캐져 나왔습니다. 그것들이 캐져 나올 때 어떤 것은 씨알이 굵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적은 것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차두에 담을 때 큰 기쁨 작은 기쁨들이 올올히 배어들었습니다. 갯벌에는 뻘떡게들이 막 기어다니고 그것을 잡으면 제 엄지를 물어서 피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반지락과 꼬막 뻘덕게들을 담은 차두가 무거울수록 더 즐거움이 쏠쏠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생각하는 것이 호미질을 하는 것이라면 거기서 캐어지는 반지락과 꼬막들은 은총의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혜들이요 그 은혜를 발견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수시로 받는 은혜는 삶이란 갯벌 속에 감춰져 있는 허벌나게 많은 꼬막들 반지락들 뻘떡게들로 상징되는 그 무엇들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언저리에, 우리들에게는 강진읍교회라는 믿음과 사랑의 텃밭에, 심겨 놓으신 것들인데 그것들을 캐면서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즐거워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됩니다. 생각의 호미질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 삶에 무궁무진한 은혜와 은총의 편린들을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풍가서 보물찾기할 때 초등학교애들이 찾을 수 있는 수준의 이곳저곳에 마구잡이로 살짝살짝 감추어 놓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 은혜들을 생각의 호미로 캐면서 우리 삶은 즐거움과 기쁨의 천국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주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 강진읍교회 성도님들도 여러분들만의 삶의 갯벌에서 생각의 호미질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생각의 호미질을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내 삶의 언저리에 무수히 헤일수 없이 허벌나게 많은 은혜들과 사랑을 요소요소에 내 전후좌우에 살짝살짝 숨겨놓으신 것을 캐게 될 것이고 보게 될 것이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의 호미질을 해보았습니다. 내 심장이 언제부터 뛰었던가? 아마도 모태에서 심장이 조직되어 어느 날부터 희미하게 뛰기 시작되었다면 지금까지 몇 회나 뛰었을까? 시카고대학 의학연구원들이 16세에서 65세까지의 사람 백 명에게 일할 때나 쉴 때나 항상 자그마한 전자 감식기 장치를 부착시켜서 테스트를 한 결과 하루 종일 끊임없이 심장이 뛰고 있었으며 하루에 약 100,000번 정도 뛰는 걸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내가 55 년을 살았으니 365 곱하기 55 곱하기 십만 하면 20 억 750 만번 째 뛰고 있는데 내가 잘 때도 쉴 때도 운동할 때도 여전히 뛰고 있는 것입니다. 심장은 1-2 분이라도 뛰지 않으면 마비되어 그대로 죽습니다. 내 심장이 55 년 동안 단 1 분도 휴식시간을 갖지 않고 단 60-70 번이라도 쉬지 않고 뛰어준 심장이 고맙지 않은가? 이내 생각의 호미질을 더하였습니다. 내 심장을 내가 만들었는가? 아니지! 내 심장을 하나님께서 모태에서부터 조직하여 최초로 뛰게 하신 이후 그 심장을 오늘에 이르도록 20 억 750 만째 뛰게 하신 그래서 살아있게 하신 은총의 하나님께 한번이라도 감사하다고 감사헌금을 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았을 때 한 번도 그 명목으로 헌금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의 호미질을 내 삶의 한 부분인 내 몸, 내 입, 내 코, 내 간, 내 위장, 등등에다 적용해 보면 감사할 것이 참으로 허벌나게 많게 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밭에는 눈물나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저 단면적이고 평면적인 생각을 한다면 원망 불평 분노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만 생각의 호미질을 깊게 파헤쳐 보면 그 안에 더 굵은 씨알의 주님의 은혜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총회총무로 일하면서 제 직함 때문에 고발고소를 적지 않게 당하고 있습니다. 이 고소고발은 제가 일하기 전 약 10 년 전의 일이 계속 이어진 것입니다. 교단소유의 땅을 팔았을 때 정당한 과정을 거쳐서 팔지 않았다고 직전 총무를 수도 없이 고소했고 그 분은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를 받았습니다. 고소고발한 분들은 그 이후에도 소송을 끊이지 않고 십여년에 걸쳐서 약 열 번을 넘는 고소고발을 계속하고 있고 지난주에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왔습니다. 첨에는 무척 억울했고 저를 고소하고 고발한 분들은 참으로 미웠습니다. 그분들에게 다가가 뺨을 치고 싶은 생각도 일었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끊임없이 모해하고 고소고발을 상습적으로 하는 자들을 다 주님의 손으로 처리해 주십시오!” 그토록 기도했는데도 저들은 더 쌩쌩하게 고소고발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조용히 앉아서 묵상하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의 호미질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래 저들을 미워할 것만이 아니라 저들은 교단 안에 한 호리라도 부정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사회법정에 고소고발을 하는데 그것을 부정적으로 볼 것만 아니지!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교단을 보다 더 깨끗하게 과정과 절차에서도 바르게 하고 교단이 세상 사람들이 보더라도 투명하게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안전판을 만들어 놓는다면 중장기적으로는 교단에 훨씬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저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페니실린 주사를 먼저 맞은 것으로서 큰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자는 선한 뜻으로 생각하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태복음 5 장 43 절 _ 45 절)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내가 오히려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산상수훈을 지키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너를 고소고발하는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게 되고 그 지키기 어렵다는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지키게 되어 너는 내 아들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를 고소고발하는 자들은 나로 하여금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되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사도 바울도 몸 속에 질병이 찾아왔을 때 계속하여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오히려 그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는 주의 음성을 듣지 않았던가? 오히려 그 시련과 고통의 불 속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정금같이 단련되어 주님 앞에 금그릇과 같이 쓰임받지 않았던가? 생각의 호미질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 속에 들어오셔서 좀더 깊은 깨달음의 은혜를 주셨고 씨알이 큰 열매를 캐게 해 주셨습니다.
 
 
■ 금번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해서 삶이라는 너른 갯벌에서 성도 여러분들이 강진읍교회라는 갯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기 위한 생각의 호미질을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갯벌은 아무리 호미질을 해도 아무리 깊게 파고 파도 아무 것 나오지 않는 맹탕의 갯벌, 허탕의 갯벌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분의 삶의 갯벌 이곳저곳에 이미 주실 은혜들을 밤하늘의 별들보다도 많은 바다의 모래알보다 많은 은혜들을 갯벌 살짝 밑에다 감추어 두셨고 여러분들이 생각의 호미질로 캐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것들을 파헤치면서 당신이 마련해 놓으신 은혜들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기뻐하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시련과 고통이 많은 이들이라면 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더 많이 잡히도록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캐고 발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도 넘치게 하기를 바라시고 감사가 넘치는 자에게 주시는 기쁨이라는 후속의 은혜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감사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이미 감사를 넘치게 받으실려고 이미 넘치는 은혜들을 여러분의 삶의 갯벌에 첩첩히 동서사방에 깔아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은총의 하나님, 강진읍교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생각의 호미를 들어 지금 이 시간 이미 예비해 놓으신 은혜들을 캐서 여러분의 삶의 망태에 가득 담아 돌아오면서 기쁨과 행복이 쏠쏠하게 되기를 진정 바라십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모두가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찬송을 부르면서 강진읍교회 성도님들의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의 노래가 그치지 않게 되기를 주님께서는 소망하십니다. 강진읍교회 성도 여러분들 모두가 한 분도 빠짐없이 은총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정확하게 그렇게 다 되시기를 바라고 사도 바울과 같이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은총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생각할 때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주님께 수시로 감사하고 그리고 기뻐하는 자가 되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강진읍교회의 삶의 자리에 하늘의 은혜로 가득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감사와 기쁨도 가득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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