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년 12 월 21 일 (주일) 오후 3 시 이주민 성탄축제 / 동수원교회
성경본문 : 요한복음 3 장 16 절
제 목 : 독생자를 주셨으니!!
■ 할렐루야! 오늘 이주민 성탄축제에 나아오신 한 분 한 분 귀하신 모든 분들 위에 은총의 예수님께서 성탄의 평화를 가득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좌우 전후에 있는 분들이 이 땅에 성탄하신 아기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 사랑해요!!” “잘 오셨어요 예수님!!” 하면서 꼭 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를 크게 드리는 뜻에서 하늘을 향해 뜨거운 감사의 박수 한 번 보내드리십시다. 무엇보다도 이 땅에 이주민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아주시고 우리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드리시고 이 땅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기도 드려주신 기장이주민교회를 이루어 주신 여기 계신 모든 형제자매님들을 향해 이 시간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성탄 축제에 노래로 악기로 연극으로 참예해 주신 각 나라에서 오신 모든 팀들에게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리십시다. 오늘 이 성탄축제를 위해 귀한 성소를 허락해 주신 동수원교회 당회 장로님들과 김상현 담임목사님께 감사하는 박수를 보내드리십시다. 뿐만 아니라 기장이주민선교협의회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목사님들과 이주민선교협의회 김은경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들에게도 박수 한 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요한복음 3 장 16 절에 관한 노래와 율동을 배웠습니다. 이 시간 따라서 해 봅시다. “하나님이 / 세상을 / 이처럼 / 사랑하사 / 독생자를 / 주셨으니 / 누구든지 / 예수 믿으면 / 멸망하지 않고 / 영생을 얻으리로다 / 요한복음 3 장 16 절” 이 시간 이주민선교협의회 회장이신 김은경 목사님과 함께 여기 나와서 율동을 함께 해 볼 사람은 상을 주겠어요!! 손 한 번 번쩍 들어보겠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성탄의 귀한 뜻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탄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성탄은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인데 그 선물을 왜 주셨습니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기에 주셨습니다. “이처럼”이 얼마큼일까요? 여러분 중에 누군가 살짝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 봅시다. 살짝 좋아하게 되면 바로 그 사람에게 조그마한 것을 선물하게 됩니다. 사탕도 선물하고 예쁜 리본도 선물합니다. 누군가를 살짝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에게 더 좋은 것을 더 값치고 소중한 것을 주려 합니다. 내 소중한 시간도 그와 함께 쓰려 하고 내 마음도 그에게 주려 합니다. 아니 좋아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릅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만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과는 엄연히 차원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 마치 비행기가 달리고 달리다가 마침내 땅을 떠나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은 차이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바퀴가 아직 땅에서 구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그 바퀴는 더 이상 땅을 구르지 않고 바퀴를 접고 공중으로 떠올라 다른 차원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더 옳습니다.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주려 합니다. 더 좋아하게 되면 더 좋은 것을 주려 합니다만 사랑하게 되면 더 좋고 좋은 것을 주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것을 주려 합니다. 무엇입니까? 자신을 주려 합니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기를 주되 다 주려 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시간도 자기에게 있는 좋은 것도 자기에게 있는 온갖 모든 것을 다 주어 버리려 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들만 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주려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려 합니다. 생명까지 다주는데 다른 그 무엇이야 그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사랑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랑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사랑하면 사랑에 빠지게 되면 담을 넘어가데 됩니다. “자기”라는 담을 훌쩍 뛰어 넘고 “자신”이라는 담도 선뜻 초월하게 됩니다. 어떤 차원을 넘어서게 됩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무엇입니까? 세상은 바로 여기 모여 있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필리핀 몽골 러시아 중국 네팔 스리랑카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이라는 영역을 좁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한 사랑하는 사람이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초라함, 그 부끄러움 눈빛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에 스며드는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내가 그대의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온전함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부족함, 그 안타까움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에 스며들어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화려함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그늘, 그 아픔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에 스며들어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당당함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망설임, 그 갈등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의 스며들어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부유함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가난, 그 한숨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의 스며들어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 그대의 말 때문이 아닙니다 / 그대의 침묵, 그 눈물이 있기에 / 나는 그대의 가슴의 스며들어 / 그대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함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심은 사랑할만한 것이 있어서 아름답거나 온전하거나 부유하거나 당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빠지셔서 사랑하는 나에게 무엇인가 주셨습니다. 무엇을 주셨습니까? 요한복음 3 장 16 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이처럼은 무엇입니까?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다 그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100 세에 얻은 이삭은 자기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번제로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차라리 나를 바치라 하면 좋았을 것을 하며 눈물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내게 번제로 바쳐라 하자 아브라함은 독생자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이삭을 드렸으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왜 바쳤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기 때문에 자식을 바쳤습니까? 100 세된 아브라함에게 더 누릴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이삭만큼 더 큰 복이 있겠습니까? 무슨 댓가를 바라고 바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이삭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서 독생자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이시며 성자 예수님은 또한 성령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주신 성자 예수님은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 장 16 절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도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셨으니!!”로 바꾸어도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바로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과 초월과 신비를 발견합니다. 사랑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어떤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사랑하게 되면 초월합니다. 합리와 이성의 세계도 훌쩍 그 담을 넘어 버립니다. 사랑하게 되면 계산과 이득의 세계는 어디론지 사라집니다. 이만큼 주면 이만큼 받을 것이라는, 이만큼 받으면 이만큼 주어야 한다는 합리와 계산의 세계는 사랑의 세계에서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주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주고 더 줄 것이 없는가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보고 그리고 더 줄 것이 없음을 애타하고 애석해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다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자신을 다 주고도 기뻐하게 됩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기에 사랑에 빠지셨기에 주시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 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탄을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성탄을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성탄을 빛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성탄을 평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은 사랑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탄은 하나님 자신을 주시는 사건이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성탄은 그러므로 사랑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탄은 그러므로 사랑입니다.
■ 율동 하나 하겠습니다. “엄마 닭과 아빠 닭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 닭이 배가 아파 알을 낳았어요 눈도 있다 삐약삐약 코도 있다 삐약삐약 입도 있다 삐약삐약 배꼽은 없다 삐약삐약 엄마 닭은 또 배가 아파 알을 낳았어요 아빠닭은 괜찮아 괜찮아 스무 알만 더 낳아 아빠닭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번개같이 지켜 주었어요 엄마닭은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쭈쭈도 주고 행복하게 살았대요” 성탄은 예수님께서 엄마닭과 아빠닭이 되셔서 우리아가닭을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쭈쭈도 주고 사랑을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성탄의 깊은 뜻은 우리가 서로 평화롭게 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화해하며 사는 일입니다. 이 시간 앞에 있는 사람, 뒤에 있는 사람, 오른쪽에 있는 사람, 왼쪽에 있는 사람이 바로 성탄하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시고 꼭 안아주시면서 “사랑합니다! 예수님! 잘 오셨어요! 예수님! 저희도 사랑하며 살래요!” 하면서 꼭 안아 주시되 적어도 열명 이상 꼭 안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거기에 우리 예수님께서 성탄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한 다른 이를 우리에게 주심이 아니요 부족하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하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희로 사랑을 받고만 그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감싸 안아주면서 살게 해 주옵소서! 은총의 주님 이 땅의 이주민들과 이주민교회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뜨겁게 사랑해 주시고 이전보다 더 사랑해 주시옵소서! 성탄하신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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