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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 아침을

관리자 2010-11-26 (금) 14:31 15년전 2745  

1994 년 3 월 13 일 오전 11 시 청년주일 서울한빛교회 주일낮예배

성서본문 : 창세기 32 : 22 - 32

제 목 :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1. 저번에 유목사님께서 완공되기 직전의 한빛교육관을 보여주셨습니다. 외관도 수려하고 내부도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좋아서 “목사님, 제가 이 교회 부목사로 다시오면 안됩니까 ?” 말씀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아름답게 교육관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하여 그동안 애를 쓰면서 기도하신 모든 교우님들께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 준목님이 저에게 말씀을 부탁했을 때 한편으로는 목사님과 교우들이 잊지 않고 불러주셨구나 감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목사님께 전권을 위임받아 전화했다는 배광진은 이 배태진을 생각하는구나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무척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부목사로 안오기로 맘먹었습니다.

2. 오늘은 우리 교단 전국교회가 함께 지키는 청년주일입니다. 작년 3 월 8 일 청년주일에 와서 말씀을 전한 바 있었습니다만 올해 또 불러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년 청년주일인 95 년 3 월 12 일에도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점잔빼지 않고 즉시 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 박정희 군사정권때 김재준 목사님이 캐나다에 계셨을 때 문익환 목사님이 서신을 보내어 어서 돌아오셔서 독재와의 투쟁의 구심점이 되어주시라고 간청하셨을 때 김목사님은 너희 젊은 것들은 뭐냐, 내가 돌아와야 한다면 이미 진 싸움 아니냐 ? 답신을 보내오셨습니다. 문목사님이 편지를 보내셨을 때가 결코 적지 않은 연세이셨을 텐데 문목사님을 너희 젊은것이라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이채롭습니다. 오늘이 청년주일입니다만 여기서 청년의 범위를 어디까지 한정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도 청년이셨습니다. 문 목사님도 가시는 그날까지 예수정신으로 사신 청년이셨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청년들만이 청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혼을 지니고 사시는 이제는 백발로 아름답게 단장하신 이 순이 권사님을 비롯한 한빛식구 모두가 다 기독청년입니다. 오늘 주제인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이는 여러가지 뜻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저는 미혼인 후배들에게 올해 가을 쯤에 결혼하여 내년 8 월에 아이 하나낳아 “희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 성서적이고 민족적이며 한국교회사적인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적극 권장합니다만 상대방은 저의 “아니 그렇게 깊은 뜻을” 몰라보고 그저 웃기만 합니다. “손을 맞잡는다” 이는 힘을 모은다. 협력 연대한다. 대동단결한다는 뜻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희년은 문자 그대로 기쁨의 해입니다. 희년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법의 선포요, 그 정신은 원상회복과 해방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레위기 25 장 10 절에는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가난한 자, 눈 먼자, 포로된 자, 눌린 자에게 기쁜 소식과 해방을 선포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 희년에는 우리 주님의 정의, 주님의 평화, 주님의 해방, 주님의 생명, 우리 주님의 사랑의 정신이 담뿍 어려 있습니다. 1988 년 2 월 29 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서울 연동교회에서 개최된 제 37 차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총대들의 기립박수속에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여기에서 1995 년을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게 됩니다. 그 설명은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희년은 억압적이고 절대적인 내외 정치권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모든 사회적 경제적 갈등을 극복하여 노예된 자를 해방하고 빚진자의 빚을 탕감하며 팔린 땅을 본래의 경작자에게 되돌려주고 빼앗긴 집을 본래 살던 자에게 돌려주어 하나님의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샬롬을 이루어 통일된 평화의 계약공동체를 해복하는 해이다. 한국교회가 해방 50 년째인 1995 년을 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50 년 역사를, 아니 전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적 현존을 믿으면서 평화로운 계약공동체를 회복하고 또 오늘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그것을 이룩하려는 우리의 결의를 다지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희년은 우리 민족에게는 새아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년주일과 주제를 결합하면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오늘의 설교요약이 나옵니다. “ 우리 예수님의 정신으로 충만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모아 주님의 은혜의 해가 동터오도록, 희년의 새아침을 맞이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4.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다. 우리의 역사는 손을 맞잡는 역사가 아니라 서로 등을 돌리는 역사였습니다. 등만 돌리고 끝나면 좋을텐데 그 등을 다시 돌려 손에 칼을 잡고 피흘리며 싸우는 역사였습니다. 노론 소론 남인 북인 사색당파로 분열하고 서로 정죄하는 역사였습니다. 세계의 흐름을 바로 보지 못하고 우물안에서 주도권 싸움을 하다가 외세의 강제침탈에 의해 고개숙인 역사였습니다. 일제로 부터 해방된 이후 민족재건, 완전독립이라는 역사적 사명에는 등을 돌린 채 좌우이념의 대결로 밤을 지새우고 급기야 외세의 충동질로 인해 탱크와 대포를 서로 쏘아가며 서로 많이 죽였으면 민족영웅이 되고 그러다가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후 등장한 윗동네와 아래동네의 독재정권들은 악질적 마키야벨리즘으로 국민들을 지역으로 나누고 이념으로 갈라 지배를 효율화하였습니다. 독재를 향한 싸움가운데에서 민주 민족운동세력들도 서로 등을 돌려 치열한 사상투쟁을 하였습니다. 87 년 대선에서의 패배도 손을 맞잡아야할 세력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엔엘과 피디가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서로 정파가 다르면 담배불도 안빌려 준다고 합니다.이 엔엘과 피디의 싸움은 한신대학교에서도 있어 처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즐겨 먹었던 요플레 요구르트를 상대방 정파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날부터 과감히 꼬모 요구르트로 바꾸었다는 웃기지 않은 전설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게 뭡니까 ?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

국내외적 상황이 재빨리 변화해갈 때 문목사님은 통일운동의 지평을 좀더 멀리보고 좀더 넓게 보고 좀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심지어는 과거 반통일 세력이었던 정부까지도 감싸안는 드넓은 포용력으로 예언자적 시각에서 통일채비를 준비해 가셨을 때 일부의 통일운동의 세력들은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목사님께 등을 돌리고 비판을 넘어선 비난으로 삿대질을 하였을 때 얼마나 목사님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 심정을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 역시 아픕니다. 조금 차이가 있다고 금방 차별시하거나 조금 나와 의견을 다르다고 곧바로 적으로 여기고 비난의 방아쇠를 당기는 지난 세월의 헌누더기 같은 역사를 우리는 이제 각성의 바늘을 찌르며 꿰메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새아침의 역사가 아니라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의 어둠이 짙었던” 역사였습니다. 지정학적 특수성 때문인지 5 천년 역사에 무려 1 천번 이상 외침을 당했습니다. 5 년에 한번 꼴입니다. 분단은 남과 북 양쪽에 총칼정치를 할 명분을 주었고 남과 북은 내부적으로는 긴밀히 협조하면서 겉으로는 적당한 긴장을 일으키고 적당히 상호간에 도발을 해주었고 이를 국민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로 삼아 서로의 독재정권기반을 굳건히 보증해 주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국민들과 인민들은 고문, 투옥, 의문사, 해직 등 인권유린이 다반사로 당해왔고 독재철권정치는 그리고 군사문화는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평화적으로 정착되어 갔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최근세사를 보더라도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불 때 불켜진 주막, 움막 하나도 없이 아니 집도 절도 없이 헤메이는 캄캄한 역사였습니다. 지난 목사님의 겨레장이 끝난이후 이곳에서 추모예배를 마친후 우리가족이 4 명이 단체로 “그 섬에 가고 싶다”를 관람하였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자막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내 몸은 좌석에서 마치 자석이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헌고무신 한짝에도 못미치는 무슨 덜떨어진 이념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민중들을 죽고 죽이고 등을 돌리고 서로 싸운 역사, 어둠속에서 신음했던 역사의 편린들을 아주 사실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심혜진씨가 바보같은 모습으로 인위적으로 반동분자와 열성분자를 갈라놓은 선을 춤추며 뛰어다니면서 뒤섞어버려지는 모습 속에서 저는 지난 세월 총칼로 서로를 죽여왔던 일, 서로 등을 돌려왔던 일들이 얼마나 애들 장난보다 훨씬 바보같았던가 얼마나 우스웠던가를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례를 지내는 모습과 함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역사 분열과 전쟁의 역사, 등을 돌린 역사를 장례지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장례는 무슨 장례입니까 ? 화장을 시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아니 불태워 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21 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선포한 통일희년도 내년입니다. 우리는 교단총회의 주제대로 광야를 지나 약속의 새 땅에 이르러 의를 심고 사랑을 거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맞이할 때가 되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 장 2 절 말씀입니다.

5. 최근 저는 큰 맘먹고 컴퓨터 한대를 샀습니다. 정보화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가 표면적인 이유였고 컴퓨터 게임을 한번 즐겨 보자는 부차적이고 2 차 3 차적인 실제적인 핑요도 없지 안았습니다만, 직장 동료에게 컴퓨터 샀다고 자랑하자 무슨 모델이냐고 묻자 486 DX2, 170 메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안경너머로 저를 보며 웃었습니다. 저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압니다. 한손가락으로 타이핑정도하는 니 주제에 286이면 충분할텐데 웬 486 ! 하는 비웃음입니다. 그래서 현재 컴퓨터 시장에서는 제일 좋은 왕 486 이다를 역시 의미있는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안에는 무슨 윈도우라고 하는 게 있는데 그 창을 통해 현재 화면과 다른 화면을 대조해 보면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컴퓨터로 두집게 손가락으로 처음 친 설교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2 장의 역사와 오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믿음의 창을 통해 서로 대조해 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새로운 메세지에 한번 접근해 가고자 합니다.

6.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여러분들이 너무도 잘아는 인물이고 잘아는 얘기입니다. 본문이전의 상황은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고향에 가면 형과 만날텐 데 과거에 지은 얼룩진 역사 때문에 장자권을 교묘하게 빼앗은 일 때문에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습니다. 두뇌회전이 486을 훨씬 넘는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몇가지 작전을 짭니다. 32 장 7 절이 첫번째 작전입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양과 소를 두 떼로 나누고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떼는 도망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두번째 작전은 선물공세 작전입니다. 17 절에 야곱은 에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선물을 미리 보내 형의 분노를 누그려 뜨리고자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그래도 안심되지 않아 두 아내와 그의 열한아들을 얍복강 너머로 보내고 그는 홀로 얍복강 나루에 남았습니다. 해는 지고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이 야곱은 홀로 강 앞에 섰습니다. 땅거미는 지고 얍복강물도 차츰 흙빛으로 변해 갔습니다. 야곱의 마음속에도 어둠의 강물이 흘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형에게 맞아죽겠지, 절망은 파도처럼 얍복강을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마지막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렇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매달려 보리라, 그는 간절한 마음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야곱은 홀로 어떤 사람과 만나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래밭도 아닌 자갈밭에서 황소를 타는 것도 아닌 씨름판에서 야곱은 밤이 새도록,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씨름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싸움판에서 이겨 비단 옷을 입은 황소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을 얻었습니다. 야곱이 절뚝거리며 일어났을 때 동산의 아침햇살 브니엘의 태양이 구름뚫고 솟아와 새하얀 접시 꽂잎위에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7. 우리 믿음의 창으로 이 말씀을 우리 분단된 민족현실속에 투영시켜 대조해 봅시다. 야곱과 에서, 이 두 형제는 한피받아 한 몸이룬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야곱과 에서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수십년을 헤어진 채로 지냈습니다. 우리 민족 남과 북도 그렇습니다. 한 뿌리, 한겨레, 한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축복권 때문에 아니 정권 때문에 민족구성원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이 반백년을 서로 등을 돌린 채로 고개 숙인 채로 서로 대립과 갈등의 부지하 세월을 보냈습니다. 칠천만 겨레에게는 참으로 암흑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등만 돌린 것이 아니라 그 등을 다시 돌려 서로 피터지게 싸웠습니다. 반백년을 피눈물로 젖어든 가슴으로 눈물지어야 했습니다.

얍복강, 이 강은 야곱과 에서를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 흐르고 이었습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처럼 건너기엔 너무도 힘든 배반의 강으로 흘렀습니다. 제 77 회 총회의 결의로 본교단은 남과 북이 근접한 지점에서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기도회를 3000 여명의 교역자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하였습니다. 그 곳은 남과 북을 가르는 임진강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너머 임진강을 가로질러 조선인민민주공화국 아니 우리 한핏줄이 살고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이 임진강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희년 1995 년을 앞으로 2 년 남겨두고 있습니다. 2 년후에는 우리는 억울한 분단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있고, 살고 싶은 땅에 가서 살 수 있고, 묻히고 싶은 땅에 묻힐 수 있고 찢겨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 한 지붕 밑에서 오손도손 살 수 있는 희년을 맞으려고 오늘 여기 임진강 앞에 모였습니다. 너무 길었습니다. 50 년에 2 년이 모자라고 그 세월을 우리는 서럽게 처절하게 욕스럽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2 년안에 이 서럽고 욕스러운 역사를 털어 버리려고 오늘 이자리 임진강 앞에 모였습니다”

씨름, 이것이 무엇입니까 ? 야곱은 죽기살기로 씨름하였습니다. 유대적 표현에 의하면 이는 씨름하듯이 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이 의미는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기도의 행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문목사님을 선두로 하여 통일운동세력들은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 몸으로 행동으로 기도하여 왔습니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당하여 환도뼈가 위골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직장에서 쫗겨나고 해직되고 가택연금당하고 수배당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통일운동을 하다가 당한 고난은 성서의 야곱이 겪은 것 이상의 아픔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브니엘의 태양, 이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수 없고 이념을 떠나 죽은 이를 조문할 수도 없고 40 년 이상의 장기복역수가 있는 허울좋은 이름뿐인 신한국은 분명코 아닙니다. 브니엘의 태양은 남과 북이 손을 맞잡고 관공서마다 단일기가 올라가고 남남북녀, 남쪽의 우리 종씨 배장호같이 잘생긴 머스마와 북쪽의 심혜진같은 미녀가 마음대로 한빛교회나 봉수교회에서 우리 유원규 목사님의 주례와 조선기독교도연맹 서기장 고기준 목사님의 축도아래 결혼예배를 드리고 백두산으로 신혼여행을 하고 딸 아들 둘만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나라, 바로 브니엘의 태양이 동터오르는 곳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화해가 이미 약속된 나라 통일된 나라 그 곳이 대한인민공화국이던지 조선민주공화국이던지 이름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 바로 우리 예수 정신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입니다.

8. 오늘 우리 민족 현실 속에 브니엘의 태양은 떠올랐습니까 ? 여러분은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 노래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한많은 우리 칠천만 겨레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이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이미 동해 바다 저쪽에 물컹물컹 떠오르려고 폼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침 햇살이 바로 동해바다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김 신묵 권사님은 하나님께 부르심받기 바로 직전에 “통일은 다됐어” 하면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임수경 양을 부등켜 안고 딩구는 북쪽 겨레의 모습속에서, 이 인모님을 뜨거운 민족애를 안겨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낸 남쪽 4 천만 겨레의 마음씨에서 우리는 이미 통일이 다 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문목사님이 임진강 나루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 예수정신을 지닌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 오늘 말씀제목 그대로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맞이하도록 채비하는 일입니다.

첫째. 우리는 브니엘의 태양이 떠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 골고루비추이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와이에스는 못말려”라는 콩뜨집에 보면 “우째 이런 일이”라는 전용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는 “우째 이런 일이”이 빈발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의 비행기사고로 인한 대형참사, 바다에서의 페리호의 대형참사, 육지에서의 기차대형사고, 얼마전에는 지하철사고 등 육지, 바다, 하늘, 그리고 땅속까지 문민정부는 대형사고의 그랜드슬램의 찬란한 위업을 이룩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살고 있는 세계에서도 “우째 이런 일이 다발하고 있습니다. 보스니아와 소말리아의 내전, 공해와 오염으로 인한 창조질서의 파괴, 인종간의 분쟁, 종교와 종파간의 분쟁, 성적 차별, 강대국들의 이해타산에 의해 만들어진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한 우리 농촌과 농민의 수난 등 우리 사회 곳곳에는 칠흑같이 어둠으로 인해 진정 브니엘의 태양이 희년의 새아침이 동터오도록 씨름하는 기도를 함께 드리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무엇보다도 우리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분단된 우리 민족의 현실속에 브니엘의 아침햇살이 비추어지도록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브니엘의 태양은 우리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떠오르는 크로노스의 태양이 아니라 야곱의 씨름하는 기도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역사하시는 카이로스의 태양입니다. 이 기도는 교회에서 우리 삶의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차원을 포함할 뿐 아니라 평화통일운동에 통일맞이운동에 동참하는 몸의 기도의 차원 역시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할까 ? 저는 기독청년이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맞이하는 삶의 원형을 구체적으로 찾는 가운데 우리의 호프 문익환 목사님의 삶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독청년으로서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열기 위해 예수님께서 새하늘과 새 땅을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듯 우리 보다 먼저 한민족의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시기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되셨습니다.

유원규 목사님이 하셨던 과거의 말씀중에서 저는 어떤 예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문에 충실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한 지적소유권은 전적으로 유목사님에게 있음을 밝혀 둡니다. 어느 카톨릭교회 앞에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었습니다. 2 차세계대전때 폭격으로 예수상이 폭격으로 손과 발 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전후 그 교회 공동의회에서는 파괴된 예수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가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체를 허물고 다시 세우자는 안과 파손된 손과 발 부분만 다시 복원하자는 안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두 안중에 어느 안도 실행치 않기로 결의되었습니다. 얼마후 파손된 예수 그리스도상 밑부분에 조그마한 라벨이 붙여졌습니다. 그 라벨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목사님이 우리에게 남겨두고 가신 통일채비의 일들을 이제 그리 무겁지 않은 십자가를 나누어 져야 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손과 발이 되어, 목사님이 눈을 이 슬기로운 샘에게 주시고 가신 것처럼 우리는 이제 모두가 젊은 청년이 되어, 이 슬기로운 샘이 되어 목사님의 눈이 되어 손을 맞잡고 희년의 새아침을 열어가는 통일씨름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일 목사님만 쳐다보고 목사님의 업적만 기린다든지, 그것은 목사님같이 큰 분만 하시는 일이라고 나와는 상관없이 지낼 때 하나님의 좌편에 앉아 계신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두가지 꾸지람을 하실 것입니다.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냐 ? 너희 젊은 것들은 뭐냐 ?

8. 저는 문목사님이 임진강에서 말씀하시고 기도하셨던 귀한 옥고를 지금 가보 1 호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목사님께서 하셨던 기도를 마음과 몸으로 함께 읽으면서 제 말씀을 마무리하고 기도로 대신하고자 합니다.다같이 기도합시다.

9. 하느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당신은 우리를 민족통일의 기쁨에 들뜨게 해 주셨습니다. 국토통일 조국통일의 기쁨에 들뜨게 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허락하고 약속해 주신 희년 1995 년을 눈앞에 바라보는 이 자리에 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7 천만 겨레는 당신의 제단 둘레를 손잡고 돌면서 축제를 올릴 겁니다. 하나된 기쁨의 눈물 펑펑 쏟으며 노래하며 춤출 겁니다. 아 ! 우리의 하나님 역사의 주님이시여 48 년전 그렇게도 목이 타 기다리던 해방이 이 겨레에게 안겨준 혼란과 분단의 비극을 넘어서는 통일의 날을 혼란으로 또다른 비극 안겨주는 것일 수 없습니다. 그 날은 7 천만 겨레가 두 손 맞잡고 영광스러운 새 역사의 장을 활짝 여는 날이어야 합니다.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우려고 다같이 삽을 드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 날은 다같이 “생명사랑”일념으로 자유로운 평등사회를 이룩해야 하는 날입니다. 아 ! 우리의 하나님, 역사의 주님이시여 ! 우리에게 크고 넓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반세기동안 반목질시하며 살아오던 겨레가 한 피붙이임을 확인하며 모든 차이를 오색찬란한 꽃동산, 평화로운 새세상, 당신의 나라를 세우는 일말고 눈 앞에 보이는 것 없고 열린 눈, 맑은 슬기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국제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하나 밖에 없는 조국 이 금수강산이 세계평화의 초석이 되도록 평화의 복음을 실천하고 기쁨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하느님 역사의 주님이시여! 세계는 지금 가진 나라와 못가진 나라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통일된 조국은 이 세계의 모순을 풀고 모두가 당신의 축복을 고루 누리는 평화롭고 복된 세상되게하는 당신의 역군으로, 세계전민중 해방운동의 기수로 우뚝 서도록 우리를 키워 주시옵소서. 우리의 하느님 역사의 주님이시여! 2 년후로 다가오는 통일이 이 겨레의 창조적인 슬기와 힘의 화산처럼 분출하는 날이 도래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 겨레의 맑은 마음이 온 강산 굽이굽이 샘물처럼 솟아난 산과 들을 고루 적셔 힘찬 아름다움으로 돋아나 당신의 생명으로 넘쳐나는 세상되게 해주시옵소서. 아 - 우리의 하나님 역사의 주님이시여! 우리는 믿습니다. 갈라진 이 조국, 이 겨레가 하나되는 것이 당신의 뜻임을 ! 이 땅에 당신의 평화를 세우는 일이 벗어버릴 수 없는 우리의 일임을 ! 당신은 이 땅에서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것을 ! 우리는 이 당신의 크신 그리고 고마운 이 뜻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리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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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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