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사도행전 1 장 8 절
제 목 : 땅끝까지 이르러
할렐루야! 우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교회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끔 주일예배시에 기도를 맡은 사람들은 하나님 여기 빈 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어서 이 자리가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저 역시 가나안교회에 와서 그 기도를 할 때마다 속으로 아멘하면서 공감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이 곳이 잘되어야 하겠고 이 예배공간이 가득가득 넘쳐서 1 부 2 부 3 부 그것도 모자라 성전을 확장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의 허전한 심정도 빈자리만큼 커집니다. 아들의 심정이 그러하니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하실까 늘 생각해 봅니다. 물론 하나님의 집인 교회이지만 남이 목회하는 곳보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가 훨씬 부흥되고 날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아들의 심정입니다. 여러분의 아들이나 부모님이 사업을 하시거나 아니 목회를 한다할지라도 여러분의 심정은 저하고 같거나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제가 이곳에 매주 내려오는 이유는 사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섬긴다는 대전제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아버님의 목회를 1 cm 라도 아니 1 mm 라도 돕고자 하는 마음 뿐입니다. 그동안 약 7 년동안 일반 교회 목회를 하지 않고 기관에서 총회본부에서 일했기에 목회에 대한 감각과 식견은 남보다는 훨씬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총회의 정책과 사업을 진행해가는 데는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인정받고 있습니다만 일반 목회는 사실상 유년기에 있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려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목소리지만 성가대에 앉아서 베이스 파트를 하고 있고 중고등부와 주일학교의 한 영역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려와서 빈 자리 한쪽이라도 채워진다면 그래서 아버님의 목회에 100 g 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하는 심정입니다. 저는 김대중 씨의 아들 홍일이나 김영삼씨의 아들 현철이나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대선에 나서서 표를 얻고자 하였을 때 피를 말리는 심정을 어느정도 마음속에 스며들어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버님이 목회하시는 이 자리가 이 가나안교회가 주변의 어느 교회보다도 차고 넘치는 풍성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 때 부목사로 일했던 서울 한빛교회 이해동 목사님이 어느 날 설교에서 우리 한빛교회가 100 명만 넘는다면 교회지붕에 올라가서 춤을 추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한빛교회는 박정희 독재에 대항하여 투쟁하다가 교인들이 언도받은 징역 햇수가 130 년이 훨씬 넘은 교회였습니다. 일반교인들이 얼씬도 못했습니다. 매주 교회당은 40 - 50 명의 구속자 가족들과 창립교인들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해동 목사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저 역시 가나안교회 빈자리를 볼 때 마다 이 교회가 꽉 차서 어느 날 교회 주보의 광고에 다음 주부터 예배실이 너무 좁아 주일낮예배를 1, 2 부로 드리게 됩니다는 소식이 실려 있게 된다면 저 역시 교회 종탑 꼭대기 까지라도 올라가서 춤을 추겠습니다.
오늘 저는 전도에 관하여 여러 성도님들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주 목사님께서 전도에 관해서 말씀하셨지만 제가 전도에 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아마 여러분이 잘 짐작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드릴 때 몇가지 질문을 드리면서 그 질문에 하나씩 대답하는 방식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전도란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는 도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들은 소식을 남에게 말하기를 즐겨 합니다. 인간은 묘한 습성이 있어서 좋은 소식이든지 나쁜 소식이든지 남에게 얘기하기를 좋아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한 것도 말좋아하는 인간 전도란 엄밀한 의미에서 복음전도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새생명을 허락하셨던 엄청난 기쁜 소식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산지사방에 나가서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찬송가 179 장은 “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란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이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들 딸들 중에 누가 대학에 합격하거나 승진하였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되었다면 주변의 친구들에게 자랑에 자랑을 계속할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에게 좋은 일이 있다면 계속 알리고 전화를 걸어서라도 알리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복음전도도 이같은 인간심리에 근거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인간의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룩하신 놀라우신 일들을 증언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도 희생하면서 까지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꾸러 십자가에 달려 죽어도, 옥에 갇혀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대형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어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복음속에는 생명이 있고 생명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전도는 하면 좋은 것인가? 하지 않아도 괜챦은 것인가? 두 번째 물음입니다. 조선일보가 펴낸 잘못된 건강상식이란 책에 보면 아침을 굶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이 잘못된 지식이라고 하면서 아침은 고지방질을 피하면서 가볍게 먹는 것이 좋다고 잘못된 지식을 바라 잡아 줍니다. 전도는 하면 좋은 것이고 안해도 괞챦다는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를 미칠 것이라 하였습니다. 물론 바울 선생님은 화가 미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전적으로 변화되었고 끓어 오르는 기쁨 물밀 듯 밀려오는 기쁨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옥중에서도 간수에게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였습니다. 화가 미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좋은 것은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나 혼자 가지면 그것은 선이 아니고 악입니다. 하늘의 즐거운 소식도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복음을 나누어 함께 가지는 것 이것이 복음의 기쁨입니다.
3) 전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세 번째 질문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목사님 전도하라 전도하라 말씀만 마시고 방법을 말씀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이시간 전도의 5 단계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출근하기 위해 전철을 타려고 할 때 역전에서 대여섯사람이 매일 나와서 노란 띠를 두르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크게 외칩니다. 어떤 여자분은 사람을 붙잡고 당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지니 예수 믿어라고 말하다가 길가는 사람들이 크게 화를 내면 거기에서 싸움을 합니다. 저는 이같은 전도방식을 보면서 과연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 것인가 오히려 역효과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저들의 열정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면서도 저들의 전도방식에 대해서는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전도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자갈밭과 같고 돌짝밭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을 던져 싹이 나고 잎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저는 전도의 다섯단계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단계는 전도할 대상을 찾는 일입니다. 물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가장 전도하기 쉬운 사람을 선정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서 산수문제를 푸는 데도 어려운 문제를 먼저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쉬운 문제부터 풀고 나중에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자주 찾아가는 정육점 주인, 푸성귀를 사는 가게주인, 집에 신문배달을 하는 아이, 가까이 사는 믿지 않은 친척, 바로 옆 이웃집 등 접근하기 쉽고 이미 인간관계가 잘 맺어져 있는 이들부터 전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단계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지난 주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 이름을 집어 가면서 혹은 마음속에 그려가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주님 제가 이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려 합니다. 그 사람을 저에게 주셔야 하겠습니다. 저로 하여금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로 인도할 지혜를 주시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복음의 소씩을 전하도록 마음을 불일 듯 일어나게 하옵소서. 셋째단계는 전도의 집중공세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평화의 말을 건네고 전도대상의 애경지사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며 때론 전화하고 때론 찾아가 얘기를 들어주고 때론 이쁜 엽서에 편지를 쓰고 때론 집에 들어온 선물을 나누고 때론 김치도 담가 주고 때론 살림의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때론 시장도 같이 보고 때론 그 집 아이도 돌봐 주고 때론 신앙에 관한 좋은 책을 빌려 주거나 사주고 때론 자신이 믿게 된 동기와 신앙체험을 이야기 해주고 때론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밝은 표정으로 향기나는 말을 하고 때론 그 집 앞을 일찍 일어나 쓸어주기도 하고 이렇게 전도를 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물품공세도 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착한 행실과 믿음의 본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맞습니다. 여러분 요즘 이슬비전도학교를 아십니까? 요즘 전도의 방법으로 우리 교단 교회에서도 전도의 방법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기본 원리는 사람들이 이슬비를 맞으면 별로 개의치 않지만 나중에는 옷을 흠뻑 적시게 된다는 원리를 전도에 응용한 것입니다. 전도대상에게 이슬비와 같이 미세하지만 복음의 단비를 내려 신앙으로 흠뻑 적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 것)
넷째단계는 열정을 본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증인을 잘 아시지요. 저는 지금까지 여섯 번 이사하였습니다만 그 어느 집에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의 방문을 받아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정신에 위배되는 이단입니다만 그들은 그들의 교를 전하기 위하여 참으로 결사적으로 꾸준하게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도를 전합니다. 언제인가 한 번은 여호와의 증인들을 들어오게하여 따뜻한 차를 대접하면서 성경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몇시간 함께 논쟁을 하다가 자본이 떨어지고 모순을 발견하자 왕국의 진리를 전하지 못하고 황망히 집에서 나갔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편협한 지식으로 전도하지만 그들의 열정은 본받을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나가고 난 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저들이 가지고 잇는 열정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매일 출근하면 일하는 사무실 12 층에 보험회사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보험아줌마들이 12 층에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직원들이 일렬도 쭉 서서 증원합시다라고 마치 운동권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는 것 같은 우렁찬 구호를 듣게 됩니다. 12 층 현관에는 각양각색의 도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참조) 예수님께서는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같지 않으면 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의 복음전도의 열정은 보험아줌마보다 여호와의 증인보다 더 나아야 하겠습니다.
다섯째단계는 지속적으로 돌보는 일입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여 교회에 나오게 하였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있어 어린아이와 같은 지경에 있기 때문에 아이가 걸음마도 하고 아야어여를 할 수 있도록 잘 돌보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는 교회성도가 함께 나누어 짊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성경도 가르치고 교회생활에 대한 친절한 안내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전도된 사람이 자기 신앙으로 서고 설 때 까지 관심과 기도로 돌보아야 합니다.
4) 전도하다가 잘 안되는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안되는 때가 많습니다. 전도를 방해하는 무리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진리를 편견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토록 수고하였는데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이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 한두번 시도해 보다가 안되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솝우화에도 여우가 높이 달린 포도를 따 먹으려다 잘안되니까 에이 저것은 신포도야 하고 돌아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두번 전도해보다가 안되면 저 녀석은 하늘의 천사가 와서 전도해도 안돼하면서 포기해 버립니다. 뭐 나하나 믿음챙기기도 어려운데, 나도 믿음없는데 하면서 발길을 돌이키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찌니 떄가 이르매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러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선입니다. 그냥 단순히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입니다. 낙심치 아니하고 꾸준히 전도의 씨앗을 뿌리면 결국 하나님께서 전도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5) 전도하는 사람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물론 어떤 유익이 있으니 전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전도하게 되면 자연 유익이 뒤따라 옵니다. 첫째 믿음이 자라납니다. 전도하려니 기도도 하게 되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성경도 읽게 되고 교회의 건덕을 세우는 일도 하게 됩니다. 믿음은 전도를 하게 됨에 따라 더욱 쑥쑥 자라나게 됩니다. 둘째 건강해집니다. 전도자의 발은 전도하지 않은 자의 발보다는 배나 빨라야 합니다. 자기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전도하는 일도 해야 하니 자연히 부지런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셋째, 삶이 씩씩해지고 적극적이 됩니다. 보험아줌마들이 보험을 권유할 때 소극적인 성겪을 가지고서는 어렵습니다. 성격을 개조하는 훈련부터 합니다. 복음전도도 그렇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려니 적극성도 생기고 대인관계에 자신감도 생기게 됩니다. 성령께서 담대함을 아울러 주십니다. 넷째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를 뽑을 때 그가 몇 명을 전도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 교회도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께로 부터도 인정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채우는 사람을 어찌 범상하게 보겠습니까? 금면류관을 예비하시고 기다리실 것입니다.
6) 전도는 내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전도는 내가 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의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시켜 나가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증인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5. 사랑하는 가나안교회 여러분 우리 모두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시다. 하나님의 정치에 있어서 교회는 지구당과도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지지하는 성도들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나는 시한부 종말론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때의 징조를 볼 때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때를 앞두고 우리는 다미선교회원과 같이 아무일도 하진 않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성도들로 채우는 복음을 전도하는 일에 더욱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복음이 전해진지도 2000 년이 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 마지막 때에 우리 가나안 성도들을 부르시어 증인으로 삼으시고 땅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땅끝이 어디입니까? 지구의 반대쪽입니까? 아닙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들이 잇는 곳, 아직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곳이 우리가 달려가야할 땅끝입니다. 전도하십시다. 단 한명이라도 어린아이 한 명이라도 전도합시다. 어떤 교회에서는 청년들의 상대자는 교회밖에서 구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 목회자의 목회철학입니다. 결혼상대자를 교회바깥에서 구하여 교회로 데리고 나오고 아들 딸 나을 때 3 명의 교인이 생겨 장차 교회가 3 배로 늘어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전도에 온 힘을 집중할 때입니다. 전도하여 빈자리를 채웁시다. 주님께서도 자신의 영광받는 처소가 빈자리일 때 허전해하실 것입니다. 저는 예배후에 아버지가 집에 오실 때 모습을 면밀히 살핍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매주 달라집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많이 나와 빈자리가 없을 때 아버지는 기분만점이십니다. 반대로 빈자리가 많으면 무척 허전해하신 모습을 금방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올 때 아들 딸과 아내까지 다 데리고 왔습니다. 교회의 빈 공간을 조금이라도 채우려고요. 우리가 믿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뭐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성도들로 가득 차던 빈자리로 메꾸어지든 그저 초연히 바라보시는 도인이 아니십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허전해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이상으로 하늘 아버지는 더욱 허전해 하시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옵시다. 올 때 그냥 오지 말고 주변의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나옵시다. 예수님께서는 길거리있는 아무라도 데려다가 내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 번 하늘 아버지의 집을 채우는 일을 생의 최대의 행복으로 삼아 봅시다. 거기에서 생의 만족을 삼아 봅시다. 세상욕심으로 우리 집을 채울 것이 아니라 주의 전을 채우는 욕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전을 채우려는 복음전도의 노력을 보시고 동풍을 불게 하셔서 이 피로 값주고 사신 가나안교회에 주의 성도들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