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년 9 월 19 일 오후 1 시 반 한인제일감리교회
성서본문 : 요한 일서 4 장 7 절 - 12 절
제 목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할렐루야!! 지난주 갑자기 여러분들은 불시에 예고도 없이 우리 교회 전용공원인 Adobe에서 부족한 사람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surprise surprise 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것도 공원에서 생일잔치를 그렇게 한 것은 제 나이 40 평생 처음입니다. 우리 교회 김도준 장로님과 함인실 권사님 결혼 55 주년기념도 교회적으로 잔치를 못해드렸는데 앞으로는 안됩니다. “축 생신”이라는 말이 쓰여진 떡을 보니까 무척 쑥쓰러웠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시편 시인의 잔이 넘친 것 같이 부족한 저에게 언제나 넘치고 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는 그런 surprise를 심장이 약한 저를 위해 자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인간 실존이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닮아갈 때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부터 행복 속에 들어가십니다
오늘 본문 7 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아!는 온전히 표현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아!을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자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냥 평범한 말이 아니라 요한 사도가 떨리는 감격과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교리적인 의미에서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 곁에 있으면서 주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고 떨리는 감격으로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시고 인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Whole Process을 목격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단지 요한 사도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무척 간단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자신을 닮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자신과 닮은 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발가락이라도 자신을 닮으면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이기에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을 닮기를 그토록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최고의 본질과 최대의 신비는 사랑 속에 감쌓여져 있습니다. 인간 실존이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을 닮아갈 때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부터 행복 속에 들어가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밥상에서 big deal 을 합니다. 아들은 밥을 잘 안 먹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허약합니다. 아버지는 그것 때문에 언제나 근심걱정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너 밥 한그릇 뚝딱 비우면 너 좋아하는 Pokemon Card 사준다. 정말이야 아빠! 응 정말이고 말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big deal이 성립되었습니다. 아들은 Pokemon 사준다는 말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그릇 뚝딱 해치웁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밥을 먹게 하려고 갖은 수를 다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닮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고 이르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조건 서로 사랑해! 명령을 내리고 안하면 너희들 콱 심판해 버린다!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라고 말하신 분은 서로 사랑할 때 많은 유익과 프리미엄을 안겨주셨습니다, 보아라! 사랑하면 이렇게 좋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사랑하도록 자상하게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big deal 한 것처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premium)을 그 안에 저장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교육학에서는 동기부여(Motive Orientation)라고 합니다. 동기를 부여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는 교육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해 동기를 부여하시는 뜻은 분명합니다. ”사랑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사랑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 교회의 기도제목 중에 하나가 “사랑이 넘치게 하옵소서”입니다. 이 기도제목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히 바라는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무슨 하나님이 기도하실까?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제 생각이 아니라 성경말씀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 장 26 절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기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어떤 유익을 담구어 놓으셨나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여러분! 사랑하면 젊어지고 예뻐집니다.
노래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을 하며는 예뻐져요!!” 사랑하면 얼굴도 변화됩니다. 사랑을 하는 순간 바로 마음이 넓어지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동안 그 넓어진 바로 그곳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부드러운 것으로 채워집니다. 그것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아니합니다. 그 효과가 마음 안에서 몸밖으로 퍼져 나가 마음에서 얼굴로까지 연결됩니다. 당연한 결과로 모습도 한결 젊어지고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얼굴에 화기가 돌고 생기가 생기고 윤기가 온 몸에 흐릅니다. 물론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애욕으로 접근하게 된다고 젊어지고 예뻐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거나 형제자매를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형됩니다. 이를 transfiguration이라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실로 다양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교회생활 가운데 느끼게 된 분명한 것 중 한가지는 교회에서 그 가슴 속 깊이 주님을 사랑하는 불덩어리가 있는 사람들은 그 얼굴도 달덩어리 같이 아름답고 젊고 윤기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권사님이나 집사님은 실제 나이보다도 15 년 혹은 20 년도 더 훨씬 젊어 보이고 이쁜 것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그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 주님의 사랑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그 구체적 증거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들이 화장이나 미용기술이거나 건강유지욧법 등이 탁월해서 젊고 이쁜 것이 아니라 여러분 속에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그렇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증명해줍니다. 살며 사랑하며, 사랑하며 살며 사는 사람은 그러므로 별다른 화장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 속에 감추어둔 첫 번째 유익입니다.
둘째, 사랑하면 존재의 용기가 생깁니다.
Paul Tillich 라는 신학자는 “Courage to be”라는 책을 썼습니다. 틸리히 목사님에 의하면 “삶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존재의 용기는 신앙인데 바로 이 용기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할 때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때 생깁니다. 사랑하거나 사랑받게 되면 이상하게도 살만한 값어치가 생기고 내가 손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삶의 의미가 나에게 다가옵니다. 사랑하면 믿음이 생기기 때문에 의심의 안개가 걷히고 근심의 구름이 없어집니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시련의 폭풍우가 불어닥쳐도 사랑하면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한 집사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마치 욥과 같은 고난이 연속적으로 그 실존을 뒤덮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게는 그 시련을 당하기 전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시련을 당하면 당할수록 역설적으로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은 그 마음과 영혼의 벌판에 마치 들불과 같이 타올랐습니다. 시련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도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시련도 내게 유익하니 시련이 나로 주님께 더 다가가게 합니다”:는 시편시인의 고백이 그 분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과 그 주변환경까지도 사랑하기에 이르릅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에게 주시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와 같은 유익입니다.
셋째, 사랑하면 알게 됩니다.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만일 모른다면 두렵게 됩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 게시판에 어느 날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Love cast out all the fear. Fear cast out all the love. 그렇습니다. 이는 원래 요한 일서 4 장 18 절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 마음 속에 들어가면 우리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까 매일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무릎으로 피를 흘리면서 올라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조금이라도 풀어 볼까하고 그런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은혜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생긴 용기를 가지고 중세 전체를 흔들어버리는 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의 핵심부, 중심부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면 나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세우신 목적과 우주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면 여러분은 우리 인생의 길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삶의 불가해한 수수께끼가 풀리게 됩니다. 사랑하게 되면 삶의 끝이 죽음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넷째, 사랑하면 행복해집니다.
행복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순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가 새는 판자집에 새우 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안더냐!!” 사랑하면 행복의 지수가 높아집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에 있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무 것도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저 사랑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행복을 구하기만 하지 행복을 구하는 최적의 최선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소유하고 소비하는데서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허버트 마르쿠제는 그것은 동물과 같은 일차원적 인간이 되는 지름길이지 결코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인간이 최대로 행복하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설계하셨고 그것을 창조질서의 법칙으로 확고하게 설정해 놓으셨습니다. 신명기 30 장 16 절 말씀은 이를 직접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인생이 지복을 누리는 것도 바로 사랑하는데서 출발됩니다.
다섯째, 사랑하면 힘이 생깁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랑은 곧바로 에너지와 연결됩니다. 사랑하면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힘이 솟아오릅니다. 힘이 생기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가지고 미워하는 사람도 삶을 파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랑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은 보통 밥 먹고 생긴 힘과는 전혀 질적으로 다른 힘으로 작동을 합니다. 사랑의 힘은 실로 엄청난 일로 연결되는 메가톤급 파워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는 그 힘으로 오늘의 교회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고 더욱 깊어질 것이며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은 그 힘으로 여러분도 알면 놀라게 되는 그런 주님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셔서 여러분의 물리적인 힘의 한계를 깨버리고 불기둥같이 치솟는 선교의 동력을 이미 여러분 가운데 감추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 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사랑하면 삶을 뒤바꾸어 놓는 기적이 일어나고 신비를 체험합니다.
꼭 기적은 무슨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기적만이 아닙니다. 사랑할 때 그 속에 들어 있는 우주가 움직이고 옮겨지는 것이며 우주와 우주끼리 부딪히며 열이 나는 것이니 이 어찌 기적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사랑하면 알 수 없는 신비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감싸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곧바로 하늘의 신비에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팡세를 쓴 파스칼이 써 놓은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열시 반부터 열두시 반까지 불”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과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세상은 너를 알지 못했으나 나는 너를 알았다. 환희! 환희! 환희의 눈물” 파스칼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어느 날 사랑하는 그 뜨거운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열시 반부터 열 두시 반까지 불” 이는 다시 말해서 주님을 뜨거운 사랑 가운데 만나는 신비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런 뒤에 그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고 난 뒤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와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일곱째, 사랑하면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거나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는 야수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 많습니다. 또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바벨탑을 쌓고 오직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받들어야 하고 사람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사회주의는 사라지고 자본주의만 남아 서로 이윤만 추구하는 이 세상은 점차 동물농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Phil Bosmans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새는 죽습니다. 품안에 안지 않은 아이는 얼어 버립니다.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에겐 따뜻함과 많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 가장 인정이 있고 그리움이 물결치는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사람이 되라고 만드신 것이지 신이 되거나 동물이 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 가장 매력적인 가장 멋있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 축복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아홉째, 사랑하면 우리 삶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드라마가 됩니다.
사랑은 우리 삶의 바구니를 채우는 더 이상 더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잔이 넘치고 바구니가 풍성하게 됩니다. 사랑은 실로 여러 친구들이 있습니다. 친절이라는 친구, 보답이라는 친구, 자비라는 친구, 여유라는 친구, 평화라는 동무, 축복이라는 동무, 용서라는 친구, 사랑하면 이런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 삶 한 복판에 들어와 춤을 추고 노래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그 사람의 삶을 노래로 만들고 시를 만들고 축제와 잔치자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편 시인을 보십시오.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는 것보다도 더 그 영혼이 주님을 더 사모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시편의 삶은 온갖 인생의 고통과 기쁨, 희망과 좌절이 함께 있지만 시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 사랑하는 그 마음 꼬옥 간직함으로 그 삶이 드라마가 되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신앙의 drama 가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목숨을 버릴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밋밋하게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드라마로 만들고 싶습니까? 주님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사랑할 때 여러분은 몸을 바쳐 헌신할 마음이 생기게 되고 바로 이때 여러분의 삶은 documentary drama가 되는 것입니다.
열번째, 사랑하면 치유력이 높아집니다.
건강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결론은 사랑하면 endorphin 이 갑자기 증가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거기에는 치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계속적으로 연구,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상구 박사는 그의 책 <복음과 건강>에서 우리 몸 속에 저항력을 조절하는 T 임파구는 화를 많이 내고 걱정, 불안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인해서 약해지는데, 현대의학의 약으로는 T 임파구를 강하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T 임파구는 강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면 고마워서 웃는다든지, 진짜 기뻐서 웃을 때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이것이 몸의 저항력을 재생시킬 수 있고 무엇보다도 엔돌핀을 가장 많이 나오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라고 합니다.
열한번째, 사랑하면 하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은 원래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 일서에 보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상에서 생겨진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바로 거기에 하늘나라가 사랑하는 그 마음속으로 마구잡이로 쳐들어옵니다. 그것은 사랑해본 자만이 압니다. 왜 하늘이 하늘에만 있습니까? 하늘은 이 땅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주님의 그 사랑으로 사랑할 때 하늘이 하늘에 있지 아니하고 땅으로 그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사람이 사랑안에서 다시 사람이 될 때 그는 이미 땅에 있지 아니합니다. 하늘에 있습니다. 사랑할 때 이런 엄청난 현실이 바로 나의 현실이 되고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열두번째, 사랑하면 사랑 받습니다.
오늘 본문 12 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엄청난 진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해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을 하는 것보다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은 사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놀라우시고 전능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받으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사랑을 받으시면 엄청나게 감격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하나님의 가슴은 떨려오면서 마음에 진동이 오시고 바로 그와 동시에 바로 그 떨리는 감격의 가슴으로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외가 없으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자 보다도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를 더 기억하시고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기분파 하나님은 하늘의 창고를 열어 한정없는 축복을 내리시도 하시며 그 사랑하는 자를 떨리는 마음으로 안아주시고 동행하시며 아껴 주십니다. 사랑받을 때 하나님은 신나하시며 어쩔줄을 모르시는 분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겨자씨만큼의 사랑만하더라도 하나님은 겨자나무와 같은 사랑으로 Return 하시고 우리가 비록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랑하시면 우리 하나님은 오천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마음 속에 터질듯한 사랑이 뭉쳐 있다가 마침내 폭발해서 생긴 것이 우주요 역사요 인간입니다
여러분 "big bang theory"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태초이전에 우주가 제일 처음 가스로 뭉쳐 있는 어떤 것이 갑자기 폭발하여 생긴 것이 오늘의 우주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마음 속에 터질듯한 사랑이 뭉쳐 있다가 마침내 폭발해서 생긴 것이 우주요 역사요 인간입니다. 교회 역시 예수님의 사랑이 초대교회 안에서 big bang 하여 시대와 시대 속에 세계 방방곡곡에 생긴 것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저는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차츰 뭉쳐지고 뭉쳐지기를 시작한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속에 잇는 하나님의 사랑은 다시 폭발하여 여러분도 알 수 없는 사랑의 현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많아지고 더욱 깊어지고 더욱 높아지고 더욱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 무슨 우리 교회 몇 명 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 교회가 빨리 번듯한 교회 건물을 구하여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먼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여러분 속에 주님사랑이 차츰 차츰 응집되고 압축되고 응축되어 터질듯하게 되어 마침내 big bang 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이런 기적이 예비될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열두가지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countless 한 유익, 범사에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이러한 유익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주님께서 날 사랑하시면서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사랑은 더 커집니다. 찬송가 512 장은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입니다.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시는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었습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 찬송을 밥먹듯이 부르셨습니다. 어머니가 가신 다음에는 할머니가 날 업고 다니셨는데 느리고 느린 템포로 이 찬송을 부르시면서 옷장에 옷을 차곡차곡 개기도 하셨고 이 찬송을 부르시면서 배추를 다듬기도 하셨고 이 노래를 부르시면서 공동우물터로 빨래하러 가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의 불씨를 키워가셨습니다. 여러분 이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노란 쌰쓰입은 말없는 그 사내가 언제나 맘에 들어” 이 노래는 고모가 잘 불렀는데 그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 그 노래를 불렀던 때의 그때 고향의 모습과 그때 그 고향의 향기와 함께 스크린처럼 떠오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부르셨던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 찬송을 들으면 옛날 고향 칠량, 업혀 있던 할머니의 따뜻한 등과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저를 감싸 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욕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욕심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전보다 더욱 서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욕심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전보다 더 주님의 사랑을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꼭 묶어 오히려 사랑의 포로가 되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 안에 사랑하지 못하며 사는 요인이 있으면 제거하여 주옵시고 주님 저희들이 이 세상 만사에 다 실패하더라도 사랑하는 일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생활이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이더라도 그 어느 때든지 주님을 사랑하는 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 얼음산과 같은 세상의 냉기를 녹이는 온기가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 저희가 이 세상에서 무관심은 빼가며 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은 더해가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주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저희를 주님의 사랑에 중독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를 맡아 사랑으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KF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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