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년 2 월 18 일(금) 오후 8 시 한인제일감리교회 금요연합 속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히브리서 4 장 16 절
제 목 : 시시때때 주님은혜
1. 할렐루야! 어릴 때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 메뚜기를 잡는 즐거움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 중에 “때때시”라는 메뚜기가 있었습니다. 들어본 사람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왜 그렇게 때때시라고 이름이 붙여졌을까? 그 메뚜기가 “때때때” 하면서 날아가다가 살포시 내려 앉아 쉬기 때문에 “때때시”라고 붙여진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저를 비롯한 내 또래 애들은 시골 들판에서 때때시 잡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지금도 그 옛날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함께 때때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시시때때 주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시시때때로 주님의 돕는 은혜가 저희 모두에게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의 은혜를 붙잡으려고 모두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들판인 교회에서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한 사람이 시시때때 하면 다른 사람이 주님은혜로 응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2. 오늘은 연합속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형성되어 1 년이 지나 임마누엘, 할렐루야, 가브리엘, 글로리아 네 속회가 생겼습니다. 이 속회의 이름에는 깊은 목회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항상 우리가 할렐루야 주를 찬송하며 살자고 할렐루야라고 지었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라고 임마누엘이라고 지었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글로리아로 지었습니다.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천사장입니다. 천사 중에 제일 높은 천사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뵈옵는 하늘의 궁정에서 천사 중에 권력서열 1 위 천사입니다. 항상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천사와 같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자고 가브리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 속회가 이름 그대로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 유명유실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항상 할렐루야가 넘치고 항상 하나님이 임마누엘하시며 항상 글로리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항상 천사와 같은 일꾼들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3. 오늘 이 시간은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같이 외우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히416 그렇게 외우면 됩니다. 저는 이 말씀이 우리 제일교회에 주신 말씀임을 믿습니다. 이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1) 긍휼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긍휼이란 원래 히브리어로 라켐인데 여자의 자궁과 발음이 같습니다. 자궁에서 아이의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양육하십니다. 원래 의미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바로 이 구절은 정확하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우리 교회는 확실하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긍휼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설립되었을 당시 교우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면서 눈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권념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 장 34 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여기서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사란 말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에 목자 없는 양들을 볼 때 불쌍하게 여기시고 긍휼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한인제일감리교회가 이름이 지어지기 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긍휼하게 여기셨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인제일감리교회는 하나님의 이 긍휼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모태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이렇게 따져 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요 저렇게 따져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요 요렇게 따져봐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하심 속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하심 안에 지금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앞으로도 하나님의 넘치는 긍휼하심 속에 있을 것입니다.
둘째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여기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은혜를 주실 때 넘치게 분에 넘치도록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은혜를 주실 때 “때를 따라” step by step 으로 주십니다. 예레미야 5장 24절에 보면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그렇습니다. 농사를 하려면 이른 비도 필요하고 늦은 비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때에 따라 그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제학에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템을 살 때 많이 사면 그것을 소비하면서 효용성이 마음속으로는 점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에게 필요한 만큼 주십니다. 때에 따라서 죽을 주시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애피타이저를 주시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well-done을 주시고 때에 따라서 rare를 주시고 때에 따라서 medium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실 때도 그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한 때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마가 아이에게 젓젖을 줄 때 시간을 보면서 적당한 양을 주듯이 하나님도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게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속회를 이루어 이렇게 함께 예배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이예요 모두가 사랑이예요 콧날이 시큰해지고” 그런 가요가 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있음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모두가 우리의 콧날을 시큰하게 한 하나님의 돕는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처소 하나만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박계호 이인숙 집사님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었습니다. 박계호 이인숙 집사님의 가정은 하나님의 라켐이었습니다. 한인제일감리교회가 태어나게 된 산실이었고 라켐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때에 따라 돕는 은혜였습니다. 그리고난 다음에 우리는 컴뮤니티 센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좀더 넒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예배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따라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시고 좀 더 나아가 오전 11 시에 예배를 드리게 해주시고 그 다음 다음에는 예배실에서 예배를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다가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당 하나를 예비해주실 것입니다. 제 친구 강성훈 목사는 현재의 예배당을 단 1 불주고 구입하였습니다. 강 목사님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샀다고 합니다. 그냥 얻었다고 하지 않고 우리 교회가 이백만불 짜리 건물을 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199 만 9999 불을 도와 주시어서 1 불에 산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앞으로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에 따라 강 목사님 교회보다 훨신 더 좋은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옛날 우리가 다른 교회를 렌트하여 예배드린 것처럼 우리는 우리 예배처소를 다른 ethnic Christian group 에게 1 불만 받고 렌트할 날이 기필코 올 것입니다.
셋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 은혜의 보좌가 어디입니까?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있는 곳 아닙니까? 이 구절은 둘째 부분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우신 보좌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저를 주례한 문동환 박사님은 한 때 국회에 들어가셔서 평민당 부총재를 하셨습니다. 그 분이 어느 날 평민당 당직자들이 신년 인사를 대통령에게 갔습니다. 인사가 끝나고 봉투를 하난 주어 받았는데 놀랍게도 일금 일억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10 배를 더 주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자신은 그런 돈을 일평생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 떤 정치인은 청와대에 다녀 오니까 검사가 자신을 비리혐의로 기소한 것을 공소를 취소했다고 합니다. 어떤 경제인은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대통령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 다음에 은행에서 얼마든지 저리로 loan을 쓰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세상의 권좌에 나아가기만 해도 이렇게 큰 혜택을 입는데 하늘의 보좌 그것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얼마나 하나님의 혜택이 크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날마다 더 나아갑시다. 우리 교회 모든 식구들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고 해치지 않은데서 모우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경우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더욱 채우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속회로 모였습니다. 우리가 속회로 모이든 주일예배로 모이든 성경공부로 모이든 교회 임원회로 모이든 그 무엇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 10 장 25 절의 말씀처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는 힘써 모여 주님의 은혜의 봐좌 앞에 날마다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이 시간 저희가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왔습니다. 꼭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좋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 보좌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 인생이 아무리 황량한 벌판과 사막 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더욱 나아가는 저희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그리스도에 속한 할렐루야 임마누엘 글로리아 가브리엘 네 속을 주님의 전 기둥으로 세워주시고 주님 속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채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시시때때로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너무도 좋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제일교회 식구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는 더 좋은 처소를 예비하여 주시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의 미래 위에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는 늘 주님 안에 있겠습니다. 주님 저희는 늘 주님의 사랑 가운데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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