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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기도하고 일하는 교회

관리자 2010-11-29 (월) 11:13 15년전 2598  

2001 년 8 월 13 일(월) 광주노회 여신도회 서부지구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창세기 24 장 10 절 - 14 절, 26 절 - 27 절

제 목 : 기도하고 일하는 교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광주노회 여신도회 서부지구회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감리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창립기념 1 주년이 지난 다음 주일 말씀을 하려고 보니 교인들 중에 한국 사람은 저와 저희 집 사람뿐이었습니다. 모두가 미국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 집사람도 여기 있는데 저 한 사람만 빼고 다 여성입니다. 이럴 때를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시밭의 한 송이 흰 백합화”가 적절하겠습니까? 아니면 “꽃밭 속의 잡초 한 송이”. 오늘은 여성들만 모인 이 자리에 한 남성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같이 약간은 젊은 남자 얘기가 아니라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어떤 한 늙은 남종의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종에 관한 말씀입니다. 창세기는 50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4 장은 다른 장에 비해서 아주 유별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24 장은 가장 창세기 중에 절수가 가장 많습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성경의 가장 중요하다면 가장 중요한 첫 책 창세기에서 가장 긴 절수를 가지고 있을까?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나타난 1장도 31 절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24 장은 1 장의 따블에다가 5 절이나 더 있는 67 절입니다. 그렇다고 24 장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한 아브라함의 종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종이 누구일까? 창세기 24 장 전후를 아무리 보아도 그의 이름이 누구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늙은 심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늙은 심복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역사를 통과하여 신약시대를 거쳐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어 여전히 얘기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익명의 인물이 되게 하였을까? 이 질문을 가지고 본문 속에 들어가 봅시다.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엄청나게 사랑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했을 만큼의 자식이었습니다. 그 자식에게 혼기가 닥쳐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이삭을 위하여 좋은 아내를 안겨주고 싶어했습니다. 그래 집안 일을 하는 늙은 심복을 불러 자신이 살던 옛 고향에 가서 이삭 신부감을 골라오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4 장을 하나의 드라마로 본다면 주연상은 단연코 노종입니다. 여기서 그 노종이 그, 주인으로부터 받은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항입니다.  

첫 번째, 늙은 심복은 주인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그 목적지에 이르자 다른 무엇을 하기 전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본문 12 절에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데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데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여기 보면 아브라함의 노복이 기도하는 자세는 우리가 참으로 배울만 합니다. 어떻습니까? 듣고 계시는 하나님이 지금 저 하늘 멀리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아브라함의 종 바로 앞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마치 턱을 손에 괴고 바로 앞에서 이 아브라함의 노복의 간구를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1 m 도 안되는 거리에 주님을 모시고 기도하는 이 아브라함의 노복이 기도하는 영성은 우리가 본받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노복에게서 본 받아야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막상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왕대 밭에 왕대가 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왕대가 자라는 밭에 어찌 얍실한 시누대가 나겠습니까? 역시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고 기도로 사니 그 종에게도 그 신앙이, 그 기도하는 자세가 흘러갔습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며 너 주안에 있어 늘 성경보고 온 형제들 함께 늘 사귀면서 일하기 전 마다 너 기도하라” 아브라함의 종은 일하기 전마다 기도하는 종이었습니다.  

둘째, 늙은 심복은 기도하고 나서 일을 할 때에도 그저 대충 적당히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의 일보다도 더 성실하게 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일할 때 굉장히 사려깊게 일을 합니다. 다른 사족을 붙이지 아니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핵심을 찌르며 일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처리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하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마치 그물을 쳐 놓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미리 얘기를 하여 리브가의 부모가 허락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갑니다. 노종은 자신의 주인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굉장한 거부이며 아들이 독자 이삭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재산이 다 이삭으로 가게 됨을 은근히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35 절과 36 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셨고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이쯤되면 여러분이 그 시대에 살았다고 하고 과년한 딸이 있다고 하면 귀가 솔깃할 얘기입니다. 그런데 노종은 두 남녀가 만나야 할 필연적이고 신앙적인 정당성을 여러 가지로 말하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그렇습니다. 너희 가정이나 우리 주인의 가정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느냐? 우리는 신앙적인 바탕에서 자란 사람을 택하려고 하여 기도했는데 내 기도 그대로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 주시더라! 이는 하나님의 예정적인 섭리가 아닐 수 없다고 아예 못을 딱 박아두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내가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주셨는데 그가 당신 딸 리브가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부모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딸이 결혼하게 될 남자가 돈도 많겠다,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같은 믿음을 지녔겠다, 종을 보아 주인을 안다고 종이 이렇게 신실하니 그 집안의 사람은 안봐도 되겠다는 어떤 안도감이 허락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지혜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노종이 평소에 기도하는 종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이 맡겨준 일을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 그 주인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그대로 먼저 기도하고 바로 일을 하였습니다.  

셋째, 기도하고 나서 일을 하자마자 늙은 종이 그 기도가 이루어짐을 체험했던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본문 15 절에서 25 절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게 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을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습니다. 기도한 내용과 이루어진 삶의 현실이 둘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포옹을 하여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에,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기도하고 일하는 자에게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노종이 기도하고 일하고 이루어주심을 확인하고 그리고 끝냈습니까? 아닙니다.  

넷째, 아브라함의 노복이 기도하여 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난 뒤에 어땠습니까? 당연지사로 받아드렸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노종은 기도하고 일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 끝”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26 절과 27 절을 봅시다.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감사찬양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고 일을 시작해도 하나님께서 일을 풍성하게 이루게 해주신 다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심을 까먹고 감사찬양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로 시작하고 일을 시작하고 감사찬양을 올렸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이라는 가정을 해봅시다. 만일 아브라함의 종이 길가다가 한 주막집에서 “일배 일배 부일배” 한잔 또 한잔을 마시고, 너무 덥다고 무화과나무 밑에서 늘어지게 한잠자고 술이 덜깬 게슴츠레한 얼굴로 기도는 물론 안하고 그 물 깃는 곳으로 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 처녀들이 물 길으러 나오다가 어떤 술취한 불한당 같은 놈이 어스렁거리고 있으면 물도 깃지 않고 슬슬 뒷걸음치다가 냅다 도망쳐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 심복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때 성중에 있는 딸들 중에 하나인 리브가도 물을 뜨기 위해 나오다가 멀리서 어떤 한 사람이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어떤 신비감이 스쳤을 것입니다. 바로 그 경건한 그 사람이 요청을 했고 리브가는 “할아버지 어서 물을 마시세요” 바로 응답했을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노복이 기도를 안하고 일을 시작했다면 분명히 이 67 절이나 되는 이 얘기는 창세기에서 빠지게 되어 창세기는 50 장이 아니라 49 장이 되었을 것이고 만일 24 장이 없었다면 23 장 마지막 절은 아브라함 아내 사라가 매장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24 장이 없어지고 25 장 1 절이 바로 나와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이 그두라라 이렇게 나옵니다만 분명히 여러분도 여성으로서 어떤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아내의 무덤에 흙이 채 마르기 전에 바로 결혼한 아브라함에게 ”남자란 다 그래!“ 그런 반응도 나왔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창세기 본문 말씀을 그때 그곳에서 타임머신에 싣고 오늘 지금 여기로 여러분의 현실로 옮겨오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광주노회 여신도회 서부지구회 여신도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각 교회에서 일하시는 여신도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서부지구회라는 지평에 의해 확장되어 있습니다. 서부지구회란 그저 친교조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여신도회의 일하는 조직이며 선교 조직입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여신도회가 중에 그런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주의 부름 받은 이 예 대답하고서 그를 따라가겠네 진리와 생명의 복음 전파하러 가겠네” 여러분은 새 천년 주여 나를 보내소서! 하는 일하는 선교조직입니다. 저는 나름데로 오늘 본문을 토대로 하여 기도와 일을 상관관계로 하여 여러분의 있을 수 있는 모습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자 제가 얘기할 때 나는 어느 형의 인간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기안일안형, 기도는 안하시고 일도 안하시는 형입니다. 그래서 첫 글자를 따서 기안일안형입니다. 여기에는 제가 불꽃같은 눈으로 보니 여러분 중에는 그런 형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기안일안형의 신도들이 많으면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제가 영국 에딘버러에서 1 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제일 처음 에덴버러에 도착해보니 엄청나게 큰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주일에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워낙 교회가 크니 무슨 약도가 필요없었습니다. 예배드리러 11 시에 갔더니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십수년 전에 유지비를 감당할 길 없어 팔린 교회였다고 합니다. 이제는 토요일이나 주일날이 되면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교회에 들어가는 입구를 잘 꾸며 “술마시는 팝”을 만들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아이노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기도도 안하고 일도 안하는 신도들로 가득 차 있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점점 축소재생산하여 유럽의 교회를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현재로는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는 기안일하형입니다. 기도는 안하고 일은 열심히 하는 형입니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고 일하려는 나머지, 제 뜻만 관철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나머지 분열이 생겨 여러분의 교회나 여러분이 섬기는 서부지구회는 한나파, 마르다파, 사라파, 마리아파 등으로 나누어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갈갈이 찢길 것입니다. 어떤 젊은 신실한 크리스챤이 예수 안믿는 여자와 결혼하여 첫날밤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신랑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일하기 전에 기도하라고 한 말씀이 생각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희 부부에게 힘을 주옵시고 저희 부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자 신부는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힘만 달라고 하세요 인도는 내가 할테니!” 열심히 힘을 가지고 일하면 안됩니다. 그 일하는 방향이 하나님의 뜻대로 잡혀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기도는 열심히 일하는 방향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제대로 잡아 줍니다. 기도는 안하고 일만 열심히 하면 실로 많은 문제가 생겨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육신의 소욕을 만족시키려는 세상의 이익공동체가 됩니다.  

셋째는 기하일안형입니다. 기도는 하지만 일은 안하면 어떻게 될까? 잎사귀는 무성하되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나 여신도회는 계속 축소재생산을 하던가 그래도 간신히 현상유지 정도를 할 것입니다. 

넷째는 기하일하형입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나 여러분이 섬기는 지구회는 그야말로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어 21 세기선교를 담당하는 한 중심체”가 되어 “새 천년 나를 보내소서!” 진정으로 기도하고 일하는 공동체가 되어 여러분의 교회나 지구회의 미래 속에 하나님의 밝은 미소가 브니엘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하일하감찬하 그러나 기도하고 일하기만 해서는 뭔가 부족합니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합니다. 자 한번 따라서 해 봅시다. “기하일하감찬하” 오늘 이 말씀 전체의 요약이 여기 7 자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무슨 주문 같습니다만 기하 기도하며 일하 일하고 감찬하 응답주신대로 감사찬양하자 그말입니다. 여기서 꼭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노종에게 일을 시켰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먼 길을 가는 일에 젊고 팔팔한 종을 시키시지 왜 늙은 종을 시켰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종이 삶의 연륜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꼭 노종이나 젊은 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종이 기도하는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종이 일하기 전 마다 기도하는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종이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는 일은 결코 흐트러지거나 잘못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브라함도 익히 체험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도하는 종에게 이 기도하고 일하고 감사하는 이 종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3 학녀 때부터 저는 원주시 일산동에서 살았습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추억은 일산동천주교회에서 우리 집 앞 문 까지는 완만한 경사가 있어서 겨울이 되어 눈이 나리면 눈미끄럼을 타는 환상적인 코스가 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친구들과 함께 눈미끄럼타는 질을 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때 질낸다는 표현은 우리 애들은 잘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반질반질하게 질내면 우리 아이들의 즐거움은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 발을 굴러 미끄러져 내려오면 약 60-70 m를 쭉 내려오는데 그 기쁨은 아는 애들은 다 알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신도회 서부지구회 회원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때나 연합회나 지구회에서 봉사할 때 신앙생활의 어떤 정형화된 한 틀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 양초를 칠하면서 닦았던 마루바닥처럼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반질반질하게 질을 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고 일하고 찬양하는 생활로 질이 잘 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 역시 “기도하고 일하고 그리고 감사찬양하고, 또 기도하고 일하고 또 감사찬양하는 삶으로” “기하일하감찬하”로 반들반들하게 질을 잘 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은 기쁨과 함께 신나게 달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기도하고 일하고 감사찬양하는 삶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새 천년에 여러분을 불러 하늘의 거룩한 사업을 여러분에게 맡기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노종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 모두가 주의 부름 받은 여신도로서 기도하고 일하고 하나님께 감사찬양하면서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기도할 때 성령의 불길로 충만케 하셔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이 모임에 참예한 여신도회 서부지구회 모든 회원들과 그들이 섬기는 교회 위에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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