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3 월 4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3.1 절 기념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로마서 9 장 1 절 - 5 절
제 목 :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의 길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의 은총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나안 교회 모든 식구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울을 가나 수원을 가나 광주에 있으나 들려 오는 소리가 나라가 곧 망할 것같이 말합니다. 한번은 “이 놈의 나라 콱 망해야 해!!” 해서 들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아들이 어떤 직장에 있었는데 정부정책이 잘못되어서 손해를 엄청 보았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정권이 정책을 잘못하면 바꿀 수 있지만 나라가 콱 망해야 한다는 말은 좀 심했다 싶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놈의 나라 콱 망해야해!” 나라가 만드시 망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말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이 놈의 나라 앞으로 꼭 망할꺼야! 나라의 미래를 예언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말들을 통해서 경제사정이 IMF 때보다 더 훨씬 심각하게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했지만 속으로 아니 나라가 망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망한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아닙니까?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 바보야!”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은 “바보의 아버지”, 즉 “아버지 바보”가 되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망할 것 같으면 걱정하고 기도해야지, 나라가 망한다고 예언하면 나라의 미래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북한에 뭘 퍼주었다고 망한다고 합니다. 뭘 좀 퍼주어서 나라가 망할 만큼 우리나라의 토대가 그토록 취약합니까?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 민족의 나라가 아닙니까? 그리고 같은 동포와 형제간에 어려울 때 퍼주면 상부상조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또 어떤 사람은 노벨상 타기 위해서 그렇게 퍼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민족 서로 돕기 해서 상탔으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것이 왜 망하는 이유가 됩니까? 우리나라 안 망합니다. 정권은 맘에 안 들면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할 것이다, 나라 망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기 전에 좀 자중해야 합니다. 오천년동안 우리 조상들이 피로써 지켜온 나라가 이까지 껏 좀 경제가 어렵고 돈이 소통되지 않는다고 망했다면 진작 우리나라는 망해도 골백번 망했을 것입니다. 애국가에 쓰여 있습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일제시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외침이 있어왔고 5 천년 역사 동안 약 968 번의 외적의 침략을 받아왔지만 그 풍전등화의 누란의 위기에서도 나라가 망하여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일제시대에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이들이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선혈의 순교의 피가 어려 있는 이 나라가 어찌 그까짓꺼 때문에 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가 비록 면적도 좁고 지구상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얼마 안되지만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으로 허락해 주신 삼천리 금수강산입니다. 망할 조짐을 만약 보인다면 나부터가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해야할 바를 찾고 나라가 망할 징조가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소매를 부여잡고 우리 나라 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지 "나라 망한다, "나라 망한다" 선전하면 어찌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코를 풀 때 수건을 가져다 대며 “흥해라 흥!” 하기 때문에도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이 강산이 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흥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지도상에서 보면 쬐끄만 나라인데 그 나라를 1948 년 독립한 이후 피눈물로 지켜내고 있지 않습니까? 2000여년 나라를 잃는 설움이 피눈물이 이스라엘의 민족과 나라에 대한 사랑은 좀 유별난 것 같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그 즉시로 똘똘 뭉쳐서 조국을 돕겠다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이뤄서 돕고 있지 않습니까?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금을 총동원하여 나라를 지켜 낼 돈을 송금하고 또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조직과 정치적 영향력을 총 동원하며 하나님이 주신 땅을 지켜내려고 얼마나 총단결하여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몇 년 안되는 사이에 이스라엘의 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이 보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들의 축복의 땅을 지켜내는 노력이 시원치 않고 타협을 할라치면 그 즉시 정권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은 성지순례를 해 보면 알겠지만 온통 광야와 메마른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믿고 이스라엘민족은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어가 하나님의 축복을 현실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키브츠나 모샤브가 그런 예입니다. 유대인들의 나라사랑의 노력은 참으로 다른 민족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습니다. 비록 세계 다른 나라에 살더라도 다른 나라 국민으로 살더라도 자신의 민족이 어려움에 처하면 총궐기하여 일어나는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던지 자신의 조상들의 관습을 지키며 자신의 모국이면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신 땅에 온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바울 역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일에는 남다른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의 애국심을 잘 알 수 있는 구절이 특히 3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라함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 말씀속에는 바울의 뜨거운 애국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골육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연결되기를 무척 소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부터 온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로마서 9 장 1 절에서 3 절을 보면 그 뜻이 확실하지 않은데 비해 로마서 10 장 1 절과 4 절을 연결해서 보면 그 뜻이 보다 명확해 집니다. 로마서 10 장 4 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그리고 계속해서 10 장 4 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마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즉 예수님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골육이고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인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기를 간절히 구하고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9 장 3 절은 이렇게 말하면 보다 정확하게 이해될 것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들은 그리스도에게 연결이 되고 대신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민족은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강하였으면 나는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은 대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기를 그토록 열망하였던 것입니다. 살신성인의 애국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바울이 애타게 부르는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어린 딸이 죽을 수밖에 없는 병으로 누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사랑하는 아이가 겪는 고통과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이 어미에게 옮겨 주시고 대신 이 아이는 일어나도록 은총 베풀어주옵소서.“ 눈물로 이렇게 거룩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보면 애국심이 특심한 분이 많았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민중봉기를 일으켰지만 그 속에는 나라를 위한 사랑이 가마솥이 끓는 듯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잡혀 압송되어 마지막 목을 베이기 전에 일곱자로 된 시 한수를 남겼습니다. ”나라를 위한 이내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요?“(爲國丹心 有誰知). 제가 다녔던 학교가 충장중학교입니다. 충장이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호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간신배의 모함에 죽어 갔듯이 그 역시 모함당하여 죽었습니다. 김덕령 장군이 죽기 전에 남긴 시가 있습니다.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나 붓난다. 저 뫼 저 불은 끌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없어 하노라“ 이는 ”봄 산에 불이 났는데 피지 못한 꽃들이 다 타들어 죽어 가는 구나 저 산의 불은 끌 물이니 있지만 이 몸에 연기 없는 불이 나니 끌 물이 없음이 아쉬움이라“ 그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몸에 연기 없는 불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불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마음속에도 전봉준이 남겼던 시처럼 나라를 위한 붉은 마음이 있었으며 바울의 마음속에도 김덕령 장군이 남겼던 것처럼 이 몸에 연기 없는 불, 나라를 향한 뜨거운 맘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충장공이나 전봉준의 애국은 나라를 위해서 봉기를 일으키거나 의병장이 되어서 죽음으로 나타났지만 바울의 애국심의 열정은 불과 같았고 붉은 마음이었지만 그러나 바울의 애국하는 방향은 좀 달랐습니다. 바울의 애국심은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고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만물 위에 계셔서 찬양을 받으실 그리스도와 굳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에게 굳게 연결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이 애국하는 방법은 이스라엘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고 또한 정치적으로 힘을 축적하여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바울 나름데로의 애국을 하였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며 온 민족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민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3. 1 절 기념주일입니다. 우리들은 3.1 만세로 시발된 독립운동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얼만큼 큰 역할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나라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31. 독립운동에서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바울이 애국한 것같이 어떻게 애국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애국심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애국자여야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인 내촌감상은 자신은 두 J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의 J는 Jesus 즉 예수님이요 또 하나의 J는 Japan 즉 일본입니다. 내촌 선생은 이 두 J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바쳐서 봉사하는 것이 일본을 위하여 선교하는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애국자이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애국해야할까? 애국하는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Made in Korea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로 수출함으로써 애국합니다. 부국을 이루는 것은 애국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우리 대한의 딸들은 골프를 잘 쳐서 세계 속에 한국을 드러내면서 애국을 하고 있습니다. 박찬호, 김병현 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잘 던져 애국을 합니다. 저는 박찬호가 지난 해 10 승을 올리던 LA 다저스 구장에서 수천명의 동포와 함께 흰 티셔츠를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고 박 찬호 팀이 7 : 5 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나라 국적의 선수가 잘던지니까 그렇게 좋습디다. 한 때 제 아들은 다니던 중학교에서 여러 미국 선생들로부터 악수공세를 받았습니다. “오늘 니네 나라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더라 축하한다” 비록 국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렸지만 저 역시 수많은 미국인으로부터 텔리비전을 보았다고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노벨평화상 하나를 받는 것도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애국입니다. 백만준의 비디오아트는 세계적인 예술가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그는 쓰러져 병사에 있지만 그의 예술작품은 여전히 남아 대한민국의 예술가로서 나라의 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프리마 돈나 소프라노 조수미 역시 나라의 이름을 드높이는 애국의 대열에 동참하였고 정명훈 트리오도 음악으로 세계 속에 한국을 심고 있습니다. 황영조 선수도 마라톤 우승으로 한국이라는 나라를 새삼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여론의 따거운 시선을 받고 있지만 동남아를 여행하거나 유럽을 여행하면 너 코리아 사람이면 용기조를 아느냐?고 묻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는 복음을 세계에 전해 나라의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또한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총재이면서 IOC 위원은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 삽입시킴으로 국위를 선양하였습니다. 애국하는 방법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각 다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애국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애국가를 크게 부르는 것이 애국이겠습니까? 아니면 국기를 잘 보관하여 국경일마다 잘 걸어 놓는 것이 애국이겠습니까? 아니면 “독립만세”라는 제품의 냉장고를 사는 것이 애국이겠습니까? 아니면 일본만화책은 보지 않고 일본노래는 안보고 일본말은 안쓰는 것이 애국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성경 로마서에서 바울에게서 애국을 배우십시다.
우리의 애국은 이 나라를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시키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지금 속국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냐?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이나 일본의 속국이 아닙니다. 이번에 한국정부는 미국의 NMD 국가미사일 계획에서 미국의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일본 제품을 비록 많이 쓰지만 일본의 문화적인 면에서도 경제적인 면에서 국제시장의 활로 개척면에서 대등한 위치로 경쟁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차 몇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입니까? “돈이면 다돼! 안 되는 것 없어!! 무전유죄 유전무죄야! 돈이면 대학교수도 할 수 있고 돈이면 병역에서도 빠질 수 있어! 돈이면 말이야 권력도 잡을 수 있고 경무관도 될 수도 있고 장군도 될 수도 있어! 돈이면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이면 예쁜 여자도 살수도 있고 돈이면 승진도 할 수 있어! 돈 안쳐 먹겠다는 놈 봤어! 돈이면 다야! 사람들은 철저하게 돈에 포로당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전체는 돈이 지배하는 포로수용소에 살고 있습니다. 돈최고주의, 황금만능주의, 물질제일주의는 또 다른 차원에서 오늘날 우리들을 식민지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다른 나라에 의해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섹스가 최고야! 죽으면 썩을 육신 뭘 그리 애껴 팍팍 쓰며 살지! 한 남자와 한 여자와 평생 살어! 고리타분해! 재미 좀 보면 뭐 어때! 한번뿐인 인생 그리 시시하게 살면 되겠어! 바이오그라! 오그라드는 것 바이바이! 바이오그라만 있으면 원조교제! OK 야! 서로 들키지 않은 범위 내에서 맘껏 즐기며 사는 거지! 다 그런거지! 뭘! LOVE HOTEL이 주택가를 급속히 파고듭니다. 청소년이 쉽게 열어보는 인터넷 싸이트는 거의 95 %가 성을 팔고 사는 산업으로 물들여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쾌락주의적 문화가 현대인들을 철저히 포르노로 포로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이 지배하는 나라의 속국으로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만 돈 잘벌면 됐지! 아니 생선에다 마취약 주사 좀 하면 어때! 아니 굴비에다가 좀 폼나게 노란 물감을 좀 바르면 어때! 에이 큰 거 딱 한탕만 딱하고 좀스럽게 살지 말고 해외 나가서 골프도 치면서 좀 넓게 살아야지 안그래!! 우리야 그래도 좀도둑이지 정치한 놈덜봐 대도들 아냐? 나만 도덕을 가지고 살수가 있겠어!! 나만 손해 보란 말이야!! 나만 복받고 천당가고 구원받으면 되지 뭘 나눠주나!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종교적 이기주의와 대충적당주의와 편의주의의 포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독립이 되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는 내면을 훑어보면 귀신들이 싸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이제 물질만능주의, 쾌락최고주의 향락좋다주의, 나만위해주의 등의 이념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나라를 애국하는 길은 이런 악의 악마적 지배로부터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의 애국은 우리의 나라를 독립시키는 길은 우리의 타락된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독립을 시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문명과 문화를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키는 일입니다. 바울의 애국은 자신의 나라를 율법주의로부터 해방시켜 은혜로우신 그리스도에게로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은 이 나라에 무슨 달러를 많이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제품을 안 쓰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각종 악의 이념으로 물들어 있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와 향락주의와 배금주의와 편의주의로 포로당해 있는 이 땅을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애국이 무엇일까? 민족을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1970 년대는 한국교회의 부흥의 불길이 불길같이 일어난 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을 오게 하자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전도하여 수다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뜨거움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하나님 주신 진정한 에덴 동산으로 만드는 일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사는 칠천만 겨레가 아버지를 하나님을 받들고 살며 예수님과 연결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정의롭게 살고 평화롭게 살며 복음과 연결시키는 일이 진정한 애국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동인으로서 칠천만 겨레를 사랑하고 애국하는 일은 가장 가까운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보불전쟁 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과 프러시아의 비행기가 밤낮으로 프랑스를 공격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군인 기지에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이 물건을 팔러 왔습니다.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인채 여인은 군인들에게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공습경보가 울려 나왔습니다. 적의 비행기가 그들이 있는 곳에 커다란 폭탄을 하나 떨어 뜨렸습니다. 당시의 폭탄은 요즘과 같이 금방 터지는 것이 아니라 불붙은 심지가 다 탄 후에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폭탄이 떨어지자 군인들은 놀라서 어쩌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등에 업은 아이를 내려놓더니 폭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연기가 나는 폭탄의 심지를 이를 끊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은 있는 힘을 다해 심지를 끊어 냈습니다. 여인의 입은 심지의 뜨거운 뭅로 엉망이 되었지만 여인은 힘을 다해 심지를 끊어 냈습니다. 입이 피투성이가 되어 기진맥진한 여인이 아이에게로 돌아와 젖을 물렸습니다. 군인들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마침 그곳에 있던 종군기자가 그녀의 애국심과 용맹성을 취재했습니다.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무엇인가 묻자, 그녀는 퍽 성가신 듯 상처가 난 입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애국심이니 용맹성 같은 어려운 말은 잘 모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죽을까봐 있는 힘을 다해 심지의 불을 껐습니다. 그뿐입니다.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마세요. 여인은 다시 아이를 들쳐업고 광주리를 머리에 인채 그곳을 빠져 나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애국심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들이, 내 자녀들이 이 사회의 썩어져 가는 풍조에 따라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이 오늘날 나만 아는 이기주의, 쾌락과 향락주의 물질최고주의, 돈제일주의의 폭탄의 심지에 의해 영혼이 폭파되기 직전에 있는 그때에 아이의 어머니와 같이 그것들을 있는 힘을 다해 그런 심지를 끊어내고 우리 아이들부터 그리스도의 나눔과 섬김의 정신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의 정신으로 기도로 연결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가까이서 실천할 수 있는 애국이며 나아가서는 바울 선생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애국심입니다. 이 애국은 단지 대한민국을 향한 애국심만이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을 위한 애국심이 될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박정옥 집사님의 장남 학인이가 손목이 다쳐 입원했을 때 여신도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학인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서 학인이가 믿음의 생활을 하도록 기도했다고 들었고 저 역시 찾아 갔습니다. 학인이에게 그리스도를 연결시키고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을 심어주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爲國丹心 有誰知 ”나라를 향한 이 내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요?“ 우리 주님 우리의 애국심을 알아주실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 모두가 애국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 선생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그 애국심을 저희에게도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이 가장 가까운 일에서부터 가장 적은 일에서부터 애국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복내려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주변에 있는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바울과 같이 불붙는 심정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연결되기를 바라는 붉은 마음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이 점차 이기주의와 향락주의와 배금주의와 편의주의로 사탄의 종이 되어 가고 있는 이 때에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연결시킴으로 새로운 차원의 애국하는 저희 가나안 식구들이 다 되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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