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6 월 17 일(주일) 오전 11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18 편 1 절 - 2 절
제 목 : 사랑 받으려면!!
할렐루야! 이 시간 함께 인사합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테오스 아가페 에스틴). 헬라어로 인사합시다! 사람이 행복한 때가 언제입니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왜 사느냐?” 물으면 100이면 95명이나 96명 정도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그럼 너는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 고 물으면 대답이 각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셀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아직 잉크 냄새가 사라지지 않은 조간신문을 화장실에 가지고 펼쳐 보면서 담배를 피울 때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서 호텔프런트에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여는 순간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이는 아이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빠! 하면서 자신의 품에 안겨왔을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행복한 때는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순간들에 대한 경험을 잘 살펴보면 거기에서 어떤 공통분모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무엇일까? 사람은 사랑 받을 때 가장 행복해 순간을 경험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통 3차원 혹은 4차원의 공간에서 산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그 순간 우리는 5차원, 아니 6차원 알지 못하는 신비한 아름다운 세계로 칠층천으로 어딘지 모르는 차원으로 공간이동을 합니다. dimension-shift 성경아가서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아가서 4장 10절에 보면 연인으로부터 사랑 받을 때 그 황홀한 느낌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에 지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승하구나” 사랑을 받는 진한 느낌은 포도주보다도 진하고, 사랑 받을 때 그의 향기는 세상 어떤 향수에 비교할 수 없음을 노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사이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과 행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존재가 사랑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때 존재론적인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 입니까? 사람이 행복한 때는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을 때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 입니까? 비교급과 최상급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비교할 수 없이 가장 최상급으로 행복한 때는 언제 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 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이 주는 사랑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는 사랑, 그 안에는 거품도 많습니다. 인간이 주는 사랑은 때에 따라 잘 변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은 최상급의 행복으로 접속되거나 연결 되지 않습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지존으로 아름다우신 분이 사랑하시는데 그 이상의 행복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자 여기에 프리즘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리즘에 빛이 통과하면 일곱 색깔 무지개가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색깔 무지개 빛 행복이 펼쳐지게 됩니다. 인간을 영원토록 존재케 하는 하나님의 구원, 인간을 풍요롭게 살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 인간을 가장 좋은 길로 이끄는 하나님의 인도, 인간을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는 하나님의 평화, 인간을 생기 있게 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 인간을 새롭게 의미 있게 살게 하는 하나님의 생명, 인간의 하루하루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이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의 프리즘을 통하여 와서 인간을 더 이상 그럴 수 없이 행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한 동료는 세발 낙지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친구는 항구도시인 목포에 살았었는데 세발 낙지를 예수님 다음으로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수유시장을 같이 지나다가 이 사람이 세발 낙지다! 소리를 치더니 그 리어카에 있는 것을 사서 그 자리에서 씻지도 않고 산 것을 손으로 집어 먹는데 조그마한 낙지들이 그 입 주변에 붙었는데도 뜯어서 먹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낙지가 발이 세 개도 아닌데 왜 세발낙지라 했느냐 그랬더니만 세발이라고 할 때 발이 가늘다고 해서 세발 낙지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세족낙지라고 해야지 왜 세발 낙지냐? 그는 대답대신 “먹어보지 아니한자는 말하지도 마!” 그렇습니다. 세발낙지를 먹어보지 아니한 자는 절대 그 맛을 모를 것입니다. 사랑을 받음도 그렇습니다. 사랑을 맛보지 못한 자는 그 사랑의 깊은 맛을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윤번웅 선생님과 지은희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두리 노래방에 가셔서 노래를 불러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번 가 보세요. 노래 책을 보면 나훈아가 부르는 이런 노래가사가 있습니다. “ 이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내 연인아 잠시라도 떨어져도 못살 것 같은 내 여인아” 이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사랑을 뜨겁게 경험한 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온 세상을 다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내여인아“ 그렇게 노래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받았던 사랑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을 보고 그 영원한 사랑을 경험한 이는 아마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니 이보다도 훨씬 더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순교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그리고도 한없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평생 순결 서약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 깊고 영원한 차원을 알기에 경험을 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 사랑에 응답하게 됩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사람은 지금까지 느낀 사람의 행복과는 전적으로 차원과 질이 다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이들은 그 행복감에 도취되어 자신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고도 기쁨에 넘쳐 삽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의 원천이요 진원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흠뻑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한번뿐인 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하겠고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아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결론적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굉장히 영적 영양가 있는 질문입니다. How to receive god's Love!! 이 질문에 바르게 응답하는 일은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함께 찾아나가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의 사랑을 받았던 경험들이 있고 지금도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여러분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사랑을 많이 받을 그 이에게 무엇인가 많이 가져다주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랑을 달라고 청구서를 쓰면 사랑을 받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잘해주면 남편은 그 즉석에서 수표를 한 장 끊어줍니다. 그 수표의 내용에는 언제든지 원하는 날 설거지와 빨래를 해 주겠다고 약속이 있고 남편의 싸인이 있습니다. 또 다른 수표 책 에는 “아기 세시간 봐주기 선물” 이 있고 그 사람의 싸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사랑을 받을 만 하도록 내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까요?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밝은 표정으로 바꾸어야 할까요? 아니면 피하지방적출수술을 해서 살을 빼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사랑 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따면 좀더 권위 있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이가 사랑하는 그것을 나도 사랑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랑 받기 위해서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엽기적인 창조적인 어떤 아이디어가 필요하겠습니까? 사랑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가장 최상의 행복을 만끽 할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풍성하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기에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을 받으려는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마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번 깊이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우리 한번 여행을 해봅시다. 하나님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기 전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이전에도 계셨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은 분명 태초 이전에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창조하신 만물들 때문에 분주하시겠지만 아예 만물이 생기지 않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을 때는 하나님은 참으로 적막하고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직전에 하나님의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은 피조된 것이기에 하나님은 홀로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강한 사랑을 받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을 만들고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외로움은 여전히 해소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 닮은꼴인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유이시듯 사람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근원적인 자유를 주어 자신을 반역할 수 있게 허락하였고 자신의 말에 no 라고 감히 말하고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도 있게도 하셨습니다. 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 자유로운 존재 때문에 하나님에게 말 못할 고통이 생겼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아픔이 스며들어 왔습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대들기도 하고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사람이 자신을 백안시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 아픔까지도 받아들여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감히 창조자인 자신을 배반한 골칫덩어리인 그들로부터 사실은 사랑을 받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형상인 사람이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아니기에 사람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한 치도 어김도 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에게 등을 돌리기도 하는 바로 그 존재로부터 사랑 받기를 진정으로 바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처음느낌”이었고 그런 느낌 또한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빠지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빠지자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 때문에 중심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 때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용서하게 되었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게 되었습니다. 고멜의 이야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사랑하였기에 끊임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다시금 사랑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어떤 균형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으로서 존귀와 영광의 균형을 잃어버린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빠져서 그 사랑의 강도와 진폭이 가장 최고조에 달한 사건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성경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였고 합니다만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일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옷을 다 벗기우고 침뱉음을 당하면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는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셨고 자신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의 불꽃같은 화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사랑을 받고 싶어하시기에 먼저 그토록 사랑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만 하고 사랑 받기를 거부하시는 분이 전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만 하고 자신은 사랑 받는 일에는 전혀 초월한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엉뚱한 우상들을 사랑하고 거기에 빠져 있으면 불과 같은 질투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밝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비범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지극히 평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토록 사랑하면서 그토록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에 목말라 하시고 배고파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다른 일에는 양보를 하실지 모르지만 사랑 받는 일에는 절대 양보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분석하고 분해해 보면 뭐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받기를 마치 타는 대지가 단비를 기다리듯이 하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랑에 비해 사랑을 받지 못하면 엄청나게 애석해 하시고 때론 분노도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어디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딱 한군데만 볼까요? 아가서2장5절입니다.“너희는건포도로 내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병도 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사람처럼 너무도 사람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양태를 분석해 보면 뭐 그리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사랑받기 원하셨고 또한 그토록 그만큼 사랑하시고 아니 그 이상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배움을 얻게 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도록 사랑받고 싶으면 하나님을 넘치도록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평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이를 더욱 확신할 수 있음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접을 받기 우너하거든 먼저 남을 대접하라” 고 하셨습니다. 사랑역시 정확하게 이 법칙이 해당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면 됩니다 사랑은 일방적이 아닙니다 철저히 상호적입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 사랑을 많이 흠뻑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하나님은 나를 그토록 사랑하심을 더욱 알게 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좀더 단순화 시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렸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때 원주시 일산동에 살았습니다. 그렇게 공부는 못했는데도 저는 그때 한 여자 애를 좋아했습니다. 그 여자애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현주! 그 아이의 눈은 별빛과 같이 빛났습니다. 저는 그 여자애를 무척 좋아했지만 지금도 아쉬운 것은 단 한마디도 말을 붙여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홀로 가슴만 태웠습니다. 그 이후로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한다고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내 인생에 좋아한다고 말 못하여 놓친 여자애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왜 내가 그때 좋아하는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랑은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되면서 시작되지만 사랑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구체적으로 출발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랑이 시작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첫 출발은 “하나님 사랑합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부터입니다. 우리교회 새벽기도를 하는 어떤 분은 기도를 마칠 때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고 마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는 고백은 기도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도를 다한 것입니다.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윗도 오늘 본문 시편 18장1절에 보면 직접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역시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서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도 행복했고 다윗도 행복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 직접 사랑을 고백합니다. 아마 분명히 손을 높이 들고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렇게 직접 고백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남자분인데 “하나님!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약간 쑥스럽고 썰렁하게 느껴진다면 노래를 통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언제인가 카톨릭 영성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 노래를 배웠습니다. 이렇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리듬기타를 연주하는 자는 이노래를 눈을 감고 열 번도 더 연주했고 참가자는 여러 번도 더 따라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반복하여 부르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모두가 자신들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아니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심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의미와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넘치게 뜨겁게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가득 넘치게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출발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시간 주보에 함께 있는 노래를 두 번 함께 같이 부르면서 기도를 대신 하겠습니다.
기도를 대신하는 찬송 = 2번> 나의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예수님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사랑합니다. 영원토록 정성다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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