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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사랑은 아픔

관리자 2010-11-29 (월) 11:27 15년전 2208  

2001 년 4 월 8 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마태복음 27 장 27 절 - 50 절, 요한복음 3 장 16 절

제 목 : 사랑은 아픔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가나안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오시는 길목 요소요소마다 깔아 놓았습니다. 이종려주일과 함께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잡히시어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난 당하시는지 조용히 고난의 행로를 더듬어 보십시다. 이제 우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해 보십시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시던 약 1970 여년 전당시 팔레스틴, 그 시간으로 마음속에서 그때 그 곳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컬러 그래픽으로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예수님께서 어떤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것만이 고난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은 고난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태어날 때도 남의 집 마굿간, 말 밥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말똥 냄새, 거 지독하지 않습니까? 청소하지 않은 말밥통에서 나는 냄새 또한 그렇게 향기롭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마굿간이라 밀폐된 문이 없이 탁 터져서 춥기도 오살나게 추웠을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잘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브람스나 모차르트 혹은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들으며 포근한 행복의 요람에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앞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헤롯이 영을 내려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다 죽이라고 했다니까 신생아의 부모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겠습니까? 아직 산후조리도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애를 숨겨 다니다니느라 병정들을 피해 아기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간은 콩알만해지고 아마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의 속은 시커멓게 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분명 예수님은 조금 장성하여 모친으로부터 그때 그 긴박한 얘기를 들으셨을 것이고 자신의 탄생 때문에 죽어간 그때 두 살 이하의 그 숱한 어린 생명들에 대해 가슴아파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연세가 삼십이 되실 때까지 집에서 목수 일을 하시면서 모친과 형제들의 생계를 도맡아 보았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세금 내고 성전에 헌금을 바치고 나면 뼈빠지게 일해도 입에 겨우 풀칠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셨던 갈릴리는 가난한 동네였으며 하두 로마의 폭정이 심하여 로마에 반항하여 봉기하였다가 예수님이 30 살을 잡수시기 전에 수 천명의 갈릴리 지방의 젊은이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이곳저곳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한많은 통곡소리를 들으면서 그 아픔 역시 절절히 아프게 박혀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친근하게 지내던 젊은이들도 예수님은 자신의 주변에서 민족이 당한 고난과 아픔의 현실을 구구절절이 느끼고 목수로서 못질을 할 때마다 마치 자신의 손과 발에 못질하는 것처럼 아픔을 느끼셨을 것이고 대패질을 할 때마다 자신의 가슴을 깍아 내는 듯한 절통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공적 생애를 시작하셨을 때는 집도 절도 없이 동가숙(東家宿) 서가식(西家食)하며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가가호호(家家戶戶) 다니셨을 때 어떤 곳에서는 복음을 잘 받아드리지 않아 마땅한 집이 없으셔서 제자들과 같이 하늘을 천장삼고 땅을 이불 삼아 주무시기도 셀 수 없이 하셨을 것입니다. 오죽하셨으면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 하셨겠습니까? 삼시 세때의 끼니도 분명 제대로 못하셨을 때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복음을 잘 받아드리는 곳에서는 그래도 드셨을 터이지만 복음을 배척한 곳에서는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굶고 저녁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오직 그렇게 고생하셨으면 성경은 30 대 초반이신 우리 예수님이 오십대와 같이 보이셨다하겠습니까? 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이 가는 데마다 자신을 졸졸 따라와서 자신의 천국복음사업을 방해하고 교묘한 질문으로 자신을 곤경에 집어넣으려 하였습니다. 한마디 한마디를 고위층에 일러바치고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의 말을 이렇게 걸고 저렇게 넘어지고 하는데 얼마나 스트레스가 쌓이셨겠습니까? 우리도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으면 “인왕산 호랑이는 뭐하나 저 놈들 안물어가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마음 아프신 것은 자신의 제자 중에 하나가 자신을 배반한 일입니다. 적들이 나를 해꼬지하는 것은 적들이니까 그런다고 하지만 그토록 가까이 두고 사랑하시며 애지중지 하면서 양육한 제자가 자신을 은돈 30 냥에 팔아 넘겼을 때는 인간적인 깊은 비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잡히시고 나자 제자들이 싹 도망가버리고 딱 한 제자가 가까이 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부인하고 도망갔을 때 예수님의 가슴은 마치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고난이 가장 극심한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장면은 죄악의 인간들이 예수님을 고난과 아픔과 고통과 수치와 조롱과 희롱으로 목욕시키는 비극적인 장면입니다. 잡혀가자마자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마태 27 장 29 절). 로마군대의 채찍질이라 인정사정이 없었을 것입니다. 로마군대의 채찍질은 만일 채찍질하는 이가 제대로 채찍질을 하지 않으면 바로 그 위 상관에게 자신이 채찍질을 당하게 되어 있어 당시 로마군은 성심성의껏 채찍질을 했을 터이니 한번씩 때릴 때마다 살점이 툭툭 떨어지는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다 벗겼습니다. 옷을 벗기는 같은 수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나누어 가졌습니다. 죄인이라는 홍포를 입혔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씌웠습니다. 가시면류관은 꽉 고정되어 있어서 고개를 조금만 돌릴 때마다 가시들이 살갗을 찔렀습니다. 갈대를 그 오른 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며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였습니다. 다시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툭툭 쳤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사형 당할 죄수들은 사형 당하기 전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법인데 예수님은 사형 당하기 직전까지 최악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십자가에 박히면 온 육체가 고통으로 환장할 지경인데 밑에 있는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고상한 표현을 썼지만 분명히 손가락을 까닥하면서 이랬을 것입니다. “야 임마 내려와 봐! 너 저번에 이스라엘 왕이라 그랬잖아! 니가 내려오면 내가 너를 메시야로 믿으마” 아무리 나쁜 녀석이라도 고통 당할 때는 조롱하지 않는 법인데 육체적인 고통이 극심할 때 가장 정신적인 극심한 고통을 주는 욕을 해댔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십자가 앞에서 육신의 어머니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면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계셨을 때 예수님이 당하신 그 고통은 이중고 삼중고 사중고 오중고로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고통은 심히 중하여 소리를 크게 두 번이나 지르셨다고 마태복음 27 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27 장 46 절과 50 절입니다. 여기서 소리는 큰 외침인데 아마 외마디 비명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잔혹하여 사람을 죽이는 많은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영국에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들을 여러 가지로 전시한 박물관에 가 보았습니다. 작두가 저 공중에 높이 있고 사람의 목은 그 아래 있는데 손가락을 까닥하면서 지시하면 순식간에 작두가 내려와 1 초도 안되어 목을 자르는 방법(단두대), 밧줄로 목을 매달았다가 갑자기 밟고 있는 의자를 치워버리는 방법, 전기의자에 앉혀 놓고 갑자기 전기를 10 만볼트를 보내어 죽게 하는 방법, dead man walking 에서와 같이 사람을 묶어 놓고 독약을 주사하는 방법, 기름을 팔팔 끓여 그 안에 죄수를 살짝 떨어뜨려 놓고 뚜겅을 닫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대개가 즉시 아니면 3 분도 안되어 바로 죽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사용하는 방법보다는 상대적으로 훨씬 덜 고통스럽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놓으면 바로 죽지 않습니다. 가장 잔혹한 처형방법입니다. 인간이 고통을 당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하고 난 다음에 죽습니다. 보통 우리 강단에 있는 것과 같은 세련된 나무가 아니라 투박한 등걸이 있는 나무에 걸어 놓고 두 손에 못을 박고 두 발을 묶어 큰못을 박는 십자가형은 사람을 그냥 죽지 아니하고 실로 엄청난 고통을 다 당하고 죽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 몸이 시큼시큼 아픈데 내 두 손에 녹슬은 큰 못으로 망치를 가지고 때리면서 박을 때, 내 두 발을 한데로 모아서 녹슬은 큰 대못을 망치로 때려 박을 때 얼마다 아프겠습니다까? 십자가는 제일 처음 누워서 못을 박아서 그 다음에 일으켜 세웁니다. 일으켜 세우면 만유인력의 인력의 법칙에 의하여 온 몸이 밑으로 내려가는데 단지 못 세 개로 고정시켜 놓았으니 그 뼈와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로마병정은 그 긴 창을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옆구리를 푹 푹 찌릅니다. 모든 피가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다가 다 흐르고 난 다음에 응고해 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죽으면 바로 죽지 아니하고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만 수 시간, 수 십 시간 걸립니다. 당시 로마제국이 자신의 속국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잡아서 “니들 봐라 반란을 일으키면 이렇게 죽인다” 하고 시범 케이스로 십자가 처형장면을 공개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의 법무부는 가장 극심한 고통 속에 죽이는 방법을 연구개발하고 연구개발한 가운데 만든 최우수한 방법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악이 만들어 놓은 가장 악랄한 방법에 의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풀코스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다는 것도 잘 압니다. 이것을 우리는 귀가 아프게 설교에서, 교회학교 시간에, 부흥회에서, 고난주간 마다 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이 말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되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 방법으로 하셨을까? 좀더 noble 하고 좀더 gentle 하고 좀더 smart 한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왜 인간세계가 만들어 놓은 가장 풀코스의 고통과 아픔을 당하시면서 인간을 구원하셨을까? 하는 의문점입니다. 그런 방법 말고 좀더 하나님다우신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1>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그 광활한 우주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듯이 하나님께서 마찬가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인간세상에 구원있으라 하시니 구원이 있었고 그 구원을 보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충분히 창조주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하실 수 있었을 터인데 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셨는지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어떤 시어머니가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많은 말을 하기를 싫어한단다. 내가 만일 손가락으로 이렇게 까닥하면 이리로 오라는 표시이니 그런 줄 알아라” 그렇게 말하자 며느리가 대답합니다. “어머니! 저도 많은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제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 싫다는 표시이니 그리 알아주세요” 요즘이야 그렇지만 옛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손가락 신호조차 주지 않아도 눈치만 보고 알아서 기었습니다.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때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셔도 인간의 구원쯤은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왜 그런 손쉬운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왜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게 조롱 당하고 희롱 당하시면서 바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구원하셨는지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3> 성경에 보면 천군천사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천군이란 하늘의 군사”라 그 말입니다. 예수님도 하늘나라의 열두영의 군단도 넘는 천군을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68 편 17 절에 보면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고 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을 하실 때 천군이나 천사를 시켜 임무를 맡기셔도 충분히 임무를 잘 완수하고도 남음이 있었을텐데 왜 하나님 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saving private Ryan(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가 일병 보호하고 구하라고 하면 그 휘하에 있는 가장 훈련되어있는 부대가 대위의 지휘를 받아 죽음을 무릎쓰고 그 일병을 보호하고 구하려고 나서지 않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수많은 창조물 중에 하나로서 인간을 구원하는 일 정도야 천사장을 시키면 천사장도 하늘의 군대 중에서 똑똑하고 쓸만한 천사 중에서 하나를 시켰어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말똥 냄새 나는 곳에 태어나시고 침 뱉음을 당하고 옷도 다 벗기우고 욕을 먹는 바로 그런 방법으로 인간의 구원을 이루셨을까? 하면 하나님의 위엄이 드러나고 멋있었을 텐데 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배반까지 당하시면서 옷이 벗기운 채로 아무 힘없이 고통을 당하며 죽으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디즈니 영화를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이 영화에서는 멋있게 기가 막힌 예를 들면 양탄자를 타고 알라딘 램프를 켜서 공주도 구원하고 모든 이들의 찬탄하는 방법으로 꿈을 실현시킵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실 때 마치 디즈니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은 다치지 않고 악마를 해치우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세계구원이라는 인간의 영원한 드림”을 드라마틱하게 실현시키실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해골 골짜기, 아골 골짜기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방법을 택하셨을가? 모든 천상과 천하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이 인간을 구원할 때 왜 그런 방법을 쓰셨을까? 왜 인간이 되어 힘없이 무력하게 가장 불쌍하게 죽는 방법으로 인간의 구원을 이루셨을까?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간구원의 방법에 대해 너무도 의문이 많습니다. 아니 의문이 많다기 보다도 우리의 생각과 합리적 이성과 거듭된 경험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2 장 23 절에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바울 시대에도 십자가는 참으로 알쏭달쏭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기피대상이었고 이방인들에게는 참으로 미련한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 고통을 통한 구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만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질문을 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그런 방법으로 이루셨습니까?” 여러분 엿장수가 일분에 가위질을 보통 몇 번 하는지 아십니까? 대답은 엿장수 맘대로 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도 하나님 맘대로 입니다. 하나님의 맘은 도대체 어떤 맘이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분석해 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비하신 그 뜻을 알 수 없지만 그 뜻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구절이 요한복음 3 장 16 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바로 여기에 어떤 해답의 단초가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이처럼이란 가장 귀한 한 생명, 독생자를 주시기까지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자신의 분신,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저 그냥 적당히 감정만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지 모르지만 한국에 김현식이란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몇 년 전에 한참 젊은 나이로 요절을 했습니다. 김현식은 이런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하고 불렀습니다.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바람결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가슴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임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김현식이 여기서 노래한 당신은 꼭 어떤 여인이 아닙니다. 여인이기보다는 자신의 얼마남지 않은 삶이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이 너무도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노래불렀습니다. 사랑은 아픔이라고 노래불렀습니다. 사랑은 기쁨 보다 아픔이라고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로 노래불렀습니다. 사랑과 아픔은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사랑은 이상합니다. 사랑하게 되면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사심없이 상대방의 기쁨과 행복을 바랍니다.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소유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내어주게 됩니다. 사랑하면 단지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진실로 사랑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동반자가 있습니다. 아픔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에 아픔까지도 떠 안게 되며 아픔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왜 아픔을 사랑하게 될까?”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이유 외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다른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자신에게 더욱 충성해야 한다거나, 인간이 이제 후로는 나에게 더 영광을 돌려야 한다거나, 인간이 나에게 더 많이 바쳐야 한다거나 이런 따위가 아닙니다. 그저 사랑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면 그토록 사랑했는데 사랑하는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으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랑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 영역을 침입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닙니다. 복을 받거나 내가 잘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꼭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얻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누리기도 합니다만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우리를 아프게 사랑하신 그 분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실만 좋아하고 구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사랑 받은 것만 즐기고 좋아하면서 그 구원을 이루기까지 우리 하나님의 아픔, 우리 예수님의 고통을 까먹고 지내기가 쉽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흘려 기도한 우리 주님의 그 고뇌와 갈등을 전혀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싶습니다. 이제 이 고난주간이 예수님께서 고난 속으로 깊이 들어가셨던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모든 아픔을 감내하셨던 우리의 예수님의 아픈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는 절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함께 드린 모든 이들에게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저희가 주님께로부터 영생과 축복을 얻기에 앞서 먼저 주님께서 저희의 구원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셨던 그 아픔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만분지 일이나마 나의 아픔으로 받아드리는 그 믿음을 주시옵소서. 험한 십자가를 붙들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그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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