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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설교)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관리자 2010-11-29 (월) 11:29 15년전 2881  

2001 년 8 월 2 일(목) 오후 8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46 편 4 절 - 5 절

제 목 :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할렐루야! 오늘은 특별히 46 장 5 절 후반절에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이 말씀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왜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실까요? 새벽에 도우신다는 말은 바로 우리를 도우신다 그 말씀이신데 왜 새벽에 도우신다고 하셨을까? 그 사람이 새벽에 쿨쿨 자고 있는데 그를 도우신다고 하셨을까? 아닙니다. 시편 119 편 147 절에 보면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다윗이 새벽에 주의 말씀을 바라고 간구하고 기도하고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는 이렇듯 새벽에 나와 주의 말씀을 바라고 기도하면서 주의 도우심을 바라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그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새벽부터 일찍 활동하십니다. 출애급기 14 장 24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언제 일하실까? 우리와 같이 오전과 오후 일과시간이 있어서 일하시고 밤에는 쉬실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하실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일하시기에 새벽부터 일찍 당신의 구원사업을 시작하십니다. 시편 121 편 4 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을 만드신 분으로서 빛이 비추이시는 새벽과 함께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새벽 일찍 나와보면 새벽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요구르트 및 우유를 배달하고 있는 아줌마,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또 한 부류입니다. 저는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성경을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 서로 인사하였습니다. 저는 20 층을 눌렀고 그 분은 10 층을 눌렀습니다. 비록 교회는 달랐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떤 일체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새벽부터 일찍 활동하시면서 새벽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이들을 유심히 눈여겨보시고 그 기도를 귀기울여 들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이를 하나님께서는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왜 새벽에 나와 간구하고 있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도우실까요? 저는 여기에는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처음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첫 열매를 좋아하시고 장자를 좋아하시고 맏배의 기름기를 좋아하십니다. 에스겔 20 장 40 절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찌라 거기서 너희 예물과 너희 천신하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이렇듯 첫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은 첫 열매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난 것이나 처음 것을 좋아하시는 경향은 단지 물질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간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하루가 시작되는 첫 부분을 잘라 바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아시다시피 새벽이란 하루가 시작되는 첫 시점입니다. 어둔 밤이 오면 사람들은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동녘하늘에 먼동이 틀 때 새벽과 함께 하루가 시작합니다. 새벽에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함은 하루의 첫 부분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며 하루의 첫 부분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냥 가만히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이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 인생에게 보탬이 되어 주시고 도우시면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새벽은 인간의 영혼이 가장 순결하고 진실한 때입니다. 가장 정결하고 맑은 때입니다. 흐르는 물을 떠서 항아리에 부어 놓고 놓아두면 아주 맑은 물이 됩니다. 그러나 다시 그 물을 따르면 각종 밑에 가라앉은 부유물이 떠 돌아다녀 다시금 흙탕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맑고 순결한 영혼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 장 22 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이른 아침에 정결하고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귀기울여 들으십니다.  

셋째,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일은 희생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벽은 아직 사람이 자고 있을 때입니다. 보통 인간의 리듬에 의하면 새벽에는 잠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잠을 더 자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은 어떤 의미의 큰 희생입니다. 그런 희생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시는 우리 하나님은 무척 마음이 기쁘실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새벽기도를 무척 힘들어합니다. 십자가를 말할 때 다른 무엇에서가 아니라 새벽기도 자체가 십자가라고 합니다. 저 역시 새벽에 나오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몇몇의 목회자들은 누가 어떤 사람이 새벽기도를 만들어 우리가 이 고생을 하게 하나! 하면서 불평하기도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새벽기도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주술신앙이 만들어 놓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다른 유럽교회나 미국교회 그리고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새벽기도는 성경의 인물들이 즐겨 하였던 일이었습니다. 보통 새벽에는 말씀과 기도가 주를 이룹니다. 다윗은 새벽에 나와서 말씀을 간구하고 부르짖는 일에는 우리의 새벽기도와 정확하게 똑같았습니다. 시편 119 편 147 절을 봅시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다윗만 새벽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 장 35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셔서 맨 먼저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거기서 새 힘을 얻고 거기서 하늘의 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무척 잠이 많은 사람입니다. 잠을 못 자면 무슨 일이 안됩니다. 잠을 못자게 하는 그곳이 지옥과 같은 것이라고 느낍니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서 자명종을 두 개나 해 놓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잘 때도 있고 그것을 눌러 놓고 다시 자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인도자 없이 새벽기도를 한 적이 몇 번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 새벽기도회를 나오는 것이 힘든 줄 알기에 저 역시 새벽에 나오신 분들을 유심히 봅니다. 왜 봅니까? 야! 이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그 멀리서 주의 전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구나! 마음 속에 각인해 놓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새벽기도를 나온 사람들이 너무도 귀하다고 생각되어 교회 일지에 그 이름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십니다. 새벽에 주의 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이들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일 자체가 희생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른 새벽 미명에 자신을 사랑하여 자신의 집인 성전으로 나오는 그 발걸음 소리를 하나님은 즐겁게 들으시면서 어떤 음악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새벽제단에 나아온 이들을 이름을 기억하시고 가슴팍에 새겨 놓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새벽 첫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을 하나님 역시 눈여겨보시고 그 기도를 귀기울여 들으실 것입니다. 역대하 7 장 15 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마음의 결정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하물며 성도들이 새벽 미명에 나아와 드리는 기도를 모든 청력을 집중하여 들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새벽에 제단에 나아온 이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실까요? 하나님께서 새벽에 나아와 주님 앞에 간구하고 간구하는 이에게 도우시는 방법은 실로 말할 수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우선은 새벽에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는 그 기도를 들어주심으로 응답하십니다. 다윗은 새벽에 나아와 제단에서 열심히 주께 간구하였습니다. 아마 아침과 오후에는 정사를 돌보는데 여념이 없었고 맨 아침 새벽에는 첫 부분을 짤라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다윗이 새벽에 어떻게 기도하였을까요? “시편 4 편 1 절 -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편 69 편 13 절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시편 143 편 1 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새벽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여 주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 새벽에 드린 기도가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새벽에 전쟁을 이기게 해달라고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아마도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다윗은 드리는 기도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응답해 주심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래 다윗은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체험적인 시편을 썼습니다.  

새벽에 하늘에서 이슬이 나립니다. 새벽에 나아와 간구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은총을 이슬같이 내리십니다. 총이 이슬과 같이 나립니다. 이슬은 언제 내리는지 모르게 내리지만 대지 전체를 촉촉이 적시게 합니다. 이슬은 언제 옷을 젖게 하는지 모르지만 전체 대지를 적시듯이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 영혼 전체를 적십니다. 은총의 이슬이 내린 다음에 하나님은 차츰 은혜의 햇살을 비추시기를 시작하십니다. 새벽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동녘의 아침햇살처럼 비추어오기 시작합니다. 또한 새벽에 주님의 밝은 미소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밤새 기도를 하다가 새벽 미명에 하나님의 밝은 미소를 보았습니다. 새벽에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본문 시편 46 편 5 절에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이라는 성에 들어와 거하시면 어떤 환난이나 어떤 요동이 있을지라도 성안에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전혀 어려움이 없게 됩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새벽에 기도로 나아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많은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된 새벽기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음은 분명 새벽에 이슬같은 은혜를 체험하고 새벽에 하나님으로부터 집중적인 도우심을 받은 이들이 한 두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생생한 하나님의 은총의 체험이 풍성하기에 새벽기도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새벽제단에서 체험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새벽 제단에서 삶의 여러 가지 도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받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불치병에서 치유를 받기도 하고 어떤 이는 원하는 자녀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녀가 기도한 대로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기쁨을 누리고 어떤 이는 사업이 흥왕케 되고 어떤 이는 모든 허물과 잘못을 씻음 받은 경험을 하고 어떤 이는 정신적 침체에서 벗어나며 어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삶의 각종 장벽을 깨뜨리고 새롭게 전진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기도를 통해서 배우자를 얻었습니다. 김선도 목사님의 사모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새벽기도는 우리 교회의 떡잎과 같습니다. 잘 될 나무는 떡 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잘 될 나무인지 아닌지는 바로 이 새벽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새벽에 나오는 기도일꾼들이 열명 수준이면 그 교회는 100 명까지 성장하고 만일 20 명이다 그러면 200 명까지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곧 자리에서 일어나기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죠셉 파카(J. Parker)는 아침이 신성한 하루는 축복이다󰡓라고 말합니다. 기도에 의해서 최초의 승리를 얻은 하루는 성공입니다. 동틀녘 산정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새벽기도는 여러분 영혼의 힘이 됩니다.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항해하고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질주하고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날아간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 하니 추를 떼어 두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추를 떼는 순간에 시계바늘은 서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들어도 매일 기도해야 삽니다. 그 기도의 힘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상한 표현이 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세상에 새벽이 되어 먼동이 트면 사람을 깨우는데 사람이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런 표현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기도는 아침의 열쇠이고 밤의 자물쇠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아침에 하나님의 은총이 쏟아져 들어오는 문을 여는 열쇠와 같습니다. 시편 57 편 8 절에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전에는 자기를 일깨우던 새벽을 이제는 감격에 벅차 자기가 일깨우겠다는 것입니다. 새벽이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림이 아니라 새벽을 미리 불어내어 그 광명이 다가오는 그 아침에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이들은 날마다 감격과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서 새벽을 깨우며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그냥 흘려 버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분일초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일년을 그냥 물 붓듯이 흘려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벽 제단에 나아와 하나님께 하루 첫 시간을 성별하여 바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기도를 하는 순간은 그 이상 가치있는 시간이 있을 까 싶습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들이 새벽기도에 나오지 못하신 분들이라도 일년 365 일의 십일조인 36 일이라도 주의 제단에 나가서 주의 몸된 교회와 자신과 가족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래서 연약한 인생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교회 성도들 모두가 기도로서 새벽을 깨워 이 세상의 어둠을 깨우고 영혼을 깨우는 이들이 다 되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계수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의 첫 부분을 말씀과 더불어 기도하며 바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이른 아침을 내 것으로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바치는 믿음 주시옵소서. 새벽에 일어나 주님 앞에 나아가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께 간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로 새벽을 깨우며 말씀으로 영혼을 깨우는 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 영혼을 깨우쳐 주셔서 주님을 향한 마음의 대로를 만들어 주시옵소서. 저희가 이른 아침 주님을 향하여 기도할 때 새벽의 이슬같이 나리시는 은총을 허락하시고 은혜의 햊빛을 저희 영혼에 비추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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