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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설교)세월을 아끼라

관리자 2010-11-29 (월) 11:41 15년전 2741  

2001 년 10 월 7 일 오후 7 시 30 분 광주 가나안 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에베소서 5 장 15 절 - 17 절

제 목 : 세월을 아끼라  

할렐루야!! 제가 개척한 교회에 한 권사님이 계시는데 이 분은 젊었을 때 보석을 가공하는 분이었는데 한마디로 말을 잘하는데 때로는 보석과 같은 말이 나와 적어두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시간이 자기 나이만큼 마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40 대였을 때는 40 마일로 달려갔는데 50 대일 때는 50 마일로 달려가고 이제 자신은 60 대인데 60 마일로 달려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60 마일이면 시속 80 km입니다. 이제 70 대가 되면 후다닥하고 인생 끝날 것 같아요 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저 역시 마흔 둘이니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인생의 전반전이 오르막길이라면 후반전은 내리막길이니 얼마나 빨리 굴러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산 중에 귀하고 귀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3 절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운데 있는 절인 16 절에 spotlight 를 집중시키도록 하겠습니다. 16 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는 상당히 소중한 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월은 무엇입니까? 세월(歲月)은 漢字語로는 연 세(歲)와 달 월(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년과 달을 말합니다. 년과 달을 이루고 있는 더 적은 단위는 일과 시, 즉 일시입니다. 날과 시간입니다. 날과 시간을 이루고 있는 더 적은 단위는 분과 초입니다. 불교의 시간 개념 속에는 “겁” 혹은 “영겁”이 있습니다. 한 까마귀가 태산과 같은 큰 수정으로 이루어진 산을 다 쪼아서 먹어 없어지는 때가 일 겁이라고 합니다. 일겁이 한 오백억년 걸리겠습니까? 그런데 영겁이란 겁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니까 永劫이란 기독교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시간은 측량할 수 없이 지나가는 찰나와 같은 순간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마찬가지로 측량할 수 없는 영원의 시간이 있습니다. 범위를 약간 좁혀 하루라는 시간을 따져본다면 우리는 하루라는 24 시간의 보자기, 분으로 말하면 1440 분이요 초로 말하면 86400 초가 담겨 있는 보자기에 담겨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여기에서 아끼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말의 어감으로는 아끼라는 것은 소중하게 알고 소중하게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영어의 표현에서 보면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혹은 ”making the most of the time“,으로 각각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기회를 선용하라“ ”시간을 선용하라“,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잘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왜 기회를 선용해야 하고 왜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잘 사용해야 할까?  

왜 세월을 아껴야 합니까? 첫째, 세월이 빨리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JFC 실러에 의하면 시간은 세 가지 걸음이 있다고 합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지 않고 서 있다” 시편 90 편 10 절에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이 70 혹은 80 까지 산다고 하면 그 중간지점인 서른 다섯 살 혹은 마흔 살 이후에서 부터는 완전히 내리막길입니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가속도가 붙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갑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아침에 늦으막하게 일어나 여름방학책 2 장하고 나서 구슬치기와 딱치치기를 하고 집 옆의 또랑에서 검은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다가 형하고 십리 밖에 있는 시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돌아와 감나무에 올라가고 논두렁에 있는 메뚜기를 잡고 뜰 앞에 열린 토마토와 가지를 따먹고 날씨가 너무 더워 다시 시냇가에 미역을 감고자 가려고 해도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요즘 경험하고 있는 시간은 언제 지나갔는지 한 달이 지나가되 마치 기차를 타면 나무들이 휘딱 지나가듯이 지나갑니다.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일도 없고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나이만 벌써 불혹의 나이를 넘고 있습니다. 참 찬송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세월은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세월 아껴야 합니다. 너무 빨리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둘째, 왜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세월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물은 발전기를 통하여 다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아까 본 비디오는 다시 돌려 볼 수 있습니다. 추억의 앨범도 다시 들쳐 볼 수 있습니다. 잊어버린 재산은 열심히 노력하여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세월은 그 누구도 다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오늘 이 시간, 2001 년 10 월 7 일 오후 7 시 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합니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으로서 과거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서도 계시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왔다갔다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우리 인간에게 허여된 시간은 모레시계와 같이 다시 거꾸러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스티븐 호킹이라는 천체물리학자는 “시간은 항상 미래로 흐르는가?“라는 책에서 이론상으로는 시계바늘을 거꾸러 돌려서 과거에로 갈 수 있어 자신이 지나온 생을 교정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였습니다. 또한 공상과학영화(SF Film)에서는 Time Machine"을 타고 back to the future 미래로도 과거로도 시간을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보여줍니다만 그것은 공상의 차원이고 적어도 오늘 우리에게 흘러간 시간은 다시 내게로 와서 옛 추억을 되살려 주지 않습니다. 만일 인생이 이생, 삼생이라고 한다면 한번은 warming up을 하면서 슬슬 연습으로 살아보고 시행착오도 많이 해보고 두 번째 삶은 정말 잘 살아보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인생은 일생입니다. 딱 한번뿐인 유일회적인 것(the one and only thing)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전생이라 하여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은 생명이라지만 성경은 이 땅에서의 삶은 딱 한번뿐이라고 합니다.  

셋째, 세월을 아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값어치가 얼마나 될까? 만일 우리나라의 재벌 정주영 씨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만일 시간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1 시간에 20 억이고 하루가 480 억이라면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서라도 그 시간을 돈으로 샀을 것입니다. 시간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일각이 천금보다 더 귀합니다. 현재 미국 최고의 부자는 컴퓨터 산업의 귀재, 빌 게이츠입니다. 그의 재산이 작년만 해도 600 억 달러였습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260 억이 불어 난 현 재산은 860 억 달러입니다. 한국 돈으로는 103 조 2000 억원입니다. 한 해에 100 만 달러씩쓴다고 해도 10 만년을 쓸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재산 860 억 달러를 더 늘여 1000 억 달러로 만들 수 있지만 그가 1000 억 달러를 다 준다고 해도 그의 하나님이 정한 그의 삶의 시간을 1 초도 늘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도 그 돈을 몽땅 투자해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정한 세월을 단 1 초도 늘일 수 없고 더 살 수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더 꿀 수도 없습니다.  

네 번 째, 세월을 아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 그대로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도울이 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때가 악하다고 했을까? 에베소는 로마 제국에 속한 아시아 속령(터키 서부)의 가장 중요한 성읍이었습니다. 소아시아 서부, 카이스데르강 하구에 있던 항구도시로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 거점이었습니다. 항구도시는 온갖 문화가 배를 타고 실려 오는 곳입니다. 온갖 이방신들의 문화가 잡다하게 퍼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 장에 보면 복음이 이곳으로 퍼지자 은으로 만든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상의 매출이 줄었으므로 소요가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곳은 목욕탕 문화가 발달하여 온갖 성적인 타락과 우상신 숭배가 극심하였던 곳입니다. 바울 선생님이 제 2차 전도여행때 단기간 이곳을 방문했는데 바로 이때에 에베소의 극심한 도덕적 타락상을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한 부류들은 어떻게 하면 쾌락을 좀 더 누리고 살 수 있을까? 삶의 시간들을 온통 쾌락지향적인 삶으로 채우고 있었고 다른 한 부류는 이방신전에서 은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절을 하며 한쪽에서는 그것을 통해 돈을 버는 부패한 자본주의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의 문화가 마치 오염된 강물과 같이 물질주의적으로 쾌락주의적으로 세속주의적으로 흐르고 있어 인간의 순결한 영혼은 금방 그 물에 오염되어 갔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로 이런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따르는 이들이 너무도 소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숭배적이고 성적으로 퇴폐한 헬라 문화의 물결에서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여 이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악한 때가 악한 문화가 에베소 교인들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선용하면서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바울은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런 우상문화 속에서 쾌락을 맘껏 누리면서 사는 것이 당시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5 절에서 미련하게 살지 말고 지혜있게 살라고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자요, 지혜없는 미련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냥 되는데로 쾌락과 방종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때도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옛날에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950 년 한국전쟁을 거치고 1960 년대 이후에서부터 급격하게 산업화되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구의 물결이 물밀 듯이 밀려 왔습니다. 서구의 좋은 문화를 많이 수입하였으면 좋은데 서구의 폭력과 섹스, 돈만 아는 천민자본주의 등의 물결이 넘치도록 밀려와서 한국 사람들의 심성을 근본적으로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그 내면을 뜯어보자면 당시 에베소보다도 훨씬 더 악한 문화로 덧칠해져 있습니다. 영화는 가공할만한 폭력으로 색칠해져 있으며 현대인의 첨단 도구인 인터넷은 거의 85 % 이상이 섹스를 파는 문화로 물들여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 아니면 안된다 힘이 없으면 안된다 돈과 권력의 우상에 의해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고 냉대합니다. 알 수도 없이 많은 청소년들이 집을 가출하고 원조교제니 하여 수없는 중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팔아 용돈을 벌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자동차에 벗은 여인의 사진과 함께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비밀이 절대로 보장된다고 유혹하고 있는 명함같은 홍보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여성 중에 6 명 중 한 명이 성을 파는 일에 종사하고 성의 매매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면서 한쪽은 풍년이 들었는데 다른 한쪽은 어린이들이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데 쌀을 원조해주자고 하면 눈에 불을 키고 안 된다고 달려듭니다. 우리는 오늘 21 세기를 살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다시금 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분명 오늘 바울 사도가 오신다면 분명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껴서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 번 째,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허락하신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잘 디자인하여 지혜롭게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와 때가 악하여 시간을 아무런 의미와 가치 없는데다가 마구 낭비하도록 우리 세대는 잘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잘 사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한 때 복부인들이 땅을 사고 팔고 하는 것을 재-테크라고 하였습니다. 재산을 잘 관리하는 technology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새로운 용어가 생겼는데 시-테크입니다. “time-technology”를 줄인 말입니다. 요즘 기업에서는 그 사람이 받는 총 연봉을 일하는 근무시간으로 나누어 1 분 당 그 사람이 얼마를 받는지를 적어 놓게 합니다. “당신이 회사로부터 받는 연봉이 얼마, 그 연봉을 근무한 일시로 나누면 하루에 81600 원, 1 시간에 10200 원, 1 분에 회사가 당신에게 지급하는 돈이 170 원, 만일 당신이 근무시간에 나가서 담배 피우는 시간은 10 분, 그러면 당신이 담배를 하나 피울 때 회사 돈이 1700 원이 연기와 함께 사라집니다.” 이것이 기업이 관리하는 時-테크이고 이것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나 열을 확 받지요. “야! 더럽다 더러워! 그러면서 담배 하나 필 것을 두 대 피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테크를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달란트를 받은 자가 그 받은 것을 잘 장사하여 많은 이를 남기는 이도 있고 묻어 놓은 이들도 있듯이 시간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한 시간, 한번 뿐인 인생,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을 잘 관리하여 나의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소중하게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가끔 인용하는 필 보스만스는 하나님 주신 시간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하나의 경이로움, 이 지구 위에 살아 있는 놀라운 경이로움입니다. 그대는 한 번 뿐이며 유일하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대 자신에 대하여 그대 주위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왜 그대는 놀라지 않습니까? 그대가 살아 있으며 그대가 춤추며 노래하며 행복하게 시간을 갖는 것이 그대에겐 그렇게도 하챦고 당연합니까? 왜 돈에 대한 무의미한 사냥 속에서 그대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습니까? 왜 내일과 모레의 일에 대하여 태산과 같은 근심걱정을 그대에게 지우고 있습니까? 왜 서로 말다툼하며 화를 내고 있습니까? 왜 무의미한 분주함 속에서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까? 왜 태양은 이토록 빛나건만 잡을 자고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시간은 태양 아래의 정거장입니다. 결코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는 free way가 아닙니다. 계속 그대가 가야만 할 때 그 빠른 속도가 무슨 소용이 잇습니까? 그 모든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날이란 오늘입니다. 그대가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 이외의 다른 날이란 없습니다. 그대가 오늘을 살지 않을 때 그대는 하루를 잃은 것입니다. 내일의 걱정과 근심으로 그대의 영혼을 어둡게 색칠하지 마십시오. 어제의 온갖 고난으로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오늘을 사십시오. 어제 있었던 좋은 일에 대하여 그대가 기분좋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다가올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일에 대해서도 꿈꾸어 보십시오. 그러나 어제나 내일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잃지 마십시오. 어제는 사라지고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유일한 날입니다. 오늘을 그대의 제일 좋은 날로 만드십시오”  

두 번째, 우리에게 시간을 주신 그 분을 위하여 우리는 귀중한 시간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나에게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 중의 일부를 성별하여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주의 뜻을 이해하고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하루 24 시간을 하나의 보자기라고 생각하고 이 보자기에 어떻게 지혜롭게 채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보자기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주님께 시간을 드리도록 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하루 24 시간의 십일조 정신을 발휘하여 시간의 십일조 24 시간 즉 1440 분중에서 2 시간 24 분, 144 분은 주님께 바쳐야 한다고 믿고 그 시간을 이리 저리 쪼개어 어떤 시간은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시간, 어떤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쓰는 시간, 어떤 시간은 주님 사랑하시는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 어떤 시간은 어린이교회학교를 돌보는 시간 어떤 시간은 예배드리는 시간으로 잘 관리합니다. 주님께 바쳐지는 시간은 우리는 잊어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1 분 1 초도 기억하시고 하늘의 계수기에 담아 놓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고에 손을 얹어 주시고 우리의 몸을 바치면 우리의 생명을 축복하여 주시고 시간을 바치면 우리의 삶을 영원으로 연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는 시간을 잘 사용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침례교회 집사로서 어린이 교회학교의 성경교사로서 봉사하고 또한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위하여 손수 망치를 들고 집을 지었고 각종 세계의 분쟁 속에 들어가서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 때는 한반도의 핵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스스로 미국정부의 대표임을 자임하여 김일성과 만나 핵 위기를 슬기롭게 풀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카터는 세계의 식량문제에 직면하여 어떻게 하면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없는 사람들의 집 지어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최근에 이 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습니다. 지미 카터는 퇴임후의 그의 시간을 주님을 위해, 주님이 관심하시는 나그네 즉 homeless들을 위해 또한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평화를 위해 또한 주님의 자녀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으며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가서 계산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연말공제를 받아 세금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몸에서 영혼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의 영혼이 하늘에 이르르니 계산을 해보던 회계사 천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당신은 생의 시간을 덜 쓰신 것 같은데요” 귀가 번쩍 뜨인 그는 단숨에 집행관을 찾아갔습니다. “제 생의 시간이 아직 남았다고 합니다. 당장 다시 땅으로 내려 보내주십시오!” 집행관이 입맛을 다시며 일어낫습니다. “그럴 리가 없을텐데요 어디 한번 함께 가보십시다.” 그는 집행관과 함께 다시 회계사 앞으로 왔습니다. 집행관이 회계사한테 계산서를 달라고 했습니다. 계산서를 들여다보던 집행관이 피식 웃었습니다. “사람이 지상에서 열심히 산 시간은 공제해 주지요 그런데 당신은 우리가 인정해 주지 않은 일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여기선 무슨 시간을 공제해 주지 않습니까? 고스톱한 시간입니다. 그것뿐입니까? 또 있지요 다른 잡기에 쓰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고개를 떨구자 집행관이 한가지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또 조명등 아래서 접대받은 시간에는 할증이 붙지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 시간보다 더 중요한 선물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천사는 우리가 사용한 시간에 대한 명세서를 하나님 앞에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시간에 대한 그 명세서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 땅의 시간을 다 사용하게 되면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축복으로 허락한 일생과 내가 너에게 은총으로 베풀어준 시간을 너는 어떻게 사용하였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용한 시간들에 대해서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다시 비추이는 대형 멀티비젼이 있고 천사가 리모콘으로 누르는 대형 챠트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비디오 프로젝터를 놓고 천사들이 도표로 작성한 우리 삶의 시간 사용의 명세서를 분석한 그래프가 나타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걸 보게 하시면서 물어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천년만년일 것같이 살지만 기실 우리의 생은 금방 후딱 지나갑니다. 저희 아들이 수원 한신 아파트에 살 때 줄팽이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저는 아들이 잘 돌릴 때 칭찬을 해주면서 스톱워치로 아들이 팽이를 돌리는 시간을 재 주었습니다. 어떤 것은 줄을 잘 못 던지면 20 초도 안되어 팽그르 쓰러지고 어떤 것은 1 분동안 잘 돕니다. 어떤 것은 7-80 초 도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아들과 함께 재보다가 인생이 팽이를 돌리는 것 같지 않은가 20 초 20 년 7-80 초 7-80 년 그러나 팽이가 멈추는 시간은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되도록 시간이라는 보자기에 인생이라는 주머니 속에 좀더 보다 의미 있고 보다 가치있고 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채워 넣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주의 몸된 교회를 땀흘려 봉사하면서 또한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도우면서 사는 생활들은 일분 일초도 하나님은 다른 곳으로 흘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시간의 보자기에 다 감싸 놓으실 것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짧은 세월 주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바치면서 더욱 보람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저희에게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삶의 시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 주신 시간들을 그 동안 세상의 헛된 것들 위해 사용했던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이제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간들을 주님을 위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잘 사용하는 시간의 선한 청지기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잠시 사는 이 세상, 세상이 주는 쾌락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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