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9 월 2 일(주일) 오후 7 시 반 광주 가나안 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11 편 4 절, 계시록 4 장 1 절 - 11 절
제 목 : 여호와의 보좌
몇 주 동안 주일밤예배에서는 하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늘문”, “하늘보좌 옆에 있는 어린양 생명 책”, “하늘의 천사”, “하나님의 얼굴” 등 하늘에 대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대답하고 말씀하시는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니! 목사님 땅의 일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하늘의 일에 관심을 가지십니까?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이 땅에만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의 현실 무척 중요합니다. 이 땅 이 현실 속에서 믿음 생활 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마련해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연결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시간은 순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우주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상입니다. 잠시잠간 지나가는 세상입니다. 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있게 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보이는 세상은 잠깐동안 존재합니다. 이 우주의 나이가 아무리 450 억년, 혹자는 100억년 이라고 해도 영원과 무한에 비해서는 잠시 잠깐입니다(고린도후서 4:18). 우리는 잠간 지나가는 세상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영원한 하늘입니다. 영원한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 이는 성도들이 가지지 말아야할 엉뚱한 관심이 아니라 성도들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관심입니다.
신약성경 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이 하늘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 환상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그리고 어떤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는데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여주시는데 하늘에 보좌가 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었습니다. 하늘에 문이 있고 그 안에 보좌가 있고 그 보좌는 비어 있지 않고 누군가 앉아 계신 이가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만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늘의 보좌가 무엇이며 보좌에 앉으신 이는 무슨 일을 하실까? 그리고 우리 성도들과 이 하늘의 보좌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보좌가 무엇입니까? 신약에는 보좌(헬라어 드로노스)라는 단어가 62 회 사용되었는데 계시록에는 47 회 나타납니다. 보좌란 하나님께서 앉으시는 좌석입니다. 이 앉으시는 자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세상 어느 자리에나 상석이 있습니다. 교도소 철장 안에서도 제일 힘있는 고참을 “좌상”이라고 하는데 이 좌상이 앉는 상석이 있습니다. 재판정에서는 가장 가운데 자리가 가장 지위가 높은 재판장이 앉고 그 옆자리에 배석 판사들이 앉습니다. 차를 탈 때에도 상석이 있습니다. 군에서는 장군들은 짚차가 있고 승용차가 있습니다. 짚차에서는 운전석 바로 옆자리가 가장 높은 사람이 탑니다. 승용차에서는 높은 사람은 뒷줄 가장 오른쪽 자리가 상석입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할 때 장로님이 세분 계셨습니다만 제가 어느 집에 회의를 주재할 때 가장 상석에 방석을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장로님에게 권해도 절대 그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언젠가 유달제일교회에서 총회를 개최하여 당회실에서 회의를 하는데 총회총무가 한 자리에 앉았는데 그 교회 사찰 집사가 와서 그 자리를 앉아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회실에는 가장 중요한 두 자리가 있는데 한 자리는 당회장이 앉고 다른 한 자리는 그 교회를 건축한 한 장로님이 앉도록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 앉도록 한 것입니다. 자리란 이토록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그 누구도 앉을 수 없습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앉으시는 자리가 하늘의 보좌입니다.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높고 귀한 자리. 구약의 히브리어 <킷세>는 의자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좌는 권위 영화 권세를 상징하는데, 구약에서는 제사장(삼상 1:9) 재판장(시 94:20) 군대장관(대상 27:34), 특히 왕(왕상 2:12)의 자리를 보좌라고 하며 하나님(시 9:7)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우리 하나님이야말로 至尊無上 이십니다. 보좌 중의 보좌인 하나님의 보좌는 그의 지존하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둘째, 요한이 어떻게 하여 하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까? 성령에 감동되어서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경순 목사님이 용인에서 부흥회할 때 자신이 하늘나라를 가보았다고 하면서 하늘을 묘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 표현에 의하면 자기가 가보았더니 하늘나라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더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비슷한 것이 있어야 설명하는데 비슷한 것이 없어서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꿈에서 하늘의 보좌를 본 것이 아니라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 속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사 그의 눈을 열어 하늘의 신비한 왕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나팔과 같은 음성이 나와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밧모섬에서 성령님에 의해 무아(無我) 상태(ecstatic state)에서 하늘 나라에 계신 주님을 보고(1:10-3:22) 난 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가 다시 성령님에 의해 무아 상태로 돌입해 순간적으로 하늘로 빨려 올라가듯 올라갔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요한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하늘 보좌”'였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였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도 요한은 땅에 있었기 때문에 “올라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늘의 보좌가 있는데는 높은데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장소적인 위치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도인 베드로도 사도 요한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는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1 장 5 절에 “가로되 내가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아마도 사도 베드로도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하여 환상을 보면서 거기에서 하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어떤 특수한 눈이 생겨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은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눈에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만큼만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혹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사도 요한이나 사도 베드로나 하나님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보좌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번에 하늘에는 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좌는 하늘의 열린 문안으로 들어가면 하늘 안에 보좌가 있습니다. 시편 11 편 4 장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그런데 하늘 보좌가 꼭 어떤 일정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을까? 그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꼭 고정되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꼭 하늘의 보좌가 꼭 어떤 일정한 장소에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만약 광주시를 순시하러 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통령이 앉을 좌석이 최고로 좋은 곳에 마련되듯이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어디를 가시던 바로 그곳에는 하늘의 보좌가 마련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이 곳 가나안 성전에 오시면 하늘의 보좌가 여기 가나안 성전에 마련됩니다.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곳, 하나님이 임마누엘하시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늘나라이고 바로 그곳이 하늘보좌가 마련됩니다.
넷째, 보좌의 주변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계시록 4 장 3 절에서 8 절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스케치한 하늘의 보좌는 정확하게 이렇다고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런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장 3절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장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4장 5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4장 6절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4장 7절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4장 8절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여기서 보면 어떻습니까? 1> 하늘의 보좌가 있고 누군가 앉아 계시고 2> 이 보좌는 보석과 무지개로 치장되어 있고 3> 이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바다가 있고 4> 이 보좌로부터 번개, 음성, 뇌성이 나고 하나님의 7영이 있고 5> 이 보좌를 중심으로 하여 네 생물, 24 장로, 14만4천의 성도들, 무수한 천사들이 하나 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24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 24 보좌가 있고 그 보좌들에는 24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24 장로들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교회의 대표들을 가리킵니다(7:14). 6>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었는데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7> 계시록 20 장 11 절에는 보좌가 흰 보좌라고 하였다 ”계 20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8> 보좌 주변에는 천사가 있었는데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계 5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보좌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 장로와 일곱 영과 생물들과 천사들에 의해 옹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사도요한이 처음 본 사람이 아니고 이미 수백 년전에 에스겔 선지자(1장, 10 장)와 이사야 선지자(6장)의 본 것을 요한이 또 본 것입니다.
다섯째,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요한이 그곳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바로 하늘보좌였습니다. 그곳은 분명 왕이 앉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비어있지 않았습니다. 앉으신 이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누가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가 주 하나님인 것을 4 장 11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시편 45 편 6 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여기서 홀은 지팡이를 말합니다. 그 지팡이는 다스리는 권한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황제들도 다스릴 때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지팡이가 있습니다. 시편 47 편 8 절에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옛날 로마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로마제국의 영광의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황제는 모든 나라에 빛났습니다. 다른 나라 식민지들은 그 영광을 보고 그 보좌에 앉은 로마황제에게 마음속 우러러 절로 머리를 숙이고 복종하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기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야야! 그것은 쨉이도 안돼!!” 그들은 로마황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만 경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 가장 중심부에 하늘의 보좌가 있고 하나님이 거기에 앉아 계셔서 일을 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들도 왕이 정사를 관장하는 처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왕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 가까이 접근하려 하면 막는 호위하는 군사가 있습니다. 하늘의 보좌에도 하느님이 앉아 계시는 자리가 있고 천군천사가 하나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그저 쉬시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온 우주 만물, 하나님께서 만드신 삼라만상의 일을 주재하십니다.
1.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하십니다. 보통 재판장이 심판을 할 때 중심 좌석에 안장서 심판합니다. 재판장이 심판할 때 일어서지 않으며 일어서서 판결을 하는 예가 없습니다. 시편 9 편 4 절은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시편 9 편 7 절은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태복음 19 장 28 절).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죄가 있고 없음의 有無만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심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상이 베풀어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하나님의 우리 인생에 대한 평가입니다. 영생이란 그저 한 오백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이백억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이천억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생명이 이 지상의 짧은 단지 7-80 년의 삶으로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발표하십니다. 마치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듯이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자신의 마음 속에 두신 계획을 발표하십니다. 말씀을 하시고 뭔가를 기록하게 하십니다. 계시록 21 장 5 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청사진을 만천하에 공포하십니다. 하나님이 만천하에 알리신 선언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하늘의 영들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계시록 19 장 4 절에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하나님께서는 경배를 받으실 때 그저 서서 받으시거나 누워서 받으시거나 하지 않고 보좌에 앉으셔서 받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하늘의 보좌에서 찬양을 받으십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어떤 교수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에 무엇인가 계속해서 입으로 흥얼흥얼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이상한 모습에 학생들이 대표를 뽑아서 한번 그 사연을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방문 목적을 듣고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사연을 말해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자신이 꿈을 꾸었는데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천사들이 줄 선 사람들의 자격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교수님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천사가 나타나서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찬송가에 이러이러한 것 있지? 어디 한번 그것 한번 불러봐? 그러나 늘 책과 씨름을 했지 언제 찬송가를 불러 보았겠습니까? 우물우물 몇 소절 하다가는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천사가 호통을 쳤습니다. “이 사람 정말 형편없는 신자구먼! 찬송도 못 부르면서 어떻게 천국에 올려고 그래?” 천사가 호통을 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 속에서 너무 혼이 난 교수는 그 이후부터 시간이 있는대로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며 자신의 마음이 찬송으로 충만해지도록 애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천국은 찬송이 충만한 곳임을! 4. 하나님은 보좌에 안으셔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계시록 8 장 3 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신에게 드리는 기도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셔서 하나님은 천사로 명하여 성도들의 기도를 향으로 싸 가지고 올라오게 하십니다. 5.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시는데 특별히 인간의 구원을 결정하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에서 결정됩니다. 계시록 7 장 10 절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보좌에서 많은 일을 하시는데 특별히 만국과 열방의 모든 나라와 모든 인간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은 영적인 것들과 온 우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태양계 은하계 모든 우주를 정사와 권세를 가지시고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셔서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일곱째, 우리 인생과 이 하늘보좌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하늘의 보좌, 하나님의 보좌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왜 우리가 땅의 일도 다 모르는데 하늘의 일을 배워야 합니까? 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은 언젠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 보좌 앞에서 은밀하게 선악간에 행한 일들이 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하심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 인생 이제 언젠가는 하나님이 앉으신 보좌 앞에서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가 하늘 보좌 앞에 마침내 서게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종합하여 요약하여 보시면서 침묵만 하실까요? 아니면 칭찬을 하실까요? 아니면 들입다 야단만 치실까요? 웃으실까요? 조용히 아무 말 안하시고 미소만 지으실까요? 여유있는 농담을 던지실까요? 제가 신학교 면접을 보는데 쟁쟁한 교수님들이 약 20 여분이 소파에 둘러앉아서 왜 신학교 왔느냐? 그런 질문을 하지 않고 너는 무슨 배씨냐? 그런데 한자로 어떻게 쓰냐? 저에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제일 첨에는 겁을 먹었는데 교수님들이 서로 웃으면서 농담을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늘보좌에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맘을 편안하게 해 주실 수도 있고 추상같은 서릿발과 같은 준엄한 목소리로 너는 왜 내가 너에게 준 인생을 허비하였느냐?고 벼락같은 야단을 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동환 박사님은 자신이 하늘보좌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분명 자신에게 질문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대답할 말을 준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보좌에서 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면 “저는 제가 낳지 않은 자식을 입양하여 제 자식과 똑같이 사랑하며 키웠습니다. 그렇게 말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삶을 엉망으로 살다가 주의 보좌로 나아간다면 어딘가 마음이 켕길 것입니다. 아니면 두렵기도 할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다면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의자가 있습니다. 이 의자에 자신이 앉아 있는 경우가 있고 엉뚱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경우도 있고 주님을 앉으시도록 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내 안에 앉으셔서 나를 지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시고 나를 주장하시고 나를 양육하시고 나를 이끄시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 주님 앉으시도록 하여 주님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한 사람은 나중에 백 보좌 심판 때 고려될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 속 중심 속에 모시고 언제나 주인으로 받들고 살았다면 우리는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쁨 가지고 주님을 만나 뵈옵는 흥분과 기다림 속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찬송가 작시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어찌 아니 기쁠까?” 그렇습니다. 주의 보좌로 나아가면서 찬송하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떤 경우 앉아서만 우리를 맞이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가운 경우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서 심판대에 서기도 전에 우리 앞에 나와 우리 손을 잡고 박수를 치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한 감동이 있으셔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시면서 분명 보좌에서 박수를 치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주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셔서 우리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마침내 우리가 보좌에 이르렀을 때는 우리 하나님이 일어나서 맞이하는 그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찬송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땅에 살 때 주님의 보좌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신앙이 아니오라 저희가 주님의 흰 보좌에 나아갈 때 담대히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항상 이 땅에 살 때 한번 주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고서 겸손하게 주님을 삶의 한 중심 속에 모시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살 때 저희가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과 같이 저희를 주님 안에 연합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