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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관리자 2010-11-29 (월) 11:48 15년전 2793  

2001 년 5 월 6 일 오전 11 시 어린이주일 광주가나안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19 : 13 - 15

제 목 : 어린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지난 4 월 15 일부터 약 2 주간 동안 부목사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힌 일로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담임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시는 곳마다 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 있는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시각장애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지체장애자를 일으키시고 불치와 난치병을 고치시는 놀라운 역사를 보려고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조그마한 마술을 해도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드는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니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였겠습니까? 저도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오일마다 한번 장이 열리는데 어떤 곳에 가면 사람들이 뺑 둘러 서 있어 막 웃기도 하는데 뭐하는지 보려고 들어가려 해도 어른들이 빽빽이 서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겨우 구멍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약장수가 약을 파는데 무척 말을 잘 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거기 아줌마 애 깔고 앉아!”, “이 약 한 알 먹고 축대 밑에 오줌 싸면 절대 안돼 축대 무너져!” 하면 또 한바탕 웃고. 어디에나 그렇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갈릴리 산 포도주를 통채로 가져다 놓고 파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성전에 속죄제나 속건제를 위해 바쳐야 하는 상 등급의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리떡과 물고기 구운 것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상업적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변에 인파가 운집한 곳에 또 다른 차원에서 머리를 돌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예수님은 기적도 행하시고 선지자 중에 선지자시라고 하던데 이참에 우리 새끼들, 예수님으로부터 안수도 받게 하고 축복도 받게 하자!”는 머리 속에 전깃불이 확켜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업적 두뇌가 아니라 영적인 지혜(Spiritual Sophia)가 발달한 것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 아이를 무등을 태우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등에 업고 사람들의 물결을 뚫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접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있어서 예수님께 접근하기가 여간 힘들었지만 내 토끼같은 새끼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참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였을 때 제자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아마 질서유지인의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너무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면 말씀을 하시는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마치 경관과 같이 사람들이 너무 예수님 가까이 오지 않도록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애들을 데리고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향하여 돌진하는 것을 본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히려 그렇게 꾸짖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그 사람들에게 아이를 받아 품에 안아 축복의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상황을 반영합니다. 마태복음 19 장 13 절에서 15 절입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그러자 마침내 그 축복의 안수를 받은 아이의 부모는 제자들에게 야단맞고 인파를 헤치면서 땀을 흘린 것도 다 잊어버릴만큼 너무도 좋아하였을 것입니다. 주변에 자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아이고! 나는 왜 저 사람같이 우리 새끼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지 못했을꼬!” 하면서 가슴을 쳤을 것입니다. 만일 자녀를 둔 부부가 그 장면을 보았다면 “여보, 여보, 지금 빨랑 가서 새끼들 데리고 와! 어서! 난 여기서 예수님 지키고 있을게! 그러면 당신이 걸음이 빠르닝께 빨랑 데리고 와요!” 그런 부부도 있을 것이고 속으로 이 다음 참에 예수님이 가실 곳을 제자들에게 물어서 우리 아 새끼들을 꼭 축복안수를 받게 해야 하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데 그 교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 어버이들은 영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 13 절 말씀에서 “때에 사람들이” 이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사람들은 아이에게 가장 좋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영적 지혜가 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사람들, 즉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간 그 사람은 영적으로 깨인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 축복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이 사람들은 자녀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자녀를 주님께로 데려갔으니 부모로서도 따따봉이었습니다. 훌륭했습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저금통장을 만들어 주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태권도나 피아노, 바둑, 바이얼린, 컴퓨터를 교습시키는 사람은 자녀를 위해 저금통장에 돈을 저축해 놓는 부모보다 약간 더 현명한 부모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올바른 심성과 굳굳한 정신과 기개를 심어주는 사람은 무슨 바이얼린이나 첼로를 교습하는 부모보다 약간 더 훌륭한 부모일 것입니다. 우리 나라 부모들은 세계의 어느 부모보다도 교육열이 높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은 비록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녀들만은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열망은 세계의 모든 부모 중에서 단연코 톱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를 잘 가르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들 중에 미국의 관리에 오른 가장 고위직에 오른 고홍주 인권차관보 뒤에는 그 어머니의 지혜와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계 여자 골프계의 황제가 된 박세리 뒤에는 그 아버지의 헌신적인 가르침과 남보다 앞선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잘나가고 있는 박찬호 선수 뒤에도 남다른 어버이의 사랑이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을 가장 잘 교육시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가장 밝게 하고 우리 자녀들을 가장 잘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먼저 아는 것은 지혜이고 이 지혜가 실질적으로 자녀들을 향상시켜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 우리 인생을 축복해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 데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아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돈을 잘 벌고 엘피지에이골프에서 1 등 되고 메이저 리그 20 승을 올리는 것보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1 등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성공하는 것 참으로 경하해 마지않을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그런 성공을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더없이 바랄 것이 없겟습니다만 만일 예수님 없이 그런 영광을 누리는 것보다는 예수님께 가서 축복을 받으며 평범하게 사는 것 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바로 예수님께 가는 것을 훨씬 더 중요시여기고 이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바로 이 spiritual sophia 가 우리 부모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어버이들에게는 영적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과 같이 그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아이들을 온갖 어려움을 뚫고 땀을 흘리며 우리 아이를 예수님께 축복 받게 하겠다는 열망으로 예수님께 데려가야하겠다는 영적 정열(Spiritual Pathos)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어버이들은 성서에 나온 “그때 그 사람”처럼 온갖 인파와 물결을 헤치고 자녀들을 꼭 붙잡고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결단과 열정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국정부 문화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신자수가 점점 감소추세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감소추세는 어린아이 층으로 가면 갈수록 아주 심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어린이들이 주일학교를 가는 시간에 어린이들을 위한 기가 막힌 만화영화가 많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교회가면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외에는 재미있는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회의 프로그램은 무척 구식이고 구식입니다. 교회보다 약 30 배 60 배 100 배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테레비젼에 나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수수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예배드리러 갈 때 꼭 데리고 가기보다는 “그럼 니들은 집에 테레비젼 보고 잘 놀아라 아빠 엄마는 예배드리고 오마!” 이는 다른 말로는 아빠엄마만 영적인 축복 받고 구원받고 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인 지혜를 전당포에 맡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오늘날 세속의 모든 향락과 쾌락의 물결을 거슬러 우리 자녀들을 어떤 일이 있든지 예수님께 데려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가지 않고 멋대로 방치하거나 지하고 싶은데로 내버려 두면 자녀들이 어떻게 되느냐? 얼마 전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애가 자기 옛 애인이 변심했다고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이같은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미국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수십명을 쏴 죽였습니다. 저는 당시 미 CBS TV를 우연히 시청하는 가운데 총기난사로 수십여명이 죽은 콜롬바인 학교에서 생중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의 한 학부형이 나와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폭력적인 비디오라든지 총기소지가 가능한 이 미국의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고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하였습니다. 또 문제의 학생의 부모는 얼굴을 감싸 쥐면서 우리 아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자신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CBS의 한 뉴스캐스터는 왜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되었는지 왜에 대한 답을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아니 부모가 내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니 아니 권위있는 CBS 뉴스 캐스터가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답을 모르다니 말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아니, 총기소지가 합법적이고 총기소지를 막으려고 입법하려면 오히려 나라의 지도자들인 의원들이 총기소지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에서 , 자기네 미국의 맘에 들지 않으면 평화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전에 먼저 들입다 엄청난 폭격부터 시작하는 나라가, 아니 대통령부터 섹스 스캔들로 얼룩진 나라가 그들로부터 가치관과 행태를 배우는 청소년들이 하는 짓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얼마 전 요즘 잘 나가는 영화 친구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보도매체에서는 그 영화를 본 관객이 500 만명이 넘어섰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합니다. 그런데 그 영화는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건달이 된 친구가 한 친구를 결국 죽이는 내용으로 각색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랬냐고 다른 친구가 묻자 “쪽팔리잖아!”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쪽 팔리니까 친구도 수십번 칼로 찔러서 죽이게 하는 풍토가 박수를 치는 분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매스콤에서는 굉장히 구성이 뛰어난 영화라고 하면서 대통령도 영화를 보았다고 강조합니다.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는 일에는 많은 관객들이 보는 것이 좋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폭력을 미화하지 않을까? 은근히 폭력을 매력적인 그 무엇으로 내면적인 가치관을 삼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가운데 우리 아이들이 폭력을 가치관으로 삼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블랙 홀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피로 물들여진 폭력과 난잡한 쎅스로 버무러진 오늘 우리 문명 속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예수님의 품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제 친구가 목회하는 “주님의 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성가대에서 그런 찬양을 불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 앞으로 나 홀로 가겠네 주님 앞으로 나는 가리” 저는 이 찬양의 곡조는 참으로 은혜스러웠는데 가사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앗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 앞으로 여기 까지는 좋습니다. “나홀로 가겠네” 여기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님 앞으로 나홀로가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데리고 주님 앞으로 가겠네 찬양으로 바꾸어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 어버이들에게는 자녀들을 어떻게 하든지 주님 앞으로 예수님이 계시는 품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오늘의 모든 문제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려면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가고 이 문명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일 외에 그 어떤 해결책도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 옷을 철 따라 잘 입히고 좋은 곳을 각종 좋은 곳을 구경시켜 견문을 넓히는 일도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우리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예수님께 데려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교육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교육적 첫 번째 프로세스가 “노출과 경험”(Exposure and Experiment)입니다. 카메라를 찍으려면 빛에 노출을 시켜야 하듯 우리가 햇빛에 우리의 피부를 노출시키듯 우리는 어린 자녀들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노출시켜 그들이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교회에 데리고 나와 말씀을 듣게 하는 것도 노출시키는 것이요, 우리 아이들이 예배 후에 음악학교에서 복음성가를 배우는 것도 노출시키는 것이요, 우리 부모들은 내 자녀들을 그리고 우리 교회에 속한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가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활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 아이들은 제 아이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위탁한 자녀입니다. 부모가 할 일은 예수님의 자녀를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교육이라 믿습니다. 저는 가끔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세상에서 누가 젤 좋아? 그러면 애들은 아빠가 물어보면 아빠! 엄마가 물어보면 엄마!라고 엄마아빠가 함께 있을 때는 엄마아빠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저는 땡! 틀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정답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너 누구 딸이지? 그러면 이제 아이는 하나님의 자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빠 딸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한번씩 껴안아주면서 등을 두드려 줍니다.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품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유추해 내는 것입니다. 아이가 잘 때 꼭 껴안고 기도해 줍니다. 애 엄마가 애들이 어렸을 때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가 잇었는데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지요” 찬송가를 계속하여 반복하여 부르면서 재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일은 우리 생활 속에 찾아보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가나안교회라는 신앙공동체를 이룬 이상 우리 교회에 속한 자녀들은 다들 우리들 모두의 자녀들입니다.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고 정말 즐거워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우리 가나안에 속한 가정 모든 자녀들이 찬송가 300 장을 부르면서 모두가 다 행복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일단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가기만 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으로 안수해 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때 그 사람의 예수님께 축복받은 자녀들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잘되었을 것입니다. 그 부모에게도 효성스러운 자녀가 되었을 것이고 하늘 아버지도 잘 섬기었을 것이고 어쩌면 또 그 아이들이 커서 초대교회를 이름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교인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예수님께 안수받고 축복받게 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우리 자녀들이 주님께 나아가면 받는 복이 바로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복은 세상에서 주는 어떤 프리미엄 보다 더 값진 것으로 우리 일생을 두고두고 영향을 미쳐 우리를 그 이상 따질 수 없는 복된 삶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 우리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봅시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허락하신 자녀들은 저희 자녀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주님의 품에 안겨드리면서 기쁨을 누리는 그런 부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님! 저희 가나안교회에 속한 자녀들을 주님 앞에 데려가는 일에 헌신하도록 저희 모두를 축복하여 주옵시고 저희의 자녀를 주님의 양손으로 안수하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사랑많으신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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