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1 월 19 일(금)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연합구역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고린도전서 1 장 10 절 - 17 절
제 목 : 분쟁없이 연합된 힘으로
할렐루야!
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되는 면을 보고, 또는 부정적인 현상을 통해 배운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고린도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함께 공부합시다.
먼저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대해서 공부합시다. 11 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11 절에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절은 구체적인 분열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몇가지 분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네 파가 있었습니다. 네 파니까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사색당파와 같습니다만 아마도 바울파는 교회를 설립한 이가 바울이었기 때문에 몇몇이 바울파라고 해서 뭉쳤고 아볼로파는 바울이 떠난 뒤에 목회를 하였던 아볼로를 따랐던 파이고 게바 파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를 따르는 것이야 말로 교회의 정통이다고 해서 생겨진 파고 그리스도파는 우리는 게바 파보다 더 정통이다고 해서 생겨난 파였습니다. 이 네 파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헤게모니를 쟁탈하기 위해서 쌍코피 흘려가면서 싸웠습니다. 이 소식을 고린도에서 약 54 km 정도 떨어진 에베소에서 머물던 바울이 듣고 염려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붓을 들어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파당 만이 아니라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항구도시로서 온갖 이방의 문화들이 날뛰었습니다. 원래 항구도시가 선원들을 대상으로 매매춘이 발달하고 온갖 다른나라의 종교와 이방의 우상문화가 항구를 통해 들어오잖아요. 당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세속의 물결과 파도가 몰려 왔을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예수님이 주는 은혜는 은혜대로 받아 먹고 이방신들이 약속하는 복이란 복도 받아 먹는 그런 분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린도전서 5 장 1 절은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11 절은 음행 프러스 우상문제 프러스 탐람 프러스 토색하는 문제가 교인들 가운데 있었으며 6 장 6 절은 교회의 문제를 세상법정에 가서 송사하고 6 장 9 절은 동성연애하는 자, 이외에도 간음하는 자가 수두룩하게 있었고 8 장에는 우상제물 문제, 율법의 문제, 11 장에는 성찬의 오용 문제 등 엄청난 많은 문제가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1 장에서 교린도 교회의 분열을 언급하다가 다시 문제를 12 장 14 절에서부터 27 절까지 언급하는데 이는 당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문제들로 인해 정말 고린내가 많이 났습니다.
자! 이 시간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에 특별히 파당의 문제를 집중분석해 봅시다. 얼마 전에 저는 천둥소리라는 역사 드라마를 살짝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파당으로 얼룩져 있었음을 금방 알게 되엇습니다. 조선시대가 그런 파당 싸움 때문에 날이 새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만나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었고 근세초기에는 5 천년 유구한 역사를 일구어 오던 나라가 결국 일본에 먹혀 36 년간 식민지 생활을 했지 않습니까? 파당으로 싸우면 일제에게 먹히듯이 교회가 파당으로 지어 싸우면 사탄은 사탕 먹듯이 쉽게 교회를 먹어 버리고 삼켜 버립니다. 고린도 교회에 왜 파당이 생기고 분열이 생겼을까요?
첫째, 거기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처음 왜 생겼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무리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모인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초대교회의 연장선 상에 있는데 이 고린도교회에 초대교회의 역동성이었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거나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3 장에 1 절에서 3 절에는 사랑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없이는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하셨고 13 절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교회에서 항상 있어야 할 것으로 세가지 믿음, 소망 사랑을 들고 그 중에서 제일이 되게 해야 할 것이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없는 자리, 사랑이 빠져 나간 빈자리에는 반드시 들어가려고 새치기하면서 제일 앞 줄에 서는 놈이 있는데 그것이 미움입니다. 미움의 배후에는 사탄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사탄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는데 디아볼로스입니다. 이는 갈라 놓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는 그곳에는 갈라지게 되는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랑인데 사랑이 제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움이 어느 새 잡초처럼 싹트게 되었고 미움은 파당을 만들고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등을 만들고 어떤 때는 교회를 공중분해 시키고 어떤 때는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다시 들어오면 마치 빛이 켜지면 어둠을 물러가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히 물러가듯 사랑은 분열의 상처를 씻고 갈라진 틈을 메우고 하나로 일치시킵니다.
둘째, 고린도 교회가 교회에 그리스도가 중심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고린도 교회의 중심 속에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교회의 중심 속에 예수님이 없는 그 자리에 인간의 죄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이 뭡니까? “야 너만 잘났냐, 나는 너보다도 훨씬 잘 낫다” “내가 너 보다 훨씬 잘났다 학벌도 우수하고 가지고 있는 신앙도 너보다도 낫고 나는 안수집사 10 호봉인데 너는 겨우 집사서리 임명되었잖느냐?” 여기에는 내 잘난 맛만 있고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이민교회와 같이 분열이 잘 되는 교회가 없습니다. 이 교회의 부교역자였던 박상규 목사님이 목회하던 하이 데저트 중앙교회는 그 전에 12 개로 분열되었던 교회였습니다. 박 목사님은 여기서 목회를 배워 가서 진실로 주님의 사랑으로 목회하여 이제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점점 교회가 하나된 힘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날로 성장을 더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있었던 교회 고린도 교회도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바울파다 게바파다 한 것은 바울이 정말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속한 우리 파가 너희 파보다는 더 정통성이 있고 다른 파를 깔아뭉개려는 의식이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장로파 권사파 집사파 목사파 부목사파 이런 파들이 있으면 그 것은 세상의 종교집단은 될지언정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없으면 교회는 망합니다. 망하기 전에 분열됩니다. 저는 개척하였던 교회에 장로님들이 중보기도를 하는데 꼭 이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목사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그래서 설교를 하는 시간에 장로들을 야단쳤습니다. 교회가 왜 목사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하느냐! 교회가 목사 중심으로 똘똘 뭉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회의를 할 때 가장 상석을 언제나 비어 놓습니다. 목사가 그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예수님이 앉으실 자리다 하고 우리가 회의를 할 때 예수님께서 회의를 주재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시작합니다.
그러면 오늘 2001 년 구역예배 교재의 주제와 같이 교회가 분쟁없이 하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 비결은 딱 네자입니다. 예수사랑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고 교회 안에 예수님 사랑이 제일이 되었다면 고린도교회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는 아침의 이슬방울 쉬 사라짐과 같이 사라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진실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예수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요 바울이나 게바나 베드로나 죄악의 인간성이 예수님 자리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지 않았기에 그 빈 공간에 어둠과 미움의 세력들이 들어와 서로 블루스 춤을 추고 난장판을 이루기에 자연히 교회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과 그 사랑”이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분쟁이 아닌 연합된 힘이 생깁니다. 꼭 연합된 힘이 생기기 때문에 예수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살과 피는 사랑 아닌 다른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간절히 이렇게 기도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 장 17 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와 사랑이 함께 나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며 교회는 사랑입니다. 교회가 다른 무엇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무슨 피라미드 판매망과 같이 확산해 가는 조직체도 아니며 교회가 무슨 축복을 마구 나누어 주는 영적 배급소도 아니고 교회가 모든 사람을 팍팍 고쳐버리는 무슨 기적을 일으키는 센터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이시오 교회는 사랑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사랑이 충만하도록 언제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예수님이 우리 교회 중심에 있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에 예수님의 사랑이 중심부에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러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우리 교회와는 하등 상관 없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떤 간격이나 미세한 금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 교회는 어떤 힘이 불어나서 주님을 위해 더 큰 헌신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일치단결된 물샐틈 없는 결속으로 하나된 힘으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위하여 더 많은 일들을 더 영적 차원이 높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된 힘이 생겼을 때는 그 영적 힘으로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된 힘이 되었을 때 그 힘으로 더 힘있게 영감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그 힘으로 죽어 가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힘으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 선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우리 가나안 교회가 언젠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아프리카 소련 중국 세계의 땅끝까지 선교하는 그 날을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 하나된 센 힘으로 우리 예수님을 이전보다 더욱 더 사랑하고 뜨거운 감격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봉사하고 선교하고 있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그려 봅시다.
기도) 주님 우리 가나안 교회 속에 인간의 인간성을 깨끗이 헹구어 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랑으로만 계셔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그토록 사랑해 주셨듯이 저희 역시 그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이 늘 한 중심 속에 계셔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의 교회 가나안 교회를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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