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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니라

관리자 2010-11-29 (월) 11:51 15년전 2887  

2001 년 10 월 7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 교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요한복음 4 장 21 절 - 24 절

제 목 :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할렐루야, 오늘의 말씀제목은 오늘의 성경본문 4 장 23 절에서 찾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물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왜 예배자를 찾으실까? 예배가 무엇이길래 예배자를 그토록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듯이 찾으시는 것일까? 사전에 보면 예배란 사람이 개인 또는 집단으로 그 신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며 제사드리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WORSHIP 이란 경배드린다는 말입니다. “높여 드린다”는 뜻입니다. SERVICE란 “섬긴다 대접한다” 그 말입니다. 한마디로 잘 받들어 드리고 잘 높여 드리고 잘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사는 것,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Worship Service) 한 번 잘 드려보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 이 질문은 인간이 왜 존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인간은 저절로 탄생한 것도 아닙니다. 우연히 존재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존재케 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닙니다. “나는 존재케 되었다 고로 생각한다”가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존재케 하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온갖 피조물을 만드셨고 특별히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위하여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웨스터민스트 신앙고백 1 조에 의하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곧바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행복과 영광을 위하여 피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돌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예배는 삶의 지극히 적은 일부분이나 종교적인 파트가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가 이 한 행위 속에 달려 있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4 장 23 절 후반절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실까? 세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 존재를 자신에게 영광 돌리도록 만들었는데 인간이 자신에게 예배하는지 안 하는지 찾아보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당연하신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이 이루어졌는지 안 이루어졌는지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지사로 말하자면 온 누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들어야 하지만 하늘 아버지를 경배하고 예배하는 이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을 씻으시면서 예배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248 장 4 절에 보면 “땅들아 바다야 많은 섬들아 찬양을 주님께 드리어라”가 나옵니다. 이는 온 피조세계가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삼라만상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과 영광 돌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계시록 4 장 11 절은 정확하게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둘째는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는 것을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닙니다. 좋아하는 꽃을 찾아서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서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하나님도 예배 받으시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예배자를 찾으러 다니십니다. 이번 추석 기간에 저는 지난번에 취임식에 오셔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 서용주 목사님께 추석선물을 들고 찾아가 뵙고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그래 사람은 인사를 잘해야 해!”, “목사는 목이 부드러워 누구에게도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일종의 인사를 드리는 것이야! 하나님께 얼굴을 보여 드리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는 일이 예배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배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찾아가 뵙고 높여 드리는 일이요 선물을 드리는 일이요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는 일이요 박수를 쳐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노래불러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위해서 박수 쳐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 목사님 집에서 제가 목사님! 그때 주신 말씀 마음 속 깊이 아로 새겨놓고 있습니다고 말씀 올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인간의 심정과 하나님의 마음이 이 점에서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들로부터 공치사 받기를 좋아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 잘하셨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 덕입니다”, “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최고이십니다! 하나님은 至尊無上이십니다!” 이렇게 인간이 자신을 높여드릴 때 하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을 새삼 확인하시고 기분이 좋아지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기분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서는 인간으로부터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업이요, 가장 중요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야말로 하나님의 지복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냐?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실까? 예배하는 자들은 많아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제사를 다 기뻐하신다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4 장 23 절과 24 절에는 신령과 진정이란 말이 두 번이나 쓰여져 있습니다. 여기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마음의 자세가 결정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 특히 어머님들은 하늘을 향하여 빌 것이 많았습니다. 자식이 마마에 걸려서 죽지 않도록, 하늘님이 떡두꺼비와 같은 자식을 점지해주시도록, 남편이 나무하러 가서 호랑이 만나지 않도록 뱃길 나간 서방님이 살아서 만선이 되어 돌아오도록 천지신명에게 빌었습니다. 신령님께 치성을 드리기 위해서 우리 조상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래 이른 아침 누구도 아직 뜨지 않은 맑은 물로 정한수를 만들어 가장 좋은 대접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정갈하게 목욕재개하고 머리는 창포를 삶은 물로 감고 분 바르고 화장하고 난 다음 천지신명께 빌었습니다. 하늘님에게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습을 가다듬은 다음 신령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조상들은 천지를 만드신 신명에게 빌려면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신자들도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절에 가기 전날 밤에는 부부간에 딴 방을 씁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얼음물로 목욕재개하고 어떤 사람들은 절에 도착할 때까지 수건을 물고 가기도 합니다. 부정한 말이나 세상적인 말을 한마디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 도착해서는 다시 한번 자기 옷매무새를 고치고 들어가 자기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경배를 드립니다. 옛날의 조상들이나 불교도들은 비록 자기 나름대로의 신을 섬기면서도 그들의 최고의 지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몸의 치장, 마음의 치장 모든 생활은 천지신명의 마음의 한 올이라도 더 기쁘게 하려고 온갖 치성을 다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비는 그 정성에는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최선의 최대 최고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잘 아시기 때문에 인간이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단박에 아십니다. 여러분 형식적으로 그저 시간에 맞추어 골백번 드리는 것보다는 신령과 진정으로 한번 예배드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노래도 있듯이 하나님은 예배드리러 나아온 이들의 눈빛만 보고도 이미 빠삭하게 다 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가? 첫 번째, 예배드리는 자의 준비에서부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시작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11 시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부터가 이미 예배가 시작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주일을 위해 기도하였다면 이미 예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은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주일날 아침 11 시에 예배드리겠습니다”고 우리가 하나님께 약속한 시간입니다. 보통 높은 사람과 약속을 하면 시간에 늦을까봐 혹시 차가 정체될까봐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예배의 禮자는 禮義 할 때 禮자입니다.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약속을 11 시에 미리 가서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께 대한 예의입니다. 보통 11 시에 예배를 드리려면 30 분전에 나아와 먼저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정갈하게 씻으면서 준비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앞으로 교회에 오시면 맨 먼저 다른 사람과 인사하는 일부터 하지 마시고 먼저 하늘 아버지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내용 속에는 하나님 오늘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그 다음에 그 다음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예배 드리는 시간은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 전에는 다른 스케쥴을 피할 뿐 아니라 예배드리는 시간을 내 삶의 가장 중요한 0 순위의 시간으로 정해 놓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드리는 시간을 성별해 놓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얼굴과 모습을 보이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지어 초등학교 담임선생을 면담하러 가도 치장을 다하여 가는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 가는데 자신의 최선의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습과 태도에서부터 달라야 합니다. 예배드리러 갈 때 모습은 최고로 이쁘게 단장해야 합니다. 예배드릴 때 입는 옷은 가장 자신이 좋아하는 옷으로 준비합니다. 가급적이면 하나님 앞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아름답게 보이려는 원초적 미적 본능이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일에 도움이 됩니다. 예배 시간에 드릴 예물 역시 정성껏 준비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요일 저녁부터 헌금드릴 것을 정성껏 다림질하여 봉투에 담아 놓고 성경책 한 가운데 담아 두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헌금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갑을 꺼내놓고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같이 예배자의 준비에서부터 신령과 진정이냐 아니냐가 결정됩니다.  

두 번째,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드려야 합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다고 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계셔서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에 예배자의 마음은 하나님 한 분에게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전 존재를 기울여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자세도 그렇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합하여 한 분이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딴 생각한다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예배드리기 전 자! 우리 어린이들 이제부터는 집에다 두고 온 딱지 생각한다든지 구슬 생각하면 안돼요! 그런데 이상하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면 바로 그 시간에 집에 있는 딱지와 구슬 생각을 했습니다. 어른들도 딱지와 구슬만 다르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많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일했던 용인교회의 장로님들은 중보기도를 하면 꼭 빼먹지 않고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사탄 일절 틈타지 않게 해 주시고“ 이 기도는 무척 현실적인 기도입니다. 예배 시간에도 사탄은 부단히 활동을 하여 예배자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가려고 쉬지 않고 활동합니다. 예배자의 영혼 속에 침투하여 들어가 딴 생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어떤 이는 평상시에는 딴 생각을 안 하다가도 예배시간만 되면 집중적으로 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당뇨와 혈압수치 걱정, 차 엔진오일이 다 되지 않았을까, 타이어 바람걱정 등, 그러다가 자식 걱정을 넘어가 큰자식부터 시작하여 막둥이에 이르기까지 오만 걱정을 예배시간에 집중적으로 다합니다. 예배시간에 다른 것을 생각한다든지 세상일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기도자의 기도에 자신을 실어 향기로 바쳐야 하고 찬송을 부를 때는 오직 그 가사와 곡조에 자신의 전 존재를 실어 바쳐야 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오직 말씀에만 내 영혼의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드리는 영혼을 불꽃과 같이 감찰하시기 때문에 예배자들이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안 드리는지를 잘 아십니다.  

마지막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나 자신을 바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인 양과 비둘기를 쪼개어 번제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12 장 1 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산 제사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령하게 드리는 예배의 최종 도착지점은 우리 존재 자신을 쪼개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 조금 드리고 내가 가진 탈렌트를 일부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내 자신의 전체를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삶을 바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서 감화감동이 일어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감화감동될 때 인간에게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동행,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평강이 예배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1 년 동안 있었습니다. 주일만 되면 거리가 무척 한산합니다. 거기는 주 5 일 근무제이니까 모두가 금요일 오후만 되면 짐을 싸들고 대부분 유럽의 여러나라로 여행을 갑니다. 그래서 에딘버러 도시는 마치 쥐죽은 듯 고요합니다. 가끔 눈에 뜨이는 사람은 예배드리러 가는 할머니와 아이들뿐입니다. 교회 내에도 예배드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나이드신 분들과 아이들뿐입니다. 옛날 영국은 세계를 호령하였지만 오늘날 영국은 그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 왜 한때 세계를 호령했느냐 저는 그것을 영국이 예배하는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영국이란 나라는 기독교국가로서 나라의 왕에서부터 주일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부슬비, 쥐죽은듯이 적막한 거리, 완전히 철수한 상가 이것이 예전의 영국의 주일이었습니다. 나라 법에 의하여 주일을 지키기 위하여 모두 철시하고 오직 주일은 예배드리는 일에만 치중하였습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1862 년 영국을 방문하곤 슬프고 울적한 영국의 일요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합니다. 서기 7 세기 섬을 정복한 앵글로색슨족은 기독교도로서 일요일을 주의 거룩한 안식일로 선포한 이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위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날로 삼도록 정하여 상점도 열 수 없고 예배 외에는 아무 활동도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Never on Sunday! 주일날엔 no fun, no sex, no shopping 그래서 공놀이도 못했는데 1618 년 주일에 잔디 위에서 공놀이 정도는 해도 된다 단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뒤에!라는 단서가 붙어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섬나라가 대영제국으로 세계를 누비면서 한 때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 나라 언어인 영어는 세계적 공통어가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 그 나라가 비록 세상적인 재미는 없었는지 몰라도 그 나라는 한 때 세상에서 제국의 위용을 뽐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나라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아니라 놀러가기 위해 도시가 텅텅 비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오늘날 영국이 이제 더 이상 세계를 호령하지도 않고 이번에 보듯이 미국의 비위나 맞추는 2 류국가로 전락하고 있음은 꼭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예배하는 국가, 예배하는 가정, 예배하는 영혼을 하나님께서는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심판대 앞에서 일하는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인간을 세 그룹으로 분류한 명단(list)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 그룹은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았던 그룹입니다. 편의상 C 그룹 명단이라 이름을 지어 봅시다. 또 한 그룹은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그룹입니다. B 그룹명단입니다. 또 한 그룹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였던 그룹입니다. A 그룹명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고 자신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더 갈급하게 찾으실 것이니 우리는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렸던 A 그룹의 성도들을 하나님 앞에 먼저 알현시킬 것입니다. 저는 여기 지금 있는 가나안교회 성도들도 그것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으로 주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각인되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래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먼저 뵈옵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 하나님 아버지 오늘 귀한 성경말씀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에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갈급하게 찾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 성도들은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나안 교회 성도들이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고 영적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주님 저희 삶을 주님 원하시는데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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