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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관리자 2010-11-29 (월) 12:01 15년전 2765  

2001 년 2 월 18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2 장 31 절 - 13 장 13 절

제 목 :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할렐루야 ! 지난주에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더욱 큰 은사,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는 것임을 말씀하였습니다.  

오늘은 똑같은 본문 고린도전서 12장 31절 후반 절을 가지고 사도바울 선생님이 제일 좋은 길을 보여 주신다했는데 그 길을 찾아나가려 합니다. 오늘은 길에 대해서 말씀하려 합니다. 길이라! 길이 무엇입니까? 길에도 여러 길 이 있습니다. 누나하고 손잡고 함께 거닐던 오솔길이 있습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도 있습니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눈물 없이는 못가는 길도 있습니다. 님께서 가신 영광의 길이 있습니다. 소매적삼으로 눈물 훔치며 자꾸 뒤돌아보며 오던 길도 있습니다. 길 없는 길이어서 만들어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가장 좋은 길을 말씀합니다. 가장 좋은 길이라니요? 가장 좋은 길도 여러 좋은 길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최고 강자가 되는 길도 있고 돈을 뭉치로 포대자루로 담아 쓸어 넣는 재-테크의 길도 있습니다. 초고속 승진하여 마침내 최고 경영자(CEO) 가 되는 길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 길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선생님이 말한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일까요? 이는 어떤 부분적인 목표를 이루는 길이 아니라 통채로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길을 말합니다. 철학자들은 인생을 “도상의 실종”, 즉 “길을 가고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사도바울 선생님은 가장 좋을 길을 보이리라고 하였을 때 이는 가장 좋은 인생의 길을 보이리라고 하신 것 입니다. 과연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일까요?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이 있다면 인생의 가장 나쁜 길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살짝 좋은 길도 있고 인생의 가장 나쁜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생의 가장 나쁜 길을 택했다가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을 택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저런 길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우월한 길을 가고 만일 제일 좋은 길이 있다면 기를 쓰고라도 , 특별 과외를 받아서라도 그 좋은 길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이 한 서너번 더 살 수 있다면 이 길도 가보고 저 길도 가보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딱 한번뿐이니 연습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나쁜 길은 최대한 피해야 할 것이고 그저 그런 길은 딱 한번뿐인데 그런 길로 가기에는 우리 딱 한번뿐인 인생 아깝고 아쉽지 않겠어요? 만약 그저 그런 길을 갔다가 인생의 종을 쳤다면 나중에 비서에 뭐라 쓰겠어요? “그저 태어나시어 안전빵으로 사시다가 잘 먹고 자 주무시다가 가셨다!!” 그렇게 쓰겠어요? 어쨌든 인생의 길을 가는데 제일 처음에는 인생의 나쁜 길로 가다가 아니면 그저 그런 길을 가다가 어떤 계기를 통하여 인생의 가장 좋은 길로 들어서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이 객관적으로 보증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있을까요? 만약 가장 좋은 길을 없었다면 바울 선생님이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백화점에서 유명메이커 제품을 거의 반값에 싸게 살수 있는 길이 있다고 선전하면서 우리 백화점으로 모월 모일 모시에 와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수만의 인파가 그 백화점으로 몰려들었지만 그것은 사기였습니다. 항의 소동이 빚어져 텔레비전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오늘날 광고 선전이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오늘 분명히 바울 선생님은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보이리라고 하셨는데 만일 그런 제일 졸은 길이 아니고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이렇고 저런 길이하면 바울 선생님이 성경 독자를 대상으로 거짓말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어디 사는 바울 선생님이 어디 거짓말을 하실 분이십니까? 분명히 있기 때문에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 길은 뭘까요> 사람들은 꿈의 형태로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돈도 적당히 벌어 놓아 빌딩 두어 채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솔 찬 하고 자식들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직장 다니다가 좋은 사윗감, 좋은 남편감 얻어 잘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텔레비전에 나올 법한 지위를 가지고 있고 효도하는 자식들이라 정기적으로 앞 다투어 문안 오고 매일 아침에는 헬스클럽에 나가 땀을 빼고 오전 중에는 소파에 기대 앉아 품위 있는 책들을 보고 가끔은 호주나 제주도에 골프 치러 가고 남들이 건강하다고 한 15년은 젊어 보인다고 하고 해외여행은 전국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정도로 심심치 않게 다녀 한번 얘기하자면 아홉 시간을 쉬지 않고 말 할 수 있고 아내나 남편도 취미 생활을 하면서 이곳저속 문화생활을 즐기고 사회 저명인사들과의 무슨 로타리클럽이 결성되어 수준 있는 문화생활도 즐기고 재수도 좋아서 무슨 복권을 사면 심심치 않게 당첨되고 그러다가 그러면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일까요? 아니면 무엇이 가장 인생의 좋은 길입니까? 성경에도 일에 대해서 나옵니다. 성경은 거의 천 번에 가까울 만큼 여러 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리고로 가는 최악의 길도 있고 물기 없고 땡볕만 있는 광야로 가는 길드 있으며 온 세상이 가는 길도 있으며 제 갈 길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바울 선생님이 말한바 좋은 길을 보리라고 했는데 그 길이 분명히 있는 길이라면 누군가 길없는 길은 만들었을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는 한 조그마한 나라에 한 30대 젊은이가 광야에 나타나 “ 나는 길이요 진리용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말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란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을 동시에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여 가신지 누천년이 지났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 ! 예수님! 외치고 다닙니다. 예수님을 잘 전하는 전도자가 오면 여의도 광장에는 200만 인파가 모입니다. 수많은 인류가 예수님을 믿고 그 분에게 인생을 맡기고 그를 평생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결단하고 순결하게 사는 사람도 수없이 많고 예수님을 우러러보고 그의 길을 따르겠다고 하고 그를 위해서 살다가 기꺼이 죽는 사람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예수님이 전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도 전해진지 몇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 양코백이 신부나 선교사가 전해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전폭을 맡기고 그저 예수만 믿지 않는다고 약속 만하면 살려주겠다는데 그들은 생명을 아낌없이 버리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순교의 길을 택한 사람으로 줄을 섰습니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예수님을 위해 서로 먼저 죽겠다고 줄을 섰는데 새치기하는 순교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는 순교의 피로 강물이 되어 흘렀는데 그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 한국교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교회가 한국만 해도 약 4만 오천 개나 되고,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약 1300만이나 되고 더 이상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도대체 여기서도 지구 반쪽을 돌아야만 갈 수 있는 저기 저곳에서 그것도 2000년 전에 한 유대 마을의 30대 젊은이가 누구였길래 이토록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가셨습니까? 사람들에 따라서는 예수님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하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길이 부활과 영생의 길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길이 생명과 평화의 길이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표현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다 함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요약하자면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삶은 한마디로 “사랑” 입니다. 예수님은 일생동안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셨고 사람들은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예수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하여 그 뜨거운 용암과 같은 사랑이 온 대지를 적셨고 인간의 영혼을 뜨겁게 휘감아 돌았습니다.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부활하셔서 예수님은 여전히 사랑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도망간 제자들에게 고기도 구워주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시며 제자들을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은 다람아니라 제자들을 뜨겁게 사랑하심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남긴 것이 없었습니다. 옷도 피도 물도 아낌없이 다 주고 가셨습니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감동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아하 예수님이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구나! 고백하는 무리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이 모여 초대교회가 형성되었고 역사적인 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연못가에 돌을 던지면 던져진 곳을 중심으로 점점 파문이 넓게 그려집니다. 예수님의 그 뜨거운 사랑은 점점 동심원으로 퍼져나가 로마를 점복하였고 온 세계에 그의 사랑의 파문이 번져 나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1절은 딱 두부분 입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와 내가 너희에게 제일 좋은 길을 보이리라 입니다. 바로 이 말씀 이후에 그 유명한 사랑의 노래 고진도전서 13장이 나옵니다. 저는 앞으로 주께서 능력주시는 한 못회활동 전반을 통해서 이 사랑을 전하고 노래할 것입니다. 바울선생님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이요. 우리 인생이 가야할 가장 좋은 길은 바로 사랑하는 길임을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통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언젠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이회통일위원회에서 잔치를 열고 인기가수 조용안에게 축하노래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조용남은 남과 북이 만나는 길은 다른 길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그대로 사랑하면 도니다고 하는 뜻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그가 부른 노래중에 이런 가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Xoch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때 인생은 사랑, 여원한 사랑”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이고 인생은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사람은 가장 사람이 됩니다. 사랑할 때 사람은 가장 예수님을 본받게 됩니다. 사랑할 때 사람은 가장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밀리언셀러로 계속 팔리고 있는 책이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입니다. 그의 apt시지는 이렇습니다.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부단히 배우는 것이고 부단히 배우는 것은 부단히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는 것입니다. “살며사랑하며” 가장 평범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 우리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기 까지 어떤 사람은 일생을 소비하고 마지막 인생을 정리할 때에서야 아하! 깨닫고 그것을 깨달을때는 자신에세 주어진 인생이 이제 황혼에 서 있음을 알게됩니다. 우리 인생 한번 오지기 사랑받고 한번 오지게 사랑하고 살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울선생님은 영적인 혜안으로 이것을 단 한 순간에 파악하고 고린도전서 12장 31절 이후에서부터 13장에서부터 사랑의 노래를 부릅니다. 예수님의 삶의 길을요약하고 요약하고 요약하여 엑기스만 남는다고 정리할 수 있는 말이 예수님은 “뜨겁게 사랑하며 사셨다”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할 t 있는 말이면서 가장 그 안에 들어있는 의미가 더 이상 클 수 없는 s말입니다. 제일 좋은 길을 보여 주시리라고 하였는데 보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보옂주신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나에게 좋은 것이 되지 않지 않겠습니까? 따라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며 사는 길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예기하면 무슨 예Tskf 얘기를 하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며 사는 기릉 aantms 새로운 길이 아빕니다. 옛날에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이고 지나온 동안 많은 예수님을 따르고 사라하였던 이들이 갔던 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며 따라가는 길은 그저 옛길이 아닙니다. 언제나 다시 새로운 길이며 언제나 기쁨을 주는 길입니다. 옛님께서 그렇게 나누시며 사랑하며 사셨듯이 여러분도 사랑하며 서로 나누시며 시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내가 사랑하되 무슨 조건을 걸고 사랑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건을 걸지 앟으셨습니다. 그저 사라하셨습니다. 제로 섬 게임이 있습니다. 파이 하나가 있는데 파이의 반을 잘라주고 나면 반이 남습니다. 또 반을 나누어주면 파이가 4분의 일밖에 남지 암ㅎ습니다. 또 그 반을 나누어주면 8분의 일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누어주면 wf수록 더욱 샘솟듯 솟아나는 사랑은 하면 할수록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사랑의 에너지가 늘어나는 다시 말하면 제로 섬 게임에 전혀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며 주고 나누면 오히려 풍성해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세대와 세대를 거쳐 시대와 시대를 풍성하게 채우고도 남아 지금도 남아서 우리에게 흘러넘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지잔번에 샛별교회 설교를 하러 가다가 택시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거야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마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곱게 불러야해 그렇습니다.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누가 인생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그렇게 발버둥치다가 자기 자신 하나도 완성하지 못하고 가는게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완성을 향한 미완성이기 이전에 우리가 살아 경험해본 인생은 뒤죽박죽이거나 엄망진창인 경우도 많습니다. 뭐 하난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 뭐하나 정리되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 싶은 부분도 너무 많고 아예 새로쓰고 싶지만 이미 지울수 없이 과거로서 저만치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망진창 뒤죽박죽 인생 미완성인 인생도 사랑하고 살면 형편이 달라집니다. 사랑은 온전케 합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의 삶을 온전케 해 주십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서 명예를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좀더 문화생활을 누리고 좀더 우아하게 살지 못한다 해도 좀 가진 것이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텔레비전에 나올듯한 멋진 인생을 구가하지 못한다해도 내가 살고 있는 현장에서 조용히 사랑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내가 사는 길을 가장 최고의 인생길로 알아주십니다. 사랑의 진심은 우리 하나님이 잘 알아주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도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것도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하며 사는 삶의 요람이요 토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며 사랑받는 하늘나라입니다. 우리는 아주 세련된 종교인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 사는 삶은 결코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며 사는 길은 인생에 가장 남는 길입니다. 인생을 마감할때도 그래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잘한 것 그래도 내가 사랑하면서 살았다는 것은 마음 뿌듯하게 남게 됩니다. 사랑하며 사는 길은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정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사랑하며 살 때 하나님은 그 사랑이 아무리 적고 미세하다고 해도 한나님은 내 사람을 기억하시고 나를 눔여겨 보십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뭘사랑하느냐 나에게 주어져 있는 삶 그대로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나로부터 멀리 있지 않습니다. 너무도 가까이 있습니다. 또 무슨 굉장한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무슨 십자가를 지거나 순교를 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나에게 지금 해야 할 일로 주어져 있는 일들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현재 아버지나 어머니의 자리에 있으면 그자리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몸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물론 내몸은 내것이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잠사잠깐 쓰는 겅이지만 내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안에서 주어진 직책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 교회 강진읍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교회에서 사랑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강진읍교회말고도 프로그램이 좋고 숙련된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교회건물도 아름답고 목사님멧시지도 뛰어난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강진읍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순간 내 삶에 사랑을 요구하는 일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때로는 그것이 걸인의 모습으로 동전을 요구하는 형태로 다가올수도 있고 때로는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놓여있는 무표전한 부몽의 외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고 때로는 우리의 온라인 송금을 원하는 북한 어린이들의 굶주림으로 다가올 수 도 있습니다. 때로는 병상에 누워있어 내가 그토록사랑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병원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데 말 할수 없는 통증으로 누워 있어 누구한사람 따뜻한 말한마디 때로는 이것저것에 대해 훈계하고 교훈을 주기 보다는 따뜻한 한마디의 말이나 한사람의 인격으로 대접해 주기를 원하는 아내나 혹은 남편의 침묵의 요구속에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너 숙제는 안하고 어디갔다 늦게 왔니 책망하기 보다는 학교갔다 돌아와서 그래 재미 있었니ㅣ 말하며 꼭 안아주기를 원하는 자녀의 눈망을 속에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추운 겨울 붕어빵을 많이 반들어 놓았는데 사가는 사람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향해 1000원어치라도 하는 갈망의 눈초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무엇을 많이 들고 오지 않아도 좋으니 와서 말벗이나 되어주고 손이라도꼭 하넙ㄴ 잡아주면서 그 흔한 찬송이라도 불러주고 밀린 빨래라도 해주고 갔으면 하는 양로원의 할머니들의 그리움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고통 당하는 이ㅘ 함께 있는 고통을 10분의 일이라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가올 수 도 잇습니다.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일을 해도 이름도 나지 않고 빛도 나지 않는 사랑을 요구하는 일로 가득 둘러쌓여 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랑의 요구에 사랑의 응답을 하면서 살아가면 우리 인생 따뜻해집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따뜻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잇생 만일 내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할지라도 내가 삶이 정리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삶이 만일 내가 사랑하면서 살았다면 하나님께서 내삶을 온전케 해 주십니다. 얼마전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씨의 시집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 “나는 너의 사랑이 좋도다” 이 시가 제 영혼을 사랑으로 감싸고 돌았습니다. 마치 주님이 우리를 보시고 말씀하시는 음성같았습니다. “나는 너의 사랑이 좋도다 내가너를 사랑한 나의 사랑을 사랑하는 너의 사랑이 좋도다 나는 너의 마음을 원하노라 천지를 얻음보다 부요하도다 내가 너를 인하여 슬퍼함은 네가 나를 잊어버림이요 내가 너를 향하여 애통함은 네마음이 나를 떠남이라 돌아오라 너의 사랑이여 너의 마음이여 돌아오라” 송명희 시인을 통한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 되어 주님 주신 사랑을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 주신 그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강진읍교회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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