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2 월 28 일(수) 오후 9 시 여신도회 에스더 기도회 말씀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25 장 31 절 - 46 절
제 목 :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할렐루야! 에스더는 민족을 살린 여인입니다. 에스더 기도회는 우리 여신도들이 민족을 살린 에스더와 같이 기도하자는 취지로 발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에스더와 같이 기도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가 처한 민족적 상황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25 장 31 절에서부터 46 절은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날 예수님은 영광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십니다. 양은 그 오른 편에 두고 염소는 그 왼편에 두십니다. 오른 편은 의인의 회중이요, 왼편은 죄인의 회중입니다. 오른 편의 회중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십니다. 왼편의 회중에게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천국은 있다고 분명히 믿어도 무슨 지옥은 없다고 믿습니다. 뭐 그런 뜨거운 곳이 있을랍디여? 그러나 예수님이 분명히 영영한 불이 있다고 하니까 있는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예비된 그 나라와 마귀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양지차입니다만 그렇게 들어가게 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딱 하나입니다. “주님이 목마를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언제 우리가 그랬고 도대체 언제 우리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묻자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이 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안한 것”이고 “이 지극히 적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35 절과 42 절의 말씀을 밑줄을 치고 보도록 하겠습니다. 35 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42 절은 정반대의 내용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주시는 말씀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지극히 적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때로는 주린 자의 모습으로 목마른 자의 모습으로 나그네된 자의 모습으로, 벗은 자의 모습으로 병들은 자의 모습으로 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은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25 장이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현장이 어디입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할 때 두가지를 연결시켜 우리가 말씀을 적용해야할 구체적인 현장을 찾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특별히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혹은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이 말씀을 중점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에스더 기도회입니다. 에스더는 믿음의 사람으로 민족이 전체가 죽음의 위기로 몰렸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섰던 여인입니다. 오늘의 에스더는 다름 아닌 여기 모인 여러분들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는 금년도 에스더 기도회 제목을 “주여 민족을 하나되게 하소서. 북한 어린이를 위하여”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둘을 연결한다면 이 말씀이 적용되어야 할 현장이 어디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해 집니다.
우리의 한쪽 조국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지금은 약간 상황이 호전되었지만 재 작년만 하더라도 북한의 식량상황은 정권붕괴를 야기시킬만큼이나 심각하였습니다. 저는 1999년도 봄 학기에 북한의 식량상황에 대해 세 군데의 신학교에서 발표한 바 있습니다. 많은 신학교들이 윤리 문제를 다룰 때 북한의 위기상황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다녔던 신학교인 Pacific Lutheran Theological Seminary의 소속교단인 ELCA 에서도 북한의 식량위기를 간파하고 북한의 어린 아동의 영양실조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북한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에 대해 너무도 상세한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동경평화회의에 기장교단의 대표단의 하나로 갔을 때 거기서 조선기독교도연맹 서기장인 고기준 목사님과 김운봉 목사님을 만나 뵙고 특별히 하꼬네 휴양지로 가면서 버스에 탔을 때 고 목사님과 옆에 둘이 앉아서 약 두시간 동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고 목사님은 우리 사회주의 경제가 매우 어려워 졌다고 여러 번 걱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약 10 여년 전이니까 북한의 식량난이 출발된 것은 아마도 훨씬 전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전에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북한을 도왔던 지원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위로는 북한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불량 테러국가로 찍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또 북한이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북한의 경제는 이미 예견된 침체와 하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왜 북한이 이렇게 어렵게 되었을까? 이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무너진 것이 첫째 이유라면 또 하나의 주요한 이유는 1995 년부터 3 년 동안 이어진 북한 전역에 걸친 수해로 북한의 식량난이 최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상학자들은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하게 된 것은 기상이변으로 결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뇨나 라니냐라고 하는 이상 기후 때문에 세계 각곳에서 작물수확의 양이 떨어지게 되었는데 북한은 가장 이 이상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엄청난 집중호우는 북한의 경작지를 싹 쓸어가 버렸습니다. 특별히 1996 년 7 월 집중적인 호우는 거의 식량을 수확할 수 있는 경작지를 물로 덮어 버렸습니다. 1995 년의 호우와 1996년의 홍수는 북한의 식량생산을 초토화시켜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95년과 1996년과는 1997 년에는 반대로 한발과 가뭄이 들어 농업생산기반은 무너질 때로 무너져 버렸습니다. 더더군다나 두 해 동안 수해 때문에 한 해 동안은 한발로 국가가 주도하는 농업분야의 계획이 전면적으로 잘못되어 그 피해는 더욱 극심하였습니다. 1997년도 한발과 가뭄은 북한의 기상대에 의하면 50 년만에 찾아온 최악의 그것이어서 평상시 생산되는 작물량의 70 %를 손실시켰다고 합니다. 반면에 해안에는 태풍 위니호가 불어 닥쳐 막대한 토양이 침식되고 바닷물이 밀어 닥쳐 경작할만한 면적이 거의 가능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신동문 중에서 이 두섭 목사님이라고 계시는 데 이 분은 북한을 20 차례도 더 다녀오신 분입니다. 이 분은 주로 미국에서 모금을 하여 그것으로 중국에서 식량을 사 가지고 북한으로 들어가 공급해주고 돌아오는 일을 하신 분입니다. 이 분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상황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식량생산이 악화된 또 다른 요인으로 봄에 씨앗을 심어 놓으면 그 다음 날 누가 다 캐간다고 합니다. 우선 배고프니까 그것이라고 먹으려고. 그리고 배가 고파서 식량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허락을 맡고 증명서가 있었는데 이제는 식량으로 인해 떠돌아다니는 것을 묵인할 정도로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원조가 들어와 식량을 가져다 주어도 문제는 그 식량을 싣고 갈 차량의 휘발유가 없어서 외떨어진 곳에는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에 북한의 식량난은 더욱 더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없는 사람들이 기아와 굶주림으로 조용히 죽어가는데 제일 먼저 죽어가는 것이 어린이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영양부족만이 아닙니다.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아이들이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발육부진, 장애발생의 정도는 심각한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기아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상황은 서구 언론들이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대기 때문에 많은 유럽과 서방의 구호단체들이 집중적으로 구호를 하지만 북한은 서구 언론이 들어가지 못하고 국내 언론이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1 년이면 8 만명 가량이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데 대부분이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 보면 서구 언론사 기자들이 찍어 놓은 북한 어린이들의 비참상이 사진으로 공개됩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이들의 모습보다도 더 훨씬 비참합니다. 여신도회가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출생 후 모유나 분유의 수유단계를 지난 아이들이 제대로 이유식을 섭취하지 못해 성장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유아기의 영양부족은 뇌에 충분한 단백질을 공급하지 못하고 칼로리 부족을 유발해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정신 발달이나 신체 발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식이 굶주리고 야위어 가고 급기야는 죽는 것을 보아야 하는 북한의 부모의 심정을 한번 내 아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의 처참한 상황이 훨씬 나중에야 서방언론과 국제사회에 알려져서 UN이 식량을 원조하고 국제적십자, UNICEF, WHO, FAO 등이 식량과 의약품을 원조하고 있지만 이는 태부족입니다. 서방의 원조들은 배고픈 꼬끼리에게 마치 비스켓 하나를 주는 정도입니다. 북한의 2300 만명의 국민들이 매우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제 민간기구의 보고에 따르면 약 80,000 명의 국민들이 매년 굶주림이 원인이 되어 죽어 간다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FAO)와 세계식량프로그램은 추산하기를 매년 1 백만톤의 식량이 최소한의 영양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합니다. 85 %의 어린이들이 저 영양상태이며 약 15 %는 심각한 영양실조의 상태에 있습니다. 현재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 정부가 많이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북한의 식량난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평양과 도시지역을 비롯한 몇몇 지역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변두리로 가면 식량난은 여전하며 식량난의 최초의 희생자는 북한의 노약자들과 어린이들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이 민족적 상황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 날 우리 가나안 교회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예수님으로부터 41 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는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그 혹독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34 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여러분 여신도회 회원들은 어느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41 절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아니면 34 절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까?
현재 5000 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의 한 달의 이유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내가 바깥에 나가서 한번 식사하는데 5000 원이 든다고 하면 일년에 내 새끼들과 진배없는 북한의 어린이를 위해 열두끼 정도는 굶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느냐? 북한의 한 어린이가 일년동안 좋은 영양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을 위해 한달 괴외비를 드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또 하나의 조국의 아들딸인 아이들을 위해 한달에 한번씩 금식을 하여 그 모은 돈을 여신도회를 통하여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늘이 3 월이니까 12 월까지는 10 개월간입니다. 올해 21 세기가 처음 시작하는 해 2001 년 우리 예수님 지금 북한에서 어린 아동의 모습으로 굶주리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영양부족으로 인해 병들어 있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보아 주기를 우리가 먹을 것을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갈망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다보고 계십니다.
(기도)주님 저희들은 주님께서 역사의 마지막 날 오실 때, 오른편에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양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이 원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주님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주님이 목마르실 때에 마실 것을 대접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헐벗었을 때 입혀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들은 주님이 갇혔을 때, 보고 가서 뵙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는 지극히 적은 자로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뵈옵는 깨우침의 영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