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4 월 8 일(주일) 오전 9 시 광주 가나안 교회 중고등 학생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말씀 : 디모데전서 4 장 15 절
제 목 :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바울 선생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4 장 15 절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와 디모데 목사님은 어떤 관계였을까? 디모데전서 1 장 2 절에 보면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러잖아요. 같은 핏줄은 아니지만 너무도 서로 친하거나 하면 의형제를 맺거나 의자매를 맺듯이 바울과 디모데는 의부자간이 된 것입니다. 어떤 부모이든지 자식이 못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없습니다. 딱 한 예외가 있긴 합니다. 왕건이라는 드라마에서 보면 아자개는 견훤을 잘 되는 것을 무척 시기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의 경우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옛날 제 아들이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글과 그림을 배우더니만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아파트에다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뭐라고 개발새발 써놓았습니다. 벽에다 그렇게 했으니 야단을 쳐야 마땅하지만 야! 우리 아들이 벌써 문학과 예술에 눈을 뜨고 진보를 나타내는 구나! 하고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부모와 자식,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렇습니다. 자식이 뭔가 잘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당시 소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고 디모데는 목사님으로서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젊은 목사님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좀 어렸지만 목사님이 되었으므로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린 디모데가 점점 자라서 좀 더 교회에서 능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당시 교회는 네로 황제를 만나 굉장히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어린 디모데가 교회 지도자로 성장하여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를 잘 이끌어 가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지도자가 모든 면에서 지도자적인 자질을 잘 배우고 습득하여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는 교회를 잘 이끌어 가기를 바란 것입니다.
나는 내 자녀가 열심히 노력하여 모든 면에서 진보를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 자녀가 최고가 되기보다는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이 신철이는 굴렁쇠 굴리기를 열심히 하여 학교에서 은상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난 뒤 열심히 잔디밭에서도 굴리고 놀이터에서도 굴리고 하더니 그 다음에는 굴렁솨 굴리기 대회에서 금상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열심히 한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은상에서 금상는 진보가 나타난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의 신부님할 때 신부에서 부는 아비 부짜입니다. 즉 믿음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부님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신부님을 Father라고 부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믿음의 아버지로서 믿음의 자녀들인 여러분들이 오늘 성경에 있는대로 모든 면에서 전심전력하여 진보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진보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면은 세 가지 영역입니다.
첫째, 지적인 면에 전심전력하여 진보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는 르네쌍스를 기점으로 하여 지적인 면에서 진보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술과 과학의 진보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져 물질문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 세기 후반에 시작된 정보혁명은 인간의 의식과 생활을 전폭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일만년이나 지속된 농경사회와 농업문명이 마치 평야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흐름이었다면 르네쌍스 시대에는 차츰 물결이 속도가 빨라지고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급류가 되어 흐르다가 이제 20 세기 후반과 21 세기의 초반에는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보화 시대가 더욱 가속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은 사람이 힘이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 정보를 유효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자가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없는 사람은 결국 사회에서 뒤쳐져서 사회를 만들어 내고 미래를 선도해 가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무엇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보다도 보다 창조적인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것입니다. 나는 우리 가나안에서 배출된 학생들이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인재로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지적인 능력을 발전시키고 진보시켜 가나안의 자녀들이 앞으로 정보화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정보화 시대를 주도해 가는 인물들이 여기서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가나안의 자녀들이 여기서 자라나서 자신이 일하는 영역에는 독보적이고 창조적인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능력을 얻어서 그 능력을 가지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과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저는 한빛교회에 가서 청년부흥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강사 목사님은 우리 청년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분의 지론은 배워서 남주나?가 아니라 배워서 남주자! 였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그 얻어진 능력으로 사회를 봉사하고 이웃에게 나누어주자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지적으로 창조적이고 뛰어난 능력이 생기면 여러분의 활동 공간은 넓어질 것이고 이 공간을 통해서 여러분은 신앙인격으로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전도할 기회도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바울 선생님이 디모데에게 권장한 것처럼 여러분에게 권장합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여 절차탁마하여 지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에서 진보함에 전심전력하여 능력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배워서 남주는 사람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나눠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여러분들은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면에서 진보를 나나내 주기를 바랍니다. 요즘 사람들은 감성지수를 자주 말합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지적인 능력만 가르치면 감정이 딱딱하고 메말라 에미에비도 몰라보고 자란다고 하여 감성지수를 높이는 교육을 하라고 난리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아는 것이 많다고 해도 그 사람 마음속에 노래가 흐르지 않고 따뜻함이 없다면 그런 인간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 그리고 CPA에 다 합격한 사람이 있엇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장가를 갈 때 결혼할 신부에게 열쇠 세개를 요구했습니다. 아파트 열쇠, 차 열쇠, 변호사 개업할 사무실 열쇠 그래서 신부도리 사람이 감당치 못하고 파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 마음 속에 사랑이 없고 돈과 열쇠만 보인다면 이 사람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20 세기와 21 세기가 지적인 면에서는 굉장한 진보가 있었지만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에는 진보보다는 퇴보가 있었습니다. 20 세기에는 제 1, 2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서 수 천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들을 600 만명이나 독가스로 죽였습니다. 20 세기는 서로 죽고 죽이고 해서 인간의 인간성보다는 인간의 야수성, 인간의 이리성이 지극히 잘 나타나는 세기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정이 점점 사라지고 나만 아는 이기주의가 점점 더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점점 가슴 속에 노래가 없어져 가고 감성적인 면모가 사라져 갑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학생들도 감성적인 지수가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컴퓨터 게임에서 적들을 죽이는 일에는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지만 창공을 바라보고 태양을 쳐다보며 꽃들을 보고 밤에는 별들을 보고 자신의 심장의 박동을 느껴보는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필 보스만스 신부가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한 번 그대가 5 분의 시간이 있다면 그때 그대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를 그대는 아십니까? 한 번 자기 성찰을 해 보십시오. 텔레비젼과 카셋트를 끄십시오. 잡지와 신문을 제쳐 놓으십시오. 고요하게 만들어 보십시오. 조용히 정지해 보십시오. 침묵으로 내면을 채우십시오. 자신의 심장박동을 느껴 보십시오.” 한번 내 감성지수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기 보다는 차라리 감성지수가 뛰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들과 친하게 지내고 함께 서로 좋아하는 친구가 많고, 남들이 어려울 때 그 어려움을 같이 하면서 눈물도 흘리고 내 것을 보태서 채워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차있기를 바랍니다. 잘못하여 싸울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렇게 말하는 용기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를 지니면서 말하고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해도 되도록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말을 하는 마으씨 씀이 넓은 사람이 되는 일에도 진보를 나타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나는 여러분이 영적인 면에서 깨우침이 있는 진보를 나타내 보여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이 생기고 있지만 그리고 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나안 교회 학생들이 영적인 면에서 진보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기를, 연안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면에서 진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관습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기도하는 즐거움을 가질 때, 말씀 한 장한 장을 읽으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날 사랑해 주심과 같이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 기뻐하게 될 때 우리의 영성 지수는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 높고 높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영성지수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돌틈에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서도 아하 하나님이 손길이 그렇게 만드셨구나를 느낄 때 바로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님이 ”먼저 가서 화해하라“는 말씀대로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와 동생과 화해를 할 때 친구나 동생 마음이 누구러지는 것을 볼 때 거기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필 보스만스 신부님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여 사랑 안에서 사람이 도리 때 땅 위에서 하늘나라가 펼쳐집니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새는 죽습니다. 품 안에 안지 않은 아이는 얼어 버립니다.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에게는 따뜻함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영성지수를 높이는 일은 다른 일이 아닙니다. 내가 따뜻한 불을 지니고 친구에게나 꽃 한 송이에게 사랑을 보일 때 바로 그 때 내 영성지수는 올라가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십니다.
결론: 사람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좀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우리 가나안의 학생들이 모든 면에서 진보를 나타내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1 mm 라도 더 전진하고 1 mmg 이라도 더 무거워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日日新이 又日新해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모든 면에서 전심전력하여 내가 진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영적인 면에서 진보하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가나안 교회는 여러분을 모든 면에서 진보를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노력을 할 것입니다. 가나안 교회는 여러 면에서 진보를 보임으로 특별히 우리 가나안 학생들이 영적인 면에서 진보하기 위하여 전신전력할 것입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내 나중은 창대하리라” (욥기 8 장 7 절) 이 말씀처럼 가나안 교회는 천천히 그러나 전진하고 진보하여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진보가 있도록 모든 서비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중고등부 예배실을 아름답게 꾸밀 것입니다. 교회의 겉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킬 것입니다. 최근에 예배 드리는 이 예배실도 바꾸어졌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장마가 와도 예배실에서 비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비가 샐 때 낭만이 좀 있었습니다만. 앞으로 우리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는데 일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여러분이 조그만 화분 하나라도 여러분의 이름으로 우리 중고등부에 놓아두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곳을 여러분만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 우리 교회 여신도실이 생겼습니다만 앞으로 우리 교회에 중고등부를 위한 회의실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 처소를 아늑한 곳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 곳에 여러분만의 공간을 만들고 여러분이 언제든지 와서 공부도 하고 얘기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도서실을 만들고 읽을만한 책을 비치하여 읽는 가나안 도서실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를 위하여 목사님은 책을 여러분을 위해 기증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 역시 좋은 책을 기증하여 우리 가나안 도서실을 잘 운영하여 여러분의 후배들도 잘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 중고등부 학생을 위한 PC 방을 설치하여 운영하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나안 교회를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가 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여기에서 영어로 성경공부도 할 수 있고 여기서 설교말씀도 들을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예정입니다. 여기에서 “가예사모”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가나안 교회는 선생님들과 함께 의논하여 믿음을 증진시킬 수 있는 영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바울 선생님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처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하신 것처럼 목회자와 교사 선생님들이 여러분의 영적 진보를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더욱 기도하며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가나안 터전에서 보석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보석이냐?
어떤 도사님이 정자나무 아래서 수도를 하고 있는데 한 마을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 왔습니다. 보석, 보석 그 보석을 제게 주십시오. 그 보석이랴뇨? 간밤에 꿈에 도인이 나타나 해거름이 되면 동구 밖에 가 보라시더군요. 한 도사님이 보일 것이고 그 분이 값진 보석을 하나 줄 터인데, 그 보석으로 영원한 부자가 되라구요. 도인은 보따리를 뒤지더니 보석을 하나 꺼냈다. “아마 이것을 말씀하셨겠지요. 며칠 전에 숲 속 오솔길에서 주었는데 원한다면 물론 가져도 좋소.” 도사님은 선뜻 그 보석을 건네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은 보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 머리만큼이나 큰 금강석이 아닌가! 금강석 가운데서도 아마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일성 싶었다. 금강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날 밤 내내 이불 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첫 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달려가 도사님을 깨웠다. “스님 이 금강석을 그처럼 서슴없이 내어줄 수 있게 하는 그 보물을 주십시오..”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는 일은 금강석 보다도 훨씬 소중한 그 무엇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나날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나날이 진보하기를 원합니다. 지적인 능력도 진보하고 감성적인 능력도 진보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고 마침내 하나님을 사랑하고 깊게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날마다 진보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진보하기 원하여 기도할 때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우리 가나안교회 중고등부 학생들과 교사들을 사랑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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