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새 천년, 주여 나를 보내소서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주일설교) 새 천년, 주여 나를 보내소서

관리자 2010-12-06 (월) 14:51 15년전 2610  

2001 년 1 월 21 일(주일) 오전 11 시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가나안교회 여신도주일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이사야 6 : 8 절

말씀제목 : 새 천년, 주여 나를 보내소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은총이 오늘 여신도주일 예배드리는 모든 가나안 교회 성도들 위에 화끈하게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전국교회가 함께 지키는 여신도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신도회가 정한 성경말씀과 제목에 따른 이사야 6 장 8 절 말씀입니다. 요즘 우리 둘째 아이가 이제사 구구단을 외우고 있습니다. 가장 자신있게 잘 외우는 단이 이 단입니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오늘 본문은 딱 한절이니 외우기 쉽습니다. 또 이사야 6 장 8 절이니 2 단을 외우듯이 2468로 외우면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셨을 때 당시 이스라엘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이사야 6 장 8 절은 이사야 예언자의 소명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6 장 8 절은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좀 본문을 단순화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주변국가들, 즉 세상이 엉망이고 개판인 것을 이사야에게 환상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한 4 년전인가 배야섭 목사님이 교회 예배를 마치고 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누군가 자전거를 도로 한 중앙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타고 있던 아직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손주 녀석 하나가 옆자리 할아버지의 곤란한 표정을 보자 인상을 팍 그으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어디 그러면 쓰간디!!” 손주가 할아버지가 쓰던 표현을 그대로 베껴서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던 이사야 당시 세상은 자전거가 도로에 한 가운데 놓아져 있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형편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 당시 하나님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분명히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어디 그러면 쓰간디!!”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보여주시면서 바로 말씀 하셨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할래?" 그러자 이사야가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이 문제를 풀 사람? 그러자 “이 씨” 성을 가진 이사야 어린이가 저요! 하고 손을 든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한 절입니다만 이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사야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포괄적인 관점에서 이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마구 어질러지고 엉망진창인 상황을 개판 오 분전이라고 합니다. 만약 개들이 말을 하고 요즘 텔레비전을 본다면 그럼 니네 사람판은 어쩌고! 그럴 것입니다. 뭐 가만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판이 개판보다 더 훨씬 나은 것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이사야 예언자 당시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마디로 개판 오분전이었습니다. 얼만큼 엉망진창이었느냐? 이사야 1 장 2 절부터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엉망진창이었는지를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2 절부터 이스라엘에 대해 무척 섭섭한 감정을 표현하십니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왜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는데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느냐는 창조주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1 장 4 절부터는 하나님의 감정이 북바치면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시면서 말씀하셨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슬픔은 바로 분노로 이어집니다. 5 절에 보면 이 분노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그러다가 하나님은 마침내 감정을 폭발하고 마십니다. 1 장 20 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사야의 상황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외면하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물론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는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할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하나님이었다면 자신이 만들었는데도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행악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쓸어 담아서 재활용하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셨을 텐데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무한히 인내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6 장 8 절은 하나님께서 슬픔과 분노로 가득찬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해 나름데로 대책을 강구하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 대해 쭈욱 설명하시면서 바로 다른 설명없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물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저 문제를 해결하러 갈래?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라는 복수로 표현되었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대명사로 보시면 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상황에 대한 해결사를 찾으신 것입니다. 옛날 텔레비전에 나오는 맥가이버나 영화 Mission Impossible에 나오는 agent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해결사였습니다만 하나님은 자신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리게 해 줄 사람을 찾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이는 하나님께서 이를 해결할 자원봉사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아니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냥 말씀 한마디로 해결하시지 무엇이 답답하다고 사람을 부르셨을까?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손가락 까닥도 하지 않으시고 말씀 한마디로 0.01초도 안되어 단순간에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자신이 홀로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형상인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고 사사를 부르고 다윗을 부르고 이사야를 불러 함께 일하시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니, 하나님이 일하시는가?”하는 의문이 들것입니다. 아니 거룩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은 노동을 하신다는 말인가?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성경 창세기를 자세히 눈 여겨 읽으신다면 천지를 만드시고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지는 모습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1 장과 3 장 사이를 우리가 마음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땀 냄새를 충분히 맡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전반에 나오는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잘 익은 천도 복숭아나 따 드시면서 천국의 보좌에만 늘상 앉아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지금 21 세기에 이르기 까지 부단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론 하나님은 흙을 주물럭 주물럭하여 사람의 형체를 만드시고 다음에 숨을 호호 불어 일하시기도 하십니다. 창세기 3 장 21 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손수 바느질을 하여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시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브라함의 손목을 잡고 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약속을 해주시기도 하십니다. 보통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을 알코홀릭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일에 중독된 사람은 워크홀릭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얼마나 일에 중독되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시편 121 편 4 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과로하실 만큼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과로하실 만큼 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마지막 장 66장 22 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토록 힘쓰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전체 설계도를 항상 여호와의 눈앞에 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하늘과 땅은 사람들에 의해서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세상을 다스리실까? 요한일서 4 장 8절은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을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금방 해답이 나옵니다.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굉장한 물리적이고 우주적인 힘으로 말을 안들으면 강제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하나님 자신이 전권을 행사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나라를 모든 피조물이 어떤 의지나 자원함이 없이 로봇과 같이 이리로 가라면 기계적으로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라하면 자동적으로 저리로 가는 그런 나라를 만드시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이 샘솟고 정의가 꽃 피어나며 생명이 들풀처럼 자라고 자유가 숨쉬는 그런 나라를 만드시기 원하셨습니다. 온 우주의 피조물로부터 마음속으로 우러나는 존경과 사랑을 받고 하나님도 피조물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죽기까지 한 그 사랑으로 사랑하시며 세워지는 나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기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기 원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기로 하고 이 일을 할 자원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함께 일할 동역자를 찾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하시면서 함께 일할 파트너를 구하고 계십니다. 밥도 같이 먹을 때 맛이 있고 일도 같이 할 때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일할 때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보통이 아니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엉망진창이 되었으니 질서의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는 해야 하는데 혼자 일처리를 하지 않으시고 같이 일할 파트너를 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십니다. 어떤 때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는 야곱과 같이, 사무엘과 같이 지명하여 부르실 때도 있으십니다. 또 어떤 때는 자원자를 찾으시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함께 일할 파트너를 자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이사야가 손을 높이 번쩍 들면서 저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모수자천하여 나섰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까?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부터 일하신 하나님이 오늘 21 세기에서도 일하고 계실까? 지금 우리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겠습니까? 오늘은 안식일이기에 온 세상 피조물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계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하는 주무대는 교회이십니다. 교회는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집인 교회에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나안 교회 성도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온 우주와 온 인간의 영혼과 가정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겨자씨 같이 지극히 적은 영역은 너무 적다고 하나님이 일하실 때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잃은 양을 찾아 다니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 영혼 한 영혼 가운데서 하나님은 사랑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실까?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한국의 분단된 상황에서 화해를 이루기 위해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을 통해서 화해의 나라, 새하늘과 새 땅을 일구기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남과 북이 서로 이산가족이 서로 양쪽을 방문하면서 만나는 것도 한반도에서 화해와 사랑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그렇다고 꼭 남북간의 지도자만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교회 식구들을 통하여도 일하십니다. 얘들아, 나의 사랑하는 자녀인 북한의 어린이들이 글쎄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구나 누가 도울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오늘의 이사야와 같은 자원자를 찾으시기도 하십니다. 저는 가나안 교회 식구들이 지난 해 북한 어린이에게 사랑의 빵 보내기 운동에 동참하여 동전 하나하나를 모아 함께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역시 사랑의 하나님의 부르심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려고 부르시는 곳은 우리 가정입니다. 만약 가나안의 부모가 매일 하루 삼세번씩 자식을 “얘야! 예수님이 널 이렇게 사랑한단다” 하면서 꼬옥 껴안아 주면 아이는 엄마나 아빠 품에서 사랑의 하늘나라를 이미 경험하게 됩니다. 이 일 역시 아이의 영혼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일이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영혼 속에 하늘나라를 만드시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사업으로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하시는 일은 지극히 적은 일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교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가는 본부와 같습니다. “너 보느냐 내 집인 가나안 교회 비가 오면 새더라 너 좀 고쳐서 내가 비 좀 안 맞게 해 줄 수 없겠니?” “내 집에 새로운 식구가 매 주 오는데 오면 ”너는 너! 나는 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그러지 말고 너, 한마디라도 따뜻한 말을 서로 나누지 않을래 새로 오는 사람들은 한번도 사랑의 인사 받지 못하고 왕따 당해서 그냥 가더라! (“전따” 전 교인이 따돌리는 것, “은따” 은근히 따돌리는 것) 너 내 집에 한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내가 있는 하늘보좌에서는 잔치를 베푸는데 너희들은 악수도 한번 안하고 그냥 보내더라!“ 새 교인이 오면 그에게 따뜻한 마음이 되어 손 한번 꽉 잡아 주는 일 - 이 역시 하나님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얘야! 너, 혹시 지지난 주에 상무동에서 어린이교회학교 선생 중에 하나가 아이들을 전도하여 6 명이나 데려 오는데 택시를 잡을 수 없어서 울어 버린 것 너 알고 있니? 너 혹시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이 내 집에 와서 제 시간에 말씀을 듣도록 차량 서비스 좀 해주지 않겠니? “얘야, 지난 번 눈이 많이 왔을 때 내 집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종종 걸음으로 가는 것을 보았는데 다음에 눈이 오면 내 집 앞이라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좀 깨끗이 쓸어주지 않을래!” 얘야! 화정동에 장애인들이 75 명이나 있고 무의탁 노인들이 많이 있다는구나! 누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줄래! 누가 가나안 교회 제직회에서 발의하여 그들을 함께 돕는 방안을 찾아보지 않을래!! 얘야, 너 내 종 김성래 목사가 허리와 엉치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여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단지 가나안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단 한번이라도 과일을 들고 찾아가 보았니? 그리고 내 딸 임정순 사모를 등을 두드리면서 용기 내시라고 손을 꼭 잡아 주어보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길과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집인 가나안 교회가 안으로도 사랑으로 가득 차고 밖으로도 주의 사랑을 풍성하게 내 보내는 일에 자원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무슨 일을 우리와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그것은 모두 사랑과 관련된 일이며 사랑을 더해 나가는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만을 부르실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만 부르실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3-4 천년 전 사람들만 부르실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함께 사랑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일할 자원봉사자를 찾고 계시고 우리 가나안 교회 성도들을 부르시고 지금도 많은 일을 마련하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신애균 선생님이 작시하신 여신도회 회가를 보면 후렴부분을 이렇게 부릅니다. “주의 부름 받은 이 예 대답하고서 그를 따라 가겠네 진리와 생명 복음 전파하러 가겠네”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도 있지 않습니까?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이 몸 바쳐서 이 몸 바쳐서 주만 따라 가오리다”  

저는 어렸을 때 강진군 칠량면 영동리 영동부락에 살았습니다. 그 집은 초가집이었고 마루 토방이 있는 안쪽 처마 밑에는 제비 두 마리가 뭔가를 물고와 집을 지었습니다. 그때 당시 배요섭 집사님은 제비 집 밑에다 받침대를 해주어 제비가 안전하게 집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비가 집을 짓고 난 다음에는 알을 낳았고 한참 뒤 알이 부화하여 약 여덟 내지는 아홉 마리 새끼 제비들이 나란히 나란히 앞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엄마 제비와 아빠 제비가 먹이를 물고 와 가만히 새끼 제비를 바라다 봅니다, 그러면 새끼 제비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노란 입을 결사적으로 쫙 쫙 벌리면서 지지배배 합니다. 제비아빠가 그 중에서 한 새끼에게 먹이를 입에 넣어 주고 얼른 다시 벌레를 찾으러 갑니다. 그 다음에 제비엄마가 와서 한참 새끼를 보다가 마침내 한 새끼에게 먹이를 넣어 줍니다. 저는 그것을 지켜 보면서 어린 심정에 그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비 엄빠와 제비아빠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넣어주는 기준이 무엇일까?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넣어줄까? 아니면 그 역순일까? 아니면 장남 제비에게 주고 막내 제비는 꼴찌로 줄까? 그러나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발견한 것은 어미는 가장 입을 많이 벌리는 새끼 즉 입을 크게 벌려 제비 새끼 속에 있는 노란 것의 직경이 가장 큰 새끼에게 주는 것 같았습니다. 왜 아마 가장 배고픈 새끼가 가장 입을 크게 벌릴 것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하는 가나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 일을 시키시려고 자원자를 찾을 때 어린 제비가 먹이를 달라고 노란 입을 쫙쫙 벌리면서 엄마 나요 아빠 나요! 사력을 다하여 소리지르듯이 여러분 역시 하나님께서 이 일을 누가 할래? 하나님께서 사랑을 위하여 우리에게 일감을 주시려고 할 때 여러분 모두가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제가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저를 꼭 시켜 주십시오 간절함으로 응답하시는 여신도 남신도 청년 교사 교역자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불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구속사에 동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에게 이사야와 같은 자원함을 주시옵소서. 언제 부르시더라도 예 응답하고 하나님을 좇아 갈 수 있는 기쁨을 주시옵소서.  

축도) 이제는 이 땅에 몸을 입고 내려 오셔서 직접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고자 오늘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일하시면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나라 사업에 동참시켜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오늘도 성령으로 계셔서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권능을 주시고 새 나라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 하나님의 부름에 이사야와 같이 예!하고 응답하면서 주의 뒤를 따라 가려는 사랑하는 가나안 교회 모든 주의 자녀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헌금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감사의 제물을 봉헌합니다. 저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베풀어 주신 선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희에게 있는 어느 하나도 저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산과 들의 초목을 주셨습니다. 저희생명 저희 존재의 전부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달과 별의 광채도 주셨습니다. 부모자녀 애정과 형제자매 우애도 주셨습니다. 거룩한 손 가지고 봉사하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진홍같은 붉은 죄 휜눈같이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다시금 다시금 새롭게 결단하고 새피조물로 살아가는 새은혜 새믿음도 주셨습니다. 전후좌후 어디를 둘러 봐도 저희는 단지 주님사랑의 띠에 묶여 포로되어 있습니다. 동서사방 그 어디로 가든지 저희는 주님의 은혜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저희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저희에게 만입이 있다한들 어찌 주님의 사랑을 다 찬양할 수 있으며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은들 어찌 주님의 은혜를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저희에게 있는 것은 주님께 향한 감사와 찬송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은혜에 감사감격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일부를 성별하여 십일조와 주정헌금과 감사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바칩니다. 이 예물속에 저희 존재전체를 한데 묶어 주님제단앞에 산제물로 바치겠다는 헌신의 마음을 함께 담아 드리오니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이 추수의 예물속에 주님을 향한 그리움과 열정, 주님을 향한 저희의 믿음의 순결과 정절도 한데 모아 바치오니 즐겁게 열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질그릇과 같은 저희의 삶과 영혼에 다시금 주님의 보화로 채워주시옵소서. 매일매일의 삶이 기쁨과 찬양으로 주께 바쳐지는 삶으로 채워주시옵소서. 하루하루 삶이 더 차지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더 나누려고 애쓰며, 이웃이 내 발을 닦아주기 원하기 보다는 내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그리스도의 섬김과 사랑의 삶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주의 십자가를 언어와 입술로 말하기 보다는 현실속에 십자가를 달게 지는 삶으로 저희 영혼의 질그릇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땅의 욕심과 세속의 욕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비워 주옵시고 주님께서 담그신 의와 평강의 포도주로 성령의 새 술로 저희 잔을 가득 채워 저희 영혼 취하여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주님의 은총을 인하여 춤추게 하시고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주님의 영광을 길이 노래하도록 저희 삶을 주님나라의 축제의 흥겨움으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는 고백과 함께 기쁨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