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 월 28 일 오후 7 시 30 분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150 편 1 절 - 6 절
제 목 :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예배에 참예하신 모든 분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로마서 12 장 1 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씀을 본문으로 많은 교역자들이 본문으로 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많은 평신도들이 묻습니다. 목사님! 저희들도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저희 삶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저희들은 세상 속에서 무척 바쁘게 삽니다. 우리 생활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삶이 되려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면 그렇게 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번제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불교에 보면 108 번뇌가 있습니다. 인간이 이 사바세계에서 살다보면 인간을 미혹시키는 108 가지 뇌를 어지럽히는 망상과 미망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보면 끊임없는 염려와 근심과 불안과 여러 초조 등 여러 가지 것들이 뇌 속에서 솟아나 인간을 근본적으로 불안하게 하며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마음속에 주님을 한 중심 속에 모시고 살면 주님이 평화와 생명이 되시기에 108 가지의 번뇌는 사라지고 맑은 마음과 순결한 영성으로 자신을 삶을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저는 학교의 과정을 끝내고 약 한달 동안 남은 시간 동안 미국생활을 정리하면서 혼자서 명상에 잠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쳐지는 삶이 되도록 할까? 꼭 순교해야만 할 수 있는 굉장한 각오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기쁘게 자신의 몸을 산 제사로 바치는 그런 생활의 내용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108 번뇌가 아닌 108 번제”라는데 착안하였습니다. 그렇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면서 108 번뇌로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108 가지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조그마한 번제를 마련하여 함께 나누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주일밤 예배를 인도하게 되면 매 주 1 가지 나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방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러면 108 가지 번제를 다 실행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기쁘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만 받아드리시면 되겠습니다. 이 108 번제는 무척 쉽고 조그마한 영적 관심만 가지면 실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그 첫 번째 번제를 성도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번제는 내 생활 속에 할렐루야!를 끌어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50 편 6 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봅시다. 호흡이 있는 자 여기서 호흡이 무엇일까요? 呼吸이란 내쉬는 呼, 들이마실 吸입니다. 숨을 내 쉬고 들이마시는 것을 호흡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호흡이 있을 동안이 살아 있을 때입니다. 호흡을 그치는 때는 속된 말로 밥 숫갈 놓는 때입니다. 인간의 뇌가 정지해도 죽지 않습니다. 뇌사상태는 죽음 목숨이 아닙니다. 그러나 호흡이 정지하면 곧 바로 죽은 목숨이 됩니다.
이 시간 우리 한번 살아 있음을 확인해 봅시다. 호하고 흡해 봅시다. 분명히 살아 있지요? 이 호흡을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왜 불어 넣으셨을까요? 이는 오늘 본문에서 시편 시인이 분명한 답을 주시고 계십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찬양하게 하려고 호흡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심모원려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호흡을 불어낼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달리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싶어서 만드셨고 호흡을 주신 것은 특별히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내가 이렇게 호흡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찬양받기 위해 숨을 불어 넣으셨구나!” 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시편 150 편 6 절이 시편의 마지막 편 마지막 절입니다만 이 말씀이 시편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입니다. 시편은 생명이 있는 동안에, 호흡하고 있는 동안에,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호흡이 끊어지거나, 호흡이 멈추거나, 호흡이 정지되거나, 호흡을 할 수 없을 때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찬양도 할 수 없고 찬미도 할 수 없고 찬송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없으면 여호와를 찬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시편시인은 삶의 여러 가지 역정을 겪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간 본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그의 시편에 편편절절이 나타납니다. 그는 삶의 여러 풍파와 우여곡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만났습니다. 그는 여러 삶의 아픔과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의 변화의 추이를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변화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쁨으로 차오를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도 한탄하여 마음이 깊이 침잠해 계실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그런 모든 경험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바로 할렐루야!로 찬송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편 1 편에서 150 편을 단 한 절로 명료하게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정리한 것입니다. 비단 시편시인 만이 아닙니다. 찬송가에 나타난 가사를 작시한 시인들도 시편 시인과 같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찬송가 시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찬송가를 전문적으로 작사하는 직업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 믿음이 깊고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꿰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리저리로 여행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 마침내 읽게 되었습니다. 찬송가 364 장을 작시한 S.F. Adams도 아마 시편 시인과 같이 깊은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간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364 장 4 절 후반절은 이렇게 찬송합니다.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찬송을 작시한 시인은 좋을 때나 기쁠 때만이 아니라 십자가 짐같이 고생할 때나 천사가 날 불러서 숨이 지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찬송하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깊은 신앙을 보여 줍니다. 찬송가 544 장의 작시자도 1 절을 이렇게 작시하였습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이는 살아 있는 동안에 부단히 하나님 마음이 흡족하게 여기시는 찬송을 부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갑니다. 너도 가고 나도 갑니다.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갑니다.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보약도 먹고 DHEA를 복용하고 산삼을 먹고 “오색비약백세장수탕”을 먹는다 해도 조금 1-20 년 더 살지는 모르지만 결국 인생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해진 방향을 향하여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결국 우리 인생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됩니다. 뭐 조금 일찍 가고 늦게 가고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우주의 광대한 시간 속에서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어떤 사람은 “너 누구니? 나 너 잘 알지 못한다”고 문전박대 당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버선발로 뛰어 나와 맞이하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새겨진 사람일까? 명백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자신을 찬양하는 사람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놓으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마음속에 새겨져 있겠습니까? “할렐루야”의 찬양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억의 메모리에 여러분 자신을 선명하게 그래픽으로 찍어 놓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네 자로 줄여서 “할렐루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가장 짧은 말로서 하나님을 가장 감동시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할렐루야” 하는 일입니다. 인간이 할렐루야를 하면 하나님은 어떤 느낌이실까? 자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만일 채보라 권사님! 요즘 신수가 훤해 보이십니다. 오늘따라 참 멋있어 보이시고 퍽 괜찮아 보이십니다. 최근에 혹시 백년묵은 산삼 두세 뿌리 고아 잡수셨습니까? 그러면 권사님은 기분이 좋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저에게 사탕 사주고 싶으실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칭찬하면 그것이 설령 입에 발린 말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좋은 것이 인간입니다. 할렐루야!가 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참 멋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은 그때부터 구름 위에 거니시게 되고 하나님의 기분이 엄청 나게 좋아지는 것입니다. “니가 나를 비행기 태우는구나!” 하나님의 기분이 삼삼하게 좋아지셔서 자신을 찬양하는 사람을 마음에 점지해 놓으시고 깊이 각인시켜 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람은 해 아래에서 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실까요? 여러분이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찬양대에서 봉사하는 방법도 있고 찬송을 자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쉽게 가장 주님을 자주 찬양하는 방법은 그저 “할렐루야!”를 자주 드리는 일입니다. 단지 그렇게만 해도 하나님은 잘 알아들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많은 말을 해야만 자신을 찬양하는 것인 줄 아는 그런 센스 없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단 한마디로 그저 할렐루야!로 찬양을 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찬양하는지 잘 아십니다. 미국말로는 Praise the Lord! 이니까 좀 길지 않습니까? 우리말로는 “주님 찬양합니다”니까 일곱자 아닙니까 그러나 히브리어로 할렐루야! 하면 네자 밖에 안됩니다. 상당히 경제적 아닙니까? 여러분 생활 속에서 할렐루야!로 찬양드리는 일 무척 굉장하게 참으로 중요합니다. 할렐루야를 할 때는 그냥 습관적으로 하지 마시고 내 바로 앞에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거리에 주님 보좌에 앉아 계신 것으로 믿고 “주님께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5 편 28 절에 보면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로다” 했는데 이렇게 종일토록 주님을 찬송할 수 있는 방법은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해 아래 있을 때에 호흡이 있는 동안에 되도록 이면 “할렐루야”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다익선입니다. the more, the better!! 저는 헨델이 직접 쓴 “메시야”의 원본을 대영박물관에서 보았습니다. 메시야는 할렐루야로 연속 찬양하는 것이 절정이잖아요!! 유리함 속에 있는 펼쳐져 있는 부분은 할렐루야가 연속되어 있는 찬양이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야! 그 유명한 헨델의 메시야의 원본을 보다니! 그리고 할렐루야 부분이 있는 그 부분은 헨델이 그 부분을 작사할 때는 마음도 기뻐 역시 날라갔는지 음표도 춤을 추듯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진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꼭 헨델의 메시야와 같이 그런 대곡으로만 하나님을 감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저 할렐루야! 만 해도 다 알고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를 하는 생활과 할렐루야를 안 하는 생활은 무척 차이가 있습니다. 확실히 제가 경험해보고 실험해 본 결과, 할렐루야를 외치고 노래하고 다닌 때도 있었고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고 지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에 의하면 확실히 할렐루야를 하는 생활과 그렇지 않은 생활은 정말 달랐습니다. 꼭 설명을 궂이 하자면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그 찬송 그대로 할렐루야를 시작하는 삶은 뭔가 좀 희미한 곳에서 차츰 밝아지는 것으로 어둡던 땅이 밝아오고 옮겨지는 듯한 강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를 안하고 살면 신앙생활이 좀 무미건조해 집니다. 맛이 없어진다 그 말입니다. 할렐루야를 안하고 살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할렐루야를 안하는 삶은 인생에 있어서 큰 손해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렐루야를 찬양하고 살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게 됩니다. 인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이 맑게 개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느 곳이나 하늘나라로 변합니다. 정말일까? 안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박하사탕을 안 먹어 본 사람은 박하 사탕 맛을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모릅니다. 박하사탕이란 말이야! 처음에 입에 들어가면 박하 향의 향내가 온 입안에 두루 퍼지면서 입안이 상큼해지고 온 몸이 시원해진단다 아무리 설명해도 박하사탕의 맛을 보기까지는 그는 진정으로 박하사탕 맛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그렇습니다. 찬양을 하지 않고는 그 묘미를 모릅니다.
여러분 할렐루야를 많이 외치시면 좋습니다. 할렐루야로 노래를 부르시면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할렐루야를 노래로 만들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 -멘!!” 이렇게 10 번 찬양하면 15 번 곱하기 10 번해서 하루 150 번 하나님을 할레루야로 찬양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의 인생이 <할렐루야! 플러스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를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경우에 보태시는 것입니다. 인사를 할 때도 할렐루야!로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할 때도 제일 처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시작하고 기도를 마칠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우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하면 좋습니다. 좋은 경치를 보고 감격할 때도 할렐루야! 크게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 유치하게 야호!하면 안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높이 하늘을 향해 쳐들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기 오기 전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 캐년, 자이언 캐년” 미국의 유명한 세 캐년들을 함께 돌아보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랜드 캐년이 좋다고 그럽니다만 저는 자인 캐년에 갔을 때 그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웅장한 모습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캐년을 돌아보면서 할렐루야 노래를 계속 불렀고 때로는 내려서 산을 향하여 힘차게 할렐루야! 했습니다. 여러분! 여행을 가기 전 자동차 시동을 켤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로 시작하고 여행을 다니면서도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노래를 부르면서 다니고 여행을 마치고 시동을 끌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로 마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참으로 좋습니다. 집에서 나갈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면서 신발끈을 매고 들어올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면서 집에 들어오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나 손주들을 안을 때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시작하고 잠자기 전에도 “할렐루야 오늘 하루 감사합니다” 욕을 하고 싶은 때도 꾹 참고 오히려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이동철이란 사람은 전에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그 분은 장로교 장로님입니다. 그 사람이 원래 삼양동에 살았는데 “꼬방동네 사람들”, “오 과부” 등 많은 책을 써서 나중에 유명해져서 그 기세로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꼬방동네에서 살면서 제일 처음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 하면 “우리 새끼들이 이 험한 동네에서 남에게 꿇리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려면 우선 욕부터 가르켜야 하겄다” 하면서 아이들을 앉혀 놓고 “야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야!” 하면 아이들이 일제히 UNISON으로 “야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야” 하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가 나중에 믿음을 가져서 제 친구가 담임하는 동월교회 장로가 되어서 예전에는 말 한 SENTENCE 하려면 욕이 두어개 들어 갔는데 이제는 말끝마다 할렐루야!를 외치고 다닌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는 할레루야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이것을 회화화하여 할렐루야!라는 영화도 나왓습니다. 성도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받을 때도 할렐루야 김 아무개 집삽니다. 교회 나와서 일을 할 때도 할렐루야! 햇볕이 내리 쪼이어도 할렐루야! 비맞아도 할렐루야! 아플 때도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감기에 걸렸어도 기침을 한번 할 때마다 할렐루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바로 내 앞에 계심을 믿으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어디에서 살든지 그 어디에서나 하늘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찬양하며 살다보면 이 세상이 하늘나라로 변합니다. 정말입니까?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지 않은 사람이 수만마디를 설명한다한들 아리랑 고개 넘는 즐거움을 알 수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해보세요. 안 해보면 모릅니다. 할렐루야를 외칠 때 부정적인 생각이 싹 사라지게 됩니다. 의심의 안개가 걷히고 근심의 구름이 맑게 개입니다. 우리가 할렐루야를 내 입에 계속하게 되면 여러분의 영혼이 맑아지고 투명해지고 사랑스러워집니다. 저번에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평생을 믿음으로 사신 두 할머니들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오늘 본문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두 손을 꼭 잡으면서 하나님께서 불러 가시기 전까지 할렐루야 많이 하시라고 하고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 전에는 나이 드신 할머니가 나이 약간 적게 드신 할머니를 좀 구박했는데 할렐루야를 하시고 부터는 이제 사이좋게 지내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치게 되면 평화도 오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말 중에는 별로 영양가도 없고 별로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 많은 짧은 말들이 잇습니다. 예를 들면 “하지마!”, “당신 왜 또 그래”, “뭘 또 잘못 먹었어”, “징하다 징해”, “주책이야” 등등입니다. 우리 그런 말들을 우리 생활 속에서 삭제하고 할렐루야를 우리 대화 속에 자주 등장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면 주책이야! 하고 할렐루야! 하고는 끝자가 똑같이 야자로 끝나지만 그것이 생활에 주는 효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할렐루야 하면 확실히 좋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할 때 몸 속에 있는 모든 이로운 물질이 좍좍 쏟아지게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런 복음성가도 있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성령 받았네 나 성령 받았네! 주의 은혜도 가득 받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다가 병이 고침을 받은 사람도 저는 보았습니다. 저는 한얼산 기도원에서 이천석 목사님의 며느리인 윤은희 전도사님이 방언을 가르쳐 주는데 먼저 할렐루야를 많이 하면 방언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엇습니다. 그런데 어떤 공장에서 일하는 공원으로 일하는 분이 정말 방언을 받고 싶었는데 언젠가 제 옆에서 기도하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더니 “할렐루야니빠뻰치드라이버몽키스패너“하는 것을 들었습니다만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기도하면 마치 방언기도와 같이 기도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는 출입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저는 경험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할렐루야를 자주 외치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제 동기인 목사님이 한국에서 오셨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함께 유신독재를 항의하면서 신학교 다닐 때 머리를 빡빡 같이 깍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저를 안으면서 할렐루야 배 목사님! 했습니다. 그는 200 명 교회를 주님의 은혜로 3 년만에 1200 여명으로 성장시킨 목사입니다. 그는 말끝마다 할렐루야가 나왔습니다. 속으로 ”교회를 성장시킨 목사는 입에 할렐루야가 붙어다니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할렐루야!!를 외치는데 인색하면 교회가 성장을 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를 자주 외치는 교회는 성장하고 생기가 있습니다. 하루에 할렐루야 노래를 150 번 하면 365 일 동안 54750 번 합니다. 그러면 그 외치는 동안에 여러분의 영혼은 정화되고 여러분의 영혼은 언제나 주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를 자주 외치는 교회는 성장하고 생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차가 언제 움직입니까? 시동을 걸면서 움직입니다. 시동을 걸 때 점화플러그가 불을 붙여 주는 순간 엔진이 흡입 압축 폭발 배기 실린더의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이 힘을 크랭크샤우트를 통해서 바퀴에 전달해줄 때 바퀴가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할렐루야는 뭐하고 같으냐? 점화플러그에 불을 붙여주는 역할과 같습니다. 할렐루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에 불을 붙여주어 여러분의 영혼이 신나게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눈이 오면서 다시 추어질 기색이 보입니다만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저를 사랑하던 어떤 집사님이 저에게 보온병을 선물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성탄 카드에 ”할렐루야! 보온병과 같이 따뜻하신 목사님께 이 보온병을 드립니다“ 써 있었습니다. 여러분! 할렐루야로 노래하거나 할렐루야를 노래하면 우리의 영혼이 보온병과 같이 따뜻해집니다. 인생이 춥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낄 때 여러분은 할렐루야를 외치시기 바랍니다, 약 1 초도 안되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따뜻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할렐루야 찬양을 하게 되면 주님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찬송가 455 장에 보면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찬양하리!“ 이 찬송처럼 주님을 찬송할 때 우리의 영혼은 날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호흡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다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숨을 받습니다. 새로운 호흡을 받습니다. 새로운 영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늘 궁정에서 다시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새 호흡을 받아 성경에 새 노래로 찬양한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reunion 하여 다시 만날 때 찬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은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찬양하면서 가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시인이 시편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할렐루야로 마지막 종을 치면서 휘날레를 날렸듯이 여러분 역시 인생을 마지막 편 마지막 절을 할렐루야!로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종을 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연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이 올 때 유언을 합니다. 그 유언은 각각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할 말을 찾기보다는 평소에 멋있게 유언하고 죽을 말을 연습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 무슨 말을 하고 가시는 것이 좋은가? 사람이 죽으면 숨이 넘어가면서 침도 함께 넘어간다고 합니다. “꼴까닥” 내지는 “꼴깍” 침을 넘기면서 숨도 넘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숨졌다는 말을 할 때 속된 말로 “그 사람 꼴까닥했어”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미가 급한 사람은 “꼴까닥” 까지 못하고 그저 “꼴깍”하고 가신 분도 많습니다. 여러분! 숨이 넘어가기 전, 바로 이때야말로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셔야 할 때 인줄로 믿습니다. 숨이 넘어가기 전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할렐루야!하고 정리하고 가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시간이 좀 더 있을 것 같으면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와 찬양을 아울러 하고 가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렇게 할렐루야 하고 가시면 이것이 자녀들에게 엄청난 믿음의 교훈을 주게 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따따블로 강하게 됩니다. 그 믿음이 후손들에게 미치어 자기들도 죽을 때 할렐루야! 하고 가고 그 다음에도 할렐루야! 하고 가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이것이 도미노 현상을 이루어 세대와 세대 가운데 믿음이 전달되고 계승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 죽을 때 꼴까닥! 꼴깍!”만 하지 않고 ”할렐루야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인생을 마치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는 분은 손 한번 들어주십시오!
지금 많은 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손을 들면서 할렐루야 하면서 잘 있어라 믿음의 생활 잘해라 손을 흔들고 할렐루야 하시며 그렇게 꼭 가시기 바랍니다. 시편이 마지막 송영으로 할렐루야 외쳤습니다. 시편 시인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틀림없이 할렐루야 찬양하며 생을 멋있게 드라마틱하게 마쳤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할렐루야로 마감해야 하겠습니다. 작년엔가 나온 김진홍 목사님이 쓰신 책 중에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읽었는데 거기에 감동적인 장면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김진홍 씨는 계명대 철학과 강사였는데 그는 철학 사상에서 심취되어 있었습니다만 결정적으로 예수님에게로 돌아 선 turning point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님의 임종시 일어난 일입니다.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형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이었다. 아침에 세수하다가 대야에 그득할 만큼 피를 토하고 나더니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숨을 거두기 10 분전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온 얼굴에 신비스러운 미소가 떠오르더니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오늘 예수님 나라로 간다. 동생들, 나 때문에 그동안 고생들 많았지? 가서 예수님께 부탁드릴게. 동생들 뒤를 좀 돌봐달라고. 여기서는 못 살피지만 예수님 나라에 가서 갚도록 할게.”형님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나를 위해 찬송 한 곡 불러줄래?” 예 형님 무슨 찬송을 부를까요?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불러주렴! 우리 가족은 495 장을 불렀다. 형님은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을 듣다가 같이 따라 불렀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찬송가 3 절 여기까지 부르다가 형님은 마지막 숨을 쉬면서 넘치는 웃음으로 문 쪽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어 앉은 자세로 한마디 말을 남겼다. ”예수님이 마중 나오시는구나“ 형님의 임종은 내게 준 감동은 엄청났다.
저와 여러분도 오래지 않아 인생의 마지막 편, 마지막 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수명을 거의 다하는 시기가 마지막 편이라면 숨이 넘어가는 순간은 마지막 절이 될 것입니다. 시편시인은 자신의 시편을 마감하는 150 편 마지막 절인 6 절에 할렐루야로 마감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지막 편 마지막 절을 맞이하실 때 역시 할렐루야로 마감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내가 어떻게 마칠 것인가 예비해 놓으면 마음도 평안합니다. 잠시 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항상 찬송을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주가 부르면 영광 중에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며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저와 여러분은 하늘에서 천군천사와 함께 성도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한 영혼으로 unison으로 하늘의 보좌를 울려 퍼지는 웅장한 찬양에 합류하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 이제부터 호흡이 있는 동안 할렐루야 주님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아니 호흡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주님을 찬양하면서 살겠습니다. 저희들의 인생을 할렐루야의 삶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 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0:59:55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