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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관리자 2010-12-28 (화) 14:02 15년전 2123  

2001 년 8 월 26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 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이사야 41 장 18 절 - 20 절

제 목 :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교회 모든 성도들 위에 넘치도록 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제목은 “헤아리며 깨달으리라”는 본문 이사야 41 장 20 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헤아리며 무엇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헤아린다”는 무엇의 수를 셀 때 쓰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의 수를 센다는 말입니까?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하나하나씩 헤아려 봄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와 있는데 하나씩 손을 꼽아 보면서 세어봅시다. 첫째는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내가는 누구죠? 여호와 하나님이시죠. 자산이란 무엇입니까? 대머리산, 민둥산을 말합니다. 높은 산이지만 나무와 숲이 하나도 없는 산이 자산입니다. 높은 산 위에서 강이 흐르는 경우란 지극히 희박합니다. 그런데 나무와 숲이 없는 자산에는 강이 흐를 수도 없고 흐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산에 크신 능력으로 강을 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속 헤아려 봅시다. 둘째,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우리나라는 골짜기 가운데 샘의 근원이 간혹 있습니다만 이스라엘은 골짜기 가운데 샘이 흐르지 않습니다. 나무와 숲이 이따금씩 있는 평지에도 샘이 없어서 서로 샘을 한번 찾게 되면 부족들이 서로 갖겠다고 싸움을 할 정도입니다. 그것도 자산과 자산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에서 샘이 나게 하는 것은 緣木求魚 나무 위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써 골짜기에서 샘이 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헤아려 봅시다.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광야에서 물이 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목마름만 경험할 뿐입니다. 어제 밤 저는 최고로 좋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물은 무척 맑았습니다. 꿈에서. 근데 오늘 물기 마른 황량한 벌판에 못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못이란 영어번역을 보면 풀(pool)입니다. 수영장과 같은 물이 넘치는 곳을 말합니다. 만일 광야에 수영할 수 있는 못이 있다면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것입니다. 넷째로 “마른 땅으로 샘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그렇습니다. 마른 땅이 마른 땅으로 끝난다면 거기에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부동산적인 가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그러나 마른 땅이라도 샘의 줄기를 찾으면 그때부터 땅의 값어치는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겉보기에는 마른 땅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땅을 깊숙이 파보면 맑은 물이 콸콸 솟아오르는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섯째,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저는 어느 분인가 오미자차 한 잔을 대접받으면서 오미자란 글자 그대로 다섯 가지 맛, “시고 달고 쓰고 맵고 짜고”하는 맛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깊게 음미하면서 마셔보니 정말 다섯 가지 맛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백향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백향목이니까 백가지 향이 나는 나무일 것입니다. 백가지 향이 난다면 나무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는 품질의 나무입니다. 싯딤나무도 나무로서는 백향목과 같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나무요 화석류와 들감람나무 역시 같은 품위있는 나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광야에 이런 나무들을 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심으시기만 하고 끝나겠습니까? 그것들이 광야에서 잘 자라도록 그 광야에 샘의 근원을 두시지 않겠습니까? 여섯째로 헤아려 봅시다.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저는 사막은 여러 곳 가보았습니다만 사막에 무슨 나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가끔 있다면 햇빛을 견디지 못하여 죽은 채로 있는 몇몇 잡풀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많습니다만 우리나라는 물도 많고 토양의 질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것이지 사막에는 주변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는 그런 나무들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 사막에 그런 나무를 심고 자라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일은 여섯 가지입니다만 그것뿐이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스라엘이라는 환경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까 이 모든 일을 능히 하실 수 있고 하셨습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이스라엘에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까? 17 절에 보면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은 가만히 그렇게 말씀하신 내면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무척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듭하여 떠났지만, 충분히 버릴 만한 사유로 넘쳐 있는데도 그들이 찾아오면 여호와 하나님이 응답하겠고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은 “아직도 그대 이스라엘은 내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1 장 20 절에서 “헤아리며 깨달으리라”는 바로 그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스라엘이 하나하나씩 헤아리면서 “아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아직도 사랑하고 계시는구나!”를 깨달으리라는 것입니다.

보통 목사에게 매주일 가장 큰짐은 역시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기가 막힌 설교말씀을 목사의 영혼 속에 팩시밀리로 보내주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굉장히 선한 일을 천사들에게 시키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주 예배를 마치고 그리고 목사님 댁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음 주 주일 낮 예배에는 무슨 말씀을 할까?를 골똘히 궁리하면서 갔습니다. 한 손으로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조카 딸 아이 - 이름이 예수님의 은혜의 첫글자를 따서 지은 예은이인데 -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오직 다음 주 말씀과 본문을 무엇으로 할까를 생각하면서 갔습니다. 딸은 예은이와 매 주일 만나서 영어공부를 시키는데 오늘은 과일들의 이름을 공부한다고 것이었습니다. 공부가 다른 것이겠습니까? 여러 과일들의 이름을 영어로 발음해 보는 것입니다. 문득 그러자 저 역시 그동안 제가 여기 가나안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에게 받은 과일들과 여러 열매들을 한번 하나씩 하나씩 헤아려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포도, 수박, 참외, 딸기, 낑깡, 토마토, 감자, 고구마, 무화과, 사과, 바나나, 양파, 고추, 콩나물, 꼬들배기 김치, 묵은 김치, 배추김치, 총각김치 주-욱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렇게 헤아려 보다가 꼭 받은 것이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꿀, 와이셔츠, 양복 및 한복, 굉장히 큰 성경책 등 넘치게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순간에 말씀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 삶 속에 맺게 하시는 열매를 세어보는 일이 중요하겠구나 하면서 떠올린 본문이 오늘 이사야 41 장 18 절에서 20 절 말씀입니다.

가만히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 삶의 주변에 예수님의 은혜로 주신 삶의 열매들로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 장 14 절에 보면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 삶의 안밖에서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함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만 믿음이란 어떤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특별한 안경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눈이란 무척 소중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도 범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보이지 않던 사물의 배후에 있는 어떤 힘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언젠가 투명인간을 다루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투명인간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어떤 안경을 쓰면 투명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단지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 배후에 역사하시는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은 한 사건 속에서도 “음! 있을 수 있는 일이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으흠! 우리 하나님께서 다녀가셨구나!” “우리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은 손으로 TOUCH 하셨구나!”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보면서도 “예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지!” 그렇게 받아드리고 감사하며 시련이 다가오면 우리 예수님이 날 사랑하시어 또 무슨 큰 은혜를 이 시련을 통하여 주시려고 하는가? 물음을 묻게 되고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떤 즐거움이 생깁니다. 어떤 즐거움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일들이 너무도 많음을 알게 되고 그것들을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떤 안경을 쓰게 되니까 투명인간의 활동을 금방 보게 되듯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예수님께서 은혜로 나에게 해주신 일들, 베풀어 주신 일들이 너무도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헤아려 보는 즐거움을 가지게 됩니다. 하늘의 별들과 바닷가의 모래를 어떻게 다 세겠습니까? 그러나 누나와 함께 별 하나 너 하나 나 하나 별 둘 너 둘 나 둘 별 셋 너 셋 나 셋 헤아리는 즐거움이 보통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세면서 사십니까? 무엇을 세는 재미로 사십니까? 통장에 쌓여 가는 예금계좌가 하나둘씩 늘어가는 재미로 사십니까? 아니면 오늘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해 놓은 많은 일들을 세어보면서 보람으로 사십니까? 아니면 하루껏 번 돈을 침을 발라 세면서 넘기는 재미로 사십니까? 아니면 하루하루 눈에 띄게 늘어나는 흰머리 때문에 근심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사십니까? 여러분은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며 사십니까? 근심으로 세십니까? 아니면 기쁨으로 세십니까? 이런 시가 있습니다. <그대 동산을 떨어지는 잎새로 세지 말고 꽃으로 세십시오. 그대의 날들을 구름꼈던 날로 세지 말고 황금시대로 세십시오. 그대의 밤을 어두운 구석으로 세지 말고 별들로 세십시오. 그대의 삶을 흘렸던 눈물로 세지 말고 웃음으로 세십시오. 그대의 과거를 힘겨웠던 고생으로 세지 말고 감사로 세십시오. 그대의 미래를 미지의 불안으로 세지 말고 소망으로 세십시오. 그대의 업적을 모아 놓은 분량으로 세지 말고 보람으로 세십시오 그대의 성공을 우연한 요행으로 세지 말고 은총으로 세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에서 셀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부정적인 것들로 셀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셀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무엇보다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대의 성공을 요행으로 세지 말고 은총으로 세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세는 것은 침 발라 돈을 세는 재미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한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베풀어주신 은혜와 은총을 한번 세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의 언저리에 중심부와 주변부에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자 우리가 지나온 인생을 조용히 비디오 필름을 처음부터 돌려 보듯이 한번 슬로비디오로 돌려 봅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큰 울음을 울면서 태어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날 이 때 까지 살아온 동안 하나님께서 바로 내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과 은총을 아주 적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생각나는데로 번호를 붙여가며 적어 보자는 일입니다.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수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해버릴까 하는 자포자기 심정이 치솟아 오를 때 어느 존경하는 분의 권면으로 나에게 있는 긍정적인 면들, 적극적인 면들을 오른 쪽에 적고 도전이 부닥친 일들을 왼쪽에 적어 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나에게 지금 있는 것들이 나에게서 빼앗아 간 것들보다는 더 많았던 것을 경험하고 했다고 합니다. 한번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들을 한번 주욱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골짜기에 샘물이 나게 한 것들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사막과 같은 내 인생에 오아시스가 되는 많은 경험을 저와 여러분은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가에서도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일을 깨닫고 찬송하지 않습니까?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나의 앞의 반석에서 샘물나게 하시네 찬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만히 저와 여러분이 지나온 삶을 믿음으로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해 골짜기 속에서 샘이 나게 하신 일이 나의 앞의 반석에서 샘이 나게 하신 일들이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조용히 믿음의 눈을 크게 떠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어제와 오늘 하신 일들을 조용히 헤아려 보는 일입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조용히 열거해 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의 열매들을 자신에게 얘기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과거에 수도 없이 하나님께서 삶 속에 강을 열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끼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삶의 골짜기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이 샘이 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지친 삶 속에 힘들어 할 때 헤일 수 없이 광야로 못이 되게 하셨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마른 땅에서 풍성한 샘의 근원이 되셔서 삶이 기쁜 샘이 되고 복된 안식이 흘러 넘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의 광야에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아름다운 과실나무를 이곳저곳에 너무도 많이 심으셨습니다. 우리가 셈하자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끼시고 보살피셔서 하셨던 일을 한개씩 한개씩 기억해 내고 적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헤아리며 깨달으리라”입니다.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입니까? 만일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베푸신 일들을 하나하나씩 적어가는 동안에 여러분은 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작시자인 F. M. Lehman이 찬송가 404 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작사작곡하였습니다. 3 절에 보면 찬송의 절정이 나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늘 전체가 양피지로 펼쳐져 있고 세상의 모든 갈대와 나뭇가지가 펜이고 대양의 모든 물이 잉크라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능숙한 서기관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혜와 사랑은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바다의 모래는 셀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늘의 별들은 셀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베푸신 그 은혜는 다 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옛날옛적 토방마루에 앉아 누나와 함께 별 하나 너 하나 나 하난 별 둘 너 둘 나 둘을 헤아리는 그 옛 추억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은혜를 헤아리는 동안에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께서 날 이처럼 사랑하사 셀 수 없는 은혜를 내려 주셨구나!“ 헤아리며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들의 배후에 있는 장막을 걷우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고즈넉한 하나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수 안치환을 좋아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9 여년 전에 좋아하기에 그와 만나 함께 사이다 잔을 함께 기울인 적도 있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는 이런 노래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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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대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대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에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대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이 노래에서 작시자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그 이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구름이든지 시인이든지 하늘이든지 되겠다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되겠다 그러면서 묻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이런 나의 마음을! 정확하게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우리를 향하여 이 노래를 지금 이사야 41 장 18 절과 20 절에서 지금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무슨 불가능한 일이라도 그대 너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겠다 너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겠다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서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나게 하며 마른 땅에 샘의 근원이 되게 하는 그 무슨 일이라도 너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한 이것들을 너희가 하나하나씩 헤아리면서 내가 너희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내 마음을 너희가 깨달았으면 좋겠다(I really want you to know how much I love you!) 이토록 간절한 바램으로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이 사랑의 노래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이런 나의 사랑을“ 우리를 향하여 지금도 노래 부르고 계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는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당연한 것인양 받았고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의 자산에 강을 열으시고 골짜기에 샘물나게 하신 그 은혜를 어찌 저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앞으로 이 은혜를 세면서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찬양하고 살겠습니다. 저희가 저희를 향한 주님의 그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에게 더욱 믿음 주시어 그 믿음의 눈으로 주님이 저희를 사랑하시어 행하신 놀라우신 일들을 헤아리면서 감사하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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