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년 12 월 9 일(주일) 오후 7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성경본문 : 요한계시록 22 장 20 절 - 21 절
제 목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계시록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 하늘의 비밀을 하나씩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이 계시는 사도 요한이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요한에게 일러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계시록 21 장 5 절 후반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22 장 6 절에도 있습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즉 하나님께서 계시를 하시면서 그 계시가 신실하고 참되다고 된 말씀을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 한번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연거푸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 22 장 12 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면 무서운 심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이 오시어서 상을 주시기도 하고 각 사람에게 그 일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계시록 마지막에 있는 예언의 말씀인데 이렇게 끝납니다. 20 절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리고 21 절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으로 신구약성경의 대미가 장식됩니다. 예수님의 약속과 사도 요한의 아멘의 응답과 축도로 끝납니다. 역시 성경이니 성경답게 은혜롭게 끝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한 절 한절을 깊이 음미하면서 보겠습니다. 20 절 상반절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이것들이란 요한에게 주신 계시입니다. 역사의 미래에 대하여 이루어질 일들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 장 1 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로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바로 이 예언에서 이것들이란 계시록 1 장부터 22 장에 이르는 계시 전체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20 절은 그 문맥이 16 절에서부터 이어집니다만 16 절에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즉 20 절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 시간 20 절을 집중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20 절 중반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약속을 다시 셋으로 쪼개어 좀더 세밀하게 살펴보십시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영어의 인사법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good-bye, 혹은 bye-bye입니다. 이 인사는 ”잘 가거라!, 혹은 안녕“ 정도로 번역됩니다. 다시 만나자는 기약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인사법에 See you again!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우리 인사법과 같습니다. 또 보자! 다시 만나자! 하면서 인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실 때 즉 승천하실 때 bye-bye 하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안녕하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가실 때 또 보자!하고 가셨습니다. 마태복음 28 장에 보면 ”다시 만나자!“하고 가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오신다고 약속하시면 오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는 내가 진실로 오리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내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진실로“라는 표현은 약속의 진실성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그냥 약속하셨다고 해도 그 약속은 신실하실텐데 진실이라는 보증이 되는 말씀이 있으니 예수님의 재림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왜 진실로 진실로 두 번씩 강조하여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강조하셨습니다. 하두 인간들이 거짓과 불신 속에 사로잡혀 있어서 또 믿지 않을까봐 우리 예수님은 “진실로“라는 부사를 첨가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허튼 소리나 헛소리를 하실 분이 결코 아닙니다. “진실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진실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서도 그 약속을 헌신짝과 같이 내버리지만 우리 예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사람들은 진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진실 아닌 것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쉽사리 사기를 치지만 우리 하나님은 사기치시거나 허튼소리를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마태복음 24 장 35 절에 보면 예수님은 역사의 종말과 자신의 재림을 예언하시면서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니 우리 예수님의 말씀은 천지가 변해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속히 오리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이후에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속히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속히 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속히 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신학적인 용어로는 “재림의 지연”, “종말의 역사화”라고 불렀습니다. 왜 재림이 지연될까? 히브리서 기자도 요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하기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10:37)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저와 여러분의 의문이 있습니다. 속히 오시고 지체하지 아니하시겠다고 했는데 왜 2000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똑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될 때 사람들이 속히라는 말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을 예견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 장 8 절에서 10 절에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하는데 많은 이들이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길이 인내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오시는 때, 이 세상 끝날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가까이 오는 징조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아기를 밴 여인이 해산할 기한을 짐작할 수 있듯이 재림의 날도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시는 때가 가까이 오고 있는 징조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성경전체를 조망하여 보면 예수님이 오시는 때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징조(seven sign)가 있게 됩니다. 이 징조는 특별히 마태복음 24 장과 마가복음 13 장 그리고 누가복음 17 장 그리고 구약성경 곳곳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며 세상 끝 즉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징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3)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 징조는 무엇일까? 과연 오늘의 때가 세상 끝날, 예수님 오시는 때와 가까운지 한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거짓 선지자들과 자칭 예수라는 자들이 날뛰고 이단들이 기승을 부릴 때가 오면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이 왔구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24 장 11 절에 나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오늘날이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예수 형님이다”, “내가 재림 예수다”, “내가 그리스도다” 주장하는 이단들이 오늘날 특별히 20 세기말에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한 문선명이라는 집단이 자신을 예수가 형님이라고 모셨다는 등 해괴한 주장을 했습니다. 둘째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때 바로 예수님이 가까이 오시는 때입니다. 지난 세기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명이 한꺼번에 죽었으며 우리 민족도 같은 민족끼리 싸워 약 500 만명이 죽었습니다. 인류 역사이래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유례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팔레스틴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한 나라를 몰살시켰습니다. 보도가 안되어서 그렇지 지금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수십만명이 죽었으며 탈레반 정권은 항복을 했습니다. 미국은 테러전쟁을 이제 이라크로 확산할 조짐이 보입니다. 셋째는 기근과 지진입니다. 마태복음 24 장 7 절에 보면 그 날이 오는 징조로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쌀이 남아서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서 걱정이지만 아프리카는 식량이 없어서 수천만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에 2 천만불하는 무기로 수십 차례 폭격을 하고 지금 아프리카엔 한 해에 약 1500 만명의 어린이들이 굶거나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지구상 각처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지진과 화산 폭발이 유난히 심했습니다. 자연계와 지질의 변동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생태계의 위기는 전지구적 재난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에이즈 등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또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아프리카 나라는 국민의 5-60 %가 에이즈 보균자를 가진 나라도 있습니다. 넷째는 불법이 성행하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24 장 12 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법이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도 국제법을 지키지 않고 UN 법을 어겨가면서 폭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법이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가장 법이 풍성한 시대요 가장 법이 많이 어겨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달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놓고 있으며 유전자 공학은 생명을 만들어내는데 인간의 세포 하나로 인간을 복제해 내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법을 인간은 과학기술로 깨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식어가고 있으며 부부간의 사랑도 식어가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가장 무성한 가운데 실질적인 사랑의 뜨거움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예수님의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4 장 32 절과 33 절을 읽어 봅시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성서적으로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칩니다. 주후 70 년에 성전은 불타고 예루살렘 성의 파괴와 함께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동향을 살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고 국가를 이룬 것은 잎사귀를 낸 무화과나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섯째는 다니엘 12 장 4 절에 있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끝 날에 관하여 예언을 합니다만 그 끝 날의 징조 가운데 하나로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통의 발달과 지식과 정보의 폭발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오늘날 초음속 비행기의 발달과 교통의 발달은 그 유례가 없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여도 여행에 많은 날들이 소요되었으나 지금은 서울에서 로스 안젤리스 까지 가는데 하루 24 시간의 반도 안걸립니다. 교통의 발달뿐만 아니라 오늘날 인터넷을 통하여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복음이 만국에 전하여질 때입니다. 마태복음 24 장 14 절에 보면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북한이나 아프리카 오지에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일곱 개의 징조들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때는 위에서 언급한 일곱 개의 징조들을 모두 다 충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가 나오려면 열 달이 차야 나오듯이 이상의 일곱 개의 징조들이 20 세기 중반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21 세기 초엽 이 모든 징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에 언급한 세상 끝에 나타날 징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나 아하 이런 징조들을 보아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인자가 문 앞에까지 오신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하! 이제 주님 오실 날이 우리 세대에 무척 가까워지고 있구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어느 날 E-mail로 내가 이제 갈 것이라는 재림할 것이라는 전자우편을 보내왔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응답할 것입니까? 먼저 예수님과 하등의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반응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오건 안오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그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작품에 나오는 서글픈 에피소드 한 토막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다시 오신 주님을 문밖으로 추방하면서 저들이 내뱉은 마지막 막 말은, "어서 꺼지시오. 두 번 다시 오지 마시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예수님에 대하여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두 가지의 응답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예수님! 지금 오시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아직 회개할 것도 많고 제 삶의 방은 너무도 어질러져 있어서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도 바로 들어오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저는 지금 할 일이 많습니다. 지금 오시지 말고 제가 준비가 되었을 때 오십시오! 주님! 조금 있다 제가 회개도 하고 제가 믿음에 굳게 서고 난 다음에 오시옵소서! 그렇게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제가 이 세상에서 누릴 즐거움도 아직 맘껏 누려보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 조금만 기다리셨다가 나중에 오십시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오시겠다는데 예수님! 지금 제가 소도 사야하고 밭도 갈아야 하니까 오늘 오시지 말고 내일이나 모래쯤 오시면 안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그렇게 대답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바쁩니까? 해야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해도 그 바쁘고 분주함 때문에 일에 쫓겨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심방을 다니다 보면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으로 전화합니다. “아빠와 엄마가 지금 심방중인데 되도록 빨리 갈게!”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빨리 오세요!” 합니다. 어떤 때는 교통 소통이 잘 되어 약속한대로 빨리 갈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심방 중에 대화가 지속되어 좀 늦게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집 앞에서 벨을 누르기도 전에 아이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어떻게 지금 오는 줄 알았니? 그러면 “그냥 아빠가 오실 것 같았어요!” 말합니다.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기에 엘리베이터에 온갖 귀를 기울여 기다리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주욱 올라오면 아이는 문을 열고 나옵니다. 사랑하게 되면 기다리고 사랑하는 그 사람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저는 어제그제 문화예술회관에서 오시기로 하신 집사님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이 공연시각이 다 되었는데도 한 아가씨가 꽃다발을 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각이 다 되었는데 저기 멀리서 한 젊은이가 뛰어왔고 그를 만나자 왜 늦었느냐 말도 없이 서로 손을 잡고 다정하게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쓴 사랑의 서신, 요한 123서를 알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통하여 요한이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했기에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을 때, 바로 지체없이 사도 요한은 기쁨에 넘쳐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즉시로 응답한 것입니다.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 만나는 것이 삶의 영순위였고 그 이상 중요한 일이 없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나타나서 내가 속히 오겠다고 말씀했을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렇게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의 대답이 애매모호하거나 주님 조금 더 기다렸다가 오십시오! 그렇게 말한다면 여러분과 예수님과의 사랑에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2000 년전에 오셨던 초림과 이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재림 사이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오실 날이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중요한 관심은 언제, 이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이 어느 때 재림하시고 어느 때 세상의 끝날 심판이 될지라도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도 요한과 같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오시기를 기다리는 아멘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 주님! 저희는 은총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마음의 방을 정갈하게 정리하고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 주님! 저희는 사랑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마음 한 가운데 촛불을 밝혀놓고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 주님 저희는 주님 평강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마음에 그윽한 노래와 찬미와 함께 주님을 기다립니다. 오 주님 저희가 생명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희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이 시간 저희 마음 한 가운데 좌정하셔서 저희의 범사를 주관하여 주옵시고 저희의 일상을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 한 가운데 오시어 저희 영혼의 촛대에 주님생명의 불을 붙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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