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6 월 9 일(주일) 오후 7 시 반 광주 가나안 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말씀 : 시편 105 편 1 절 - 3 절
제 목 : 감사기도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모든 이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주일밤에는 주로 기도에 대해서 공부해 왔습니다. 합심기도, 중보기도, 환란 가운데 기도, 기도하는 습관, 서원기도, 묵상기도에 이어 오늘은 감사기도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5 편 1 절에서부터 보겠습니다. 다함께 1 절을 읽읍시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여기서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렇게 105 편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에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가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부모님께 감사할 때는 부모님 감사합니다 합니다. 집사님이나 권사님께 감사할 때는 집사님 혹은 권사님 감사합니다. 먼저 이름이나 직책을 부르고 감사합니다 보통 그렇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 다음에 바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제일 먼저 바로 간구를 위한 기도나 회개기도로 들어가기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면 좋습니다. 어떤 이는 회개가 먼저고 감사가 나중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어느 것이 먼저이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만은 그러나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것이고 회개는 인간의 잘못에 관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것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영적 욕심으로 충만해 있는 이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자 마자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요것도 주시고 하면서 “주시옵소서”하는 간구기도부터 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순서가 뒤죽박죽되었다고 해도 그 기도를 기뻐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린 하나님께 예의를 갖추어 기도드림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감사기도를 드림이 합당합니다. 또한 다급할 때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부르짖으면서 어려움에서 건져달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하나님! 이름까지도 생략하고 기도드릴 때도 있습니다만 보통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해야 제대로 된 순서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묵상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다리며 그 다음에 이름을 부르며 그 다음에 감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 잘못을 회개하고 그 다음에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그러므로 보통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하는 기도순서가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할 때 무엇을 감사할 것입니까? 오늘 시편 105 편 1 절과 2 절에 나와 있습니다. 1 절에는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 지어다” 2 절 후반절에는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즉 행사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 일르 기사라고 합니다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하신 행사와 즉 원대하신 기사에 대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편이 시작될 때 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하면서 감격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셔서 행하신 일이 너무도 많고 기이한 기사가 너무도 많이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장막에 나아가서 자신을 위하여 해 주신 일을 하나씩 하나씩 열거하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106 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송축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편인 시편 107 편도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다윗에게 행하신 여호와의 기사와 행사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자기가 애시당초부터 자기가 세자로 책봉되어 그 다음의 왕으로 예정된 가운데 왕위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 왕 다음 대에 왕이 될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한 시골깡촌의 무명한 목동이었는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어 왕으로 삼아주신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신 행사로 보았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보면서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이라고 고백하면서 시편 전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실 다윗만 그렇게 왕이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왕이 되거나 좋은 자리에 앉거나 나라가 번창하거나 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는데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잘되면 다 자기가 잘나서 된 것이라고 그렇게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실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땀흘리면서 뿌려 놓은 씨앗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내 가문이 뼈대가 있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나의 인격이 출중하기 때문에, 내가 덕망과 학문이 높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분명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알면서 “감사는 이하생략”(하나님 감사는 이하생략하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익스피어가 지은 희곡 “리어왕”에 보면 리어왕이 노년이 되어 딸의 배신을 받았을 때, 혼자서 이렇게 독백을 합니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한동안 무대 위에서 뒤뚱거리다가는 곧 소문조차 들을 수 없게 되는 가련한 배우인 것이다......감사할 줄 모르는 자녀를 가지는 것은 뱀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것을 가지는 것과 같도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여러 오만가지 은혜로 그 인생을 아름답게 색칠해주었는데 인간이 그 은혜를 모르고 살 때 “당신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뭐가 있어!”할 때 하나님은 참으로 마음이 심히 불편하시고 언짢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신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배고플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모든 외적으로부터도 구출하여 주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귀한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하지 않고 원망만 하고 불평만 하였습니다. 민수기 21 장 4 절에서 6 절을 봅시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급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 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광야에는 불뱀들이 많았습니다. 한번 물리게 되면 고열이 나고 몸이 붓다가 고통 가운데 죽어가게 됩니다. 불뱀이 물면 사막의 전갈이 쏘인 것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불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지 않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기는커녕 불평과 원망을 하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불평과 원망하는 자에게 보내시어 그 불평분자들을 물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보통 그러지 않습니까? 회사에 가보면 부장이 있고 과장이 있고 계장이 있고 대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대리가 여름에 매출할 신상품에 대한 도안을 창안했는데 이에 대한 결재가 사장에게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대리는 그 신상품도안서를 가지고 사장 앞에서 가지고 가서 설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설명이 다 끝나고 사장은 너무도 좋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자 대리는 그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지 아니하고 부장님이 저에게 방향을 주신대로 충실히 했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인터폰으로 부장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부장에게 칭찬을 합니다. 이번 기안은 너무도 훌륭했어! 이 상품이 시장을 휘어 잡을 거야, 그런데 김 대리가 그러는데 이번 일을 이 부장이 주도하여 추진하였다면서! 하면서 부장을 칭찬해 줍니다. 그러자 부장은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실상 김대리가 다 기안한 것인데 공을 자기에게 돌리다니 김 대리가 너무도 고맙고 기특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장은 다음번 정기인사를 할 때 김대리를 최고점수를 주었고 그 덕으로 김대리는 과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아니하고 공을 상대방으로 돌리면 상대방은 그것을 듣고 너무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공치사 듣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옆 집의 부모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습니다. 친척도 없는지라 세 아이를 맡아서 자기 아이 둘과 도합 다섯을 마치 자기 아이와 같이 키웠습니다. 낳은 자식이 아니라 이웃 집 자식이었지만 기르다 보니까 정이 들고 해서 결국 자기 자식이나 진배없이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들이 장성하여 다 외지에 가서 사는데 그럭저럭 삽니다. 세 아이들은 명절날과 어머니 생일날에는 꼭 모여서 자기들이 그렇게 성장한 것은 어머니 때문이라고 하면서 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그 공치사를 들을 때마다 비록 말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흘려 온 모든 땀이 일시에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도 그러실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은덕을 알고 그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마음이 뿌듯해지고 기쁨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세 아이들이 살면서 어머니를 한번도 들여다 보지 않고 각각 그런대로 살면서도 전화 한통 주지도 않고 등을 돌리며 살아간다면 세 아이를 자식으로 삼아 설리설리 키운 지난 날을 생각하면서 내가 왜 그때 그 독사새끼들과 같은 저것들을 키웠을꼬! 하면서 한탄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하늘 아버지도 그러십니다. 자신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눈여겨보시고 은혜를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6~30).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적용됩니다. 무릇 감사하는 자는 더욱 받아 더 풍족하게 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순환에는 악순환과 선순환이 있습니다. 악순환이란 어떤 나쁜 현상이 자꾸 되풀이되는 일입니다.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가지 일이 서로 나쁜 영향을 주고받으며 거듭 악화되어 가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선순환이란 반대를 말합니다. 선순환의 예를 들어 봅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즉시 감사하며 찬송합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인생에게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하나님의 일이라면 더욱 헌신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눈여겨 보시고 이전의 은혜보다는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은혜와 감사의 선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샐리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샐리의 법칙이란 모든 일이 마치 시나리오가 그렇게 된 것처럼 너무도 잘 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장거리를 여행하는데 어느 도시를 통과하는데 신호등 13 개를 지나는데도 계속 푸른 신호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뒤에 있는 후배 목사가 선배님 이 차 안에 목사 셋이 탔는데 어여삐 보시고 교통소통을 잘 시켜주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랬습니다. 이렇게 샐리의 법칙에 의하면 모든 것이 하나같이 연속적으로 잘됩니다. 머피의 법칙은 그 반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샐리의 법칙이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에게 개입하시어 안될 것도 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잘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머피의 법칙이 이루어져서 될 것도 안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꼭 나에게 좋은 일만 생기고 나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 중에서 범사에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영적 시력은 더욱 높아져서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일까지도 찾아내어 감사하게 됩니다. 믿음이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믿음이란 다른 눈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독특한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되면 내 덕이고 안되면 네 탓으로 돌리는데 비해서 믿음의 사람들은 잘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서 감사 드리고 안되거나 못되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깨우치려는 어떤 뜻이 있는 것으로 믿어 그런 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추영수라는 믿음의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발 앞은 / 천 길 낭떠러지였습니다만 / 오! 주님 / 여기 외나무다리를 주셔서 / 감사합니다. 가슴은 / 사정없이 겁에 질려 굳었습니다만 / 오! 주님 / 외나무다리를 건너려는 의지함을 주셔서 / 감사합니다. 현기증으로 눈은 / 장님이 되었습니다만 / 오! 주님 / 이 어려운 아픔을 감사할 수 있게 하셔서 / 감사합니다. 제 힘으로는 도저히 /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만 / 오! 주님 /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는 / 큰 평화를 감사합니다.
추 시인은 낭떠러지가 있는데 외나무다리를 주신 것을 감사하되 그 가운데서도 네 가지를 찾아내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면 불평할 것 뿐인데도 거기서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감탄하시고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떤 익명의 시인이 시로 쓴 감사기도가 있습니다. 이 시인도 어떤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감사할 것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들어 봅시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 그것은 주님과 가까와지는 기회입니다 /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 주심도 감사합니다 /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그래서 인간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먹고사는데 힘겨웁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때때로 허탈하고 허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영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요 /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 하느님의 의가 분명히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감사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얘기를 읽었습니다. “가난한 학생이 여행 중 싸구려 여관에 투숙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누가 자신의 신발을 훔쳐갔습니다. 그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하필 가난한 자기의 신발을 훔쳐가게 내버려두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여관 주인은 미안하다며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주일이니 교회에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못해 따라가진 했지만 오로지 신발 생각만 났습니다.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저 앞에 앉아 예배드리는 어떤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부르는가 하면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자세히 바라보다가 학생은 깜짝 놀랐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발 신을 발도 없는 사람이 저토록 감사와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데 나는 신발 한 켤레를 잃어버렸다고 원망하고 투정을 부렸구나!" 그리고 그는 회개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훗날 독일의 재무 장관이 된 마르틴 바덴입니다.
사람들은 감사기도를 드릴 때 감사할 것이 없으면 감사기도를 생략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이루신 행사가 눈에 뛰게 됩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해 놓으신 일들이 보이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얼굴을 자세히 본 것 같지 않습니다. 눈에 무엇이 끼었나를 주로 보지만 언젠가 거울을 보면서 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많이 그것도 파싹 늙었구나! 그러면서 제 왼쪽 눈 아래에 점이 세 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전에는 얼굴에 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지났는데 애정을 가지고 보니까 점들이 보였습니다. 점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들은 마치 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도 많습니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고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들이 마치 빙산이 가라앉아 있는 부분과 같이 많습니다. 기도할 때는 감사기도부터 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내가 많이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도 그만큼 풍성해 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감사기도를 할 뿐 아니라 1 절 후반절에 보면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하였고 2 절 후반절에는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하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감사기도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하신 일, 기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은혜 받은 것이 있으면 자기 혼자만 느끼며 감사하지 말고 “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랑하고 선전하고 다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놀라우신 일들을 널리 홍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널리 드러나게 하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만방에 자랑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기사와 행사를 만만 중에 알게 하려고 시를 써서 널리 알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그러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기만 알고 자기만 좋아하고 그쳐버리는데 그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그것을 알려야 합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야 합니다. 심방 가면 어떤 집사님이 “하나님이 날 살려주셨서라우! 하면서 여기 내가 수술한 자국을 보시오. 내가 시한부 생명을 선포 받아 6 개월만 살아있을 것인데 34 년을 더 살았어라우!”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면서 살으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춤을 추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요컨대 다우시은 세가지를 말했습니다. 감사기도, 감사선전, 감사찬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첫째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둘째로 하나님께 은혜 받은 일을 여러사람에게 자랑하여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만민 중에 알게 하여 자랑하고 선전하고 셋째로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찬양을 돌리는 일입니다.
가만히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언저리와 중심부에 행하신 일들을 조용히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 형태로 보이지 않은 형태로 존재함이 보이지 않습니까? 다윗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까운 곳에서 일상적 생활 속에서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견할 때마다 하나님께 빼먹지 말고 감사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발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행하신 일들을 만민들이 알도록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늘 좋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러분의 삶에 오셔서 여러분의 삶 속에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시어 바로 여러분의 삶속에 은혜와 감사 더 큰 은혜와 더 큰 감사의 선 순환이 일어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저희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저희 주변에는 너무도 주신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저희의 일상생활에서 늘 감사하면서 기도하면서 찬양하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