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2 월 10 일(주일) 오후 7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빌립보서 4 장 6 절 - 7 절
제 목 :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할렐루야! 주님의 크신 은총이 여러분 위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의 은총이 오늘 이 예배에 참예한 모든 성도들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유럽 땅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주후 52 년경 사도 바울이 제 2 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여 빌립보로 건너갔습니다. 거기에서 자주 장사인 루디아와 한 간수의 집안이 복음을 믿었는데 그것이 빌립보 교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이 자신에게 그토록 사랑을 베푼 사랑스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입니다. 오늘 본문을 쪼개서 보자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세 가지 영적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권면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염려란 일반적인 의미로 일상생활의 고달픔과 관련된 모든 일입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에 있었고 빌립보 성도들은 감옥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감옥 안에 있어 염려해야할 바울 사도가 자유의 몸인 빌립보 성도들에게 염려하지 말하고 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임마누엘 함께 계시니 감옥에 있지만 그는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은 염려할 것이 많았습니다. 유럽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도 하였겠지만 바울 사도가 떠나간 후에 앞으로 어떻게될 것인가 많은 염려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 있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을까? 아마도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서 이 말씀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4 장 1 절 말씀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염려나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있을 때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그 근심을 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에도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바울 사도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기 때문에 그 다음날 처형될는지 그렇지 않을는지 그런데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옥중에 있었지만 염려와 근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믿음을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도 임마누엘 신앙을 심어주고 나누어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근심과 염려와 불안에 휩쌓여 있습니다. 옛 사람이 쓴 시 한수를 들어봅시다. <마음 속에 맺힌 시름 첩첩히 쌓여 있어 짓나니 한숨이요 흐르나니 눈물이라 인생은 유한한데 시름도 그지없다> 염려와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고 인생 안에서 평안함을 소멸시키고 위기를 증대시켜 놓습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현대인들 중에 다섯에 하나는 정신병자이거나 신경증 환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근심과 걱정과 염려를 혼자 다 하고 그 짐을 다 지고 삽니다. 그러기에 정신에 질환이 생기고 남에게도 화를 자주 내거나 분노를 그치지 아니합니다. 너무도 많은 염려와 근심을 하고 삽니다. 염려가 많을수록 믿음이 적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많을수록 염려가 적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냐? 시편 3 편 6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왜 그렇습니까? 시편 3 편 5 절에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붙드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염려되고 무엇이 근심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염려나 근심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노래를 아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찬송가에도 있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내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다 하나님께 아뢸 수 있으니 주께서 내 근심 모두 맡으시니 걱정하고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모든 일을 할 때 먼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와 간구”는 같은 뜻인데 두 번 반복되었으므로 강조법입니다. 모든 일을 하기 전에 기도할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3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1 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2 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3 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기도했습니다. 그는 전도를 하면서도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했고 기도로 감사함으로 마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로 시작한 전도여행의 결과는 너무도 풍성했습니다. 오늘날 세계로 복음이 전해진 것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와 유럽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기도하면서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성녀 마더 테레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바로 그때는 마더 테레사의 전기작가인 에드워드가 동행했습니다. 공항에서 어떤 기자가 마더 테레사에게 다가가서 미국인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더 많이 베푸세요>라든가 <서로 더욱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금도 주저없이 <그래요, 미국인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기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작은 길입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바로 접속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러면서 평강의 하나님과 접촉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제임스 캘러 신부가 쓴 책 <하루에 3 분 묵상>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로 잘 알려진 어떤 의사는 중요한 수술을 하기 전에 항상 잠깐 동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수술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를 찾아온 친구가 수술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친구 의사에게 “외과 의사는 오직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여 수술한다고 생각했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네가 수술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네”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그 의사는 “나 자신은 단순한 인간일 뿐이야, 나는 기적을 일으킬 힘이 없네. 과학은 단순한 인간 이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을 이루어 내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고 확신하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끔 성도들 집에 가보면 유명한 지휘자 카랴얀이 지휘봉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도 지휘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난 후 지휘를 하였습니다. 이는 꼭 유명한 외과의사와 유명한 지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는 일을 하기 전에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찬송가 212 장 “너 성결키 위해” 1 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며 너 주안에 있어 늘 성경보고 온 형제들 함께 늘 사귀면서 일하기 전마다 너 기도하라!! 기도하고 일을 하는 결과와 기도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결과는 판이하게 차이가 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으로부터 맡은 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일하기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는 일은 그릇되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기도했는데 방향이 이상하게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풍성한 결과를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뿐입니다. 기도 안하고 일을 하면 평년자구 이상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일을 하면 풍년작을 경험하는 것을 너무도 많은 성도들이 경험한 바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집사람이 오늘 사왔다고 하면서 저에게 한페이지 분량의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인도 다르바에서 태어나 카톨릭교회에서 일하면서 현재는 일본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발렌타인 L, 수자라고 하는 분이 <님은 바람 속에서>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 믿음에 주옥과 같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그는 기도에 관하여 이런 보석과 같은 글을 써 놓았습니다. “벌목꾼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점심 시간 외에는 한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 시간마다 10 분씩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는 휴식 중에도 도끼를 갈고 도구를 손질하는 등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하루를 마친 후 작업량을 비교해 보았더니 휴식시간을 가진 벌목꾼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사람은 한 시간에 10 분씩 휴식을 취한 사람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가라않히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느님과 함께 있습니다. 하느님을 의식하고 하느님의 힘을 받는 것, 우리가 영원을 향하여 힘차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빨리 이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간구와 기도로 하면 우리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을 하면서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내 일을 도우심을 실감하면서 살게 됩니다.
셋째,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이 뜻이 무엇일까?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 장 24 절에 보면 예수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다시 말하면 구할 때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도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구할 때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실 줄 믿고 감사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미국 생활이 거의 마감하는 때에 마지막 논문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비자기간을 생각하면 거의 6 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써 본 사람은 알지만 논문을 다 쓰려면 보통 2 년 내지는 3 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어진 기간은 약 약 7 - 8 개월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논문을 정해진 기간에 제출하게 해주실 것으로 믿고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약 7 -8 개월 동안 1 개월은 여행을 하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6 개월 동안 모든 논문을 다 쓰게 되었고 오히려 1 개월 시간이 남아 짐을 정리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4 -5 년씩 논문에 매어달리는데 저와 같이 빠른 기간에 쓸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논문을 쓴느 속도를 조절하여 주셨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 속에는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시겠느냐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시겠느냐 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어떤 낙관과 느긋함이 있는 것입니다. 두 형제가 흙탕물에서 놀다가 옷이 다 젖었습니다. 동생이 걱정합니다. 엄마 한테 야단 맞으면 어떡하지! 합니다. 형이 느긋하게 말합니다. 엄마 야단 한 두번 맞아보냐? 금방 새 옷주시고 빨아주시잖냐! 엄마는 말로는 야단을 치지만 우리가 밖에서 힘차게 노는 것을 좋아하시잖냐! 형에게는 엄마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데 무슨 걱정이야! 시련이나 풍파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줄을 믿어 하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과 그의 아내 프롬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모세 멘델스존은 자신이 곱사등이였고 작고 괴상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언제나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아름다원 프롬체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냉대만 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좋으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녀를 자신에게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면서 비록 갈 때마다 그녀로부터 실연을 당하였지만 다시금 그녀에게 갔습니다. 먼저 모세 멘델스존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늘에서 맺어주는 것임을 믿나요?” 그러자 프롬체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요. 당신도 그것을 믿나요?” “그렇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미래의 신부가 정해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아내는 곱사등이일 것이다” 그러자 저는 하나님께 소리쳤습니다. 안됩니다. 차라리 저를 곱사로 만들고 나의 신부에게는 아름다움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는 곱사등이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말에 프롬체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는 이내 마음 문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했으며 프롬체는 한평생 멘델스존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믿고 감사함으로 아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어떤 지혜의 말을 주시던지 어떤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던지 그에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까지도 가능하게 해주시는 은총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7 절에서 “그리하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하면”이란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그런 뜻입니다. “만약 너희들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그런 뜻입니다. 그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하기 전에 기도와 간구로 아뢰면 하나님께서 평강으로 범사를 지켜 주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아뢰면 어느새인지 모르게, 하나님께서 어느새인지 모르게 개입하시어 기도자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모든 과정을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리하면”이라는 약속을 경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하면” 그 이후에 약속을 풍요하게 성취시켜 주십니다. 이 그리하면을 체험한 사람이 많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우리가 할 바를 다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복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세상에 성경이 하나님을 시험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말라기 3 장 10 절에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지각이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지 지켜 주시지 않는지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채워주시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지 안이루어지는지 한번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하고 아뢰고 간구함으로 지각이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는 귀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오늘 주님 말씀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은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함께 해 주신 주님을 신뢰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뜻과 저희의 생각과 저희의 경험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구할 것을 항상 감사함으로 아뢰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한 것은 이미 받을 줄로 믿고 늘 감사와 찬송으로 주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그리함으로 지각이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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