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3 월 17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 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말씀 : 요한복음 1 장 16 절 - 17 절
제 목 : 은혜 위의 은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화가 더욱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텔레비전에 언젠가 나왔던 선전문구를 기억하십니까? “과자 위의 크림, 크림 위에 또 과자” 어린아이는 이걸 듣고 “우아 맛있겠다” 하고 엄마한테 돈을 달래서 사먹거나 엄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자기 용돈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가게에 가서 아저씨! 과자 주세요 합니다. 무슨 과자 말이냐? “저 과자 위의 크림, 크림 위에 또 과자” 그것 있잖아요! 합니다. 어린아이가 과자 위의 크림, 크림 위의 또 과자를 좋아하듯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위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 장 16 절과 17 절에서 은혜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16 절에 두 번, 17 절에 한 번입니다. 16 절에는 “은혜 위의 은혜”라는 표현이 있으며 17 절에는 “은혜와 진리”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은혜에 대하여 집중하고자 합니다. 은혜는 은혜에 대해서 우리가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기본적인 사실은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붕어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의지하여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이 가르쳐 줍니다.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급시켜서 광야에서 40 년을 보내게 하셨습니까? 직선거리로는 광야에서 가나안까지 아무리 길어봐야 4-500 km입니다. 아무리 멀다하여도 천리길 정도 밖에 안됩니다. 요즘 비행기로는 한시간 거리이고 고속버스로는 대 여섯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도 없고 말도 없었음을 생각해 보고 어린아이나 연로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직선거리를 통해서 간다면 한달 열흘 즉 40 일이면 넉넉하게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40 일 걸리는 길을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40 년이라는 장장 긴 세월이 걸렸을까? 그것은 광야라는 현장에서 무엇인가 철저히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교육적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물도 없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도 없습니다. 광야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이정표, 하나 없습니다. 광야는 누군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터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요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샘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갈 길 몰라 방황하였을 때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아말렉 등이 쳐들어 왔을 때는 여호와 닛시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로 하여금 승리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 년 동안 광야 안에서 뺑뺑이를 돌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슴에 철저히 새겨지게 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너희들 나 없으면 못살겠지! 너희 인생들은 나 하나님이 주는 은혜 없이는 못사는 존재임을 광야라는 교육현장에서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또 반복하여 가르친 것입니다. 어떤 노래에 그런 가사가 잇습니다. “해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달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당신 없이는 견딜 수 없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광야에서 노래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대충 살 수 있어!“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지닌 최대의 착각입니다.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 째 사실은 하나님 주시는 은혜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무엇이나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옛 선조들은 과불여불급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합니다!” 인간이 영양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몸의 균형이 무너져 건강에 적신호가 됩니다.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면 동맥경화증이 나타나고 성경 구약에는 비늘이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비늘이 없는 고기, 즉 장어 같은 것을 먹으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팍 높아져 건강에 적신호를 일으켜 과다섭취 때는 그를 쓰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많이 영양을 섭취하면 비만으로 살을 빼야 합니다. 癌이란 말을 분석해 보면 질병 변 안에 食品 할 때 品자가 있고 그 밑에 메 山자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즉 癌이란 식품이 산같이 쌓여 이루진 병이라 그 말입니다. 세상의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문제가 생기고 암과 같은 질병에 이르게 되고 사망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세상의 식품과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받아도 우리 몸이나 영혼에 이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은혜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몸에도 좋고 우리 영혼에도 좋으며 우리 인생을 참으로 풍요롭게 하며 행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多多益善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1 장 16 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의 은혜러라” 은혜 위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가 겹쳐 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은혜가 단층이 아니라 이층으로 되어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은혜가 꼽배기라는 뜻일까? 무슨 뜻일까? 은혜 위의 은혜란 은혜 앞에 은혜, 은혜 뒤에 은혜, 은혜 옆에 은혜, 은혜 뒤에 은혜, 은혜 안에 은혜, 은혜 밖에 은혜, 은혜 아래 은혜, 즉 표현을 바꾸어도 내용은 같습니다. 은혜 위의 은혜란 은혜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의 딸인 다은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많을 多 은혜 恩 은혜가 많다는 뜻입니다. 성서적인 표현으로는 “은혜가 충만하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한 집사님 딸 중에는 은혜라는 이름이 있고 우리 교회 한 집사님 아들 중에는 충만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은혜가 많고 은혜가 충만하면 무척 좋으니 이름도 그렇게 짓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최근까지도 우리 교회 위에 베풀어주신 은혜 위의 은혜, 은혜의 충만함을 저와 여러분은 충분히 경험했을 것입니다. 세 번이나 쓰러지셨는데 그래서 한 때는 다시 일어나시지 못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던 채보라 권사님이 다시 일어나서 이제 지팡이를 걸을 수 있게 해주시어 성전에 나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충만한 은혜입니다. 조재용 성도는 고백하기를 자기와 같이 제일 처음 입원했던 환자들은 이미 다들 세상을 떠나고 없다고 합니다만 비록 지금까지도 투병생활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수없이 항암제 투약을 하는 가운데서도 이제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위의 은혜를 베푸시어 이제 질병에서 완전히 놓여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지난해와 올해 성도들이 네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였지만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성전출입을 잘하고 있음도 시련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주님의 교회 가나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여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에 새생명 지원이를 주셨고, 새생명 인승이를 주셨고, 새생명 재민이를 주시고 산모를 건강하게 하심도 하나님이 주신 크신 은혜였고 한 가정은 꽃피는 3 월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에 여러 새로운 믿음 안에 함께 살 수 있는 여러 식구들을 보내주시어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사는 세상의 터전에서도 잘되게 하심도 감사를 드립니다. 실로 여러 분들이 승진을 하였고 실로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시험들을 보아 합격의 기쁨을 누린 것은 두 손과 두 발가락으로는 많아 셀 수 없으며 수능생들은 거의 대부분 다 합격하거나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한 성도 한 성도들을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 위의 은혜가 쏟아진 가정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가족은 네 가지 경사가 일어난 가정이 있었으며 어떤 가정은 세 가지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으며 많은 가정들에게 좋은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형태로 다양하고 다채롭게 은혜 위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주신 은혜는 생명의 탄생, 건강의 회복, 시험의 합격, 승진의 기회, 더 좋은 터전으로 이사, 장학금을 받음 등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요소도 있었지만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말씀 안에서 기쁨, 기도의 응답, 성령님의 변화, 예배의 감격 등 영적인 기쁨의 요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성전에 나아온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들을 다 열거하자면 오늘 하루 종일 얘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받았고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가나안에 은혜가 충만하게 받을 그릇들을 준비하고 있음입니다. 지난 주 저는 주보를 보면서 참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구역보고에 보면 성도들이 성경을 읽은 장수를 합산하여 표시하게 되었는데 가나안 성도들이 일주일 동안 읽은 성경장수가 1807 장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성도들이 적어도 매일 두 장 내지 세 장을 읽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또한 “함께 풀어보는 쉐마“에 성도들 103 명이 참여하고 있음도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매주 화요성경통독회에서는 성경을 22 장씩 통독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앞으로도 우리 교회에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가 넘칠 것을 생각하면 제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또 두 주에 걸쳐서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는 모임, 일명 따사돌의 회원을 모집하였는데 100 여명이 등록하여 회원으로 가입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따뜻하게 이웃을 돌보는 일에 동참하는 손길들이 많아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일임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은혜를 충만하게 받을 그릇이 또 하나 준비되었습니다. 여호와 닛시 중보기도단이 결성되어 하나님께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대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중보기도단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가운데 더욱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던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은혜 위의 은혜가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 안에 충만하게 되기를 더욱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은혜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17 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이 은혜가 어디서부터 옵니까? 바로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은혜는 세상에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서 오는 삼대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 주시는 은혜는 첫째 생명을 풍성케 하는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0 장 10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풍성케 한다는 것은 잘 살게 하시는 은혜라 그 말씀입니다. 생명을 낳고 잘 자라며 합격을 하고 승진을 하고 건강하고 마음에 기쁨을 누리며 사는 일이 다 잘 사는 일에 속하고 풍성한 생명에 속한 일입니다. 이런 모든 풍성케 하는 은혜들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옵니다. 예수님 주시는 은혜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 부활의 은혜입니다. 우리 존재는 모두가 이 땅에서 사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은 그 크신 은혜로서 우리를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접속시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순절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미국 서부의 한 청년이 어느 날 카드놀이를 하다 몹시 다투던 끝에 권총으로 사람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교수형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 청년을 사랑하던 친척들이 진정서를 준비하고 되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진정서에 서명하였습니다. 결국 그 진정서가 주지사에게 전달되었으며 주지사는 진정서를 보고 청년을 사면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주지사는 사면장을 써서 주머니에 넣고 성경을 들고 형무소에 찾아갔습니다. 주지사가 형무소 감방으로 가까이 갔을 때 청년이 벌떡 일어서며 철장문으로 다가서며 소리쳤습니다. “여기 오지 마시오! 보기도 싫소. 당신 같은 사람을 벌써 일곱 번이나 만났오. 나도 집에서 종교생활을 했단 말이오. 주지사는 청년에게 다가가서 그 사면장에 대해 말하려고 했으니 청년은 아예 그를 가로서며 ”듣기 싫어요“ 화를 내며 소리쳤습니다. 여러 번의 간청에도 청년은 주지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주지사는 슬픈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간수가 와서 말했습니다. ”저, 지금 주지사님이 방문하고 갔는데.. 그 분은 자네의 사면장을 주머니에 넣고 왔으나 자네가 들으려고 하지 않더군“ ”뭐라고 주지사님이? 오 이런, 제게 펜과 종이를 좀 가져다 주십시오“ ”경외하는 주지사님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주지사님께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지사는 그 편지를 읽은 후 그 편지 뒤에다 ”이 사건은 더 이상 흥미가 없고“ 하고 써 보냈습니다. 청년의 사형집행일이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할 말은 없는가?“ ”예, 있습니다. 미국의 모든 청년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십시오, 내가 죽는 것은 살인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살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주지사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면장이라는 이 실제 있었던 얘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극형을 받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은혜를 받아드리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님의 피로 다 씻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고 그 분을 영접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케 하시는 은혜, 우리의 시한부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접속시켜 주시는 은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시는 은혜 위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은혜 주시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 섬기고 사랑하고 최고로 잘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예배 7 시부터 주님의 교회 가나안 교회에서 부흥사경회를 시작합니다. 말씀의 잔치요, 은혜의 잔치입니다. 이번 잔치는 가나안 교회 역사상 거의 10 여년 만의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가나안에 주의 말씀으로 풍성케 하려는 목적으로 잔치를 베풉니다. 잔치가 잔치다우려면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합니다. 이 잔치에 그동안 주변에 신앙의 방학에 들어간 사람,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 주변에 있는 이웃과 친척들을 다 모시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성회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케 하시는 은혜를 받고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은혜를 받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받는 그래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의 은혜러라” 오늘 성경 요한복음 1 장 16 절 말씀이 진실로 이 가나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저희 주님의 자녀들에게 지난해와 올해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시고 은혜 위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를 사랑하셔서 그 크신 풍성한 은혜로 충만케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금번 개최하는 부흥성회에 강림하시어 은혜 위의 은혜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풍성한 생명의 은혜와 부활과 영생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풍족하게 나리어 주시옵소서. 금번 성회를 통하여 모두가 말씀의 은혜를 받아 풍족한 영적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발걸음을 성전으로 이끌어 주시어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는데 한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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