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5 월 26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이사야 2 장 22 절
제 목 :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헤퍼는 현대인들은 무신성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無神性의 세대란 하나님이 없다는 세대입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수 있다는 자칭 성숙한 세대가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삼신을 하나같이 믿고 있습니다. 첫째 신의 이름은 나신입니다. 나를 신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실질적으로 믿고 있는 이는 자기 자신입니다. 둘째 신의 이름은 돈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돈을 믿고 있습니다. 신앙도 돈보다는 한 수 아래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신이 필요합니다. 돈이 목적이고 신은 그 목적을 채워주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바로 그때 현대인들의 신은 돈신입니다. 셋째 신의 이름은 힘신입니다. 현대인들은 힘을 믿고 있습니다. 뭐든지 약한 것은 버려야 할 것이고 강한 것이 최고이고 강하게 해주는 힘이야 말로 오늘날 현대인에게 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모시고 있는 첫째 신은 나신이요 둘째 신은 돈신이며 셋째 신은 힘신인 것입니다. 첫째 글자만 따서 “나돈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대인들이 실제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신은 그 이름이 “나돈힘신”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딱 두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과 실제적으로는 나돈힘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2 장 22 절이니까 “이”만 네 개가 있어서 외우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인생의 호흡이 코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코에서 호흡이 떠나면 인생은 더 이상 인생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창세기 2 장 7 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면 사람이 생령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코에서 생기를 거두어 가시면 사람은 그저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호흡이 멈춰집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죽었느냐 안 죽었느냐를 코에다 거울을 대보고 거울에 콧김이 서려 뿌해 지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인생이란 호흡이 끊어지면 땅속에 묻히게 됩니다. 아침에 이슬방울 쉬사라짐 같이 아침에 서린 안개와 같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꽃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김, 하나님의 생기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물러 있다가 가는 티끌같은 존재가 우리 인생입니다. 한마디로 인생무상입니다.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이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속절없이 저버리는 것을, 금방 있었다가 없어지는 것을 영원하지도 않은 것을 헤아려 보아야 무슨 쓸데가 있겠느냐? 그런 인생을 의지하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 그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함은 첫째 자신을 의지하지 말함입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함은 자기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엇엔가 의지해서 삽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자신을 의지하고 삽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 정말 종교가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종교입니다. 자신을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에게 하나님이 됩니다. 자신이 자신을 믿고 사니 자신이 자신에게 하나님인 것입니다. 십계명 제 1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일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나 외에는 다른 것을 믿지 말지니라!” 실제적으로 이 계명에 순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영화의 대사에도 상품광고에도 나옵니다. “너는 아니? 나는 나 외에는 다른 것들을 믿지 않아! 내 느낌이 나를 인도해!”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내면을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자신을 믿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래, 나 외에 모든 것은 헛된 것이야, 그래 나만 믿어야 해!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신앙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엇을 믿습니까? 자신 속에 있는 느낌을 그대로 순종합니다. 자신 속에 있는 몸의 요구에 충실히 뒤따릅니다. 자신의 힘, 자신이 해오던 대로의 방식, 자신이 쌓아온 경험의 진실함만 믿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자신이 내리는 판단, 자신이 터득한 지혜만을 최종적인 것으로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쾌락적 요구에 따라갑니다. 설령 신이 있다고 인정을 한다고 해도 신을 자신보다 더 아랫자리를 마련해 놓고 앉으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나신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골리앗과 가장 닮았습니다. 자신의 힘과 용맹을 의지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골리앗 아닙니까? 골리앗은 자신의 거대한 체구와 자신의 무술과 자신의 두툼한 철갑옷과 자신의 긴 칼과 창을 의지하고 전쟁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오직 자기만을 믿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를 의지하는 쪼끄만 꼬마 다윗이 던지는 물맷돌에 맞아서 호흡이 끊어졌지 않습니까? 골리앗과 같은 인생을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함은 둘째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함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상은 안 믿을 것은 믿고 믿을 것은 안 믿는 비틀어진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안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 살고 있는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삽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제일 먼저 믿는 것은 자신이고 그 다음으로 믿는 것이 돈입니다. 어떤 부자 집에 도둑이 들어왔습니다. 도둑이 말했습니다. 목숨이 아깝거든 돈을 내 놓아라! 했습니다. 그러자 돈을 생명과 같이 사랑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목숨은 드릴테니 제발 돈만은!!” 물론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이는 오늘날 얼만큼 돈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믿고 그 다음에 확실한 것으로 돈을 믿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불확실한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내 손으로 만져지고 금방 효력을 맛볼 수 있는 내가 원하는 것과 금방 바꿀 수 있는 돈, 그 확실한 돈을 믿고 돈에 의지합니다. 오늘날 이제 공산주의는 없어졌습니다. 구소련인 러시아는 이미 자본주의화로 간 지 오래 되었고 중국도 공산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자기네 나라가 가장 잘 살기 위하여 자본주의 방식을 급속도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는 지금 자본을 主로하는 자본주의가 세상을 평정했습니다. 자본이 주인이고 자본이 힘이고 자본이 나라의 이념입니다. 시장경제 시장경제를 소리 높이 외칩니다. 시장경제가 무엇입니다. 돈이 시장을 결정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 점점 개개의 사람들도 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거의 神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호령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시를 읊습니다. “돈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할 것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골프장의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시고 고급호텔의 잔잔한 풀장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살 맛 나게 하시고 은행의 잔고는 나를 쾌락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뭐 걱정하지 않을 것은 내 지갑의 돈과 신용카드가 나를 안위하시리로다 내가 원수한테 당할뻔 하더라도 염려없음은 변호사를 댈 비용으로 충분하니 내 지갑에 돈이 넘치리로다 나의 평생에 돈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이 언제까지나 나를 따르리니 내가 돈과 함께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는 다윗의 시편 23 편이 아니라 오늘 현대인의 “돈편 23 편”입니다. 미국의 한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다만 천국을 빼놓고는.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살 수 있다, 다만 행복을 제외하고는.” 세상은 이제 돈을 믿고 삽니다. 돈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이요 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이 인도한 새 생활 세미나의 말씀에 보면 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으나 잠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참된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를 살 수 있으나 돈으로 문화를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을 살 수 있으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금십자가를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살 수 없습니다.“ 돈을 의지하고 재산을 궁극적으로 여기는 자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를 들어 봅시다. 누가복음 12 장 16 절에서 19 절까지입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하되” 이 부자는 자신의 재물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영혼의 평안을 누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누가복음 12 장 20 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오늘 당장이라도 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 동안 모아두었던 그 수많은 재산들이 수에 칠 가치가 있겠느냐? 질문하신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폴리스에서 한 부자 과부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5 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65 억이란 돈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발견되었는데 심지어 쓰레기통에도 돈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료리 잭슨”이란 이 할머니는 돈으로 꽉찬 넓은 정원에서 혼자 외롭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의지하거나 이 세상사람들이 그렇게 주인으로 여기는 재물을 의지할 때는 오직 허망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왜 돈을 믿습니까? 돈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그 돈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습니다. 디모데전서 6 장 17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소망과 신뢰를 주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함은 셋째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에서 보면 “인생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무엇을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우리 인생이 당연히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무 말을 하지 않음으로 더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자기의 힘과 무술과 체구와 자신의 칼과 창을 의지하였던 것에 비해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골리앗에게 나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골리앗은 자신을 의지했지만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사무엘상 17 장 47절에 다윗은 담대하게 외치기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를 우리 손에 붙이리라" 요즘 저는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와 국가간의 대항인 A - match 경기는 꼭 봅니다만. 그런데 우리나라 월드컵 선수 중에 꼭 다윗과 같이 느껴지는 선수가 있습니다. 키도 쬐끄마하고 생긴 것도 미소년 같은데 경기를 하면 그라운드를 누비며 제비같이 날아서 벌과 같이 슛을 때리는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천수 선수입니다. 지난 우리나라 월드컵 선수들이 스코틀랜드 대표와 싸웠는데 그때 우리가 4 대 1 로 이겼습니다. 그때 제일 첫 골을 터뜨린 선수가 바로 이천수 선수였습니다. 골을 넣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일 먼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우고 고개를 넙죽히 숙여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그때 장면을 다시 보신다면 기도하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천수는 지난 1 월 골드컵 때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월드컵 팀내에 전도사라고 불리우는 최태욱 선수가 전도를 했는데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 믿고 그는 신약성경 마태복음부터 읽어나가고 있다고 기자가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코스타리카 전을 앞두고 근황을 물어보자 웃으면서 “믿는 분이 있어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요즘 그는 아이들이나 팬들이 달려와서 싸인을 요청해 오면 옛날에는 자신의 이름을 써주었는데 최근에 싸인이 바꾸어졌습니다. ”Jesus" 간단하게 써줍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믿고 있는 예수님을 자신의 이름대신 써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빠른 발재간과 몸놀림과 현란한 테크닉을 믿기 전에 먼저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경기를 맡기며 먼저 기도하고나서 경기에 임합니다. 골을 넣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을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 최경주 선수 아십니까? 그는 미국 골프 PGA에서 최근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세계의 수백만명의 프로 골퍼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열망은 PGA 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PGA 에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우글거립니다. 거기서 겨루고 겨뤄 남은 결승전에서 1 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 에서는 이를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 승을 올린 것보다 더 훨씬 더 높이 평가하는 쾌거라고 합니다. 최경주 선수는 우리 전남의 선수이고 광주대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그가 우승을 하고서 현지 텔레비전 방송과 인터뷰를 할 때 제일 처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너무 힘든 라운드였다.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최경주 성도는 아내 김현정 성도를 따라 믿음의 세계에 눈을 떴으며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시합 때마다 떨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고 깊은 기도에 들어가면서 그는 마음에 평온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기장총회 본부에서 일했을 때 저하고 같이 일하던 목사님의 사모님이 조각예술가이신데 어느 날 인사동에서 작품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작품을 보니까 제목이 “믿음”인데 한편에서는 나무를 깍아 가파른 계단이 있고 그리고 길이 끊어져 있고 그리고는 낭떠러지고 그리고 거기서 떨어진 더 높은 곳에 집이 있고 그 집에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 이것이 무슨 뜻이냐? 했더니 나름대로 한번 해석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멘트를 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계단에 깊은 심연과 낭떠러지가 있는데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인데 마지막에는 계단을 계속 타고 가서 하늘문에 이르르는 것이 아니라 ”주여 저를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하고 믿음으로 발을 내디디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그 발을 천국문이 있는 그곳 언덕에 내딛게 해주신다 그 뜻 아닙니까?” 했더니 사모님은 빙긋이 웃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한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은 천지차이입니다. 어디서 그걸 알 수 있을까?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믿는 이들의 인생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예레미야 17 장 5 절에서 6 절에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사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은 인생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 즉 이 땅에서 살아도 잘 못 살고 다가오는 영생을 맛보며 살 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인생은 어떻습니까? 예레미야 17 장 7 절에서 8 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인생은 물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아서 뿌리는 강변에 뻗치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사람이나 자신을 의지하는 인생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마치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와 같이 말라 비틀어져 죽습니다. 하나님보다도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인생의 철저한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군대와 칼을 의지하면 어떻게 됩니까? 수치를 당하고 패배를 당하며 칼로 망하게 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오늘 하나님이 영혼을 찾으시면 그에게 재물은 어떤 의미도 치도 없습니다. 인생을 의지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그 호흡을 바로 거두어 가시면 그 인생 수에 칠 가치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주님의 영원하신 팔을 의지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찬송가 464 장 후렴에 나와 있습니다.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짧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이 세상 것 의지하지 말고 주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은총 가운데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나안 성도들 모두가 이 땅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호흡이 끊겨지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의 영원하신 팔을 의지하며 저희의 모든 것을 맡기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저희 자신을 의지하거나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게 하시고 저희가 돈을 의지하거나 힘을 의지하거나 세상을 의지하는 미련함도 계속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오직 저희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순종하고 따라가도록 저희의 일상을 주님의 영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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