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 7 월 14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신명기 6 장 4 절 - 9 절
제 목 :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성전에 나아온 모든 이들에게 은총과 평화를 나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자녀교육에 열심인 나라가 없습니다. 자녀교육하면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민족이 대한민국입니다만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훨씬 뛰어넘어 도요새와 같이 훨씬 더 높이 날고 있는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수치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세계를 배후에서 주름잡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미국의 대통령을 한다거나 무슨 유엔사무총장을 한다거나 하는 직접 나서서 하지는 않지만 이 세계를 움직이는 데 있어서 과거 우리나라 국왕 인종이 아직 나이 어렸을 때 인종대비가 오랫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듯이 유태인들은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이 세계를 커튼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9.11 테러가 일어났던 뉴욕의 금융과 재정의 센터이면서 미국의 재정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무역센터는 유태인들이 거의 8-90 %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금융은 화교권을 훨씬 능가하여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움켜쥐고 있습니다. 학술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강원도와 경기도를 합쳐놓은 크기이며 인구는 한국의 약 3분의 1에 불과합니다만 노벨상 수상자는 유대인들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유대인들은 미국 변호사 가운데 20%, 미국 재벌 400명 중 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왜 유대인들이 그렇게 뛰어날까?에 대해 연구과제로 삼아 내린 결론은 유대인들이 나면서부터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천재가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천적인 교육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비결이 어디 있었을까? 바로 오늘 성경 오늘 본문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신명기 6 장 7 절을 봅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무엇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입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여기에서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훈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살다가 생긴 유용한 지식을 가르치거나 무슨 세상의 가치철학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르치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부모는 여호와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부지런히”가 어느 정도입니까? 집에 앉았을 때에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해가 됩니다. 길에 행할 때에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녀가 길을 갈 때도 그냥 가지말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가라 그겁니다. 이번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데리고 길거리로 나와서 우리 축구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거기서 우리 자녀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을 배우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이는 큰 교육을 부모는 시킨 셈입니다. 자녀들에게 길을 가면서 가르치는 것 굉장히 효과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길에 행할 때에도 자신들의 비운의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자기네 나라가 왜 애굽이니 바벨론이니 앗시리아니 페르시아니 로마니 그런 다른 제국에게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가 되었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란다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만일 우리가 독립국가로 굳건히 서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어제는 어디까지 말씀을 배웠지? 하면서 그래 오늘은 우리 민족이 출애급하여 광야에서 물이 없어서 고생한 이야기로 들어가자구나! 하면서 길에서도 이야기 형식으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누웠을 때에도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가 잠자리에 들면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나 브라암스 자장가가 담겨 있는 음악 CD를 틀어주던지 아니면 ”자장자장자장 잘도 잔다 우리 아가“ 하면서 재우고 아기가 눈을 감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이스라엘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잠자리에 누우면 아이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발달된 것은 기억력이 비상한 것이고 이야기를 잘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야기의 형태로 아이에게 들려줍니다. 만일 요셉의 이야기라면 우리 옛날 할머니들이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준 것과 같이 열 번도 스무번도 더 들려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요셉이 마음 속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때 여러 가지 지혜를 짜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꿀보다도 더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지혜를 짜내어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가르칠 때 글자 맞추기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글자를 무엇으로 만드느냐 하면 부모가 최고로 꿀을 섞어 최고로 맛있는 과자로 히브리어 알파벳을 만듭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6 장에 있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으로 되어 있는 과자로 되어 있는 알파벳을 뒤섞어 놓고 아이가 그것을 맞추면 할렐루야! 하면서 아이에게 무등을 태우면서 춤을 추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면서 아이에게는 그 과자를 먹게 합니다. 그러니 아이가 여호와 말씀을 배우기를 즐겨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는 다인종들이 모여 삽니다만 다른 민족들은 자기네 민족들의 전통과 언어를 따로 가르치는 학교가 없습니다만 유독히 두 민족만 따로 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인 학교입니다. 한국인들은 교회나 한인회가 개설한 한국인 학교가 있어서 주로 한국말을 가르칩니다.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의 학교입니다. 이를 회당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한국인학교보다도 훨씬 더 철저히 회당에서 히브리말과 유대역사를 철저히 가르칩니다. 만일 아이가 유대인 학교에서 특별한 절기가 있다고 합시다. 유월절이나 기타 행사가 있다면 다니는 미국학교를 결석을 시켜서라도 그 학교에 나오게 합니다. 그만큼 철저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Synagogue라는 회당에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게 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여호와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회당에서는 회당대로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 회당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역사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공로목사님이 지으신 책 “희년의 복음과 함께 새로운 세기를 향하여”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주후 70 년경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로마군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에워싸고 재침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비둘기파의 지도자 “요하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는 민족 생존의 마지막 불꽃을 살리기 위해 성 안에 소문 하나를 퍼뜨리게 되었습니다. “자카이 랍비가 중병에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숨을 거두게 되었다고” 그리고는 제자들이 만든 관 속에 들어가 로마군의 전선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카이는 로마 사령관을 만나 한 가지를 간청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침공한 이후 작은 회당 하나만을 남겨주십시오. 랍비 열명이 공부할 수 있는 회당 말입니다.” 너털웃음으로 응수한 사령관은 랍비의 청원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그 후로 로마군은 성을 불태우고 3만여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약속한데로 작은 회당을 남겨주었습니다. 지난 2 천년 가까이 유일하게 남았던 이 교육의 현장, 회당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보전되어 왔고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전달되어 왔다고 유대인들은 믿고 있으며 더욱이 사선을 넘어서까지 이를 가능케 했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인의 삶 깊숙이 자리한 영웅이고 스승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나라가 망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이 살아있을 때 그 나라는 일어서게 되고 민족은 다시 융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중요시하였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는 현장을 중요시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환경 가운데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속에 웅비하여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한마디로 여호와의 말씀을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에게 주어진 책임 중에 으뜸은 자녀농사를 잘 짓는 것입니다. 자녀농사를 잘 짓는 것은 인생의 절반의 성공이 아니라 절반 이상의 성공입니다. 자녀 농사를 잘 짓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칠 때 일어납니다.
첫째,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아마도 모든 부모가 자녀를 잘 가르치고 싶고 남보다 뛰어난 아이로 만들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 부모들은 세상 공부에는 무지막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피아노학원, 속셈학원, 바둑학원, 태권도학원, 컴퓨터학원, 미술학원에 보내는데 한두개가 아니라 서너개가 기본입니다. 그토록 세상 공부에는 치중하면서도 진정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는데는 별로 열심히 없습니다. 이는 진주조개에서 조갯살만 빼먹고 진주는 그저 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지식이 조갯살과 같다면 여호와의 말씀은 그 조개를 품고 있는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시각장애자로서 박사학위를 받아 미국의 장관급 위원이 된 강영우 박사가 두 아들을 하바드를 졸업하고 미국 주류사회로 진입하게 한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자녀들이 술회하기를 아빠는 어둠 속에서도 점자로 된 성경을 언제나 자신들이 잠들기까지 읽어주었다고 하였고 그것이 자기들의 오늘이 있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자라난 아이는 결코 평범하게 되지 않습니다. 잠언 1 장 9 절은 “여호와의 훈계와 지혜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둘째, 부모는 자녀에게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잠언 22 장 6 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오늘날은 자본주의 사회 아닙니까? 월드컵 4 강이 되어 국가신인도가 올라가는 것을 어느 신용평가회사가 따지기를 22 조의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일 노벨평화상을 타고 임기 내 월드컵도 4 강이 되고 여러 과제들을 잘 처리하고 다음 정부에 넘겨주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후세에 좋은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면 그것을 자본의 가치로 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22 조원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녀를 잘 가르치지 못하여 그 자녀들이 해 먹은 45 억 때문에 그 모든 치적이 한꺼번에 물에 잠기게 되어 비율로 따지자면 22 조 나누기 45 억은 거의 5 만 배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좋은 부모가 좋은 자녀를 가르칩니다. 집에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화투나 친다든지 떠들고 한 잔하면서 고성방가를 하고 세상 이야기로 화제를 삼으며 놀 때 아이들은 아하! 놀 때는 저렇게 큰 소리를 내면서 한잔하면서 놀아야 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그대로 배우게 됩니다. 부모가 평소 언행이 거칠고 과격하고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으면 아이들도 원래 부모는 저런 것이구나 하면서 자기 친구들에게 아무렇게나 말하고 과격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문제 어린이 뒤에는 반드시 문제부모가 있습니다. 만일 부모가 언제나 아침 일찍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생활을 일상화하면 경건하게 살면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구나 하면서 아이도 언젠가는 부모를 쫓아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을 일상화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이 묵상기도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깨우쳐서 묵상기도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시간만 있으면 조용히 여호와 앞에서 기도드리는 것을 보고 “아하,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그것을 배워 묵상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부모의 삶은 자녀에게 거울이 되고 부모의 평소의 삶은 자녀에게 그대로 교과서가 됩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집에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그때 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걸렸습니다. 속으로 생각해 보니 “엄마가 친구가 와서 노느라고 수요예배도 안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딸에게 좋은 교육이 안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친구들을 보내고 수요예배에 갔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녀를 생각하면서 삶으로서 교육을 한 셈입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를 성전에서 배우게 해야 합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는 것은 꼭 내가 다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괜찮은 교육기관에서 배우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송암교회 대학부를 다닐 때 고대법대 다니는 1 년 선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시 1 차에 붙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자 형은 보아하니 목사가 해야 할 상이야 얼굴에 그렇게 쓰였어! 앞으로 아무리 시험을 보아도 안될 걸! 그러자 그 형은 몇 번 고시를 치다가 왠일인지 갑자기 한신대학원에 들어와서 그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임마! 내가 니 때문에 목사됐다! 그래서 후회해! 하면 아니 행복해! 합니다. 그형이 나에게 가르쳐 준 지론이 무엇이냐? “自知면 滿知고 保知면 早知라” <스스로 알면 늦게 알게 되고 남이 도와 알게 되면 일찍 아느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공부를 지 혼자해서는 안되고 꼭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만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지 아니하였습니다. 꼭 회당에 보내어 여호와의 말씀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니 위스키가 팔리는데 위스키 값이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묘한 의식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들이면 귀한 것이고 돈이 없이 무료이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주일학교가 있습니다만 주일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수업료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에서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며 성경 속에는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되는 보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은 돈을 내지 않고 배우는 것이니까 그저 그렇고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성경학교에서 배우게 되면 늙어서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는 인성과 영성이 형성되어 바른 인생을 살고 하나님을 공경하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성경학교에서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부모들이 자녀들이 있는데 주일학교나 청소년부에 보내지 않으면 않을수록 앉아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 잘해서 일류학교에 진학을 하고 일류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나중에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고 자기 잇속만 차리는 자녀로 성장해 간다면 피땀 흘려 교육한 보람이 무엇이겠습니까? 아이에게 성경을 배울 수 있는 교회학교에 보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자녀의 통장에 몇십 만원씩 부어 가는 것보다는 3000 배 6000 배 10000 배 낫습니다. 금번 어린이 교회학교에서는 여름성경학교를 곧 개최합니다. 그리고 곧 청소년부 수련회가 있습니다. 그동안 교사들은 두군데에서 성경학교 강습회를 다녀왔고 열심히 성경공부를 하고 있으며 지금 여러 가지 준비를 착착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지금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매주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사들이 무슨 사례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겨주셨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들의 자녀를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 옆집의 자녀들을 보내주시어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배우는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와 청소년부 여름수련회를 위해 땀흘리는 교사들을 격려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말씀이야말로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교육을 말할 때 흔히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바로 여기서 생깁니다. 고기를 잡아서 주면 매번 고기를 가져다 주어야 하지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고기를 원하는 때면 잡을 수 있습니다. 지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고기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들면 부가가치는 고기를 잡는 것보다 더합니다. 통조림으로 만드는 것보다 고기를 잡아서 프랑스 요리로 만들어 내어 주면 그 부가가치는 몇 백배가 더합니다.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이 그냥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므로 하늘의 지혜와 지식인 것입니다. 엄청난 부가가치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찬탄하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 땅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따라가지 못하는 지혜와 지식입니다. 여호와의 말씀 안에 담겨 있는 지혜와 지식은 측량할 수 없는 풍부함이 담겨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지혜를 얻어 세상적으로도 부도 얻고 노벨상도 다 휩쓸고 있고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지식과 지혜는 어린아이가 바닷가 해변에서 두 손으로 퍼올린 모래 한 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에서 얻어진 지혜는 하늘의 별들보다도 더 풍성하고 바닷가의 모든 모래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풍성하고 넘치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들은 이 여호와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신명기 6 장 8 절에서 9 절은 부모들인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또 여러분들은 이 여호와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어 자녀들이 하늘의 지혜와 지식으로 부유해짐으로 잘 살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저는 최근에 아내가 사가지고 온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역대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이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그 이름은 김동환이라는 학생입니다. 지금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전도사가 되었습니다만 서울대학교 4 년을 점수로 환산하면 99.26 점을 맞아 역대 최고점수가 되어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상을 받았습니다. 그 전에 서울대학교를 역대최고 점수로 수석으로 졸업하여 의사가 되어 간증하고 다니는 원종수 권사님보다도 훨씬 더 좋은 점수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좋은 점수를 내었을까? 저는 흥미를 가지고 책을 계속 읽어보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김동환 학생(전도사) 뒤에는 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책 서두 “이 시대의 다니엘을 꿈꾸며”라는 첫 페이지에 그 비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고3 때까지도 저는 어머니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많이 맞았습니다. 혹 그 자국을 본 친구들은 성적도 좋은 너를 녜 어머니는 왜 그렇게 때리느냐고, 혹시 네 어머니가 계모가 아니냐며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맞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우리 집에는 대원칙이 하나 생겼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밥 먹지 말아라. 성경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말아라“ 어쩌면 황당한 말 같지만 저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도록 훈련시키셨고 매일 정해진 양의 성경을 보지 않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여호와의 말씀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것을 확실히 믿고 가르친 어머니 밑에서 김동환 전도사가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밭에 묻히인 보물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집에서도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성전에도 빠지지 않고 보내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키우시고 양육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귀한 가르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영혼에 부단히 여호와의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시고 성령으로 단비를 주시어 말씀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고 저희 자녀들에게도 주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을 잘 행케 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저희 자녀들이 주의 말씀을 배우고 읽힐 수 있도록 성전에 보내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초등 학문을 배우는 일에 힘쓰기보다는 하늘나라의 귀한 말씀을 배우는 일에 가장 힘쓰게 하옵소서. 금번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를 통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에 복을 내려주옵시고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 가나안의 교회학교가 말씀으로 부흥케 하시고 저희 가나안 교회가 말씀의 꿀이 흘러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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