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밤설교)환난 가운데 기도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주일밤설교)환난 가운데 기도

관리자 2010-12-14 (화) 11:51 15년전 2775  

광주가나안교회 2002 년 4 월 21 일(주일) 오후 7 시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서본문 : 시편 18 편 1 절 - 6 절

제 목 : 환난 가운데 기도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이 저녁 말씀을 통한 은총을 받기 위해 나온 모든 분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주일밤 예배는 몇 주일동안 기도와 중보기도에 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우리 삶에 시험이 들고 어려움이 닥치며 문제가 부닥쳐 올 때, 환난의 폭풍이 불고 위기의 바람이 불어 올 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오늘 주시는 시편의 말씀을 통해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8 편 4 절에서 5 절을 다시금 읽어봅시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여기 보면 몇가지 어려운 상황이 닥쳐 옵니까? 첫째,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둘째,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셋째, 음부의 줄이 날르 두르고 넷째,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즉 네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닥쳐 온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실로 여러 가지 형태의 환난이 있습니다. 조금마한 어려움만 닥쳐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죽음을 재촉하는 네 가지 위험한 상황,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 등이 일순간에 덮쳐 온 것입니다. 영화에서나 꿈에 보면 그런 장면이 많잖습니까? 피에 굶주린 늑대가 쫓아와서 도망치다가 바로 나무 위에 올라갔는데 늑대들이 가지도 않고 울부짖으면서 나무 위를 바라보고 있지! 설상가상으로 나무 위에서 왕뱀이 혀를 낼름거리고 내려오지! 갑자기 오줌은 마렵지! 나무 등걸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은 점점 떨어지지! 그런 가위를 눌리는 경험은 꿈이나 인디애나 존스 류의 영황에나 있을 법한데 그런 위기일발의 상황이 우리 현실 속에서도 찾아옵니다. 우리 인생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희망도 있고 좌절이 한데 뒤얽혀 있습니다. 기쁨의 순간이 있는가 하면 한숨과 눈물의 뒤안길이 있습니다. 꼭 우리 인생이 푸른 풀밭 맑은 시냇가에만 있지 아니합니다. 꼭 우리 인생이 순풍에 돛을 달고 순조롭게 쾌속항진만 계속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생의 어떤 부분에는 전혀 예기치 않게 비바람이 일때와 물결높이 일 때도 있습니다. 험한 시험 물 속에서 헤메일 때도 있습니다. 험한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한가지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한꺼번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연속적으로 당하기도 합니다. 환난이 내게 다가올 때 우리 인생은 지치게 되고 힘들게 되고 어둡게 됩니다. 실로 인간은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 둘러 쌓여 살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인간은 악순환을 겪게 됩니다. 환난을 당하면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걱정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걱정하고 근심하게 되면 우리의 뼈와 골수를 마르게 합니다. 골수와 뼈가 마르게 되면 우리의 생기와 활기를 빼앗아 지치게 하고 인생을 짜증과 피곤으로 뒤섞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표현함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악화됩니다. 이것은 곧바로 각종 질병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고 인생을 고통과 아픔으로 경험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어려움과 고통을 안고 삽니다. 그것이 육체의 찌르는 가시와 같은 질병이건, 그것이 우리가 하는 사업의 큰 손실이건, 그것이 예상치 못한 어떤 사고이건, 그것이 인간관계속에서 생긴 부조화이건,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고난이건 우리와 환난은 너무도 먼 친척이 아닙니다. 참으로 내 인생을 쇠잔하게 하고 멍들게 하고 참으로 환난은 내 인생을 비참하게 합니다. 때로는 환난은 마치 초청하지 않는 친구와 같이 우리 삶 속에서 동행을 요구합니다. 참으로 내 인생이 캄캄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인생은 환난 가운데 있으면 안됩니다. 환난 가운데서 환난의 주변부로 옮겨야 하며 결국 환난 밖으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에 갑자기 어려움이 닥칠 때 보통 사람들이 그런 환난과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실로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면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시편시인과 같은 네 가지 어려움, 압도적인 고난이 동시에 닥쳐오면 많은 사람들은 어떤 해결책을 구하기도 전에 환장하여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많은 경우 환난을 당할 때 이 환난을 극복해보려고 하는 원초적 의지가 발동합니다. 환난의 초기에는 이 환난을 피해보려고 이런 방책 저런 방법 취하다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가 몸을 뒤척이면 뒤척일수록 더 거미줄에 감기어 가듯이 오히려 더욱 큰 환난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은 삶의 크나큰 위기입니다. 위기에 닥칠 때 그 위기를 대처하는 것은 한 가지이지만 그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압도적인 고통 속에서 다른 대책을 취해보지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고 실망하고 낙담하다가 병에 걸려 앓아 눕게 됩니다. 어떤 이는 넘치는 환난 가운데 자제력을 잃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견디기 어려운 나머지 유서도 없이 생명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어떤 강남에 사는 부인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최근에 아파트를 팔았는데 3 억 5 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팔고 나니 아파트 값이 단기폭등하여 5 억원으로 올랐습니다. 그래서 1 억 5 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손해를 생각해 보니까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마침내 우울증이 걸려 자신의 생명을 내던진 것입니다. 까짓껏 그까짓 1 억 5 천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던지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던져 죽은 그 자신의 몸은 5 천억 5 조원 50 조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어떤 이는 자기 나름데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대책을 취하다가 오히려 일이 어렵게 되어 꼬이게 되어 몇갑절 더 어려운 경우에 놓이게 되는 경우를 당합니다. 그러면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멀리 도피해 버립니다. 부도를 왕창 내고 해외로 줄행랑 내지는 도피해 버립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고 무척 공격적이고 냉소적이 되거나 비판적이 됩니다. 그래서 고소를 하고 맞고소를 하여 재판비용으로 다 날려 버립니다. 어떤 이는 삶 자체를 부정적으로 냉소적으로 봅니다. 이러한 방법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성경이 바로 그 방법과 대답입니다. 성경이 무어라 말씀합니까? 다윗이 네 가지 환난이 동시에 닥쳐올 때 어떤 방책을 취하였습니까?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 환난을 당한 인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시편시인은 환난이 닥쳐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 6 절 전반부에서 보면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 아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아뢴다”, “부르짖는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 나간다는 뜻이며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시인이 환난이 약간 덜할 때는 그 당한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었을 것이고 그 고통이 하도 심할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환난이 경미할 때는 조용하게 여호와께 아뢰었을 것이고 고통이 중할 때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불렀을 것입니다. 아이들도 그러지 않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엄마! 부릅니다만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기면 엄마! 엄마!하고 큰소리로 다급하게 부릅니다. 어쨌든지 다윗은 환난이 닥쳐왔을 때 무슨 다른 방책을 먼저 취한다든지 이런 방법, 저런 수단을 다 취해보다가 가장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환난을 당하였을 때 그것과 같은 시각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아뢰었습니다. 왜 그렇게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까? 이것에 대한 대답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 2 절에서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는 자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이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시인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환난의 풍랑을 잠재우고 모든 사망의 줄을 끊으시는 분이신 줄 굳게 믿는 신뢰가 그 마음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환난과 위기를 당하여도 곧바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본문 1 절에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어떤 군인 부부가 배를 타고 다른 임지로 가게 되었는데 풍랑이 몰려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제 죽게 된줄로 알고 거의 패닉 상태에 있었는데 그 군인만은 아주 침착하게 다른 사람들을 진정시켰습니다. 풍랑이 잠잠해지고 그 군인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폭풍이 무섭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칼을 겨누며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사랑하는 내 남편의 손에 칼이 있는데 무서울 게 무엇이 있느냐고 하자 남편은 바로 그것이요 사랑하는 하나님의 손안에 풍랑이 있는데 두려워할 게 무어냐고 되물었습니다.) 시편시인은 내 모든 시험 닥치는 환난이 다 사랑의 하나님 손안에 있는 것으로 믿었고 오히려 환난 가운데 나의 힘이 되어주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앞바퀴 돌아가면 뒷바퀴 굴러가고 뒷바퀴 굴러가면 앞바퀴 자동적으로 돌아가듯이 환난과 위기가 부닥치면 자동적으로, 조건반사적으로,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46 편에서 시인은 다시금 이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인은 환난을 당할 때 넘버원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환난의 순간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6 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아뢰고 부르짖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어디로 출장 가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엄마가 잠시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려고 들어 가려다가도 아이가 울면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에게 먼저 달려가듯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들이 울고 보채면 얼른 우리 곁으로 돌아오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뢰고 부르짖으면 여호와께서 귀기울여 들으십니다. 귀를 막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환난 가운데 부르짖으면 설령 그가 잘못하여 환난 가운데 접어들었다 해도 우리 하나님은 먼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바로 응답하십니다. 찬송가 363 장 호프만 목사님이 작시한 내용입니다만 2 절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그렇습니다. 환난과 그로 인한 괴롬이 닥칠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바로 주님께서는 그 환난을 제거해 주시고 사랑을 베푸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환난이 닥치고 위기가 오면 우리는 시편 시인과 같은 믿음으로 무엇보다도 다른 방책을 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하는 영성과 기도하는 예지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편시인은 우리에게 참 좋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환난을 당하면 일단 우리의 자존심의 꼬리를 내리고 무릎을 꿇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성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좋은 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약해지시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함께 아파하시면서 모든 도우실 준비를 갖추시고 우리가 그 분에게 간구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아뢰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의 힘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강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해서 교훈을 주시기도 하며 환난을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도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환난이란 하나님의 장중 안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환난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시며 때로는 우리에게 환난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주시기도 하고 환난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원하시기도 하십니다. 환난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로 자신에게 접근해오기를 바라시기도 합니다. 시련을 주시고 그 시련의 줄을 타고 하나님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있을 때 바로 이때가 우리가 영적인 전깃불의 스위치를 확 켜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무슨 뜻이 있으십니까?” 아뢰며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하나님 저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부르짖어도 됩니다.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칠 때 이 때는 바로 걱정하고 근심할 때가 아니라 바로 이 때 우리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눈을 들어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는 우리의 눈은 세상의 원리와 방법에 눈을 돌릴 때가 아니라 환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이성에 의탁할 것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성서의 많은 이들은 환난 가운데 하늘 아버지께 기도함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인이 살인자라고 하고 비난합니다만 우리가 가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인은 너무나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가인이 주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인자 가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창세기 4 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죽음의 위협 속에서 기도하자 하나님은 살인자인 가인에게도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가인은 환난 가운데 기도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도 그렇습니다.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그는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부르짖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시편은 다윗이 쓴 시입니다. 다윗은 그 생애 속에서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위기와 곤란을 겪었습니다. 시편 77 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반부에는 내가 하나님께 소리 높여 부르짖습니다. 부르짖는 이 소리를 들으시고 나에게 귀기울여 주십시오. 내가 고난 당할 때에 나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두손 치켜들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77 편 중반부에 다윗은 이렇게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주께서 하신 일을 나는 회상하렵니다.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그 일들을 기억하렵니다. 주께서 해주신 모든 일을 하나하나 되뇌고 주께서 이루신 그 크신 일들을 깊이깊이 되새기겠습니다” 환난 날에 기도한 이들과 응답받은 예들은 성서전체에서 헤아릴 수 없으리 만큼 많습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아주 명쾌하게 단 한마디로 정리해 주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우리는 결코 보통이 아닌 힘을 얻습니다. 환난 날에는 특히 더합니다. 우리가 아플 때 부모님의 사랑이 쏟아지듯이 우리의 환난 날 하늘 어버이이신 주님의 은총도 쏟아지게 마련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간절히 빌 때 그 효력은 더해집니다. 야고보서 5 장 16 절에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니 삼년 육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그 열매를 맺었습니다.”  

환난 날에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가 어렵다고 망설이는 분이 있습니다. 기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해야할 말을 적당히 찾지 못하면 그냥 아버지! 아버지! 그렇게 부르기만 해도 됩니다. 우리 삶은 전혀 예기치 않게 시험이 닥치고 환난이 닥치고 위기가 닥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꼭 명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기도하시기를 명하시는구나!” “아하, 무릎을 꿇어야 할 때로구나!”, "아하, 이제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해야 할 때이구나!“를 즉각적으로 떠올리시기를 바랍니다. ”환난 날에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내가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이 얘기는 언젠가 한번 했습니다만 한번 더하겠습니다. 제가 준목이었던 시절 중고등부 수련회로 갔습니다. 강원도 화천 구만리에 약 50여명의 중고등부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하는 중,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임시교사로 함께 간 청년회원이 핸드볼대에 매달려 회전을 하다가 초등학교 철봉대가 그만 건장한 청년의 체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져 핸드볼대가 청년의 턱을 쳤습니다. 턱의 대부분과 목을 거의 대부분을 도려내어 피가 줄줄줄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준목으로서 책임인솔자로 간 저는 그 상황을 목격하고 현기증이 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청년은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는데 김원일 그 친구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까딱까딱하면서 피는 콸콱 흐르는데 어느 누구도 무서워서 그 곁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고등부 학생은 비명을 지르면서 막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같이 갔던 교사에게 앰브란스 앰브란스 소리치면서 그대로 꿇어앉아 “주님 안됩니다. 주님 안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택시가 5 분이 되지 않아 왔고 그 청년을 부여잡고 주님 살려주십시오 주님 살려주십시오 계속 그렇게만 기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구만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은 평상시 도로가 좁아 막히는 길이었는데 택시운전사도 놀랄 만큼 빠른 시간에 한림대학병원에 도착했는데 마침 당직의사가 그 분야의 전문의사였습니다. 그 의사 말이 10 분만 아니 5분만 늦었어도 이 애는 죽었을 것이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만큼 치료과정을 순조롭게 해주셔서 이제 완전히 나았고 그 청년은 이쁜 색시와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두었고 지금 숭의여고 컴퓨터 교사로 일할 뿐만 아니라 한빛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운동장에서 꿇어앉아서 주님 안됩니다. 주님 안됩니다 기도했던 일과 주님 살려주십시오 주님 살려주십시오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 청년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환난 가운데 기도를 들어 응답해주셨던 은총과 사랑의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환난 가운데 기도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환난 가운데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손을 잡아주시고 그 환난의 고통과 상황에서 우리를 업어 환난 밖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난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는 것은 내 인생의 환난을 제거하고 위기와 고통이 닥쳐오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는 성경 시편을 통해서 영적인 지혜와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윗에게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가 닥쳐왔을 때 다윗은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였음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어려움과 고통의 상황에서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저희가 환난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먼저 주님을 찾는 영적인 예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에게 기도의 영을 내려 주시고 저희로 하여금 늘 주님 가까이 나아가도록 저희를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환난이 있을 때 먼저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저희가 구하고 찾기를 바라시고 하나님께 다가오기를 기다리시는 은총의 주님을 발견하게 하옵시고 저희들에게 시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서도 큰 은혜 주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께만 의지하는 믿음을 더욱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귀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