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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후예배설교)사랑받는 형제 두기고

관리자 2010-12-14 (화) 11:59 15년전 2455  

2003 년 2 월 9 일(주일오후) 오후 1 시 반, 광주가나안교회 주일오후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골로새서 4장 7절 - 8절

제 목 : 제직훈련 (2) - “사랑받는 형제 두기고”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늘의 은총과 평강을 풍성하게 나려주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골로새서에 근거하여 제 2차 제직훈련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가 재삼재사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직분이 필요해서 주시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귀한 일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몇 주 전에 무진 교회에서 피택 장로 교육이 있었습니다. 이 때 강사 중에 한분에 디모데 전서 1장 12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직분을 맡기신 것은 충성하니까 맡긴 것이 아니라 충성되이 여겨 맡긴 것이라는데 초점을 두어 말씀 하셨습니다. “충성되이 여겨”하는 뜻에는 충성하지는 못하지만 충성되이여겨서 직분을 맡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직분을 맡기에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저 충성되이 그저 여기고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목사가 제직을 그저 임명했던, 아니면 기도하고 성도들이 뽑았건 그것은 모사를 통하여,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뽑으신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제직의 직분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직분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직분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팔삭동이와 같은 자신에게 주님의 귀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시다니 너무도 감격하고 감읍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저희에게 집사의 직을 권사의 직을 주시다니 하나님 너무도 감사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직분을 감당해야 할 줄 믿습니다. 둘째는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배움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말에 알아야 면장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면장은 물론 동장도 할 수 없고 통장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직으로서 어떻게 배울까 , 어떻게 훈련을 할까, 우리가 닮아야 할 제직의 상이 있을까를 성경에서 찾아보다가 마침내 “두기고”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우리 가나안 제직은 성경에 나타난 한 분인 두기고란 분이 어떤 분인가를 성경을 통해 살펴 봅시다. 두기고란 이름 속에는 행운이란 끗이 들여 있습니다. 두기고가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은 무척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람 잘 만나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두고 두고 지옥을 경험하면서 사는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언젠가 천국 옆집에 사는 듯한 그런 행운아가 있습니다. 좋은 사람 장 만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러이러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기도할 때 은총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두기고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울을 만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쓴 편지에 자신의 이름이 다섯 번이나 기록이 되었고 나중에는 그 편지가 성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광영이겠습니까? 두기도가 바울 사도를 언데 만났는디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만 추측컨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그 걸실로 얻어진 신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두기고는 사도 바울로부터 목음을 받아들인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동되어 바울 사도를 따라다녔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아시아로 떠나려 하였을 때 두기고란 인물도 동행을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로 잡혀 로마에 이송되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두기도는 바로 로마에 와서 사도바울의 편지를 써서 바로 이 두기도에게 인편으로 보냈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금번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때 자신의 선거대책 위원장이었던 정대철 의원을 미국에 특사로 파송합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미력이나마 돕기 위해 로마 감옥에 까지 온 두기고를 자신의 편지의 전달자로 삼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 대해서 이 두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6장 21절입니다. “ 나의 사정 곧 내개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여 하오니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오늘 본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 인데 4장 7절입니다.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바울 사도가 두기고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말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 두기고는 사랑받는 형제였습니다. 여기서 사랑을 받는다고 했을 때 누구가 두기고를 사랑했는지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줄 특정 다수로부터 사랑받았던 것 같습니다. 두기고가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았을까? 두기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가득 맏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헌신적으로 도왔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두기고를 사랑하여 두기고를 형제로 여겼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형제, 동생과 같이 여겼습니다. 바울 사도와 두기고는 친형이나 친동생이 아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서 맺어진 사이였습니다. 형제로서는 바울은 형이었고 두기고는 동생과 같았습니다. 두기고는 바울 사도가 옥에 갇혔을 친 동생 이상으로 감옥 수발을 잘 들어주었으며 바울 사도가 쓴 편지, 즉 옥 중 서신들을 직접 가슴 속에 품고 가서 에베소 교회에 골로새 교회에 전달해 주었습니다. 단지 서신만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현재 바울 사도의 형편이 어떠하며 재판 절차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으며 건강 상태는 어떻고 하는 일에서부터 바울 사도가 매일 정기적으로 각 교회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세세한 것까지 각 교회에 전달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 사도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성실하게 잘 해주니 어찌 두기도가 바울 사도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두기고는 성도들로부터도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랑하는 바울 사도로부터 오는 친서를 가자고 오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두기고는 하나님으로 사랑받지! 사도로부터 사랑받지! 성도들로부터 사랑받지! 해서 무척 행복했을 것입니다. 공동체 생활릏 하다가 보면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뭐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남보다 뛰어나거나 돈을 펑펑 쓰거나 그렇지도 않은데 공동체 중에 괜한 이유도 없이 사랑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가 사랑을 받는데는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두기도는 일방적으로 사랑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두기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게 때문에 자신의 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주님의 일에 발 벗고 나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 사도 바울을 사랑하여 사도 바울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두기고가 사랑하는 형제였고 사랑받는 형제였습니다.  

저는 직분을 받은 가나안 성도 여러분이 두기고처럼 사랑받는 형제와 자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도 사랑을 듬뿍 받고 교역자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성도들로부터도 사랑을 받는 두기고 집사와 같은 이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혼자서 잘 하는 것보다도 기독교 진리를 빠삭하게 아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교역자로부터 성도들로부터 사랑받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주는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매주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새거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사랑받는 형제와 자매로서 일 할 때 더욱 기쁨도 넘쳐 신앙생화 자체가 그저 행복이 됩니다. 가나안 교회 성도들은 다른 욕심보다는 사랑을 많이 받아야 겠다 하나님께로부터 넘치게 받고 목사님으로 부터도 사랑을 많이 받고 성도들로부터도 사랑을 많이 받아야 겠다는 그런 영적 욕심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을 많이 받는 일에는 누구에게도 뒤지 않겠다는 욕심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두기고는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두기고는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바울은 두기고를 진실하가도 하였고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두기고를 신실한 일꾼이라 하였습니다. 두기고는 성실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믿음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함석헌 서생님은 그런 글을 쓰셨습니다. 제목이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입니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세상이야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와로울 때도 / 저망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내는 가졌는가/ 탓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을 제발 살아다오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더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느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고 / 아니 하고 가만이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이 질문을 바울 사도에게 한다면 바울 사도는 :나에게는 두기고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였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무척 신뢰하여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의지 하고 많이 맡겼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 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회장인데 사장을 뽑아야 한다고 하면 누구에게 맡기려 하겠습니까? 물론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겠지만 능력보다고 더우선인 것은 신실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을 뽑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습니다. 신실한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사업에 동참시키십니다. 저는 아직도 밀피타스에서 한인 제일 교회를 개척했을 때 12면의 믿음의 식구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슬라이드 필름이 지나가는 것과 같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의 모습은 슬라이드 필름이 지나가는 것과 같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의 모습은 슬라이드 필름이 와서 멍추었는 데 다른 필름으로 지나가지 않고 한참 머물러 있으면서 그를 위해 더욱 간구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분들은 주님의 몸 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신실 하게 땀을 흘려 자신을 아끼지 않고 일하신 분들이 오랜 영상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마 바울도 자신의 목회를 되돌아 볼 때나 선교동역자를 위해 기도할 때 두기고의 영상은 한찬동안 머물러 있어 그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면 제일 먼저 영상에 맺혀지는 그런 제직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귀한 일을 맡기십니다. 목사도 그렇습니다. 바람이 이리 불면 이리 흔들리고 저리 불면 저리 흔들리는 사람보다는 신뢰하는 일꾼에게 일을 맡깁니다. 한결 같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복음만을 붙들고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그에게 중차대한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직은 하나님께 신실하고 교역자에게 신뢰를 심어주고 성도들 간에 믿음직한 일꾼이 되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두기고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7절 후바널에 보면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주안에서 함께 된 종” 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을 주의 종이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자기와 같은 반열에 놓은 겄입니다. 종은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지 않습니다. 소유권이 주님께 있습니다. 두기고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이에 있어서 중차대한 일을 했다고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댓가를 받으려 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을 감추고 철저하게 자신을 복종하면서 일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기고가 자신의 말을 단 한마디고 하지도 않았고 남겨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바울 사도가 그를 데리고 요긴한 일에 중용하였고 그는 말없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제직은 폼내는 자리산이 아닙니다. 제직은 섬기는 자리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결코 계급이 아닙니다. 목사가 젤 높고 그 다음이 수석잘로고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와 장로를 “주의 종”이라고 부르는데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직분자는 발을 씻어주는 자리입니다. 목사라고해서 장로라고 해서 안수권사나 안수집사라고 해서 존경받아야 할 적당한 구석을 찾는다면 그는 성경도 이해하지 못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직은 다른 돌아가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제직은 다른 무엇 보다고 선기는 자입니다. 만일 어떤 제직이 자신이 사회적 신분이 높다고 해서 교회 안에서까지 그 사회적 지위를 누리려 하고 폼재려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빵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대통령 할 아버지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고 섬기는 종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제직은 내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섬기고 내 몸을 바틸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 서서 섬기는 일을 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눈여겨보시고 “내 종아!”하고 그를 불러 주시며 그를 높이 들어 쓰시는데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높이 들어 쓰십니다. 교회 역사에 의하면 두기고는 나중에 한 지역 전체를 담당하는 콜로폰의 주교가 되었으며 주를 위래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두기고는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로부터 인정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형제로 인정하였고 일꾼으로 인정하였고 그리스도의 종이라 인정하였습니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만 교회여사에 의하면 나중에 두기고는 자신을 인정해 준 바울 사도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성도들도 두기고를 인정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두기고를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두기고를 인정하셔서 성경에 그 이름을 기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직분을 주셨고 제직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직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 인정받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날 지켜보신다는 믿음으로 조용히 나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일해야 합니다. 상급은 주께서 풍성하게 마련하실 것입니다. 제직이 충성스럽게 일하면 그것이 교역자의 눈에 보여지고 가슴에 감동의 파도가 몰려오고 그러면 그 파장은 거기서만 멈추지 아니하고 그 파장을 우리 예수님의 가슴으로 까지 그 파장의 껄림이 전달됩니다. 여러분이 확실히 기억하셔야 할 일은 여러분의 신실한 믿음과 생활이 주의 종의 가슴에 아로새겨 지고 찍혀지면 혹은 감동의 떨림으로 지속되면 그 떨림의 파장은 반드시 주님의 심장에게 그 떨림이 전달되어 주님도 감동하시게 됩니다. 계시록 말씀 2장 10절 말씀을 들어 봅시다. “내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내게 주리라.” 저는 가나안 제직들 여러분 모두가 두기고와 같이 사랑받는 형제로서, 신실한 일꾼으로서 섬기는 종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아 “너 김 집사 너 이 권사는 너 최 장로는 됐어! 인정하시며 붉은 도장을 콱 찍어주시는 제직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저희를 사랑하시어 귀한 직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직분자로서 주님께로부터 교역자로부터 성도들로부터 사랑받는 형제와 자매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직분자로서 신실한 일꾼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사랑으로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를 주님 원하시는대로 조형하여 만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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