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연)사생목회와 목회자 부부관꼐 > 상임이사칼럼new

본문 바로가기

(주제강연)사생목회와 목회자 부부관꼐

관리자 2010-12-14 (화) 12:03 15년전 2278  

2003 년 6 월 16 일(월) 오후 8 :00 - 9 : 00 광주노회서부시찰회 주제강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요한복음 6 장 39 절

제 목 : 사생목회와 목회자 부부관계  

운 동 (1 분)/ 1. 여러분의 손은 무척 능력이 많습니다. 온 우주의 기를 한 군데 모을 수 있습니다. 2. 이 시간 여러분은 양손을 사용하여 우주의 기를 여러분의 앞가슴 바로 앞에 모아 놓습니다. 3. 모으고 모아서 눈싸움을 할 때 만드는 눈뭉치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놓습니다. 4. 일순간 여러분의 장풍을 이용해서 여러분 앞에 있는 강사 목사님께 할렐루야로 장풍의 기를 날려 보냅니다.

율 동 (3 분)/ 1. 아빠닭과 엄마닭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닭이 배가 아파 알을 낳았어요. 눈도 있다 삐약삐약 코도 있다 삐약삐약 입도 있다 삐약삐약 귀도 있다 삐약삐약 배꼽은 없다 삐약삐약 아빠닭은 괜찮아 괜찮아 스무알만 더 낳아 엄마닭은 또 배가 아파 알을 낳았어요 아빠닭은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번개같이 지켜 주었어요. 엄마닭은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쭈쭈도 주고 행복하게 살았대요!  

도 입 (1 분)/ 오늘과 같은 날에 주최측이 왜 강의같은 것을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주어진 제목이 “영성과 목회가정사역”입니다만 이 제목에 대해 전혀 생소하고 문외한입니다. 영성이 무엇이고 목회가정사역이 무엇일까? 처음에로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 제목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름대로 추측하기론 이 제목을 주신 분이 목회자 가정에서의 일과 목회 사이에 뗄 수 없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목회  

/ 1. 목회가 무엇일까? 학교 다닐 때 목회란 “전인전인 영혼의 돌봄”으로 배웠습니다만 이제 처음 목회를 시작하는 저로서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목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된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결국에는 공히 합력하여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 2. 별세목회 - 이중표 목사님은 목회나 신학, 성경을 모든 것을 자신만의 관점인 별세라는 시각에서 봅니다. 그래 그 분이 하는 말은 별세목회, 별세신학으로 정리되어 나옵니다. 최근에 집 사람이 사모세미나에 다녀왔는데 카셋트 테이프 제목이 “사모여 별세하라!“였습니다. 언젠가 신학교 다닐 때 김호식 목사님이 시무하는 향린교회에 목회실습을 갔는데 목사님이 후배들을 데리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들은 사모님이 별세하면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있었던 버클리에 저희 한신선배님이시고 목사님 한 분이 계신데 이 분이 나이 일흔에서 하나 모자란 나이에 사모님이 별세하셨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재혼을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님이 별세하시면 사모님은 혼자 사시는데 비해 사모님이 별세하시면 목사님은 거의 다시 개혼을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3.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는 먹회다 잘 먹여주는 것이 목회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푸른 풀밭에서 풀을 맘껏 먹게 하고 맑은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목회다고 말합니다. 목회가 무엇입니까? 저는 아직 실제적으로 목회를 한 지 2 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아 목회적 상황 속에 있지만 목회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 4. 한가지 분명하기도 하고 느껴지는 것은 목회를 무엇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하여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는 목회와 그렇지 않고 그저 무작정 목회를 하는 것과는 목회적 결과가 나중에 무엇인가 무척 다르리라는 점입니다.  

/ 5. 저는 최근 목회를 정의를 하기를 목회는 살리는 일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하였습니다. 누구는 별세목회 폼나게 지었으니 저는 나름대로 사생목회라고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사생목회라는 것은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목회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死生牧會, 죽어 있는 것을 살리는 목회라고 이름을 지어 보았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 장 39 절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또 요한복음 10 장 10 절에도 예수님이 자신이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일서 4 장 9 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양을 별세시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양을 살리고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케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래 나름대로 목회를 나름대로 살리는 일이다고 규정을 하고 평생 동안 살리는 일에 집중을 할려고 합니다.  

목회자 부부의 문제 - 성이 죽어 있다  

/ 1. 목회가 살리는 일이라면, 목회를 잘하려면 먼저 목회자가 살아야 합니다. 목회가 살기 위해서는 목회가 생동력있게 되려면 목회자가 살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죽어가고 있는데 목회자가 BURNING OUT 되어 있는데 목회가 살 수 없습니다. 목회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목회자의 영적 인프라가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 2. 목회자가 지 혼자만 살면 안됩니다. 목회자 혼자 살고 목회자의 반려자가 죽어 있으면 목회가 살 수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목회자만 최고고 목회자 사모는 목회자가 달무리라면 사모는 그 달무리를 더 환하게 해주는 받쳐주는 어둠으로만 역할을 하였습니다. 목회자는 살고 목회자 부인은 죽어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과거의 모델이라면 오늘날의 모델은 바꾸어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목회자 사모가 죽어 있고 목회자만 살있으면 목회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목회자 부부가 살아야 목회가 삽니다.  

/ 3. 그런데 일반적으로 목회자 부부가 죽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부부로 이름을 걸어놓고 있지만 죽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데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선언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오늘날 목회자 부부도 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 부부가 어떻게 죽어 있을까? 

첫 번째는 목회자 부부 사이의 의사소통이 죽어 있습니다. 목회자 부부사이가 파괴되어 있고 부부의 평등한 관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장로교회에서 목회자는 교회에서는 당회장이요, 공동의회의장이며, 제직회의장이며 담임목사인데 비해 사모는 아무런 직함이 없습니다. 사모란 우리끼리 얘긴데 그저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래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관계로 주종관계로 상하관계로 정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전달도 지시적이어서 의사소통이 닫혀 있거나 목회자중심으로 모든 것이 재편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를 위해 서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 아내가 존재하고 들러리로서 존재하고 몸종으로서 존재하고 비서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가 아버지라는 가부장적 권위에다가 목회자의 권위에다가 합해져서 거의 독재가 되기 쉽고 의사소통이 하향적으로 일어나기 쉽습니다. 목회자 가정의 가정 충실지수가 평균치 이하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결국 목회자 부부의 인간관계가 있긴 있으나 죽어 있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목회자 부부 사이의 영성이 죽어 있습니다. 목회자 부부는 교회 일에 힘을 쓰고 종교적인 일에 매진을 하지만 실제로 가정에 돌아와서는 영성생활이 연결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강단에서 주께 하듯 하시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잇던 사모가 콧방귀를 끼면서 흥 자기는!! 했는데 옆에 있는 집사님이 들었습니다. 목사가 설교강단에서는 많은 것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실천을 하지 못함으로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아내의 영성도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는 두 사람 다 불 밝혀 헌신하다가 보면 불꺼진 다음에 촛농과 흐트러진 모습만 남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의외로 목회자 부부의 영성생활은 가정 안에서 파괴되어 있기 쉽습니다. 이 목회자 부부와 목회자 가정의 영성지수가 지극히 취약하기 쉽습니다. 목회자가 집 밖에서는 경건의 모양이 있는데 비해 집 안에서는 경건의 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을 위해 불 밝혀 헌신하면 자기 자신은 불꺼진 초가 되기 쉽상입니다. 

세 번 째는 목회자 부부의 침대와 침실의 기능이 죽어 있습니다. 목회자 부부의 성이 무척 중요합니다. 목회자 부부의 성은 일반인의 성에 비해 죽어 있거나 약하거나 왜곡되어 있기 쉽습니다.

1. 성이 죽어 있는 경우 - 목회자 부부는 교회의 중요하고 잡다한 일에 매달려 있는 나머지 성생활을 외면하고 그저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일이 중요하지

2. 성이 왜곡되어 있는 경우 - 1) 성생활은 종족보존과 개체유지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사고 2) 목회자는 다른 여자와 여신도와 목회자 사모는 다른 남자와 3) 한쪽은 성욕이 강한데 비해 다른 한쪽은 성욕이 약하거나 한쪽은 주님을 향해 그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데 비해 다른 한쪽은 육체적 사랑을 불태우고 있는 경우 (신삥 목사가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에 먼저 침실에

  3. 성이 약화되어 있는 경우 - 목회자 부부들 중에는 LSD 증후군에 걸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Low Sexual Desire 저성욕증이라고 불리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두 사람이서 죽어도 좋아! 그런 비디오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생목회와 목회자 부부 

목회자 부부가 살아야 목회가 살고 목회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한 개인 개인의 영혼이 사는데로 연이어집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죽은 것들을 살릴 것인가? 예수님은 죽은 소녀를 단 한마디의 말씀으로 달리다굼 하셨을 때 소녀가 일어났습니다만 우리는 어떻게 목회자부부관계를 살릴 것인가 여기에 강호제현의 고담준론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특별히 오랜 목회생활 속에서 느낀 바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우리말에 성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성하다는 말은 성성하게 살아있다는 말로 연결됩니다. 성성하게 살아있다 저는 오늘 목회자 부부 사이에 살아 있어야 할 4 가지 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성(城)이 살아야 합니다. 영국인의 가정은 영국인의 성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처럼 든든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은 그러므로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가정이 살아야 합니다.

  엄마닭과 아가닭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첫째는 성(城)이 살아야 합니다. 성이란 건강입니다.

둘째는 성(聲)이 살아야 합니다. 성은 의사소통입니다.

셋째는 성(聖)이 살아야 합니다. 성이란 영성입니다.

넷째는 성(性)이 살아야 합니다. 성이란 침실생활입니다.  

믿고 확신하기로 이 네 성이 살아 생동할 때 목회자 부부관계가 살아나고 목회자 부부가 살아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선 목회가 살고 목회가 살 때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 때 그 교회에 몸담고 있는 영혼들이 깨어나고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 다시 목회자 - 83.7%

목회자 사모인 경우 - 11.7

자료 2> 엄마닭과 아가닭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닭이 보통 가정 안에 오순도순 사랑이 오고가야 하는데 목회자가정이 다 그렇다하지 않다하더라도 의사소통이 닫혀 있고 목회자중심으로 가정이 재편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식의 미래도 자식의 의사를 따져보지 않고 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해! 하면서 일방적으로 결정될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목회자 가정은 목회자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하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목회자 사모도 종속적이고 자녀들도 부차적으로 존재하기 쉽상입니다.  

목회자 가정의 의사소통  

둘째는 성(聖)이 살아야 합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