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6 월 8일(주일) 오후 7 시 30 분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107 편 4 절 - 9 절
제 목 :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영혼 속에 하늘의 평화와 구속의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소나기라는 주제로 삼행시를 썼습니다. 소 - 소방차가 불난집 불을 끈다 나 - 나는 신나게 구경했다. 기 - 기절했다. 우리집이었다. 말씀을 들을 때 구경하는 자세로 들으면 안된다 바로 나에게 선포된 말씀으로 들을 때 은혜의 소낙비가 나리게 됩니다. 바로 내 영혼에 던져진 말씀으로 불이 붙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 107 편에는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따질 수 없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이 중요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시편 107 편 9 절입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여기서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에서 핀셋으로 <만족>이란 말을 끄집어 내 봅시다. 만족이 무엇입니까? 바로 107 편 9 절 뒤편에 있습니다. ”채워주심이로다”. 만족은 채워질 때 만족합니다. 만족이라고 했을 때 <滿>은 찰 만입니다. 사람들은 채워질 때 만족해 하며 만족할 때 행복해 합니다. 무엇으로 채워질 때 인간이 참으로 행복할까요? 만일 여러분이 무슨 월간 잡지의 기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 달의 특집주제가 <현대인과 행복>이라는 주제여서 여러분이 길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기자로서 행복이 뭔지 물어볼 것이 아니라 먼저 물을 질문이 이것일 것입니다. “당신은 왜 사십니까?” 그러면 대답은 천차만별로 나올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대답이 100 이면 100 각각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답들을 요약해 보면 내용은 딱 한 가지로 나올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살려구요!“. 지구상에 약 70 억에 가까운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만 다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뭔가 부단히 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 까지 행복하기를 원치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목숨을 끊는다고 할 때 그것 역시 현재의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이는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만족에서부터 멀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이해하지 못할 소리이고 일반적으로 행복은 일차적으로는 만족함을 누리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만족함이 무엇입니까? 채워짐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영혼>입니다. 영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영혼을 만드셨습니다. 그 영혼은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학자는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고 그 영혼이 있기에 사람은 사람이 된다 하였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신 김경재 교수님은 영혼은 마음 중의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영혼을 말할 때 주린 영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이 영혼이 배부르기도 하고 주리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이 비어 있을 때가 있고 차 있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린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주려 있다는 것은 뭔가 채우려 합니다. 배고프면 밥먹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린 영혼이라고도 하고 사모하는 영혼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모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린 영혼 속에 무엇인가를 채우려는 것이 사모입니다. 즉 영혼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운동을 하면서 그 영혼의 빈 공간 안에 무엇인가를 채우려 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라 하였는데 영혼이 사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채우려 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빨아드리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에 있어서 영혼은 빈 자루와 같고 빈 항아리와 같은 이 영혼은 자루가 보이지 않지만 그 항아리가 보이지 않지만 그 빈 공간이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정리해 봅시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영혼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이 영혼은 빈 공간, 빈 자루와 같아서 뭔가 채우려 하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안에 영혼을 만드셨고 그 영혼을 비어있게 하시어 무엇인가로 채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안에 창조하신 영혼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채우려함입니다. 영혼은 비어 있고 주려 있기 때문에 스폰지와 같이 무엇인가를 채우려 합니다. 무엇인가 채워지기를 사모합니다. 그저 비어 있는 채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비어있는 그 상태를 유지하려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으로 채우려 합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은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 무엇인가 허전함과 공허함을 채우려 합니다. 외로움을 채우려 합니다. 사람들은 이 허전함, 이 공허함, 이 외로움을 채우려고 무진 노력을 하고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붇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빈 자루와 같기도 하고 빈 항아리와 같기도 한 공간을 채우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 속에 있는 빈 공간을 채우려 하다가 뭔가 채워지지 않을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이 빈 자루를 채우려다가 도를 넘어 쇠사슬을 차기도 하고 사형수가 되어 이슬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 빈자루를 채우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저렇게 애쓰는 가운데 아쉬움을 남기고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혼의 두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음입니다. 사람들이 이 자루를 채우려고 땅의 이렇고 저런 것들로 채우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영혼이라는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고 만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1) 사람들은 이 자루를 돈으로 예금통장으로 황금과 보석으로 채우려 합니다. 동산으로 채우려 하고 부동산으로 채우려 합니다. 여러 가지 최신상품으로 사서 만족함을 누리려 합니다만 여전히 빈 자루는 채워지지 않는 상태로 목마름은 지속됩니다. 세상의 부귀와 물질로 채우려 하는 힘쓰고 애씀에 비해서 미안스럽게도 이 자루는 채워지지 아니합니다. 더욱 갈증만 나지 실제로 자루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2) 사람들은 이 자루를 각종 인간관계로 채우려 합니다. 이 사람을 만나고 저 사람을 만나고 이 스승을 만나고 저 스승을 만나고 이 친구를 만나고 저 친구를 만남을 통해서 어떤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만 이 자루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습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군중 속에 고독만을 느낍니다. 3) 사람들은 이 자루를 정보와 지식과 기술로 채우려 합니다. 이런 사상을 취하고 저런 사상을 취하며 이런 지식을 탐닉하고 저런 지식을 탐닉하면서 빈 자루를 채우려 합니다만 미안스럽게도 그 자루는 채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빈 자루가 더욱 비어 있음을 확인할 뿐입니다. 저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철학자의 자살을 다룬 다큐멘타리성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그 철학자는 자신의 목숨을 끊기 전에 자신에게 묻고 자책을 합니다. 내가 일생에 진리라고 생각하고 추구했던 것들이 단 한순간의 다른 사상이 뒤집어 버리고 또 그것을 진리라고 믿고 붙잡아왔던 것이 또 단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생을 바람을 잡으려하는 무가치한 것이었지 않느냐 하면서 질책을 하면서 숲이 우거진 곳을 통과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 역시 사상과 진리라고 여겨졌던 것들로 채우려다가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목숨을 스스로 앗은 것입니다. 4> 사람들은 이 자루를 쾌락과 정욕으로 채우려 합니다. 이 남자를 만나고 저 여자를 만나서 진한 육욕의 잔치를 벌임으로서 채우려 합니다. 몸의 쾌락을 위해 코카인을 흡입하고 히로뽕을 흡입합니다. 이 술을 마시고 저 술을 마셔보지만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 오히려 더 깊은 갈증만 생기게 합니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육체의 정욕으로 안목의 정욕으로 채우려 하지만 더욱 애달음과 안타까움만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아직도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영화에서 불러진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이 노래는 단지 노래일뿐이지만 이 노래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허전함과 공허함이 담겨 있습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보아도 어떤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5> 사람들은 또 이 빈 공간을 무엇이 되는 것으로 채우려 합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보고 더 힘이 있는 자리를 올라가려고 애를 써서 결국 원하는 자리에 올라섰어도 그 자루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명예를 추구하고 남보다 더 다르고 남보다 뛰어남을 추구하지만 그것 역시 수고와 슬픔뿐이요 만족함을 내게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일평생은 자신 속에 존재해 있는 어떤 빈 공간을 채우려 부단히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지만 자신의 일평생을 자신 속에 있는 그 무언가의 욕망에 의해 이 자루를 채우고 채우려고 안달입니다만 이 자루를 채우면 만족함이 있고 행복함이 있을 줄 압니다만 채우려 하면 할 수록 이 자루는 더욱 그 공간이 더 넓어지고 그 바닥은 더욱 깊어짐을 경험할 뿐이어서 오히려 더 큰 공허함이 더 큰 슬픔이 더 큰 허전함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서 5 장 10 절입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다 헛되도다” 하였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뭐라하였습니까? 시편 107 편 4 절과 5 절입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빈 자루를 아무리 채우려고 하여도 광야 사막길에서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할 뿐인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이 자루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혼의 세 번째 결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왜 채워지지 않을까요? 왜 만족함이 없을까요? 그것은 애시당초 제일 처음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영혼을 집어넣으실 때 그 영혼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 그 자루를 만드시어 사람 속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 자루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형태로 만드셨는데 세상의 그 모든 것으로는 채워질 수 없고 세상의 그 모든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오직 딱 한 가지!! 그 영혼의 빈 공간은 하나님으로 채울 때 가득 차게 되고 만족함을 얻을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해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107 편 9 절에 보겠습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하나님을 사모할 때 하나님으로 채울 때 비로소 그 빈 자루는 채워지게 되며 비로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자루를 만드실 때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그 자루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 자루를 하나님으로 채우려 할 때 그 자루는 채워지게끔 설계하셨고 하나님은 그 자루에 좋은 것으로 채우시고 만족케 하심으로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침례교 전도지는 이를 무척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돈? 그러나 당신의 욕망은 한이 없을 것입니다. 친구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외로울 것입니다. 성공? 그러나 당신은 그것 역시 믿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값진 것을 가져도 여전히 부족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당신을 만족시킬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위하여 당신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의 유전자 지도(DNA)가 완전히 분석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모든 비밀의 코드가 다 이 유전자의 배열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유전자 지도를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닷가 해변에서 어린아이가 두 손으로 모아든 모래 한 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신비로운 비밀의 코드 한 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코드가 무엇이냐? 인간의 참 만족과 행복은 주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채워주실 때 인생의 참 만족과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의 인물들이 인생의 마침내 인생 행복의 비밀코드를 풀어 기뻐서 아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함을 얻음은 많은 이들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우선 다윗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물이 없고 목마른 유대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가 바로 시편 63 편입니다. 1 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사막에서 물을 찾지 아니하고 온전히 주님만 찾습니다. 그래서 만족함을 얻었습니까? 아니면 더욱 갈증만 났습니까? 63 편 5 절입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다윗이 어디서 만족을 얻었습니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함으로 다윗은 만족함을 얻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다윗의 육체가 주를 앙모하였을 때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영혼과 육체와 영혼에 채워주셨고 다윗은 그 영혼이 만족함을 얻었습니다. 2> 바울 사도는 인생의 참 만족을 주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3 장 5 절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인간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만족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 없이 인간에게 만족함이란 있을 수 없고 만족하다고 해도 그것은 사이비 만족일 뿐입니다. 다시금 목마르게 됩니다. 3> 초대 기독교의 최대의 교부인 어거스틴은 수없이 방황하였습니다. 빈 자루를 실로 여러 가지로 채워보려 하였습니다. 마니교라는 사상으로 채워보려 하였습니다만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이 철학 저 사상으로 돌아다녀 보았습니다만 허전한 가슴은 더욱 크게 되었습니다. 술과 여자로 채워보려고 하였습니다만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는 고백합니다. “오, 주여,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 안식을 얻기까지 우리의 맘은 쉼이 없나이다.” (고백록 1권, 1장). 4> 복음성가를 작사작곡한 이들을 보면 그들은 전문적인 음악인이라기 보다는 먼저 신앙인입니다. 이들 중에는 오직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들의 영혼이 채워지고 만족함을 누린 이들이 체험적인 기쁨을 노래로 시로 썼습니다. 1.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2.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3. 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자국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만지셨네. 내 주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주여, 이제는 아무 걱정 없어요!! 내 맘대로 고집하며 살 때에도 만족함이 없었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위로받지 못했지만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만족함을 얻어 그것을 감사노래와 찬양으로 바친 것입니다.
한 가지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복잡해서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거나 어려워서 평범한 사람이 풀 수 없거나 비비꼬여 있어서 단순한 사람들은 뭐가 뭔지 모르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에게도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성경의 진리 중 하나가 그렇습니다. 꼭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만족할 수 없습니다만 하나님으로 채울 때 진정한 채움이 있고 만족함이 잇고 거기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뿐인 인생 진정한 행복을 원하십니까? 그저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져 버리고 말 행복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을 은은히 채우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노래하며 살고 싶으십니까?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으로 채우십시오! 세상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해도 결국 사막이요 목마름이요 결국 빈 잔의 공허함 뿐입니다. 다윗은 그 일생 동안 오직 주님으로만 채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사는 날까지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가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굳게 붙잡고 살도록 새 힘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영혼을 주님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저희가 세상의 헛된 것으로 채우지 않게 해 주시옵시고 주님 저희 영혼을 주님의 은총으로 채워주시옵시고 주님의 거룩으로 채워주시옵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저희로 주님의 품 안에 있기 까지 진정한 평안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저희가 주님의 품안에 주님의 저희 안에 내주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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