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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밤설교)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관리자 2010-12-14 (화) 12:05 15년전 2077  

2003 년 7 월 22 일(주일) 오후 7 시 30 분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7 장 1 절 - 2 절

제 목 :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할렐루야!! 마태복음 5 장에서 7 장을 산상보훈이라 하여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 중 산상에서 하신 말씀을 보배와 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컵 안에 인삼생즙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합시다. 만일 내가 그것을 마시면 그것이 내 것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되지만 만일 그대로 놓아두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만일 산상보훈 중 한 말씀이라도 내가 받아들여 그 말씀을 붙잡고 실천한다면 그 말씀은 나에게 보배가 되고 생명이 됩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7 장 1 절에서 2 절은 예수님이 산상에서 하신 말씀 중의 일부입니다.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이 말씀을 뒤집어 보면 이렇습니다. 비판받고 싶거든 먼저 남을 비판하라! 어느 누구도 비판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판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비판이나 비평은 올바른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소설가들이나 시인들 문필가들은 자신이 쓴 시나 소설집을 써내고 난 다음 문단에 비평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다른 문필가들이 그 사람의 작품을 비평해 줍니다. 좋은 점은 올려주고 보완해야 할 점은 지적하고 보지 못하는 점은 보게 해주고 더 강조해야 할 부분을 일러줍니다. 그 비평으로 인해 그 사람은 더욱 발전할 수 있고 그 비평으로 인해 오히려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보게 됩니다. 문필가들에게 있어서 누군가 비평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비평할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올바른 비평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비판은 부모가 자식 잘되라고 야단을 치고 스승이 제자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고 평론가가 비평을 하는 그런 종류의 비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비판받지 아니 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셨을 때 그 비판은 건전한 비평이 아닌 남을 중상하고 이웃을 모해하고 남을 깍아 내리고 남의 인격에 험집을 내고 손상시키는 그런 비판을 말합니다. 남을 업신여기는 것, 남을 깔보는 것, 남을 미워하여 사실이 아닌 흑색선전을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모든 말을 비판이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인터넷에 들어 가보면 기사가 나오고 그 기사에 나름대로 비평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100 자평>이라든지 <나도 한마디> 등으로 비평의 글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흥미가 있어서 몇 번 보았지만 이제는 보지 않습니다. 보면 대부분이 비난하고 깍아 내리는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 기사를 보면 칭찬을 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깍아 내리는 글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케이블 채널에서도 이제 영국 국영방송인 BBC를 볼 수 있습니다. BBC에서는 영국의 의회를 방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만 한쪽 편에 여당이 앉고 다른 한쪽 편에는 야당이 앉아서 국사를 논합니다만 야당이 여당을 공격할 때도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먼저 한참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를 칭찬합니다. 침을 바르면서 칭찬을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 다음에 말하기를 그러나 나는 토니 블레어는 좋아하지만 노동당의 정책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노동당의 정책이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합니다. 그러면 노동당 당원들이 그것을 깊이 경청합니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가 발언을 할 때도 발언을 한 상대당 의원을 또 칭찬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 당의 정책에 비판을 가해주신 의원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당 정책을 홍보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자기 당의 주장을 더욱 분명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국민들은 그들이 토론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두 당의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예수님은 비판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왜 비판을 하지 말라 하셨나에 대해,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누군가 비판을 하게 되면 그 비판을 당한 사람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비판을 할 때 그 사람이 면전에 있을 때 그를 비판할 수도 있고 그가 없을 때 그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있을 때 비판하는 것보다 그가 없을 때 비판하는 것이 그 비판을 듣는 당사자에게는 훨씬 더 강하게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누구를 그 사람 면전에서 비난하거나 그가 없을 때 등 뒤에서 비난을 하면 비난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듣고 그냥 웃고 넘기지 아니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비판할 때 그가 면전에 있을 때 비판을 하였다고 합시다. 그가 여유있게 웃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두 유형 중 한 사람입니다. 무골호인이든지 아니면 겉으로는 여유있게 웃으면서 속으로는 비통함을 느끼거나 앙심을 품습니다. “너 두고 보자!” 합니다. “내가 흘린 눈물 이제는 네 눈에는 피눈물이다!“. ”내가 받았던 그 고통을 너는 천배로 느껴보아라!!“ 비판을 받았던 그 사람은 비판을 한 그 사람에 대해서 자료수집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의 단점, 허점, 약점, 결점을 꼼꼼하게 파악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것들을 슬며시 흘림으로써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것들을 불특정다수에게 그것들을 흘리기 시작하는데 사실 자체만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부풀려 얘기하고 침소봉대하고 때로는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내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은 것처럼 속여 말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당한 비난의 아픔을 30 배 60 배 100 배로 돌려주려 합니다. 설령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고 부풀려져 있던 것이 들어난다 하더라도 이미 어두운 영향을 끼쳐 놓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거두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난의 화살을 날릴 때 그 비난은 반드시 되돌아오는데 올 때는 단순히 화살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비난의 총으로 비난의 대포로 비난의 기관단총으로 되돌아옵니다.  

둘째, 비판을 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깍아내리거나 자신의 가치를 하향조정시키게 됩니다. 여러분! 미국의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를 아십니까? 이 무디스사가 한국경제상황을 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aaa로 평가하느냐 그저 aa 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돈가진 물주들이 한국에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어 한국경제가 출렁이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은 높이 우러러 보지만 어떤 사람의 인격은 아래로 내리 깔고 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의 품격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비록 지게꾼이라도 그의 인격을 고매하게 우러러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록 정치적 권력을 막대하게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인격을 우습게 평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깍아내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격을 하향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남을 비방하는 사람입니다. 비난을 하거나 비방을 하게 되면 결국 비난을 한 그 사람에 대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그의 인격을 깍아내리게 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스스로 인격을 깍아내리게 됩니다. 만일 내가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을 하였다고 합시다. 비난하는 그 자리에 자신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있었고 비난하는 그 대상이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합시다. 그 비난하는 소리를 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으로 그 비난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비난을 하는 그 사람의 인격을 나름대로 평가하게 마련입니다. “남이나 비난하고 다닌다니 형편없는 사람이구만! 저 사람은 언젠가는 내가 있지 않은 자리에서 나를 비난할 사람이구만! 그러고 저 사람하고 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인격을 낮추어 보고 그의 인격을 나름대로 하향조정(downgrade)하게 됩니다. 이야말로 하늘을 보고 침을 뱉는 일이며 이야말로 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난하는 그 사람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면 50 m 전방에서 그를 보면 옆 골목으로 피해 버립니다. 비난하는 그 순간이 바로 내 인격의 가치를 스스로 하향으로 평가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들이 비방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과는 교제하지 말아야 겠다 해서 그를 멀리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하향되는 것은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격이 하향되는 것은 회복할 수 없는 일로서 실로 엄청난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건물 옥상에서 돈을 그냥 뿌릴지언정 비방하고 비난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기 바랍니다.  

셋째, 비방하게 되면 상대방도 죽게 하고 자신도 결국 죽게 하는 일입니다. 비방하면 그 비방으로 상대방이 죽게 됩니다. 비방은 마치 독과 같습니다. 나무나 풀에 독을 뿌리면 결국 죽습니다. 비판을 한다함은 입을 열어 바로 스프링 쿨러로 독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독입니까? 독사의 혀에도 독이 있습니다. 청산가리에는 화약약품의 독이 있습니다. 복어알에도 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독들은 비판으로 쏟아내는 독보다는 그 독성이 덜 강합니다. 독사의 독이나, 청산가리 독이나 복어알의 독은 한 사람이나 죽일 뿐이지만 비판의 독은 수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만일 비판을 자녀들에게 했다고 합시다. 자녀들이 칭찬을 받지 못하고 계속 꾸중만 듣고 야단만 맞는다면 결국 그 어린 영혼은 죽어가게 됩니다. 기를 피지 못하고 매사에 자신없는 인간이 됩니다. “너는 이 놈아! 왜 그렇게 못났냐!, 하고 아이를 비난하면 그 어른의 비난 속에 자란 아이의 영혼은 죽어가게 됩니다. 비난을 한다는 것은 독을 뿌리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독을 뿌리면 그 독 때문에 화초가 죽습니다. 비난이 얼마나 그 독성이 강한지 들어 봅시다. 이번에 전 미국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대통령 의 부인이고 현재는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인 힐라리 로드햄 클린턴이 조선일보사와 인터뷰를 한 것이 실려 있어서 읽어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조선일보 기자가 질문을 합니다. 다음에 대통령으로 출마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녀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한 아픈 기억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남편이 대선을 출마했을 때 나는 45 세였다. 그때까지 살면서 누가 나에 대해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정적들이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자신과 관련된 사실 무근의 소문과 의혹을 매일 듣다 보면 온 몸이 마비된 듯 꼼짝 못하게 된다” 그렇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역시 그럴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칭찬을 받을 때는 두둥실 떠서 하늘을 경험하게 됩니다만 비난을 받을 때는 그냥 가시가 찌를 때보다 왕주사를 맞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비난을 받을 때 비난의 소리가 들려올 때 그때 경험은 그야말로 고통입니다. 지속적인 비난과 비평은 결국 그를 죽게 만듭니다. 비난이나 비방이 독이기 때문에 비난을 하는 사람은 그 속에 독을 품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또 상습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자신이 독을 가지고 있어 그 독을 언제나 뿌리기 때문에 자신 역시 그 독성 때문에 죽어가게 됩니다. 자신이 독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 역시 단축시키게 됩니다. 데이비드 푹(David H fink)박사에 의하면 신경과민증에 걸린 환자 1,000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해본 결과 신경과민증에 걸린 사람들 대부분이 남을 날카롭게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남을 비판하는 경향성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넷째로 비방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적자로 만들고 손해만 끼치는 일이 됩니다. 인생을 흑자로 만들어야지 적자로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비방할 때 그 인생은 적자로 돌아섭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분깃점에 서 있다고 합시다. 오른쪽으로 가면 흑자로 가는 인생이요, 왼쪽으로 가면 적자로 간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만일 여러분이 칭찬을 잘하고 격려를 잘하고 위로를 잘한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오른쪽 방향으로 흑자로 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칭찬을 많이 하는 사람은 칭찬도 많이 받게 되니 그 인생의 마음이 뿌듯해지고 부유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기어코 우기면서 자신의 인생을 적자로 돌아서게 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비난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비방할 때 비방하는 그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는 쾌감을 줄지 모르나 그것은 잠시뿐이고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만을 끼치게 됩니다. 비방하는 사람은 첫째로 자기 자신이 비난하는 사람에게 더 강도가 깊은 비난을 받지,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깍아 내리는 일을 하지, 남에게 독을 뿌릴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독을 뿌려 결국 자신에게 이만저만한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살면서 왜 유익이 될 언행을 해야지 손해가 될 적자로 만드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나중에 인생을 평가해 볼 때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갚아야 할 부채만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자루라고 한다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루를 채워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 인생이란 자루는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 펼쳐 놓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자루에다가 비난, 흑색선전, 험담, 욕설,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격려, 위로, 칭찬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자루의 내용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시던지 꾸중을 하시던지 할 것입니다. 우리가 6-70 년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 인생의 자루를 그런 허접 쓰레기와 같은 것들로 채워서는 되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자루를 그런 가치 없는 것들로 채워가서 주님 앞에 뭘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입니까? 성경 로마서 14 장 10 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 인생이 다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지만 형제를 판단하고 업신여기고 자매를 비방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다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오른쪽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왼쪽으로 염소의 자리에 배치되게 될 것입니다. 지옥의 불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남을 칭찬하고 이웃을 격려하고 형제를 위로하고 자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그는 상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끼리도 서로 수군수군하면서 남의 험집을 내고 부정적인 언어로 말하고 하면 그는 자신이 성도로서 거룩성을 스스로 내어 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경험케 할 수 있고 여러분은 지옥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이 만들어 가는 도구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비난하고 남을 공격할 때 여러분은 지옥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말로서 하늘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처 입은 자들을 위로하고 의기소침한 자들에게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칭찬해주고 어깨를 두드려 준다면 여러분은 하늘을 이 땅에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가 됩니다. 비방하는 사람은 확실히 이 땅에서 지옥을 만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방을 받을 때 그 사람은 지옥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비방을 하는 사람도 그 지옥을 만들고 그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더니 자신의 이름이 있고 자신이 한 모든 말이 세 함에 담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일 왼쪽 함 검은 상자에는 자신이 한 욕설과 중상모략과 남의 가슴에 못박은 말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가운데 함은 회색이었는데 그저 칭찬하지도 않고 격려하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은 말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가장 오른쪽 푸른 상자에는 자신이 사랑을 가지고 했던 말들, 자신이 격려했던 말들, 자신이 위로했던 말들, 자신이 희망을 남긴 말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저렇게 내가 한 말이 분류되어 있느냐고 했더니 지상에서 했던 모든 말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해명을 해야 하고 이에 대한 상벌이 따른다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만들어 낸 이야기이지만 실상이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했던 모든 말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다 해명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단치는 것이나 사랑하는 맘으로 잔소리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오른쪽 편에 배열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없이 그저 입술로만 했던 말들은 중간에 배치될 것이며 남을 비방하거나 남을 욕되게 하거나 남을 깍아 내리거나 했던 말들은 다 왼쪽에 배치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말을 할 때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이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분류될 것이며 어떤 말들은 왼쪽 함에 담겨질 것이고 어떤 말들은 가운데 함에 담겨질 것이고 어떤 말은 오른쪽 상자에 담겨질 것입니다. 이 시간 한번 분간을 해 봅시다. 제가 말을 하면 어느 상자에 담겨질 것인가를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른쪽 상자, 왼쪽 상자, 가운데 상자 그렇게 말하시면 됩니다. 1. 너 반드시 죽일꺼야!! (왼쪽상자) 2. 밥 먹으로 갈까? (가운데 상자) 3. 하나님이 널 사랑하셔서 그런거야! (오른쪽상자) 4. 그 자식 콱 죽여버렸음 좋겠어!! (왼쪽상자) 5. 호랭이가 물어갈 놈! (왼쪽상자) 6. 염려하지 마세요 주님이 다 고쳐주실 거예요!! (오른쪽 상자) 7. 그 사람 말이야 영 틀려 먹었어!! 싹수가 노래!!  

성도 여러분! 늘 깨어 있어서 무슨 말을 하던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주님 앞에 있는 세 상자에 분류되어 담겨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비판하는 말을 많이 하거나 깍아내리는 말을 많이 하여 왼쪽 상자를 가득 채우지 마시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덮어주는 말을 많이 함으로 여러분의 오른쪽 상자를 가득 채우시는 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비판하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주님 저희의 입술을 성령으로 지져 주시어 저희의 말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성도로 삼으셨사오니 저희로 거룩한 말, 사랑하는 말,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많이 하게 하옵시고 이웃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 욕하고 비방하는 말, 깍아내리는 말, 그런 말들은 하지 않도록 도우시옵소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말만 하게 하옵시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사랑을 더하고 덕이 되는 말을 보다 많이 하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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