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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철야설교)누구든지 죄 없는자가!!

관리자 2010-12-14 (화) 13:35 15년전 2078  

2003 년 9 월 오후 10 시 광주가나안교회 금요철야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요한복음 8 장 2 절 - 11 절

제 목 :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2 절부터 보겠습니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아침에 다시 성전에 들어오시니>. 이 부분에서 “다시”에 밑줄을 그어 봅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아침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직장인이 출근을 하듯이 성전에 매일 같이 가시어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다 나아오는지라> 왜 백성들이 다 나아왔을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매일 아침 성전에 출근하시니 백성들도 아침에 나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나아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백성들이 만사를 다 제치고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성전에 나아온 것은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함이었습니다.

3 절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아침에 성전에 나아왔는데 이들도 권위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왔습니까? 아닙니다.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웠습니다. 아마도 간음하는 여인이란 다름이 아닌 유부녀가 아니라 직업여성인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창녀 혹은 창기라고 합니다. 만일 그냥 유부녀라면 아침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부녀가 바람을 피었다면 남편이 일터에 나간 다음에 바람을 피지 아침에까지 바람을 피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들이 자신의 몸을 파는 여자들이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 백성들은 로마당국에게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저 사는 것도 힘든데 로마당국에 세금을 내야하고 세리들은 자기 몫까지 챙기려 하니 이중과세가 되어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유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죽은 사람들이 많았고 먹고살기가 아득하여 여인들이 자신의 몸의 기본 조직을 이용하여 입에 풀칠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요세푸스라는 역사가의 역사서술에 보면 1 세기에 팔레스타인은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거지들은 널려 있고 병자들은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어 신음하고 창녀들은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암울한 시절이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는 아마도 천부적으로 음탕해서 간음을 한 여자라기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아마 그런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아침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잡아온 것은 현장에서 우연히 그 여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고 골탕 먹이기 위해서 이미 매춘의 장소를 잘 알고 있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한 곳을 골라 그 중의 한 여자를 잡아 아침에 예수님께 끌고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연히 그 여인을 발견하여 그것도 예수님이 성전에 오신 것을 알고 예수님께 끌고 갔겠습니까? 상당히 고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여인을 잡아 예수님께 끌고 간 것입니다.

4 절입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여기서 의문이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여자만을 끌고 왔을까? 간음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면 남자도 붙잡아야 공평한데 왜 여자만 끌고 왔을까요? 요즘 여성계에서는 매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매매춘이라고 합니다. 성을 파고 사는 일이기 때문에 살 매 팔 매 하여 매매춘이라 합니다. 매춘을 한다고 하였을 때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오직 여자만 끌고 온 것입니다. 여기에 성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몸을 파는 여자만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사려고 하는 남자도 문제가 있습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지 않겠습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순수한 의도가 있었고 율법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면 간음하다 현장에 붙잡힌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끌고 왔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뭇 남자들이 여자 하나를 놓고 정죄하려 하는 상황입니다.  

5 절입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이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는 정통한 작자들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모든 경우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부녀와 유부남이 간음한 경우는 양자를 다 죽이도록 하였고 약혼 중인 처녀가 빈들에서 강간당한 경우는 남자만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보면 간음했다고 다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有夫女와 有婦男이 간음한 경우는 兩者를 다 죽이도록 했습니다. 약혼중인 처녀가 빈들에서 강간을 당한 경우는 남자만 죽이도록 했습니다. 미혼의 처녀가 간통을 한 경우는 남자에게 평생 아내를 삼도록 했습니다.(신22:22-29). 이 상황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상황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의 어떤 조항에는 간음한 사람은 죽이도록 되어 있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모세의 율법을 일러주고는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만일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 왜 당신은 우리 모두가 모세의 법을 따르고 있는 당신은 따르지 않소! 당신은 유대백성이 아니요? 하고 몰아부쳤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이지 말라 하였으면 아니 예수는 율법을 무시하는 자라 하여 한순간에 내동이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대로 하라고 했다면 두 가지로 예수님을 압박했을 것입니다. 하나는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죽이게 했다면 예수를 로마당국에 고발하였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식민지백성중 그 누구든지 로마당국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사형을 선고하거나 사람을 죽이면 엄벌을 내리도록 되어 있어서 만일 모세의 법으로 죽이라 허락하였다면 당장 로마당국에 체포될 판이었습니다. 또 돌로 쳐 죽이라 하였으면 예수는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그 말씀을 했으면서도 자기가 하는 말씀 하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여인을 돌로 쳐죽이게 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라고 다그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런 샌드위치로 위험한 늪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즉답을 피하시고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하셨습니다. 무엇을 쓰셨겠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예수님이 뭐라고 쓰셨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 골탕을 먹이려고 나를 모해하는 말을 하였을 때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을 때는 할 말을 잊고 그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을까요? 

6 절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샌드위치로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여 예수님을 골탕 먹여 예수라는 작자 그거 아무 것도 아닐세! 하면서 평가절하하는 작업을 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예수님의 권위를 완전히 뭉개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7절과 8 절입니다.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한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할 말이 없으니까 딴 청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하여 묻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입을 열으셨습니다. 무슨 많은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렇고 너희가 하려는 일은 이렇고 이래서야 쓰겄느냐?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야지 이 가녀린 여인을 꼭 돌로 쳐야 맘이 시원하겠느냐는 식의 동정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딱 열 다섯자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가 예수님을 어떤 덫에 빠지게 하려는, 또 어떤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려는 것을, 모세의 율법이 지켜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무척 복잡한 것을 일거에 정리해 버립니다.

9 절을 잘 읽어 봅시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을 가책을 받았다 하였습니다. 저희가 누구입니까? 간음하는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데리고 온 그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사람도 있었고 그들 중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단지 한 마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한마디 말씀을 자신에게 다 물어보았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에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양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로 치려는 사람들은 물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인 것을 잊고 자신에게 실존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 보았을 것입니다. “난 저 여인을 돌로 칠 만큼 죄를 짓지 않았을까? 나는 무죄한 인간인가? 나는 간음을 하지 않았고 나는 마음속에 여인을 품고 생각 속에서 음욕을 즐기는 일이 없었던가 나는 전혀 하나님 앞에 무죄한 인간인가?”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돌로 치려했던 자신을 심히 부끄럽게 생각되면서 그 자리를 하나씩 하나씩 다 떠나 나중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질문을 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 질문과 동시에 그 여인을 칠려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던 돌들을 잡았던 손이 풀려지면서 돌을 하나씩하나씩 슬그머니 떨어뜨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나이를 더 먹은 어른에서부터 나이가 젊은 사람 순서대로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 점점 더 인간성이 좋아지고 좀더 도덕적이 되고 좀더 윤리적이 되는 것을 뜻합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죄를 짓게 되고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분홍과 같은 죄가 피와 같이 붉은 죄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안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 앞에 덜 순수해지고 더 하나님 앞에서 온전치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까지는 아닐지라도 돌을 들고 치려고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많이 서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죄없는 자로서 의인으로서 거기 서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 하면서 그런 놈들은 가만히 두면 안돼! 하면서 단호한 입장이 되었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더욱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부를 때에는 그저 뚜렷한 느낌 없이 찬송가 가사가 그렇게 쓰여있으니까 불렀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피와 같이 붉은 죄가 나에게 있지! 내가 참으로 죄인 중에 죄인임을 실감합니다. 주님 앞에 가면 무수히 야단을 많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은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금방 금방 다 까먹고 그 은혜를 보답하는 생활을 못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사십시오! 저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설교하고서도 정작 나 자신은 설교한대로 살지 못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돌을 들고 서 있었던 사람들의 자리에 서 있었지만 요즘은 마땅히 돌을 맞아야 할 여인의 자리가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라는 것이 나이가 들 수록 깨달아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10절에서 11 절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며 여인을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여인을 새로운 출발점에 다시 출발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피와 같이 붉은 죄, 돌로 맞아 죽어야 할 죄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는 말씀을우리 자신에게 한번 깊이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허물이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나는 과연 올바른지!! 이 시간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의 빛에서 비추어본 나 자신의 실존의 모습은 어떠한지! 조용히 여러분 자신을 비추어 보고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다면 조용히 잘못을 주님께 아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낱낱이 주님께 지은 허물을 아뢰는 어느 시간에 주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은혜로운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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