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9 월 7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누가복음 23 장 39 절 - 43 절
제 목 : 낙원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흘러넘치시기기를 축원합니다. 지난주는 “지옥이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낙원이 있습니다“는 주제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변으로 해서 일어난 짧은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 좌우 양 곁에는 두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십자가에 달린 가운데서도 말을 주고받습니다. 39 절을 보겠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오늘 성경에 보면 한 행악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두 행악자들은 아마도 글자그대로 악을 행하여 무척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 로마당국에 의해 십자가형이란 극형에 처해진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두 행악자들은 익히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행악자가 먼저 입을 열어서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점잖게 기록했지만 분명히 이랬을 것입니다. ”야, 너 예수란 자식이지, 너! 사람을 구원하러 왔다고 했잖아!! 지금 무기력하게 사형을 받아 죽어가는 마당에 니가 무슨 구원자긴 구원자야, 사기쳤구만, 니가 구원자면 너와 우리부터 구원해 봐! 그럼 믿을께!“ 하면서 조롱하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것도 말할 수 없이 고통인데 이 행악자의 말을 듣고 정신적인 고통이 더 가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쪽에 있는 행악자가 말합니다. 40 절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예수님을 변호하고 옹호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얼굴을 돌려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42 절입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3 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는데 이 낙원에 밑줄을 긋고 낙원이 무엇인지 먼저 함께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낙원이 무엇일까요?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으니 분명히 낙원이 있기는 할 텐데 낙원이 무엇이며 낙원이 어디에 있을까요? 낙원!! 글자 그대로는 즐길 樂 동산 園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의 동산입니다. 성경 창세기에 낙원이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이 낙원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이라 할 때 에덴은 히브리어로 기쁨, 즐거움, 희락이란 뜻이니 바로 에덴동산은 그야말로 즐길 樂 동산 園 樂園이었습니다. 이 에덴동산은 어떤 가상의 공간에 있었던 곳이 아니라 인류문명의 4 대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기가 막히게 살기에 좋고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에덴동산 안에는 동서남북으로 4 개의 맑은 강들이 흘렀고 푸른 숲으로 둘러쌓여 있었으며 각종 과실나무가 풍성하게 열려 있었고 정금을 비롯한 각종 보석들이 나는 실제적으로 지구상에 있었던 동산이었습니다. 이 낙원인 에덴동산은 아담과 이브가 범죄함으로 폐쇄되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이 낙원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 창세기에 에덴동산이 있다면 성경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 보면 에덴동산과 비슷한 땅이 나오는데 이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성경은 이를 천국 혹은 천당이라 합니다. 한번 볼까요? 계시록 22 장 1 절에서 5 절입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치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계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너무도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마치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업그레이드되고 또 업그레이드된 것이 바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같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네 강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른다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는 푸른 숲과 각종 나무실과들이 있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생명나무가 있고 실과가 맺히는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가면 영혼만 있기에 이 세상에 있는 비슷한 것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천국의 에덴에는 보통의 상식을 깨뜨리고 푸른 나무가 있고 맑은 강이 흘러가고 각종 과실나무가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는데 계시록의 천국에도 생명나무가 있고 단지 선악과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낙원은 전혀 보이지 않은 세계가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고 나무도 있고 생명나무가 있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낙원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그 과실을 먹을 수 있는데 아마도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계시록에는 낙원의 모습을 이렇게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또 에덴동산에도 하나님과 사람이 있었는데 새 하늘과 새 땅에도 하나님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땅에서는 영혼만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리라는 통념과는 달리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천국을 가고 지휘자 김채수 집사님이 천국에 가서 만난다면 서로 얼굴을 보게 된다 그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계시록 22 장 4 절에 보면 이름도 있다 하였습니다. 얼굴을 보면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도 직분도 있습니다. 24 장로가 나오니 장로 혹은 집사의 직분도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우리의 낙원 혹은 천국과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낙원은 열반이라고 하는데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생각들을 자아 속에서 지워버리면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열반(니르바나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데 열반은 성경에 나와 있는 낙원이나 천국과 같은 장소가 아니라 형체 없는 원형으로 기쁨과 영원한 평화의 상태이고 이것을 극락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극락은 형체도 없고 형체도 없으니 얼굴을 볼 수 없고 이름도 없는 존재이지만 성경에서 나오는 천국은 이름도 있고 직분도 있고 강도 있고 나무도 있으며 얼굴을 대하여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 장 12 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은 계시록에서 계시되었던 낙원과 전혀 다른 낙원이 아니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낙원을 말합니다. 계시록에 계시된 낙원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이 살기 좋은 곳입니다. 거기는 생명나무가 있어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곳입니다. 거기에서는 그저 형체가 없는 영이 떠돌아다니는 어떤 곳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보고 서로 말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고 거기서 생명강가에서 얼굴을 씻을 수도 있고 거기서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계시록 21 장 1 절에서 4 절을 볼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낙원에는 죽음이 다시없고 고통이나 아픔이나 울음이 없다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낙원에 관하여 바울 사도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말합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하였습니다. 12 장 4 절에 보겠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에게 이끌려 가서 셋째 하늘인 삼층천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신비를, 미리 낙원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낙원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 장 1 절에서 3 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고 하셨는데 이는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거할 특별히 좋은 처소를 예비하시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텔에서도 로얄 스위트룸이 있듯이 새하늘과 새 땅의 거할 곳이 많은 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특별히 로얄스위트룸을 처소로 준비해주신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처소를 예비하신다는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은 서로 다른 곳이 아니라 같은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낙원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은 죽음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강도에게 낙원을 말씀한 시점이 언제입니까? 십자가에 달려 이제 죽음이 임박한 시점입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사람에 따라 짧으면 2 시간 만에 길면 아무리 길어도 하루 안에는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현실 속에서 예수님은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 행악자들이 이제 오늘 안에 죽을 것인데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갑자기 기적을 일으키시어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가게 하시고 어떤 낙원을 이 세상 가운데 마련하시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낙원은 죽음과 죽음 이후와 관련이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보다 정확하게는 오늘 네가 죽게 되면 너는 낙원,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혹은 오늘 네가 이 땅에서 생명이 마쳐지면 천국에 있는 너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옆에 달린 한 행악자가 죽은 이후에 낙원에 가도록 배려해 놓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죽음이 끝장이 아니라 죽음 저편에 낙원으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리고 지옥과 낙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 장 27 절을 보겠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리“ 그렇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지옥과 낙원으로 갈리게 됩니다. 존재의 형태를 달리하여 새로운 존재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던 그 행악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낙원으로 직행하였을 것입니다.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두 행악자에게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두 행악자에게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1> 둘 다 흉악한 범죄를 행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2> 둘 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같이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3> 두 사람 모두다 예수님의 좌우편에 매달려 인생의 죽음의 순간에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1>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비난을 했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39 절에 있습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을 꾸짖고 예수님을 변호하고 옹호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느냐?” 2> 한 행악자는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부인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은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 3> 한 행악자는 회개를 했습니다. 41 절에 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거니와” 자신의 죄가 십자가에 달릴 죄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만 다른 행악자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4> 한 행악자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께 부탁하고 기도했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 기도했습니다만 다른 행악자는 예수님께 부탁을 하거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5> 한 행악자는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지만 다른 행악자는 어떤 응답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한 행악자가 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성도 여러분은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한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도 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약속도 못 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약속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을 듣지 못하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그 영혼은 지옥에 갔을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죽음을 가까이 한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그저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부인하고 낙원 약속을 받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낙원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지옥입니다. 그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조건은 다른 행악자와 같았습니다. 죄도 같이 지었고 십자가에 달린 것도 같았습니다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 극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두워 할 줄 알아라!고 친구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옳으시다!”고 예수님을 칭송하고 찬송했습니다. 예수님께 간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당신의 나라가 올 때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께로부터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로부터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는 지극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제가 누가복음 23 장 39 절에서 43 절에 이르는 상황을 서로 대화하듯이 천천히 시간을 재어 보았습니다. 1> 행악자가 예수님께 비방하는 내용의 말 _ 5 초면 할 수 있습니다. 2> 다른 행악자가 그를 꾸짖어 하는 말 - 13 초입니다. 3> 예수님께 부탁하는 말 - 4 초입니다. 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 5 초입니다. 모두다 합하면 27초 정도 안되지만 약간의 간격을 따지자면 아무리 천천히 넉넉잡고 한다고 해도 약 40 초에서 50 초도 안되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짧은 순간, 1 분도 안되는 시간이 낙원과 지옥이 결정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부인하였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낙원을 약속받지 못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생의 최대의 기회가 왔는데, 아니 영원한 생명의 기회가 왔는데도 발로 차버리고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함으로 낙원 아닌 곳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경쟁적으로 예수님을 칭찬하고 찬송하고 예수님께 서로 간구의 기도를 드려 “오늘 너희 둘 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축복된 말씀을 둘 다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이 행악자는 완전히 인생역전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입니다. 얼마 전 해외통신에 어떤 영국사람이 400 억짜리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그것을 서랍속에 두었다가 나중에서야 당첨된 것을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로또 당첨금을 수령하는 기간이 지나버린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비방한 한 행악자는 로또에 당첨되었지만 기간을 넘겨받지 못하게 된 사람보다도 수천배 수만배 더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영생과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이 한 말 5 초 정도되는 말로 놓쳤으니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다른 행악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 1 분도 안 되는 시간에 예수님을 옹호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옆의 동료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전도도 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부탁하여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축복의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흉악자가 갈 지옥에서 극적인 순간에 불과 1 분도 안되는 순간에 자신의 인생의 역전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 만나 낙원으로 직행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말로 인생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낙원이 있습니다. 성경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이 있다고 하셨으니 낙원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지옥도 있습니다. 성경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있는 것입니다. 낙원과 지옥은 여러분이 죽어보면 죽은 지 40 초도 안되어 분명히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무시간입니다. 낙원과 지옥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지옥이 결정되기도 하고 낙원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더욱 높여드리고 예수님께 여러분의 허물과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예수님께 간구하며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므로 가나안 성도 여러분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네가 앞으로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는 축복된 약속을 다 듣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깨우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로 주님으로부터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축복된 약속을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의 삶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며 예수님을 더욱 섬기고 높여드리며 더욱 찬송하고 더욱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나안 성도들 모두가 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천국시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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