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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관리자 2010-12-14 (화) 13:44 15년전 2286  

2003 년 9 월 24 일(목) 오전 5 시 광주가나안교회 새벽기도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야고보서 4 장 13 절 - 17 절

제 목 :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 여러분의 사람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져 죽기 사흘 전에 한 장관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관부인에게 편지를 쓴 것이 박 대통령이 죽은 뒤 금고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이란 원래 무상한 것이고 한 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너무도 홀연히 떠나시니 애석하고 허전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10 월 23 일 그 편지를 쓰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이 쓴 글의 임자가 될 줄 알았을까요? 그는 당시 온갖 정보부서란 정보부서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정보부, 중앙정보부, 검찰과 경찰 등의 모든 정보기관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최고권력자였지만 사흘후 자신이 어떻게 도리는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럼 사흘 전은 우리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오늘 성경말씀을 들어 봅시다.  

우리 인생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4 장 14 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4 절 상반절부터 보겠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여러분 내일 일을 잘 아시는 분 있으십니까? 다시 말해서 미래에 대한 투시력이 있는 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내일에 대하여 훤히 알게 된다면 여러분은 막강한 권력을 얻을 수 있게 되고 세상의 돈도 한 손에 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가동향을 안다면, 내일 발표되는 로또복권의 여섯 자리 숫자 번호를 알고 있다면, 내일 일어날 큰 사고를 미리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자가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일 되어질 일을 알게 되어 오늘이 9 월 10 일이고 내일이 9.11 일이어 비행기 두 대가 쌍둥이 빌딩을 치게 될 것이라고 미 국방성에 알려 주었다면 그는 그 능력으로 인해 감사장 수천개를 받았을 것입니다. 내일 일을 알게 된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그는 권력과 돈이 생기게 되고 영적인 권위도 서게 되어 그는 그 힘으로 온 세계와 열국을 지배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오전에 있으면서도 오후에 무슨 일이 있을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전에 있다고 해서 오전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1 시간 후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1 시간 안에도 한 시간을 다 알지 못합니다. 2001 년 9, 1 테러가 있었을 때 일입니다. 2001 년 9 월 11 일 아침 8 시 45 분 81 명의 승객과 11 명의 승무원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AA11 편이 맨하탄 세계무역센터 북동쪽에 충돌하여 건물 전체를 파괴시켰을 때 바로 옆에 있는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설마 비행기가 또 나타나 자신이 있는 빌딩을 폭파하겠느냐 하면서 그냥 그 빌딩에 있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불과 정확히 18 분 후 자신이 일하고 있는 건물에도 똑같이 비행기가 날아와서 건물에 충돌하여 폭파하였습니다. 첫 쌍둥이 빌딩이 폭파된지 정확하게 9 시 3 분에 승객 56 명, 승무원 9 명을 태운 보스턴 발 로스엔젤리스 행 유나이티드 항공 175 편이 세계무역센터 두 번째 건물에 충돌하였습니다. 정확하게 18 분후에 무슨 일이 추가로 일어나는지를 알았다면 필사적으로 18 분 안에 피하여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그렇다면 18 분전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과 1, 2 분 이후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언젠가 저는 우리 교회로 보내주는 불기둥이란 팜프렛에서 읽은 내용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있는 교회의 한 집사님이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합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일입니다. 그곳에서 가까운 교회의 한 전도사님이 어느 집사님 집 심방을 가기 위해서 전화를 했는데 그 집사님은 백화점에 아이의 신발을 사주려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억지를 부렸습니다. 심방을 받고 가시라고! 그래 우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서 전도사님의 심방을 먼저 받았습니다. 전도사님이 가시고 난 뒤 서둘러 다시 삼풍백화점으로 가는 길 차안에서 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가만히 시간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만일 자신이 전도사님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대로 아이와 함께 운동화를 살려고 삼풍백화점에 갔다면 정확하게 30 분후 무너지는 그 시간에 매장 안에 있었을 것이며 자기와 다섯 살 박이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전도사님을 천사로 삼으셔서 자신의 생명을 구출해 주셨다고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30 분후도 모릅니다. 시간의 미래는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갈대와 같다고 합니다. 오늘 들녘에 청초하게 피어있다가도 내일이면 베어져 아궁이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제 일은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이야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 알 수 있습니다만 내일 일이야 미래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흘 후를 알지 못하며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우리는 30 분후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생명은 안개와 같습니다. 14 절 중반절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우리 생명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에게 그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몸을 한번 만져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입니다. 인간생명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 마음과 영혼, 그리고 시간입니다. 몸이 없는 생명은 이 땅의 생명이 아닙니다. 마음과 영혼이 없는 생명은 인간생명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다면 아예 생명이 존재치 않습니다. 생명이란 얼마나 가치평가 될까요? 지난 동대구역 열차충돌 사건으로 사망한 한 분은 교사였는데 철도청 동구역 사고대책본부에서는 그가 받고 있는 임금을 산출하여 계산한 결과 5억 8500만원을 유족에게 배상하였다고 합니다. 생명보험회사의 약관에 보면 한 사람이 사망하였을 당시 보상금액을 산출하는 근거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한 사람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면 5억 8500만원의 10 배인 58 억 5000만원을 주겠소! 하면 응락하겠습니까? 그 100 배인 585 억을 준다고 해도 그 1000 배인 5850 억을 준다고 해도 그 10000 배인 5 조 8500 억을 준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이 없는 상태에서 그 많은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니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과 바꾸겠습니까? 여러분은 백화점에 가면 2500 만원짜리 모피코트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분들은 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을 한번 만져 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영국에 가면 런던 아래쪽에 영국의 역대 왕관들을 전시해 놓고 관광객들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왕관에 박혀 있는 보석 중에는 아기 주먹만한 푸른빛의 보석이 있는데 그 가격은 돈으로 따지자면 800 억원이 넘는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그것을 만져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특수유리 안에 있고 그 유리조차 만지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명의 값어치는 그런 푸른 보석 1000 만개와도 바꾸지 못할 정도의 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 여러분의 몸을 만져 보시기 바랍니다. 800 억원이 넘는 푸른 보석 1000 만개보다도 더 값어치가 있는 여러분의 몸을 한번 만져 보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은 너무도 바쁘게 사느라고 천하보다 귀한 여러분의 생명의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아니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위해 한번쯤 걸음 멈추고 내 생명을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 생명이 도대체 어디서 출발했고 내 생명이 언제쯤 끝나고 내 생명이 도대체 무엇인가? 내 생명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값있게 살 것인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질문입니다. 도대체 내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난 한 주간 동안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은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최근에 내 생명이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은 손들어 주십시오! 최근에 내 생명이 이 땅에 있는 의미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은 손들어 주십시오! 지난 한 주간 앞으로 벌어야 할 돈이나 들어가야 할 비용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분 손들어 주세요! 생명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성경은 생명에 대하여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합니다. 첫 번째는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누가복음 9 장 25 절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일지라도 이 땅에서 안개와 같이 덧없이 속절없이 사라진다 하였습니다. 천하 보다 귀한 것이 사라질 때는 그저 안개와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안개를 보셨습니까? 이른 아침에 안개가 끼여 있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 안개는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거짓말 같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안개가 짙게 끼었다고 해도 하루 이상 넘어가지 않습니다. 해가 솟으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 같이 안개는 사라집니다. 어떤 안개는 아침 8 시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비행기 이착륙을 어렵게 하지만 거의 대부분 9 시 이전에 사라지지 않는 안개는 없습니다. 안개가 짙다고 해도 하루의 절반의 절반도 못넘기는 것입니다. 아침의 꽃잎 끝에 달린 이슬방울도 그렇습니다. 해가 솟으면 이슬방울은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래 찬송가에서는 “아침의 이슬방울 쉬사라짐 같이” 생명의 짧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지만 그 귀한 생명도 안개와 같이 쉬 사라진다는 성서적인 역설입니다. 우리 교단 약 1500 여개에서 어떤 분이 돌아가시면 총회에서는 제일 먼저 노회서기에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저에게 연락이 옵니다. 그러면 무척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그토록 팔팔하시던 분인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수를 하면서 손을 꼭 잡았던 분인데 하면서 놀라게 됩니다. 돌아가신 양림교회 고 전태국 목사님은 가시기 며칠 전인가요 증경총회장님이신 김경식 목사님을 강진까지 태워다 드리기까지 하실 정도로 팔팔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새벽기도를 인도하시고 난 다음 바로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 4 장 13 절에 뭐라고 합니까?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며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에라도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그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 그 말입니다. 오늘 당장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데려 가신다면 일년 계획을 어떻게 세우느냐 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 장 16 절에서 20 절입니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오늘밤이라도 우리 영혼을 도로 찾으시겠다고 하면 오늘밤에 내 인생과 내 생명은 마침표가 찍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안개와 같이 사라지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 보고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시편 39 편 4 절에서 6 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들을 손 넓이만큼 축소시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 내가 쌓아 놓은 공든 탑이 한꺼번에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수고하여 쌓아놓은 재물이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이 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날로 끝입니다. 미련한 우리 인생은 그것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내 생명은 영영무궁토록 계속 있을 것처럼 깨우침이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에 대한 정보를 요약해 봅시다. 말씀을 준비할 때 바깥에서 아이들이 막 웃고 있었습니다. 아빠 이것좀 봐봐요!! 광고중에 가장 웃기고 재미있는 광고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광고가 이랬습니다. 한 산모가 병원에서 애를 낳았는데 아이가 마치 로켓트와 같이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동안에 나이가 들어갑니다. 꼬마가 젊은이로 변하고 점점 더 어른으로 변하더니 땅에 거의 다 떨어질 때쯤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지상에 당도해서 그는 어는 공동묘지 관으로 떨어집니다. 그러면서 광고문구가 나옵니다. “Life id short, Play more!!" "인생은 짧다 좀 더 즐겨라!” 하면서 게임기 광고가 나옵니다. 우리 인생 천하보다 더 귀하지만 안개와 같이 짧습니다, 이 인생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가장 보람있고 가치가 있겠습니까? 인생은 짧으니 좀 더 놀아야 하겠습니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젊을 때 신나게 놀아야 하겠습니까?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아니 18 분후를 알지 못하고, 우리 생명 안개와 같고 아침의 이슬방울과 같은데 바로 이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소중하게 사는 원칙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본문 야고보서는 우리 인생을 사는 중요한 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주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15 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어늘”. 한편으로는 천하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나의 생명, 다른 한편으로는 안개와 같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나의 인생, 바로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침 안개와 같은 사라지는 짧은 생명, 주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청사진과 계획을 하나님 없이 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의 삶의 계획과 청사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없이 내 인생을 계획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입니다. 주의 뜻이면 이것도 하고 주의 뜻이면 저것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차 안에 라디오가 있습니다. 기독교방송을 들으려면 몇 번에 맞추어야 합니까? 먼저 am 과 fm 이 있는데 fm을 선택하고 fm 중에서도 103.1을 선택하면 기독교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채널을 하나님께 맞추었을 때 우리는 가장 명료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셨느냐 하면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쫓을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기쁨이 넘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둘째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4 장 16 절에 보겠습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우리 인생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한 일, 세상에서 내가 이루고 성취한 일을 자랑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입니다. 아침의 안개와 같은 인생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침의 이슬방울과 같이 쉬 사라지는 인생 자랑한다면 뭣이 자랑할 게 있겠습니까? 다 허탄한 자랑입니다. 하루살이가 자신이 한 일을 뽐내는 것이나 잠시잠간 사는 우리 인생 자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잠언 27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우리 인생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편 90- 편 10 절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제 무엇을 해왔고 오늘 무엇을 하고 있으면 내일 무엇을 할 것임을 자랑함이 다 허탄한 일입니다. 성경은 자랑하되 주님을 자랑하라 하였습니다. 역대상 16 장 10 절입니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렇습니다. 이 세강 허탄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주를 자랑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랑해 주시고 그 인생을 높이 들어 써 주시며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7 절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善이란 착한 일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개신교는 지나치게 믿는 일에만 골몰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게 강조함으로 선행의 의미를 약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선을 행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 히브리서는 선행의 의미를 제사와 같은 반열에 놓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 장 16 절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일을 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일을 마치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 즉 예배와 같으며 이같은 제사를 하나님 기뻐하신다 하였습니다. 요한삼서 1 장 11 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고 아름다운 일 많이 하고 사는 일이 우리 인생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두게 해주신다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념책에 길이 기록되어 길이 남게 됩니다. 우리 인생 하나님이 잘 보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영원으로 접속되고 영원에 잇대어 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일을 하면 그것은 반드시 쌓이게 됩니다. 어디에 쌓이게 되느냐? 천국은행에 쌓이게 됩니다. 잠시잠깐 사는 인생이지만 주님을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착한 일을 한 것은 한 호리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기록되고 저축됩니다. 여러분 일제시대에 훌륭한 그리스도인인 남강 이승훈 선생님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 되어 감옥 안에서 성경을 세 번 통독하고 기도와 감옥 안에서도 사랑의 실천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남강이 소천하였을 때 남강을 아는 이들이 비석에 이렇게 새겼습니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 여러분이 이 세상을 마감하였을 때 여러분의 비석에 후손들이 무엇이라 새길 것 같습니까? 저와 여러분! 살과 같이 빠른 인생 살면서 분명한 원칙을 세워 삽시다. 내 뜻보다도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삽시다. 둘째, 허탄한 자랑을 하지말고 자랑하려거든 주를 자랑합시다. 셋째 선을 행하며 선을 쌓아가는 생활을 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하나님은 귀히 여기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놓여진 기념책에 여러분의 이름을 녹명하시고 여러분의 행위를 낱낱이 적어 놓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은총으로 허락하신 짧은 인생, 지혜롭게 살게 하옵소서! 허탄한 자랑을 하지 않게 하옵시고 주님을 자랑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내 뜻보다도 주의 뜻을 준행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선을 행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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