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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성전에서 고침 받음

관리자 2010-12-14 (화) 13:46 15년전 1950  

2003 년 9 월 3 일(수)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21 장 14 절 - 17 절

제 목 : 성전에서 고침받음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흘러 넘치시기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직접 나타난 성경이 바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입니다. 이 복음서를 보통 4 복음서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사복음서를 면밀히 연구해 보면 예수님의 삶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어느 곳을 보더라도 예수님의 삶이 성전을 멀리하거나 성전을 도외시하거나 성전과 무관하거나 성전을 비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은 항상 성전 안에 계시거나 성전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원래 불교에서나 도교에서 도를 통한 도사들은 절이나 사찰이나 도장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만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성전 안에서 말씀하셨고 성전을 단 한번이라도 깍아 내려 자신을 성전 위에 세워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의 삶은 성전중심이었습니다. 설령 성전에서 떠나 있으실 때에도 성전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성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간 4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과 성전의 삶을 다시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태어나시자 마자 부모님에 의해 성전에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 장 21 절에서 22 절입니다.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컫는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예수님은 태어나자 마자 팔일만에 성전에 가셨습니다. 거기서 선지자 시므온으로부터 축복을 받으셨습니다.성전에서 축복받으심으로서 이 땅에서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청소년시절에 성전에 머물러 있으시면서 성경을 물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 장 43 절에서부터 46 절입니다. “그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을 찾는 부모님께 자신이 아버지의 집, 성전에 있어야 함을 당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성전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9 장 47 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누가복음 21 장 37 절입니다.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요한복음 7 장 14 절입니다.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마치 직장인들이 회사에 출근하듯이 매일 성전에 출근하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넷째, 예수께서 틈만 나면 성전에 찾아가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꼭 목적이 있어서 성전을 찾으신 것만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그저 자주 성전을 돌아보시고 자주 찾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1 장 11 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요한복음 10 장 22 절과 23 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예수님이 겨울에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성경의 전후문맥에 보면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틈만 나면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둘러보시고 묵상도 하시고 사람도 만나시기도 하시고 사람들로부터 질문도 받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 장 56 절에 보겠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않겠느냐 하니”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찾되 어디서 찾았습니까?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왜 성전에서 찾았을까요? 예수님이 언제나 성전에 계실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4 복음서를 볼 때 예수님은 꼭 무슨 일이 있을 때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없을 때에도 성전에 계실 때가 많았음을 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어렸을 때 하신 말씀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 장 49 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님은 성전을 아버지의 집처럼 매일매일 정기적으로 성전을 찾으셨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으레 성전에 가면 예수님을 만날 줄을 알았습니다. 마가복음 11 장 27 절입니다.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7 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걸어다니셨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목적이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성전에서 왜 걸어다니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늘 성전에서 걸으시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가지기도 하고 묵상하시고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원 위치, 제 위치는 성전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성전에 출입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더럽히는 것들을 쓸어 엎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1 장 12 절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하게 보전하려는 예수님의 성전을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섯째,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몸에 비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 장 19 절에서 21 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육체와 같이 여기셨습니다. 

일곱 번째, 예수님은 성전에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1 장 14 절입니다.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다 고쳐주시니”. 예수님은 성전에서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전 안에 가면 만날 줄을 알고 성전에 나아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은 병자들을 만나게 되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기도를 올리는 중에 이런 내용의 기도가 있습니다. 역대하 6 장 28 절에서 30 절입니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사람이나 흑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가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이 기도가 무슨 기도입니까?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구든지 성전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그가 어떤 재앙을 만나 기도드리면 그 재앙을 없이 하여 주시고 그가 질병에 들어 있으면 그 질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성전에 나아가면 모든 문제의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만일 밭곡식이 나지 않아도 황충이 들어도, 죄를 지음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을 때는, 성소가 있었을 때는 그 문제의 보따리를 들고 성소로 나아갔으며 성전이 세워졌을 때는 성전으로 나아가서 기도하고 해결함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세우고 난 다음에 이전에 성소에서 해 오던 일들과 같이 여러 가지 삶의 복잡한 문제를 들고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성소에서 들어주신 것과 같이 성전에서 더 잘 응답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병을 고치시는데 거의 3 분의 1의 활동을 집중시킬 만큼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나 병자들을 만나면 그 만나는 현장에서 긍휼히 여기시고 치료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 장 25 절을 보겠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시면서 당시 이스라엘 각양각색 병자들이 나아와 성전에서 예수님 만나 치유 받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집에 나아온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자비롭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모두 다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을 다 열거하자면 4 복음서 전체를 쓸 분량이상이나 더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번 말씀을 드릴 때 똑같은 기도도 성전에서 드릴 때 더 잘 응답된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집에 나아온 이들을 더욱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나아와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으려는 사람을 더욱 불쌍히 여기십니다. 인지상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지상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지상정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팔이 안으로 굽어집니다. 자신의 집에 나아와 기도하고 자신의 집에 나아와 은총을 받기 원하는 사람에게 더욱 은총 가득히 내리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성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 가서 제일 처음에는 여러 교회에 가 보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서도 예배를 드렸고 교회에 대부분 백인들만 다니는 미국의 루터란 교회도 가보았고 중국인들이 예배드리는 곳에도 가보았습니다. 버클리에 있는 루터란 교회에 가면 예배시간 중간에 두 사람이 나와서 강단 앞에서 회중을 바라보고 섭니다. 한 사람은 그 교회의 담임목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치유의 능력이 있는 여자집사님입니다. 그 여자분은 몸이 거구입니다. 목사님과 그 여자집사님은 흰 옷을 입고 기도요청자를 기다립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그 두 사람 앞에 서서 자기의 문제와 자기의 질병을 말합니다. 그러면 두 손을 잡고 간절하게 기도해 줍니다. 저는 그때 그 두 분 앞에 나아가 기도제목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만 눈을 뜨고 기도하는 순간을 지켜 보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나온 이들은 그가 여자이든지 남자이든지 환하게 웃거나 만족한 모습으로 회중석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분명히 두 사람이 기도하는 순간에 역사하셔서 회복시켜주심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버클리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 다녀 보았는데 그 교회에서는 성찬을 받을 때 성전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고 받습니다. 버클리 장로교에서는 결혼한 지 10 년이 넘었어도 아기가 없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갖기를 그토록 소망하여 매주 제단에 나아와 꿇어 엎드려 마치 한나와 같이 자식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교회 목사는 무릎을 꿇은 부부에게 매주 머리에 안수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태케 하셔서 아이를 주셔서 제가 언제인가 그 집에 초청을 받았을 때는 배가 불러 종종걸음을 하면서 목회자들을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성전에 나아와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이따금씩 있습니다. 새벽기도시 나아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요청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특별히 몸에 질병이 있는 분이 요청을 할 때 간절한 맘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했던 그 사람을 어려움에 빠뜨리지 않으심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성전에 나아와 안수기도를 했던 이들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배태진 목사의 영적인 능력이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 분들이 낫게 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는 하나님께서 성전에 나아온 이들을 기뻐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기에 기도할 때 더 강하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 은총과 자비를 받으려는 그 마음을 갸륵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니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픈 몸을 끌고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의 은총을 빌려는 그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것입니다. 고쳐주시는 것은 목사가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지가 고쳤다고 할 때 그 목사는 스타 목사가 됩니다. 스스로 타락한 목사가 됩니다. 성전에 나아와서 목사가 기도하였다 합시다. 그래서 나음을 입었다 합시다. 목사가 고칩니까? 아닙니다. 목사가 그를 보고 기도하기 전에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성전, 교회에 나아오는 이를 이미 긍휼히 여기시고 목사를 통하여 목사의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문제를 안고 나아왔을 때 예수님은 이를 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에 나아온 이들을 이미 알고 계시고 그가 지금 무슨 병에 걸려있는지 그가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가 지금 어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가 그 문제를 가지고 교회 성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 무척 기뻐하시고 그가 성전 안에서 기도하고 또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할 때 그것을 아시고 기뻐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미 마음속에 치유의 역사를 출발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반 가정에서 치유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성전에서 치유를 위해 기도를 드림은 다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는 특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가끔 저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냥 집에서 기도할라요!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데 집에서 한다고 안들어주실랍디여!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 그러세요! 집에서 기도해도 하나님 잘 들으시지요! 하면서 속으로는 약간 섭섭합니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집에서 기도하는 것하고 정성을 들여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는 것과는 하나님의 역사가 다르다고 저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에게 나아오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55 장 1 절에서 3 절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하신 확실한 은혜니라”. 여기서 이사야를 선지자를 통해 오라고 하시고 가게 되면 확실한 은혜를 허락받는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가야 하겠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께 가는 길은 성소로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만나려면 다른 곳이 아닌 성소로 가라는 뜻입니다. 성소나 성전에 갈 때 다윗에게 확실한 은혜가 베풀어지듯이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옛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삶의 어떤 때든지 성전에 자주 출입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성전은 복음전파의 장소였고 말씀을 가르치는 도장이었고 묵상하시는 터전이었으며 언제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하셨습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도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성전에서 기도함으로 해결의 실마리와 지혜를 얻었고 모든 것이 형통하여 너무 기쁠 때에도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고 모든 것이 불통하여 잘 안되었을 때에도 성전에 가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기원을 올렸습니다. 특별히 몸이 아파 요동을 하지 못할 때도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 하나님께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성전에 나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평강의 은총을 받았고 성전에서 치유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성전 혹은 교회는 무척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성전과 교회에 대해서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전에 나아온다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나아오는 것이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 나아오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 나아올 때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총을 입었듯이 몸이 온전치 못할 때나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 영혼이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때는 교회를 멀리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가 더욱 교회(성전)에 나아올 때입니다. 성전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의 은총이 있습니다. 잃었던 것, 상실한 것, 부족한 것 이 모든 것으로부터 회복 받는 은총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알 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성전에 자주 나아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말씀을 듣고 예배하는 인생이 믿음이 좋은 인생이고 하나님께서 고여 주시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주요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제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가 나의 집에 나아와 나에게 예배를 드리는가? 누가 나에게 귀한 것을 바치는가? 누가 나에게 찬송을 바치되 뜨거운 사랑의 맘으로 바치는가? 누가 내가 주는 은총을 소중히 여기고 받으러 나오는가? 누가 나에게 자기 속에 있는 맘을 털어 놓는가? 누가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의 보따리를 풀어놓고 나와 상의하기를 원하는가? 이런 일들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전의 비중을 더욱 높이시기 바랍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저희로 성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로 저희의 집보다도 성전을 더 중요시 여기는 믿음 주옵소서! 주님 저희로 저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성전에서 상의하는 영적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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