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10 월 19 일(주일) 오후 7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56 편 1 절 - 8 절
제 목 : 눈물병에 담으소서!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오늘 이 밤 주의 전에 나아온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56 편 8 절에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말하고 있습니다. 왜 눈물을 병에 담아달라고 할까요? 여러분 중에 눈물이 귀하다고 눈물을 어디에다 담아 두는 분이 혹 계십니까? 어제 김혜숙 선생이 결혼했고 아버지 김성진 집사님은 딸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눈물을 흘리셨고 그 어머니 박영애 집사님은 신랑과 신부가 양가 부모에게 절을 할 때 신부측에 절을 할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김혜숙 선생은 눈물을 흘리는 친정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저 역시 언젠가 딸을 시집 보내는 날이 있을 텐데 바로 그때 흘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눈물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눈물을 흘릴 때 주변의 사람들이 재빠르게 흘리는 눈물을 닦을 수건을 건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보통 우리는 눈물을 흘릴 때 그 눈물을 흐르는대로 놓아두어 옷깃을 적시게 하던지 아니면 못소매로 닦든지 수건으로 훔치던지 하는데 눈물을 병에 담아 따로 보관하지 않습니다.
왜 다윗이 자신의 눈물을 병에 담아달라 하였을까요? 우리가 이를 알려면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풍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을 받아 두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각자 자기의 눈물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물병은 주로 얇은 유리로 만들어졌는데 적은 것은 7-8 CM 이고 큰 것은 20 CM 정도였습니다. 생긴 모습은 넓은 바닥이 있고 목 부분은 가느다랗고 주둥이 부분은 깔때기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무덤들을 발굴해 보면 예외없이 이 눈물병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부자인 사람은 자기의 눈물병으로 유리병을 가졌고 가난한 사람은 토기로 된 눈물병을 가졌습니다. 가정이나 나라에 어떤 재난이 생겨 눈물을 흐르게 되었을 때는 얼른 자기 눈물병을 모아 거기에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정에 속한 각자의 식구들이 자기 눈물병을 가지고 있다가 슬픈 일이 있을 때 자기 눈 아래에 갖다대고 거기다가 눈물을 담아두었습니다. 그 눈물 속에는 가슴 아픈 사연들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눈물을 다 흘린 다음에는 가죽으로 만든 뚜껑으로 닫은 후 실로 꽁꽁 묶어 새나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눈물병을 무척 소중하게 간직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눈물병을 그 사람과 함께 매장을 하였습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묻히게 되면 그 무덤에 자기 눈물병을 깨뜨려 부은 이도 있었습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자신이 흘린 눈물로는 그 슬픔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자신이 흘린 모든 눈물을 함께 쏟겠다 그 뜻입니다. 그러나 평상시 자기 눈물병을 깨뜨려 자기 눈물을 쏟아버리게 되거나 자기가 죽을 때 함께 매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큰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7 장 36 절에서 38 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의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성경에 나온 이 여자가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눈물병의 전통을 알고 있는 해석자라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눈물을 많이 흘려도 발을 다 적실만큼 머리털로 씻어낼 만큼은 아닙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자기의 눈물병을 들고 와서 자기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눈물병을 예수님의 발에 부어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씻어 드린 다음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다시없는 최고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자신의 모든 눈물과 자신의 존재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친다는 뜻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윗은 왜 자기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달라고 하였을까요? 아시다시피 다윗은 사울 왕 옆에서 왕을 보좌하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이 자기 왕위를 찬탈하려는 인물로 보고 다윗을 정적으로 삼아 부단히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 떠나게 됩니다. 사울왕을 떠나 어디로 가느냐? 이리 저리 떠돌고 방황하고 유리하다가 결국 어디로 가느냐 하면 불레셋 족속에게로 갑니다. 불레셋은 평소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고 틈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쳐서 침공하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다윗은 불레셋에 정치적 망명생활을 하면서 원수의 나라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세월들을 한탄하면서 자신의 운명의 기구함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과 불레셋과의 관계는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다윗은 부레셋의 장수인 골리앗을 물맷돌로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다윗이 불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으니 불레셋은 우선 오랑캐를 들어 오랑캐를 친다는 이이제이 전략으로 받아들였지만 불레셋으로서도 다윗을 의심하고 다윗을 시기하고 조금만 틈만 있다면 다윗을 죽이려 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칼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고국에는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왕이 도사리고 있지 긴급 도망해 온 불레셋은 자기 고국과 원수인 나라이지 참으로 그 고통스러운 심정을 이루 말할 길 없었을 것입니다. 한 때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그 상황에서 모면하고자 목숨을 부지하고자 불레셋 왕궁에서 미친 척 하며 대문짝에서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치광이와 같이 행동합니다. 오늘 성경 시편 56 편 1 절에서 7 절은 다윗 자신이 당한 고통과 수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아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아뢰면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야말로 그때는 눈물이 철철 흐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있었습니다. 불레셋에서는 남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가정의 전통과 같이 자기의 눈물병을 가지고 눈물을 흘릴 때마다 눈물병을 눈에다 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 흐르는 눈물을 다 셀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서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이 옷을 온통 적셨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8 절의 기도를 여호와께 올린 것입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은 자신이 흘린 눈물을 주께서 눈물병을 준비하사 담아주소서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삶속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시편 102 편 9 절도 하나님께 눈물로 하소연하는 대목입니다.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다윗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좇겨 다니면서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한 요나단이 마침내 죽었을 때도 아들 요나단아 내 아들 요나단아 하고 목놓아 울었습니다. 그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면서 하나님 께 하소연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눈물을 다 알고 계셨으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마다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첫째는 우리의 눈물의 기도는 주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담아 놓으신 병에 담긴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그냥 땅에 떨어져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께 하소연하며 흘린 눈물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김현승 시인은 여러분들이 잘 아십니다. 그 분이 눈물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더러는/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라>. 김현승 시인은 눈물을 흠도 티도 없는 가장 값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세상에 가서 제일 귀한 것을 찾아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맨 처음 천사가 가지고 온 것은 다이아몬드였고 두 번째 천사가 가지고 온 것은 젊은 여인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가지 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후 세 번째 천사가 들어왔는데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참회할 때 흘린 눈물을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매우 흡족하게 여기시며 “네가 가장 귀한 것을 가져 왔도다”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언젠가 피검사를 할 때 제 피를 받아 프라스틱 병에 넣고서 거기에 반창고를 떼어서 붙이더니 제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은 그 사람 이름을 적어 주의 병에 담아 놓습니다. 단지 담아 놓으신 것만 아니라 주의 병에 담아 놓고 계수하고 계십니다. 그가 기도하며 흘린 눈물방울이 몇 방울인지 흘린 눈물이 몇 그램인지 계수하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병에 담아 놓고 계수하고 계십니다. 욥이 고통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도 욥이라고 적어놓은 병에 담아 놓으셨고 예레미야가 민족을 생각하며 흘리는 눈물도 병에 담아 놓으셨습니다. 예레미야 9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어찌하여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변 강국을 의지하고 한편으로는 우상을 의지하니 나중에 하나님의 징벌로써 바벨론 대군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성전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고 전답이 황폐되어감을 미리 예견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눈물을 그 이름으로 담아 놓으셨습니다. 이 땅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도 자주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 장 41 절에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주님도 우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울면 주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을 귀하게 여기시고 주님만이 간직하는 눈물병에 우리의 눈물을 담아 놓으시고 그 눈물을 계량하시고 그 눈물방울을 계수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얼마나 우셨으며 주님이 내 이름으로 기록하신 눈물병에 얼마나 차 있겠습니까?
둘째는 우리의 눈물의 기도는 주의 책에 기록됩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은 주의 병에 담기면서 동시에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한 내용은 주의 책에 낱낱이 기록됩니다. 8 절 후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다윗이 나의 눈물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였을 때 시편은 아직 주의 책이 아니었습니다.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있었기에 시편이나 기타 다윗의 행적을 담은 역대기나 열왕기는 아직 성경에 들어가지 못한 때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눈물은 주의 책인 성경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언제 눈물을 흘렸습니까? 성경에 보면 다윗은 눈물의 사람입니다. 시편 6 편 6 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뛰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은 언제 울었습니까? 밤마다 울었습니다. 밤마다 울 때 그 눈물이 요를 적셨습니다. 다윗은 원수 때문에 울었고 자식 때문에 울었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울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은 완악한 자들로 인하여 울었습니다. 다윗의 눈물은 다 성경에 기록되었고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도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십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수 박일남이나 주현미가 부른 갈대의 순정에 보면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사랑에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울지를 마라/아~아아아~~ 아 갈대의 순정>. 남자만 갈대와 같은 여자의 울음에 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ㅊ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눈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다 들어 주셨습니다. 정말 그런지 한번 볼까요? 사무엘상 1 장 10 절에서 11 절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가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통곡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사무엘상 1 절 19 절입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넣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라”.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사야 38 장 1 절에서 5 절을 보겠습니다. “그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넌느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가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눈물을 보았다고 하시고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아들 어거스틴이 허랑방탕하였을 때 아들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고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마니교를 숭배하여 진리의 길에 떠났을 때 모니카는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얼만큼 눈물을 흘렸는지 아십니까? 1 년을 울고 기도하였습니다. 2 년을 울고 기도하였습니다. 3 년을 울고 기도하였습니다. 4 년을 울고 기도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10 년을 울고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아들 어거스틴에게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날로 심해졌습니다. 10 년 기도 나무아미타불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맥이 빠진 모니카는 자신의 속한 교구에 있는 감독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암브로시우스 감독에 가서 눈물로 호소하였습니다. “감독님! 제 아들 어거스틴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버리시나 봅니다. 제가 아무리 애타게 오래 기도해도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나 봅니다. 제가 아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10 년을 눈물로 기도하였는데도 아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더한 것 같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한참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때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매님 너무 염려마세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결단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낙심치 말고 계속 기도하세요!“ 모니카는 다시금 용기를 얻어 눈물로 아들을 위해 기도하였고 어거스틴은 마침내 회심하여 기독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이룬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시고 우리의 눈물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을흘리며 기도하는 일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의 가슴이라는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은 우리가 눈물로 기도의 씨앗을 뿌릴 때 예민하게 반응하십니다. 시편 126 편 5 절에서 6 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우리가 흘리는 기도의 씨앗, 눈물의 씨앗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단을 기쁨으로 거둘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하여, 여러분 주변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생명들을 위하여, 여러분 앞에 가로 놓여 있는 홍해바다같은 위협이 있다면 세상적으로 꾀를 내어 그것을 어떻게 해보기 전에 먼저 주님 앞에 눈물 뿌려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고 눈물뿌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모든 죄를 놓고도 다윗이 그렇ㄴ 것처럼 눈물뿌려 침상을 적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칠 수 없는 질병이나 습관 같은 것도 눈물 뿌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야 하는데 홍해 바다와 같은 장애물이 가로 놓여 있고 여리고성과 같은 장벽이 가로 막을 때 여러분은 눈물 뿌려 주님 소매를 부여 잡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7 장 17 절, 21 장 4 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눈물을 우리 눈에서 씻겨 주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뿌려 기도하면 그 기도는 하나님의 가슴에 맺혀지게 되고 마치 이슬이 쌓이면 그 이슬이 방울이 되어 떨어지듯이 어느 새인가 주님은 여러분에게 오셔서 여러분의 눈에 맺혀 있는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고 여러분의 모든 눈물의 기도의 제목을 다 들어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눈물을 주시고 저희에게 눈물의 기도를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눈물을 소중히 여기시고 저희가 눈물뿌려 기도할 때 저희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저희가 눈물의 기도로 뿌린 씨앗들을 거두게 하시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 돌아오게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이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옵시고 저희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 주옵시고 주님의 책에 기록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로 주님의 소매를 잡고 기도할 때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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