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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관리자 2010-12-14 (화) 14:06 15년전 1874  

2003 년 10 월 1 일(수) 오후 7 시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사도행전 2 장 43 절 - 47 절

제 목 :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성도 여러분의 생활 속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2 장 47 절 말씀 중에서 한 부분을 살펴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2 장 47 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이 부분을 밑줄을 쳐 봅시다. 누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칭송을 받았습니다. 왜 칭송을 받았을까요? 오늘날 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지 않습니까? 공금을 유용했다고 목회자가 구속되어 비난을 받습니다. 서로 싸워서 법정에 서로 고소하여 비난을 받습니다. 예수쟁이 말쟁이라고 하고 말은 많은데 그만큼 행함과 결실이 없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초기에 고강도의 사정을 하였는데 장성들이 한꺼번에 무더기로 구속되었었는데 장성들 중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참모총장도 기독교인 육참총장도 기독교인, 그래서 언젠가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조찬을 하고 간 두레마을 김진홍 목사님에게 교회나 종교기관의 사정도 시급한 시점이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그렇게 말한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의 엄청난 비리 때문에 불명예스럽게 퇴임하였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신앙을 가진 것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기 보다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 것을 보시고 우리 예수님 하늘에서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교인들이 온 백성들에게 비난받았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온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당시 온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여기서 온 백성들이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지극히 적은 무리였습니다. 온 백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 교회 교인들은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은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왜 칭송을 받았을까요? 우리는 여러 가지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귀한 말씀과 교훈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에서 하신 보배로운 말씀을 간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간직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보배같은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5 장 13 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이 말씀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 소금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맛을 내며 썩음을 막으며 온 몸으로 온 몸으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람들 속에 녹아 들어가 자신의 형체가 없어지도록 그들은 짠 맛을 내며 살았습니다. 온 백성들이 그들의 짠 맛을 즐겼습니다. 마태복음 5 장 14 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흑암속에 있는 이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을 비치우고 살려 했고 실제로 그들은 온 백성들 앞에 그 빛을 비추었습니다. 악한 것들과 죄된 것들이 섞여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혼돈 속에 가두었을 때 그들은 착한 행실로서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 빛이 숨기울 수 없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이 빛을 즐거워하였고 온 백성이 이 빛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니 온 백성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마태복음 5 장 38 절에서 42 절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산상의 보훈을 보배롭게 간직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미워하고 오른뺨을 친다 하여도 왼뺨을 돌려대며 오히려 웃었습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겉옷까지도 스스럼없이 내어주었습니다. 오리를 가자하였는데 십리까지도 기꺼이 동행해 주면서 악하게 대하는 자에게 오히려 그리스도의 긍휼로 대하여 주었습니다. 구하는 자에게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소유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꾸고자 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인애로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제일 처음에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나중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강권함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칭송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 장 43 절에서 44 절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저 머리 속에 기억해 놓은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초대교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였던 일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곡해하여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선전하여 악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도들로부터 전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을 그토록 박해하는 사람을 오히려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자신들을 미워하는 사람을 오히려 사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르더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속에 뭔가 있긴 있더라 하고 서로 얘기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칭찬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는 무리도 차츰 차츰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에 기독교가 전해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로마 황제들이 오늘날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원로원과 싸우면서 원로원을 제압하려면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원로원 의원들이 황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 로마황제는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콜로세움이란 경기장에서 자주 행사를 하였는데 그 행사 중에서 기독교인들을 잡아서 칼을 쥐어주고 경기장으로 보내고 사자를 들여보내서 그것들을 즐기게 했습니다. 그런데 잡혀온 기독교인들은 칼로 사자를 죽이려 하지 아니하고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잡혀 먹었고 또 어떤 경우는 굶주린 사자가 어린양과 같이 되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옆에 아예 가지 않는 희안한 역사도 있었습니다. 로마시민들이 이것을 너무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도대체 기독교인들은 누구이길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죽는 그 순간에도 조용히 무릎을 꿇고 죽어가는가? 저들이 믿고 있는 바 사상이 무엇인가?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알려고 하고 믿게 되는 사람이 마치 누룩과 같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백성이 왜 초대교회 교인들을 칭송하였을까? 그 두 번째 요인은 서로 나누고 베풀어 주는 생활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주 관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데 많은 관심이 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로또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 복이 로또의 당첨률 이상으로 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기를 너무도 좋아하고 복을 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 될 때가 많습니다만 초대교회 교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나누어 주는 복으로 인해 온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44 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여기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어 주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어 놓고 그 가진 것을 없는 이들에게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나누어 주었을 때 교인들에게만 나누어 주고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철저하게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아낌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베풀고 나누고 섬겼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인들에게만 그 사랑을 제한적으로 베풀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소유를 나누어주면서 기쁨을 가졌습니다. 사도행전 4 장 32 절에서 35 절을 보겠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여기서 나눠서 준 이들이 누구였습니까? “무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무리는 그저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는 무리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리라 하였을 때 <믿는 무리>와 <무리>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는 그리스도인이고 무리는 모든 백성들을 말합니다. 33 절에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라 하였을 때 무리는 모든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교인들로부터 물건과 재물을 함께 받았습니다. 나눔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교인들이 무엇인가를 나눠줄 때 꼭 예수를 믿으라 하고 그 조건부로 치유의 권능을 베풀거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조건으로 나눔의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았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모두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저 사랑이 풍성하여 누구에게나 어떤 무리에게나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구나!를 알고 감사하였고 온 백성들이 그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칭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핍절하게 살았는데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핍절한 형편을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리고 율법만 지키라고 쥐어짜고 오히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어주었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핍절함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였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그냥 방관하지 아니하고 모두에게 그저 아무런 댓가없이 은총을 베풀어 핍절한 사람이 없었으니 얼마나 그들은 예수님이라는 분으로 인해 사랑이 넘쳤는지 모릅니다. 35 절에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고 하였는데 각 사람이란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모두를 포함합니다. 백성들은 그 전에는 유례가 없었던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고 천국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나눔 자체가 사랑이 아닙니다만 나눔은 사랑의 일부입니다. 나눔을 받았을 때 그들은 사랑을 아울러 받게 되며 댓가없이 받았을 때 감격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부단히 나누어 주는 행위는 곧 바로 전도와 연결됩니다.  

왜 초대교회 교인들이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을까요? 세 번째는 사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 장 12 절과 13 절입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그렇습니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사와 이적을 베풀자 그것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능력을 보이자 백성들이 이것을 보고 칭송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병든 자를 고쳐줄 때 교인들만 고쳐 준 것이 아닙니다. 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교인인 사람에게도 구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긍휼을 베풀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베풀었습니다. 의사는 돈을 받고 의료행위를 합니다. 약방에서는 돈을 받고 약을 지어줍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만나는 병자들마다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댓가로 돈을 받거나 다른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대로 거저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온 백성들은 사도들과 교인들을 칭송하였습니다.  

왜 초대교회 교인들이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을까요? 네번째 초대교인들의 얼굴에서 환함과 기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6 절에 보면 기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온 백성들은 초대교회 교인들 가운데 환함을 보았습니다. 기쁨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소금과 빛의 생활을 하면서 대적들에게 뺨을 맞으면서 온갖 욕을 들으면서도 찡그리거나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로 인해 뺨을 맞았으니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크겠다 하고 오히려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과 부활의 승리가 그들 마음 속에 넘쳤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 속에 성령의 충만함이 흘러 넘쳤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는 늘 샘솟듯이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들은 병자들을 고치면서 무슨 댓가를 바라지 않았고 늘 기쁨으로 사랑으로 해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들의 얼굴 속에는 자비와 기쁨으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그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그것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저들은 저렇게 어렵고 일반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해내면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그 기쁨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 의아해 하면서 초대교회 교인들을 칭찬하고 칭송하였습니다.  

온 백성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을 칭송한 이유들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빛이 되었고 소금이 되었고 나눠주면서 댓가를 바라지 않았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보복을 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해 주고 병을 고쳐주면서 댓가를 바라지 않고 욕을 하고 핍박을 하여도 오히려 웃는 낯으로 대하였고 오히려 자신들을 저주하는 이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고 이 세상의 비정함을 경험한 이들로서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이들을 보지 못하였는데 초대교회 교인들로부터 전혀 색다른 어떤 은혜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칭송만 하고 말았습니까? 그저 박수만 치고 말았습니까? 그저 좋은 말만 해주고 그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47 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온 백성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움직였습니다. 그들도 초대교회 교인들을 따라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빛이 되는 삶을 보고 감화감동을 받아 나도 예수 한번 믿어보자! 나도 저렇게 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보자하고 예수님의 도를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성들과 무리들은 차츰 제자들을 따르기 시작하였고 자기들도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기를 흠모하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그랬습니까? 사도행전 5 장 14 절을 보겠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여 허다한 무리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초대교회 교인들이 빛된 생활을 하니 이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을 칭송을 할 때 그것은 그것으로만 그치지 아니합니다. 백성들이 칭송하고 좋아할 때 백성들을 자신들이 칭송하는 믿는 무리들과 한통속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그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무엇입니까? 빛과 소금이 되는 생활은 바로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전도는 사도들과 같이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여 믿고 돌아오게 됩니다. 말씀이 전도입니다. 그러나 말씀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살고 사랑을 베풀면서 살고 나누면서 살고 기쁨으로 살면 그것은 바로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꼭 말로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진실하게 살려고 애쓰면 누군가가 사는 모습을 바라보고 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합니다. 저와 함께 총회본부에서 일하신 분중에 김성일 목사님이라고 계시는 데 이 분이 일본에 오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지역사람들은 한 사람이 이사를 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한 일년간은 서로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심을 아예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의 주시하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이웃이 되어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그 사람을 받아들일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무관심한 척 하지만 온갖 관심을 가지고 그를 살피고 쳐다봅니다. 어떻게 사나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나 어떤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나 봅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이 인간적으로 매력이 있고 늘 모든 일에 성실하고 자신의 일을 자기의 일과 같이 도와주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품위 있고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면 일단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에게 점수를 줍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보다도 더 약아빠지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자기 잇속을 챙기고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모든 일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모범이 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깊은 영향력이 있을 때 그가 믿는 그리스도도 참 좋은 분으로 인식하게 되어 어떤 계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됩니다. 예수 믿으라는 한마디를 하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고 자연히 그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사도들은 열심히 말씀을 전하면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고 한편으로는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생활함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임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감동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방법으로 전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들의 말씀을 통한 전도와 성도들의 삶을 통한 전도가 양방향으로 진행되어 수다한 사람이 허다한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고 아내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구원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교회를 가자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아내는 생각하기를 작전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햇볕정책과 이슬비 정책을 세웠습니다. 햇볕을 적당하게 쬐이고 적당하게 이슬비를 나리어 결국은 그로 인해 감동을 받게 하고 주께로 나아가게 하자는 일종의 전도정책이었습니다. 노트를 하나 사서 칸을 천개를 그려 놓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남편을 위해 천 가지 착한 일을 행하고 남편이 감동할 때마다 거기다가 싸인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싸인을 해나가는 가운데 아내는 그 칸이 채워져 나가는 것도 기뻤고 남편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기뻤고 아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신뢰하기 시작하였고 아내의 한마디 한 마디는 무게가 있어지고 힘이 더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꾹 참고 남편에게 교회 나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차츰 남편은 아내가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도 관심을 가지고 물어왔습니다. 그런데 1000 개의 싸인북에 351 개를 할 때 남편은 나도 한번 당신 다니는 교회에 한번 가볼까 말을 하였고 472 개쯤 싸인을 할 때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539 개쯤 할 때에는 주일 저녁예배를 함께 손잡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예수회파 신부들은 철저히 전도훈련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회파 신부들은 파송을 받아 부락민을 섬길 때 결코 신부복을 입지 않고 그들의 말 속에 종교적이고 교회적인 용어를 없앱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도움이 되어 줍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불평없이 휫바람을 불으며 합니다. 얘기도 들어줍니다. 그러나 단 한마디도 예수를 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부락민이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하면 단지 한마디 할 수 있는 말이 주어져 있는데 “지저스” 였습니다. 예수회파 신부들의 헌신으로 인해 그 지역이 차츰 복음화가 되어갔습니다. 이는 삶을 통한 전도입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편입니까? 여러분의 삶은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편입니까? 아니면 물론 손가락질을 받는 편은 아니겠지요? 아니면 손가락질도 받지 않고 칭송도 받지 않는 중간지대에 있습니까? 사도들은 초대교회 사도들을 닮아가야 하고 성도들은 초대교회 교인들을 닮아가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생활로 인하여 칭찬을 받게 되었고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조용히 내 생활은 어떤 생활인지 나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아울러 오늘 성경에 비추어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해야 하겠는지 조용히 나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님 저희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본받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실천하는 말못할 즐거움을 내려 주옵시고 주신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은총을 주옵시오 저희로 주님 주신 기쁨가지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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