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10 월 19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창세기 12 장 1 절 - 3 절
제 목 : 복의 근원의 복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성전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강을 가득 내려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2 장 1 절에서 3 절을 다시 한번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인지라 하신지라”. 저는 창세기 특별히 이 부분에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2 절 후반절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왜 이해가 안될까요? 우선 찬송가 1 장을 보겠습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아멘!” 찬송가 28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합소서! 한량없이 자비하심 측량할 길 없도다!” 1 장 찬송에 보면 분명히 만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28 장 1 절 찬송은 하나님이 복의 근원으로서 찬송받으실 대상이라고 찬양하는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이 찬송받을 대상이 아닌데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복의 근원이라 하였을 때 복이 흘러 나오는 근원 아닙니까? 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샘솟아 나오는 원천이라 그 말 아닙니까? 하나님께 복의 원천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복이 흘러 나오는 근원이라 하였을 때는 이해가 되지만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하심은 무슨 뜻과 의미일까요?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을 어떻게 하십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때는 자신의 종을 불러 자신을 대리하여 말씀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뭐라 말씀하십니까? 예레미야 1 장 7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9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이 두 절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가 하는 말이 누구의 말입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 입에 하나님의 말을 두셨으니 그가 하나님을 대리하여 시대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그 순간 이후부터는 아브라함은 바로 하나님을 대리하여 그 시대 사람에게 복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면 아브라함은 그 즉시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란 뜻이 무엇일까요? 샘은 샘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어 끊이지 않고 샘물이 솟는 것과 같이 복의 근원은 복이 근원, 복의 원천과ㅓ 연결되어 있어 복이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는지를 보겠습니다. 복이 끊임없이 그의 삶 속에서 넘쳐 났는지 보겠습니다. 12 장 1 절에서 3 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계속 내리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2 장 2 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한 사람이 큰 민족을 이룰만큼 복을 계속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또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한다 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중심 기준이 아브라함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선대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선대하고 아브라함을 박대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박대하시겠다는 복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중심점에 세워놓고 그를 중심으로 그를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를 펼쳐나가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아울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계속 나리어 주시어 땅의 모든 족속들이 아브라함에게서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샘물이 되게 하시어 나눠주어도 나눠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늘 싱싱한 복으로 풍성한 복으로 가득 차게 해주시어 땅의 모든 족속에게도 나누어주고도 남을 복의 곳간으로 삼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은혜로운 약속이 정말 이루어 졌는지 한번 성경을 살펴 볼까요? 창세기 12 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주셨는데 벌써 13 장부터 복이 쏟아지게 내리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첫째, 동산의 복입니다. 창세기 13 장 2 절입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무엇입니까? 13 장 서두부터 아브라함은 동산의 축복을 가득 받은 것입니다. 둘째 부동산의 복입니다. 13 장 15 절로 가보겠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7 절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땅 즉 부동산의 복으로서 동산의 복보다도 더 큰 복입니다. 셋째는 물질의 복만이 아닙니다. 넉넉한 마음의 복도 주셨습니다. 13 장 9 절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 말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한 말입니다. 부동산에 대한 선택권과 우선권을 조카에게 흔쾌히 먼저 넘깁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린이 주먹만한 다이어몬드가 있었습니다. 그걸 본 친구가 장난으로 달라고 했더니 아무 군 소릴 하지 않고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집에 갔다가 한 숨도 못잤습니다. 다시 다이어몬드를 준 사람에게 돌려주면서 내가 어제 달라고 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줄 수 있는 그것을 바로 나에게 주게! 친구는 무엇이 진정 반짝거리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런 너른 도량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동산이나 부동산이나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쏟아지게 되어 있으므로 너그런 마음으로 넉넉한 마음으로 조카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너그런 바다같은 마음의 복도 받은 것입니다. 넷째 아브라함은 자식의 복도 약속받게 됩니다. 동산이나 부동산 보다도 훨씬 더 큰 복이 자식의 복입니다. 13 장 16 절입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자식의 복만이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유산으로 넘겨주게 됩니다. 아브라함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녀들도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2 장 18 절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아브라함은 자식의 복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섯째로 믿음 좋은 며느리의 복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받은 복은 꼭 물질과 재산, 동산과 부동산의 복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복도 가득히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섯째로 영적인 복도 받았습니다. 창세기 14 장 18 절에서 19 절입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터 축복받는 복도 받았습니다. 제사장으로부터 복을 받은 연후에 어떻게 됩니까? 일곱째로 치유하여 온전케하는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0 장 17 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덟째로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6 장 3 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사람의 날들을 120 세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수명을 120으로 제한하였는데 대체로 다들 120을 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노아 보다 훨씬 이후의 사람인 아브라함이 언제까지 살았습니까? 창세기 25 장 7 절에서 8 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향년 일백칠십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아브라함은 홍수전후하여 120 세가 평균수명이었는데 평균수명보다도 55 세를 더 살게 됩니다. 아홉째로 넘치는 힘과 정력의 복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이 못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런가요? 창세기 24 장 1 절 서두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5 장이 되면 한 장이 더 지나갔으니 나이가 더 늙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25 장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절과 2 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아브람이 이삭을 낳았을 때가 일백세였고 아내인 사라가 죽고 그리고 아들 이삭이 리브가와 장가를 든 때가 약 40 세 전후였으니 140 세를 지나서 아브라함은 매우 늙은 나이에도 그두라라는 여인과 재혼을 하여 아이를 여섯이나 낳은 것입니다. 여자가 가임여성이니 50 이 못되었을 것인데 그 여자와 관계를 맺어 여섯의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쌍둥이란 말이 없으니 1 년에 하나씩 낳았다고 해도 6 명을 낳았는데 그렇다면 150 세에 이르도록 아이를 낳았다면 아브라함의 정력은 초절륜한 정력과 강건이었을 것입니다. 열 번째로 아브라함은 범사에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4 장 1 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은 단지 물질적인 복, 마음의 복, 영적인 복, 치유의 복, 장수의 복, 정력의 복 등을 어느 한 집중적인 순간에만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그저 한 때만 소나기와 같이 쏟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을 주시기로 약속한 이후에서부터 매일 연일연야 복을 주셨습니다. 거기쯤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끝납니까? 아닙니다. 열한번째, 이름과 명예의 복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성경에 길이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며 누구나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과 순종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온 땅에 그의 이름으로 가득차게 되어 있는 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열두번째로 천국의 영생복락의 복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천국에서 천국에 들어온 나사로를 앉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복이 쏟아지게 내리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자신만 복을 받고 끝납니까? 땅의 모든 사람에게 그 복이 마치 스프링클러가 잔디에 물을 뿌리듯 세대와 세대를 넘어 믿음의 후손들에게 복을 토스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삶은 성경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수백억의 인류에게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본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비추어 주면서 그 복을 나누어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살아생전에도 복을 받았고 죽어서도 그의 이름이 길이 남았을 뿐 아니라 그의 삶과 믿음이 여전히 말하고 있으며 죽음 이후에는 천국에서 영생복락하는 복을 받았으니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복이야 말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복받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자꾸 복복 하지마! 그것은 기복주의야! 기독교가 기복신앙으로 가서는 안돼! 하면서 기복주의, 기복신앙하면서 비판을 합니다만 그렇게 비판하여 말하는 사람은 기복신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복신앙이란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들에게 매달려서 복을 비는 것이 바로 기복주의입니다. 천지신명 일월성신, 하나님 아닌 신들에게 즉 우상에게 빌면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기복신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를 섭리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만복의 근원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이 아닌 성서적인 축복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 장 9 절에서 11 절입니다. 자녀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좋은 것을 달라는 것이 어찌 그것이 기복주의이겠습니까? 복을 달라고 하고 복주실 줄로 믿는 것은 바로 성서적인 축복신앙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 아버지께 좋은 것을 하늘의 신령한 은총을 땅의 풍성한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것인데 하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기복신앙이라는 잣대를 대어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천지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에게 축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꼭 가져야 할 축복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왕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복, 가장 큰 복을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달라 기도하면서 이 복을 주시고 저 복을 주시고 요 복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만 이왕이면 하나님께 복 중에 복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복 주의 복이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가장 큰 복이고 가장 좋은 복인 것인 줄로 믿습니다. 복을 받는 것과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믿음과 봉사의 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쁜 천사가 나타나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 네 자녀에게 선물을 하나를 주겠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르도록 해라! 하면서 두가지 종류의 선물을 내 놓은다면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그랜드 피아노 칠천만원 짜리 한대를 가질 래, 아니면 바이엘 1 번부터 체르니 100 번까지를 자유롭게 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질래?” 하면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실 것입니까?”. 그저 눈으로 보는 복보다도 우리 속에 감추인 능력으로 나타나는 복이 더 좋을 것입니다. 복도 그저 눈에 보여지는 복이 있고 그 복 뿐만 아니라 모든 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게 하는 복이 있습니다.
요즘 신기술이 많이 발달되었습니다. 그 중에 나노기술라 하는게 있는데 이는 머리카락의 십억 분의 일 정도의 크기에 유전의 정보를 저장하고 변경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머지 않아 50 원짜리 동전 하나의 크기에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하고 발명한 모든 정보와 발간된 모든 책이 몇백억권이 될지 모르는데 그 내용을 다 저장하고도 남게 된다고 합니다. 만일 인류가 갑자기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동전 하나의 정보만 있으면 인류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글자수로는 여덟자이지만 바로 이 복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이 거기서 흘러나오는 복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이 담겨 있고 성경이 약속한 모든 복이 이 복안에 담겨 있습니다. 복 중의 가장 좋은 복은 복의 근원이 되는 복입니다. 우리는 복 하면 물질적인 복이나 그저 로또 정도에 당첨되는 것 정도만을 말하고 승진이나 취직, 합격, 그런 정도를 크게 넘어서지 못하지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에는 인류가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이 여기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 복 안에는 그저 물질적인 복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과 정력의 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식의 복만이 아닙니다. 물론 자식이 지혜롭게 되는 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복은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양보할 줄 알고 선택권과 우선권을 기꺼이 넘기는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이 담겨 있습니다. 이 복에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여러 축복을 나누면서 베풀면서 그 복으로 섬기면서 더욱 마음이 행복해 지는 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복에는 물론 긍휼히 여기는 복도 있고 이 복 안에는 마음이 청결한 복이 있으며 의를 위하여 핍박받으면서 오히려 즐거워 하는 복도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뜨거운 눈물부터 쏟아지는 복도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날로 굳세어지는 믿음의 복도 있고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면서 모든 것을 참으며 인내하는 복도 있습니다. 이 복안에는 우리 조상들이 누리기를 원하는 오복도 있으며 성경 마태복음에서 예수님 말씀하시는 팔복도 있습니다. 이 복에는 주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는 복도 있으며 이 복에는 남을 섬기면서 더욱 지도자로서 위치가 높아져 가는 복도 있습니다. 이 복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복이 있으며 이 복에는 여호와의 보좌 앞에 놓인 생명책에 기록되는 복과 여호와의 기념책에 기록되는 복도 있습니다. 이 복에는 영원한 생명을 덧입게 되는 되는 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게 되는 복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열두가지 종류의 복들만이 아니라 인생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종합적인 복이 패키지로 담겨 있는 복의 집중화, 복의 총체화, 복의 상시화가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담임목사인들 자기네 교인들이 복받기를 원하지 않은 목사가 있겠습니까? 100 이면 100 모든 교회의 목사는 자기네 교회 교인들이 다 복받기를 원하고 복받기를 기도합니다만 저도 거기에서 에외가 아닙니다. 저는 가나안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그저 이 복, 저 복을 받기 보다는 여러분 자신이 복덩어리가 되는,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그야말로 하늘의 복으로 똘똘 뭉쳐지는 복 여러분이 있음으로 해서 주변의 사람들도 덩달아 복을 받게 되는 복의 근원이 되는 복받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12 장 2 절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발견하고서부터 이제 저는 우리 가나안 성도들 인생 자체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옵시고 가나안 성도들 자녀들도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하게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교회도 복의 근원이 되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아울러 이 시간 성도 여러분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복받는 방법을 간단하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인절미를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복의 근원이 되는 복”,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신신당부를 하면서 달라는데 우리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지옥의 유황불을 주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구할 때 반드시 주실 줄로 믿고 기도하시고 주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샅바를 잡고 씨름하듯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묻고 마침내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는데 그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순종하는 믿음이 그에게 있지 않았습니까? 떠나라 하면 하면 본토도 떠나고 친척도 떠나고 아비의 집도 떠나고 기존의 자리에 안주해 있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저 떠났습니다. 가라 하시면 갈바를 알지 못해도 그저 갔습니다. 채소를 꺼꾸러 심으라 해도 그저 순종하는 마음으로 심고 지붕에 소를 얹어 놓으라 하시면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그저 지붕에 손을 올려 놓는 그런 순종하는 믿음이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기에 합당한 인물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합리적인 이성에 근거를 두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아무리 불합리해 보여도 아무리 비이성적이어도 그대로 하는 것이 바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그저 따르고 순종하는 믿음의 소유자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십니다.아들을 바치라 하였을 때 그것이 비이성적이고 반생명적이고 몰상식적인 명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것을 바쳤습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려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은 복을 주시고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 즉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다시금 해주시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면 그것을 돌려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복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기도 순종 사랑의 헌신이 바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게 합니다.
“당신은 하늘의 복들을 많이 받아라! 복의 근원이 되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쉬레이 하이쉬!!>입니다. <아쉬레이>는 복들을 말하고 하이쉬는 사람이여! 사람이 되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서로 함께 서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아쉬레이 하이쉬!!>라고 옆사람에게 축복해 줍시다. 제가 이 시간 두 손을 펼쳐들고 간절히 복의 근원이 되기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아쉬레이 하이쉬!!> 세번 하겠습니다. 할 때마다 여러분은 <아멘!!>으로 응답하시면 여러분은 분명 앞으로 복의 근원이 되는 복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쉬레이 하이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나안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오늘 이 예배에 나아온 모든 성도들이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나리어 주시옵소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받았던 복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나려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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