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10 월 29 일(수) 오후 7 시 광주가나안교회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사도행전 19 장 8 절 - 12 절
제 목 : “사도의 능력“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성전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강을 가득 내려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9 장 11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稀罕이란 稀란 말도 “드물다”는 뜻이고 罕도 “드물다”는 뜻이니 이 둘이 합해져 “희한”이란 드물고도 드문 일이다 그 말입니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은 정말 희한한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2 절에 희한한 능력 중의 하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바울이 안수하지도 앉았는데 바울이 안수하거나 기도하지도 앉았는데, 바울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을 가지고 병자에게 얹어주기도 해도 병이 나았다 그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비슷한 희한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선 사도행전 5 장 15 절에서 16 절입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도 베드로가 지나가는 그 자리에 있으면 나을까 바라고 왔던 사람이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예수님에게서 먼저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복음 5 장 25 절에서 30 절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 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그렇습니다. 12 년 동안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낫겠다 하고 옷을 스쳤는데 병이 깨끗하게 나은 것입니다. 희한한 능력입니다.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 계시면서도 누군가 큰 믿음으로 자신을 옷자락을 대기만 해도 나을 것이다는 존재를 바로 감응하시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하인을 낫게 하실 때 백부장의 하인이 누워 있는 곳까지는 한참 떨어져 있었는데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자리에서 말씀만 하셨는데 바로 그 시각에 하인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희한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희한한 능력이지만 하나님께는 이런 능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도들이 언제부터 능력을 얻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부터 능력을 이미 지니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에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무능한 존재였습니다. 마가복음 9 장 17 절과 18 절입니다.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지 못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 하였을 때 믿음이 없어서 물 속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왜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였을까요? 기도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였을 때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 속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는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핀잔하셨습니다. 초창기 제자들은 기도와 믿음이 없었고 그러기에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언제부터 힘과 권능을 받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이 힘과 권능을 얻게 된 시점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사도행전 1 장 4 절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8 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들은 신도들과 함께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권능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직후에 사도들의 권능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 장에서 사도들은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을 받았는데 사도행전 3 장에서부터 그 권능이 나타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가기 전에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권능의 역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3 장 6 절에서 8 절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과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베드로 사도의 능력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또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사도행전 9 장 32 절에서 35 절입니다.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중풍병을 고쳤습니다. 바로 그 직후에 베드로는 죽은 이를 살리는 능력까지도 보였습니다. 사도행전 9 장 36 절에서 40 절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오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은지라”. 이미 죽어 있는 다비다를 사도 베드로가 권능으로 살렸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역시 주님의 사랑받는 수제자로서 성령으로 받은 능력이 컸는 모양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만 치유의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신도들도 그 능력을 받았습니다. 누가 치유의 능력을 받았습니까? 빌립입니다. 빌립이 누구죠? 빌립은 초대교회 일곱 안수집사 중 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8 장 4 절에서 8 절입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하나님의 치유의 권능이 사도들에게는 특별히 베드로와 바울에게 신도에게는 빌립이라는 안수집사에게 나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리지 않습니다. 각자에 따라 다르게 임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전혀 내리지 않은 이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두세가지 능력이 함께 내리기도 합니다. 성령의 권능이 꼭 사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신도들에게도 내립니다. 성령의 능력은 오늘날에도 내리고 있습니다. 현신애 권사님에게도 내리고 금번 우리 교회에 오시는 서달수 목사님에게도 내리셨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치유의 능력을 내린 이들도 있습니다.
사도들에게 능력은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사도들의 능력은 말씀을 증언하는 일에도 나타났습니다.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도들은 사실 예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 불학무식한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는데 당시 어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아니하였던 이들입니다. 그런데그들이 능력을 받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당시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도 그들이 유창하게 하는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렇게 배우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게 전한다는 말인고 놀라고 놀랐습니다. 이런 놀람은 오히려 기적을 베풀었을 때 보다도 더 심하였습니다. 만일 우리 사회에서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이 천체물리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의 핵인 E = mc2 이라는 공식을 자유자재로 설명한다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고 찬탄을 금치 않겠습니까? 당시 사도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 장부터는 사도들이 한 설교의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사도행전 4 장 13 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말씀을 증언하는 능력은 스데반 집사에게도 내려 그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사도의 능력 중에서 사도 바울의 능력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다재다능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제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그리스어 희랍어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팔레스틴 바깥 쪽에 가서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복음이 전파해져 나간 것은 당시 로마가 지배하던 각 나라에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복음을 듣고 믿어 자기 살던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한 것과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와 유럽 각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율법 중에서도 최고의 공부를 하였고 당시 세계어인 희랍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알았습니다. 또한 로마시민권이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울을 붙잡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으로 모든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성경 중에서도 율법에 관한 한 박사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을 듣게 되었지 또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지, 거기에다가 사람들 앞에서 즉석에서 설교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 설교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믿고 신자가 되어 교회를 이루게 되었지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능력도 탁월하여 그 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감화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당시의 헬라철학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치유의 능력이 있어 많은 사람을 고쳤을 뿐 아니라 죽은 사람도 살려 냈습니다. 동시에 한 사람에게 수십여가지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은 소아시와 유럽에 세계 전역에 퍼져 나가는 귀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려 냈듯이 사도 바울도 죽은 사람을 살려 냅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이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3 층에서 떨어져 죽었을 때 사도 바울은 성령의 권능으로 살려 냈습니다. 정말 희한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능력과 사도 베드로가 받은 능력, 빌립 안수집사가 받은 능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대체로 사도들을 포함한 120 문도들은 마가의 다락방 이후 성령체험 이후에 각종 권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택정함을 입은 연후에 성령을 체험을 하였고 각종 권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들과 성령 받은 신도들이 그 권능을 가지고 무엇에 썼습니까? 사사로이 썼습니까? 자신의 가정을 살리고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데 사용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사도들의 권능을 팔라고 하였을 때 베드로 사도가 무어라 말합니까? 사도행전 8 장 20 절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사도들과 신도들은 성령께서 주신 권능을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예수님을 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 장 8 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권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되는데 그 권능을 사용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권능을 받습니다. 놀라운 능력이 그에게 나타납니다. 바로 이 때 사역자들은 그 권능이 자신이 마치 천부적으로 가진 능력으로 자신을 과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이 영광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나타냅니다. 바로 이 때 이단이 만들어지고 사이비 교주가 만들어 집니다.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그 열매를 따 먹을 때 어떻게 되느냐? 사도행전 12 장 20 절에서 23 절입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 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허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가로채서 자신이 받으면 이는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권능을 행하였을 때 백성들이 칭송을 받을 때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사도행전 14 장 8 절에서 15 절입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쏘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찟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렸을 때 기겁을 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다시금 환기시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 진정 필요한 것이 힘입니다. 이 힘은 경제력이나 정치권력이 아니라 유혹의 파도가 많고 시험의 파도가 많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비록 사도들과 같이 말씀의 능력, 치유의 능력은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아니하고 소금으로서 짠 맛을 잃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실상 예수님을 믿는다고 큰 박해가 있거나 순교를 해야 하는 상황은 없습니다. 억압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치는 자유가 있을 뿐입니다. 넘치는 자유와 넘치는 유혹이 있습니다. 물질과 쾌락의 유혹은 너무도 큽니다. 좀 더 누리며 좀 즐기며 살아가고자 하는데 너무도 손짓을 많이 합니다.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바로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끄는 힘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윤리와 세상의 통념에 속수무책 따라갈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사실상 어둠의 문화 속에서 빛의 자녀들이 살아가기에 너무도 힘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힘입니다.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주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절제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데도 내적인 힘이 필요하고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십자가를 지면서 화해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도 힘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그저 떠내려 가지 아니하고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도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영적인 힘이 없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엉망이 되기 쉽습니다, 금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부정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세상적 논리의 유혹에도 쉽게 넘어갑니다. 비록 순교를 하거나 병을 고치는 능력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이 세상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은 성령이 주시는 권능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너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권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있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푸르름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능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영원을 유업으로 받게 되는 자녀로서 살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새벽기도회를 빠짐없이 다니는 한 집사님이 이런 신앙시를 썼습니다.
나는 하늘표 건전지
충전기가 있습니다 / 충전기 안에 충전용 건전지를 바르게 넣고 / 플러그를 벽의 콘센트에 꽂으면 뭔가 일이 일어납니다 / 근원에서의 줄기와 충전기와 건전지는 서로 맞대어 이어집니다 / 전기를 배달하는 통로가 되어 동일한 에너지에 의해 하나가 됩니다 / 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계속되고 유지되면서 충전이 됩니다.
충전은 하나됨입니다 / 충전이 다 된 건전지는..... / 돌지 않던 녹음기를 돌려 음악이 나오게 하고, / 나오지 않던 워크맨을 달래 말씀이 터져나오게 하고, / 움직이지 않던 오리 시계를 감동시켜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건전지>입니다 / 새벽마다 충전하는 <건전지>입니다 / 주님 나라 하늘표 <건전지>입니다 .
주님은 나의 용량을 하루로 한정하셨습니다 / 하루가 지나면 방전되어 다시 충전을 합니다 / 어쩔 때는 하루가 아닌 한 시간만에 방전이 되어 버리기도 하지만 / 주님은 나의 잘못을 탓하지 않으시고 충전하러 오길 기다리십니다.
교회는 나의 <충전기>입니다 / 날마다 교회에 충전하러 갑니다 / 교회에는 하늘과 연결된 콘센트가 있습니다 / 나는 충전기안에 바르게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 무릎을 꿇고 마음속 깊이 주님을 부르면 / 충전기의 플러그와 하늘의 콘센트가 연결이 됩니다.
금방 따스함이 옵니다 / 금방 충만함이 옵니다 / 금방 그윽함이 옵니다 / 따스함과 충만함과 그윽함이 가득하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 입을 열어 "아멘!"으로 화답하면 어느덧 하늘의 기운이 내 안에 가득 찹니다.
그 기운으로 하루를 삽니다 / 하루를 살 기운을 충전 받습니다 / 충전이 끝난 건전지 되어 오늘은 무얼 살릴까...생각합니다 / 워크맨를 살려 하늘 음악이 흐르게 할까..../ 녹음기를 살려 하늘 말씀을 들리게 할까... / 선풍기를 살려 하늘 바람을 휘날게 할까... / 벽시계를 살려 하늘 시간을 만들게 할까...
주님 채워주신 은혜와 기쁨으로 하늘표 건전지 되어 하늘의 하루 살겠습니다.
주님 넣어주신 감사와 사랑으로 하늘표 건전지 되어 주님의 하루 살겠습니다.
주님 이어주신 소망과 순종으로 하늘표 건전지 되어 천국의 하루 살겠습니다.
하루분의 충전용량으로 나를 창조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 내일 다시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힘은 오늘 다~ 쓸 수 있게 하옵소서! / 내일의 힘은 내일 다시 충전 하여 주옵소서! / 주님!! 나는 주님이 사랑하는 하늘표 건전지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에게도 초대 교회 사도들과 안수집사에게 나려 주셨던 능력을 나리어 주시옵소서! 저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나리어 주시옵소서! 저희로 하늘의 기운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저희를 하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이 땅에서 이 악과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을 나리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살기 위하여 필요한 지혜와 힘을 주시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아낌없이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나눌 수 있는 힘도 주시옵시고 초대 교회 집사들과 같이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면서 오히려 힘이 넘쳤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그런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성전에 나아올 때마다 성령으로 재충전하여 주시옵시고 새 힘을 얻어 이 세상 가운데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사도 바울에게 나누어 주셨던 다양한 은사를 저희 교역자들에게도 주시어 저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일도 잘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의 일도 잘하여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교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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