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 11 월 16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시편 50 편 22 절 - 23 절
제 목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 여러분들 위에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매년 추수감사절을 보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의미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 금번 추수감사절에 감사절 헌금을 얼마나 할 것인가? 추수감사절에 제단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외연적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절에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데살로니가전서 3 장 9 절에 있습니다.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즉 나의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인생이 되게 할꼬!에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딱 두절입니다만 이 두 절은 마치 어둠과 빛이 서로 극명하게 대조되어 있습니다. 22 절이 어둠이라면 23 절은 빛입니다. 다시 한번 시편 50 편 22 절과 23 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22 절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성경이 왜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라고 핀잔하였을까요? 하나님을 잊어 버렸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잊어 버렸으니 하나님을 의지하거나 붙잡지도 않을 것이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뭣인지 모를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뭣인지 모르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거나 찬송을 드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 버린 사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22 절 후반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신 뜻이 있는데 인생이 그 뜻을 벗어나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폐기처분하신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 존재를 찢어 버리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종이를 찢어서 버린다고 해도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인생을 찢어 버리시면 그 인생은 도무지 재활용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건질 수 있으면 재활용되지만 건질 수 없다면 재활용불가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 시편 50 편 23 절은 어떻습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2 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23 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 하였습니다. 감사하기에 이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23 절에 보면 감사하는 자가 바로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그 행위를 옳게 함이란 윤리적인 삶이요, 도덕적인 삶인데 윤리와 도덕과 선행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윤리적인 사람이요, 도덕적인 사람이요, 옳은 사람인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린다함이 무엇입니까? 제사를 영어로는 sacrifice 인데 희생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릴 때 반드시 희생이 들어갑니다. 소나 양을 번제로 드릴 때 그것을 잡아 드림으로 인해 피를 흘리는 희생이 들어갑니다. 바로 감사는 제사와 함께 드린다 감사는 희생과 함께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감사를 희생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3 절 후반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희생으로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2 절과 23 절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22 절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자는 찢어버림을 당하고 건질 자가 없으리라는 심판선고를 듣지만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22 절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23 절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22 절과 23 절 사이의 그 중간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 중간에 있을지라도 22 절에 가까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23 절에 가까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지 안하는지 여부에 따라 22 절에 있는 사람을 빵점이라 매기고 23 절에 있는 사람을 100 점이라고 정해 놓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감사하는 정도에 따라 성적순으로 점수를 한번 매겨 보았습니다. 가만히 살펴 보시고 여러분은 감사점수가 몇 점 정도가 되는지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22 절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빵점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감사치 않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뭐가 잘되면 자신이 잘나서 자신이 땀흘려서 자신의 공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하지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 장 1 절과 2 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말세에 이르는 징조로서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감사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말세에 심판을 면치 못합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사업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앙을 먼저 생각하여 만일 사업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사업을 줄여나가거나 정리할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하나님 신앙의 기초에 의해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시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다가 보면 돈이 눈 앞에서 곧 잡힐 것처럼 어른거려 그 돈을 따라다니다가 하나님도 잊어버리지! 신앙도 잊어버리지! 일에 열중하고 열중하다가 결국 건강을 상하게 되고 결국 벌어 놓았던 돈까지도 의료비로 거기에다가 다 쏟아붇게 되어 돈도 잊어버리지! 구원과 영원한 생명과도 멀어지게 되지! 그런 안타까운 이들이 너무도 다수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된다면 얼마나 잘되겠습니까? 잘 된다 하여도 결국 하나님께서 찢어버리심으로 인해 그 인생 허망할 뿐이며 잘 되지 않는다 하면 인생도 실패요 구원도 실패가 되어 빵점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은 빵점짜리 인생이거나 부도난 인생입니다.
<이 보다 약간 나은 10 점대의 10점에서 19 점짜리 인생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입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실 때 낼름낼름 꿀꺽꿀꺽 잘 받아 먹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고도 불평하고 짜증을 내고 불만인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자신이 받은 은혜와 견주어 보고 자신의 것이 적다고 생각하여 불평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그저 적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비교해 보곤 금방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10 점대 인생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은혜를 내리시는 것은 아는데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평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은혜를 불만하여 더 많은 은혜를 주시지 않나에 대해 짜증을 내는 사람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서도 자유가 없었던 애굽을 더 그리워 하며 불평하고 짜증을 낸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성적은 10 점대에 머물렀습니다.
<이 보다 약간 더 점수가 많은 20 점에서 29 점때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은혜를 잘 받아 먹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은혜를 받을 때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감사도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1 장 21 절에 보면 이런 종류의 인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잘 받아 먹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복을 받고 살림중에서 최고의 살림이라 할 수 있는 에덴동산을 장만해 주셨는데 유감스럽게도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는 성경에 보면 단 한마디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언어를 주셨지만 그 언어를 사용해서 단 한마디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 보다는 조금 나은 점수의 인간이 있는데 30 점에서 39 점대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감사할 때가 있고 감사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내키면 감사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도 희생을 드리며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입술로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40 점에서 49 점대의 인생은 무어냐?>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 반드시 입술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감사하지만 감사에 따른 희생이 전혀 없습니다. 물질이나 시간이나 자신의 달란트를 바쳐 하나님께 은혜에 보답하지 않습니다. 입술서비스란 말이 있습니다. 미군 항공국에서 최초로 나온 말인데 감독관이 항공기를 철저히 정비했나 질문하였을 때 정비사가 하지도 않고 잘 정비했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항공기가 운행하다가 추락을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입술로만 정비했다고 말하는 립서비스에 대해 철저한 경고를 하면서 “립서비스”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립서비스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것은 성경입니다. 야고보서 2 장 14 절에서 15 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것이 바로 입술서비스의 전형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립서비스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많은 은혜를 내려 주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말만 하고 하나님께 희생을 제사로 전혀 드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감사가 생활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입술로만 감사를 해도 40 점에서 49 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로만 감사를 해도 자녀들의 그 감사를 받으십니다.
<50 점에서 59 점대의 인생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실 때 감사를 하되 약간의 물질이나 시간이나 자신의 달란트를 바쳐 감사합니다. 받은 은혜에 비하면 지극히 인색하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받은 은혜가 태산과 같다고 하면 감사는 메뚜기 이마빡 정도의 넓이이거나 개미 눈물 방울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인명구조원으로 활동하였는데 배가 뒤집혔을 때 생명을 무릎쓰고 열 세 사람을 구조하여 주었는데 아홉사람은 감사한다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갔고 세 사람은 고맙다고 하면서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하며 떠나갔는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고 단 한사람만이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서 겨울에 쓰는 털모자를 보내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기준에서 보면 아홉 사람은 빵점이고 세 사람은 40 점대이고 단 한 사람만이 생명을 구해준데 비해 훨씬 적지만 털모자를 보내었으니 50 점대인 것입니다.
<60 점대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을 때 입술로도 감사하고 마음으로도 감사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60 점에서 69 점대의 감사인생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으면 즉시 찾아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리 적더라도 현미경으로 찾아서 발견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망원경을 가지고 찾아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감사의 조건이 아닌 것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은 세가지를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내가 야만인이 아닌 희랍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둘째,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셋째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내가 소크라테스 시대에 태어난 사실에 감사한다 하였습니다. 만일 플라톤에게 그 정반대의 사실이 주어졌다면 플라톤이 희랍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노예로, 여자로, 소크라테스가 아닌 시대에 태어났다면 플라톤의 감사는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미 은혜가 주어질 때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60 점에서 69 점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70 점에서 79 점대의 감사인생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감사하고 은혜를 받지 않았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아무런 일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무해무탈하게 되었다고 감사합니다. 그저 아무 일이 없이 그냥 있음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도 감사하고 감사할 조건이 없을 때에도 그저 한결같이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설교를 듣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여 감사할 조건을 찾아보았지만 감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으니 그렇게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할 것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80 점에서 89 점대의 감사인생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감사요, 은혜를 받지 않아도 감사요, 은혜가 아닌 시련을 받아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입니다. 데살로니카전서 3 장 9 절 후반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자신과 주변의 여섯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도산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하박국의 감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90 점에서 99 점대의 감사인생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그대로 감사로 자신을 제사로 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은혜있음에 감사, 은혜 없음도 감사, 시련도 감사요 그 어느 경우에서든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감사의 제물로 드릴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찬송가에 보면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내 천한 몸 이 생명을 드립니다” 주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감사의 제물로 드리는 사람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이 땅에 있게 해 주신 은총, 나의 모든 죄를 보혈로 씻어주신 은총,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있을 처소를 예비해 두신 은총은 자신의 생명 몇백개를 바친다 하더라도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여 주님께 감사의 제사로 바치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바치면서 오히려 죽어가는 동안에 자신을 제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은총의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생명이 단 하나뿐인 것을 못내 아쉬어 하며 순교로 희생하며 감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을 아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캅은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주후 156 년에 서머나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지방 총독은 빌라델비아에서 잡아온 11 명의 그리스도인을 원형 경기장에 야수의 먹이로 희생시켰습니다. 폴리캅을 잡은 젊은 집정관은 이렇게 폴리캅을 회유하였습니다. “내 보검으로 당신같은 노인을 처형하여 피를 묻히고 싶지 않소! 오늘 단 한번만 예수를 부인하시오. 후에 당신이 예수를 믿든지 말든지 당신 자유요. 지금 공개적으로 딱 한번만 예수를 부인하고 황제를 경배한다고 딱 한마디만 하시오! 그러면 당신을 살려 주겠소!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폴리캅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호의는 참으로 고맙소!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섬겨온 86 년 동안 그 분은 항상 나에게 은혜만을 베풀어 주셨소! 그런데 지금 어떻게 나를 구속해 주신 나의 왕, 나의 주님을 부인할 수 있겠소!“ 그리고 나서 폴리캅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나에게 순교의 관을 씌워 주시고 주님을 위해 죽는 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폴리캅은 화형에 처해 죽어가면서도 감사합니다만 연발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여러분의 감사의 점수는 몇점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4 장 15 절에서 16 절에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너의 신앙성적을 향상시켜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감사점수가 한 60 점이하라면 더욱 분발하여 낙제받지 않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만일 점수가 한 70 점이라면 80 점대로 올라설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시면서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활을 짜증과 불평과 불만으로 채우지 마시고 감사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채워갈 때 우리의 신앙성적 감사성적은 쑥쑥 오르기 마련이고 우리 인생의 성적도 상향조정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감사하는 사람을 돌보시고 감사하는 사람을 쓰시고 중용하시며 감사하는 사람에게 좀더 높은 단계의 좀더 진한 은혜를 주십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햇빛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더욱 높은 단계의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 장 6 절에서 7 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고자료1>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서로가 상대방을 평가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기준을 정해 놓고 등급을 매깁니다. 사업상으로 만나야 할 기준이 있지만 사람이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불평과 불만과 신경질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본다면 “아하 이 사람은 수준이 낮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속으로 이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등급을 스스로 낮추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향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남을 칭찬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며 조그마한 일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 이 사람은 품위있는 사람이구나! 삶의 수준이 꽤 높은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 사람을 만날 때는 옷깃을 여미게 되고 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 배우려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불평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인생은 C 급이나 D 급이나 F 학점의 인생이 됩니다만 만일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 넘치게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나 성도들 보기에 A 급 인생, 품위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인생과 불평하는 인생은 점수가 다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점수를 좀더 상향시키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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