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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은혜 받으시는 하나님!

관리자 2010-12-14 (화) 14:37 15년전 1549  

2003 년 11 월 23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스바냐 3 장 17 절

제 목 : 은혜 받으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지난주일 한겨레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11 월 12 일 서울 어느 신학교 채플시간에 합동쪽 총회장이신 분이 설교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였습니다. "우리 교단에서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 대한민국 어느 교단이든지 여자 목사, 여자 장로 만들어도, 우리 교단은 안 돼. 그게 보수고, 그게 성경적이고, 그게 신학에 맞는 거야󰡓라며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이 말씀은 즉각 여성계에 반향을 불러 일으켜 나중에 본의가 아니었다는 사과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자는 “목사 안수가 안된다” 이는 고정관념입니다. 이 고정관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모토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라고 합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 관념에 갇혀 더 이상 진전이나 발전이 없다고 합니다. 고정관념을 지니게 되면 창의성이 숨쉬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 한치의 전진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로교에서 당회장은 왜 꼭 담임목사만이 해야 하나? 한번은 여신도회원중에서 다음해는 남신도회회원중에서 그 다음해에는 청년회원중에서 번갈아 가면서 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고정관념을 깨면 제가 당회장이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보다는 교회가 훨씬 발전될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던 어떤 관념들이 깨어지는 굉음소리를 듣습니다. 어때요? 회개란 인간만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도 회개하신다고 합니다. 무슨 불경스런 말이냐 하실 터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은 회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회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슈브”이고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인데 이 뜻은 “돌이키다”, “방향을 전환한다”, “뉘우친다”는 뜻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회개하시는 모습도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회개하시겠다는 말씀도 스스럼없이 하십니다. 창세기 6 장 5 절에서 6 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여기서 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마음으로 후회하시고 한탄하시고 뉘우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 18 장 8 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심판하려던 마음에서 돌이키겠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돌이키다의 히브리어의 “슈브”는 우리말로는 회개로 번역됩니다. 너희가 회개하면 나도 회개하여 너희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회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실 때 천군천사들에 옹위되어 구름타고 강림하시지 아니하고 세상에 하나님이 당시 로마 제국의 공주의 몸도 아닌 식민지 백성, 그것도 이름도 없는 한 시골처녀의 자궁에서 태어나시고 세상의 왕에 의해 쫓겨 다니시기도 하시고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생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간의 고정관념을 전적으로 깨뜨리는 그런 방식으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도 보면 신앙인의 고정관념이 마치 물동이를 이고 오던 처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물동이가 깨진 것처럼 파싹 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박국 3 장 17 절 중반절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세상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기지 못하실 때, 즉 질 때가 있으신 것입니다. 기쁨이 너무 세고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기쁨 앞에는 어찌할 줄 몰라 패배한다 그 말입니다. 세상에 하나님도 이기지 못하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 말입니다. 고정관념이 깨어지지 않습니까? 또 있습니다.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즐거이 부른다함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신다”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찬송을 즐겨 받으시고 하늘의 영광의 보좌에서 천군천사와 온 피조물의 찬송을 받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존엄하시고 지엄하시며 거룩거룩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노래를 즐겁게 부르신다함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사람 앞에서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기쁜 노래를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래를 부르실 때 보좌에 앉아서 부르시겠습니까? 보좌에서 일어서서 스테이지로 나와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노래를 부르실 때 그냥 부르실까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시지 않으실까요? 아니 반주가 없다하더라도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르시던지 어떻게 부르시던지 온 우주삼라만상를 만드시고 역사를 운행해 가시는 하나님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노래를 부르신다함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산산조각 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스바냐 3 장 17 절에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 받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이 또 한번 깨어집니다. 우리는 익히 은혜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인간은 은혜를 받는 것만으로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은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바냐를 보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큰 은혜를 받으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보통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어떻습니까? 무척 기뻐합니다. 그 기쁨을 이길 수 없어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그런 찬송도 부르고 “이 기쁜 맘 못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그런 찬송도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그 사람은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기뻐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송하리”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기쁨과 찬송이 뒤범벅이 되면서 흘러 넘치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은혜받는 방향이 정반대가 되고 잇습니다.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대목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부분이 있습니다. 또 하반절에는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너는 다른 이가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사람의 이름은 시온인데 시온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인하여 깊은 은혜를 받으시고 너무도 기뻐서 춤추고 노래부르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께 유형무형의 선물을 드린다면 그것 역시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스바냐에서 보면 물론 “그가 너로 인하여” 어떤 감격적인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깊은 가슴에 새겨지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가슴이 흔들리시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고 노래를 부르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선물이란 그 선물이 꼭 포장지에 담긴 물질적인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어떤 분이 그 집안이 도무지 믿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독야청청하게 신앙원칙을 지키면서 굳굳하게 사는 것을 지켜 보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집사님의 모습만 보면 은혜를 받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을 보고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시온으로 인해 깊은 은혜를 받으시어 기뻐 춤추며 노래부르시겠다 하신 것이 오늘 성경본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깊은 은혜를 받으실 때가 있으십니다. 몇 장면만 살펴 볼까요? 창세기 22 장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큰 은혜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22 장 12 절입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6 절에서 17 절입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세기 22 장에 보면 하나님의 가슴이 아브라함으로 떨리고 진동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좀처럼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노니”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두고 맹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 위에 있는 것이 없으시니 자신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지 않겠습니까?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노니”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바치려 하는 것을 보고 은혜를 떨리는 가슴으로 받으시고 가슴이 뭉클하여 감동되어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크신 은혜를 받으시는 장면이 또 있습니다. 사무엘하 7 장 2 절 딱 한절 말씀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사는 백향목 궁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여호와께 지어 바치겠다 한 것입니다. 다윗의 이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무척 감복이 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가슴에 그 어떤 선물보다도 더 큰 선물을 안겨 주신 것입니다. 아니 다윗의 말을 듣고 바로 그 순간 은혜를 잔뜩 받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한 것 그 자체로도 너무도 큰 선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은혜받고 감동받으신 말씀을 나단에게 하셨는데 사무엘하 7 장 7 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행목을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다윗에게 쏟아지는 복과 은혜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아마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선지자로 부터도 큰 은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하박국 3 장 16 절에서 18 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자 생각해 봅시다. 하박국 선지자가 당한 환난날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전혀 무관하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환난날을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하박국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니 어찌 하나님께서 하박국으로 인하여 은혜를 아니 받으시며 감동이 안되시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의 이 한마디만 들으시고도 하박국이라는 책을 성경 66 권에 감동하여 넣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2 장 41 절에서 44 절입니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를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나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는니라 하셨더라” 예수님이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으신 것을 보고 은혜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이들로부터 깊은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 어느 한 성도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 성도가 하는 말을 듣고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성전에 가보니 커텐이 없어서 왠지 하나님의 전이 쓸쓸하고 춥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좀 따뜻했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익명으로 바칠 터이니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쓰여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바치려는 금액은 자신이 두 달간 나가서 땀흘려 노동하여 번 총액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성경에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던 렙돈 두 닢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성도로부터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늘 우리 땅에 오셨다면 그 성도를 보시며 마치 렙돈 두닢을 넣은 여인 이상으로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속으로 느꼈습니다. 목사가 성도로부터 이렇게 진한 은혜를 받은 때가 있구나! 사실 오늘 말씀은 그 성도로부터 깊은 감격을 받을 때 스바냐의 말씀이 동시에 떠오른 것입니다. 저는 여기 가나안에서 짧은 기간 목회를 하였지만 때로는 어떤 권사님으로부터 때로는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정말 뜨거운 은헤를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은혜를 끼쳐야 할 목사가 성도로부터 깊은 뜨거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를 우리에게 나리시는 분만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은혜를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즐거워 하시고 “그가 너로 인해” 덩실덩실 춤을 추시고 그가 너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고 그가 너로 인해 은혜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인해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백한 여호수아로 부터도 하나님은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여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는 백부장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정관념을 깨면서 신앙생활을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을 할 때 발상을 전환하여 해보고 싶시 않습니까? 교회에 나와서 내가 은혜를 받아야 겠다! 교회에 가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진한 은혜를 드려서 하나님의 가슴을 한번 떨리게 해드려야 하겠다! 내가 하나님께 큰 선물을 드려서 하나님이 감격하시고 하나님의 엔돌핀 수치를 팍 한번 높여드려야 하겠다! 내가 금번에 은혜를 모아 가지고 하나님께 한번 충만한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 드려야 겠다! 내가 앞으로는 하나님 가지고 계시는 그릇에 은혜를 팍 부어 드려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 콧노래가 흥얼거리도록 해드려야 겠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지켜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이 한번 풀어지도록 하나님의 스트레스가 싹 가시도록 하나님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감동의 흔적을 안겨 드려야 하겠다! 하나님이 나로 인해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도록 해드려야 겠다! 그렇게 한번 결심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영국에 갔을 때 안젤라는 할머니 한 분이 게셨습니다. 나에게 너무도 잘해 주었습니다. 밥도 사주고, 길도 가르쳐 주고 영어도 가르쳐 주고 책도 사주고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물어보면 상세하게 해설도 해주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 관광도 시켜 주고 마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천사와 같았습니다. 마지막에 올 때 제가 그 분을 모시고 가서 맛있는 것을 사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레스토랑에서 나오려 할 때 그분이 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제가 안젤라에게 말했습니다. Angella! It's my turn!! 이제 제 차레입니다. 그러자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지금까지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베푸시고 또 베푸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께 은혜를 드릴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주시어 우리로 기쁨이 넘치게 하고 우리로 노래를 부르게 하셨는데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진한 은혜의 잔을 주님께 따라드려 주님이 감격으로 취하게 해드리실 차례입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 여러분 이왕 신앙생활 하는 것 구원의 커트라인을 간신히 턱걸이하여 들어가기보다는 하나님의 가슴을 여러분이 드리는 진한 은혜로 인해 한번 하나님의 가슴을 진동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화끈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계시록 3 장 15 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물에 술탄 것도 아니고 술에 물탄 것도 아니고 중간지대나 회색지대 머물러 있기보다는 화끈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가나안 성도 여러분은 무슨 아이템으로 하나님께 진한 은혜를 드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슨 한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여러분으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춤추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이 시간 조용하게 한번 그림을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 앞에 계시고 여러분으로 인해 너무도 기뻐 얼굴이 기쁨의 반색이 되시면서 여러분을 위해 특별하게 노래 한 곡조 뽑아 불러 주시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주님 저희 차례입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충만하고 넘치는 은혜를 주셨으니 이제는 저희가 주님께 은혜를 안겨드릴 차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인생이 받고 받고 또 받는데만 익숙한 인생이 아니라 주님으로 받았던 은혜에 감사하고 주님께 은혜를 드리는 인생으로 전환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로 인해 노래를 부르시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 인생이 존재해 있어 주님의 유익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이길 원합니다. 주님 저희 인생이 주님의 은총의 가슴 안에 잇게 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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