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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에녹과 무드셀라

관리자 2010-12-14 (화) 14:46 15년전 2443  

2003 년 11 월 29 일(토)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성경본문 : 창세기 5 장 21 절 - 32 절

제 목 : 에녹과 무드셀라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성도 여러분들 위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5 장을 읽어보면 아담자손들의 수명이 나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 선조님은 930 세를 사셨습니다. 아담의 셋째 아들 셋 선조님은 912 세를 살았습니다. 셋의 아들 에노스 선조님은 905 세를 살았습니다. 에노스의 아들 게난 선조님은 910 세를 향수하셨습니다. 게난의 아들 마할랄렐 선조님은 895 세를 사셨습니다. 마할랄렐 선조님은 야렛 선조님을 낳았는데 야렛 선조님은 962 세를 사셨습니다. 야렛 선조님은 에녹 선조님을 낳았는데 365 세를 살았습니다. 에녹 선조님의 아들 무드셀라 선조님은 969 세를 향수하셨습니다. 무드셀라 선조님의 아들 라멕 선조님은 777 세를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순위를 매길 수 있습니다. 인류를 모두 통틀어 최장수하신 분 제 1 위가 누구십니까? 무드셀라 선조님이 장수 금메달입니다. 은메달은 962 세를 사신 야렛 선조님이시고 동메달은 930 세이신 아담 선조님이십니다. 인류의 선조님들은 참으로 오래 사셨습니다. 성경을 읽으신 여러분들이 에이! 정말 그렇게 사셨을라고 그때는 산수가 발달되지 않았었고 해를 계산하는 방법이 달라 1 년을 한 10 년씩 계산한거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성경에 그렇게 쓰여져 있으니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렇게 믿을 뿐입니다. 에녹 선조님만 빼놓고 창세기 5 장에 나오는 선조님들의 평균나이를 계산해 볼까요? 아담 930 세 더하기 셋 912 세 더하기 에노스 905 세 더하기 게난 910 세 더하기 마할랄렐 895 세 더하기 야렛 962 세 더하기 무드셀라 969 세 더하기 라멕 777 세를 더하여 나누기 8 하면 얼마가 나오느냐 하면 907 세입니다. 에녹 선조님만 빼놓고 본다면 모두가 900 살이 넘게 사셨습니다. 오늘날 성인 남녀의 수명이 남자 73 세에서 여자 78 세라고 한다면 평균 75 세로 잡는다고 하여도 907 나누기 75 하면 오늘날보다도 12 배를 더 사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오래 사셨을까? 나름대로 추정을 해봅니다. 물론 그때는 석유문명 훨씬 이전이었으니까 무슨 공해 같은 것이 없었을 것이고 물도 오염되지 않아 태초청정수였으니 수정같이 맑았을 것입니다. 좋은 공기 좋은 물은 장수의 필수여건입니다. 또 노아 시대 이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으셨으니 채소와 곡식만 드셨을 것이고 그러기에 육식위주로 생긴 각종 성인병 같은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무슨 오늘날과 같이 무슨 복잡한 이렇고 저렇고 한 스트레스가 없었을 것이니 그저 오래 오래 사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조님들이 오래 산 연유는 창세기 5 장 1 절에서 2 절에 그 단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잔뜩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는 수명의 복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선조님들은 자녀들을 낳을 때도 우리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노인이 되어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최근 카를로스 사울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73세의 나이에 새 젊은 아내인 전 미스 유니버스 세실리아 볼로코(37세)로부터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73 세가 되어 자녀를 낳으면 화제가 되지만 당시에는 뉴스꺼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선조님은 800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으셨습니다. 게난 선조님은 815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습니다. 마하랄렐 선조님은 830 세를 지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야렛 선조님은 800 년을 지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무드셀라 선조님은 782 년을 지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라멕 선조님은 595 년을 지내며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다섯 선조님이 아이를 낳는 기한을 평균을 내보자면 770 세에 이르도록 아이를 낳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아이를 낳으셨을까요?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을 살펴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 그 연세에도 그것이 가능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정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해당합니다.  

저는 지난번 주일밤 예배 말씀에서 아담과 아브라함을 비교하여 분석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에녹 선조님과 무드셀라 선조님을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5 장 21 절에서 27 절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 드러납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여기서 우리는 에녹이 아버지이고 무드셀라는 아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당시 인류 최초의 선조님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365 세를 이 땅에서 보내셨다면 그 아들인 무드셀라는 가장 많은 나이인 969 세를 장수하며 향수하였습니다. 아들 무드셀라가 아버지인 에녹보다도 이 땅에서 604 세를 더 산 셈입니다. 당시 사람들 중에 에녹이 땅에 있었던 기한이 가장 짧았습니다. 반면 에녹은 당시 선조들이 산 평균이 907 세를 사셨는데 비해서 365 세를 사셨으니 약 3 분의 1 밖에 못 사신 셈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평균 75 세가 수명이라고 할 때 에녹 선조님은 그렇게 보자면 30 세를 조금 더 사시고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 선조님과 다른 선조님들을 대비해 보면 보다 뚜렸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창세기 5 장에 나오는 인류의 다른 선조님은 평균 907 세를 사셨지만 그들은 그 많은 날들을 장수하는 동안 무엇을 남겼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서 장수하는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이 인류를 위해 무엇을 남겼습니까? 무드셀라 선조님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5 장 25 절에서 27 절입니다. “무드셀라는 일백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무드셀라는 인류 최고령의 연세를 잡수셨지만 거의 1000 여년의 세월동안 무드셀라라는 이름 넉자를 남긴 것 외에는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향수하고 죽었더라!“만 나옵니다. 享壽가 무엇입니까? 누릴 享, 목숨 壽입니다. 목숨을 누리고 살았다 그 말입니다. 인류의 선조들 거의 대부분이 오랫동안 자녀를 낳다가 그저 향수하고 죽었더라!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향수“와 ”죽음“ 사이에 어떠한 기록도 없습니다.  

만약 자녀들이 비석을 세운다면 당시 ”우리 선조님은 오래오래 자녀를 낳으시고 향수하시다가 죽으셨다!“ 외에는 비석에 적을 게 없는 것입니다. 무드셀라는 969 세를 사는 동안 무슨 자식들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남겼다든지 하나님께 매년 한번이라도 제단을 쌓았다든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든지 하는 어떠한 기록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믿음으로 살면서 자녀들이 간직할만한, 뭔가 후손들에게 영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그 무엇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그냥 그저 향수하시고만 가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그저 자신의 몸 하나 잘 간수하기 위하여 섭생을 잘하시고 삶을 여유롭게 즐기시고 그러다가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 969 세 최고의 수명을 기록하셨지만 후손들을 위하여 또 인류를 위하여 어떠한 공헌 하나없이 가신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5 장을 보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일은 무드셀라를 비롯한 다른 선조님들은 하나님께서 잔뜩 복을 주시어 장수하며 살았지만 주신 복과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다고 하는 단 한마디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생명을 누리고 향수하시다가 가신 것입니다.  

군계일학이란 말이 있습니다. 많은 닭들 중에 학이라 뛰어나다 그 말입니다. 이에 비해서 에녹 선조님은 군계일학과 같은 존재입니다. 여타 다른 선조님들과 구분되는 돋보이는 확연한 것이 있습니다. 창세기 5 장 24 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에녹 이전에 그 누구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에녹 그 이전에는 그 누구의 생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경은 하나님과 연관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에녹의 이전과 이후에 보면 노아를 빼놓고 다들 장수만 하였지 하나님과 어떤 연관을 갖고 살지 않았습니다. 에녹은 아담의 후손들 중 다른 선조들과는 달랐습니다. 24 절 첫 부분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주어가 누구입니까? 에녹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동행에 대하여 말하였을 때 두 가지 방식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동행하시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동행하시거나 하나님과 동행하거나 이는 큰 은총과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동행해주시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계신데 사람이 하나님께 찾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께 가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사람입니다. 동행하였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교회 사택 대주아파트 101 동 2010 호의 거실에 보면 여주동행이라는 글씨 한점이 있습니다. 전에 조계종 종정이셨던 분이 공로목사님께 주신 글입니다. 여주동행! 주와 더불어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그 조계종 종정은 종교를 품에 안고 있는 큰 어른이었던 모양입니다. 즉 부처님과 동행하십시오! 하는 뜻으로 여불동행이라고 쓰시지 아니하시고 여주동행이라고 썼습니다. 주와 더불어 동행함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동행하게 되면 동행하는 이와 모든 것을 함께 합니다. 동행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고 동행하는 이에게 길에 대한 조언을 하고 동행하는 이와 함께 그늘 밑에 앉아 얘기의 꽃을 피우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동행하는 이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언제나 그 옆에는 동행하는 이와 함께 있습니다. 함께 먹고 마십니다. 에녹은 하나님께로 찾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갔습니다. 마가렛 휘쉬백(Margaret Fishback)이라는 사람의 [발자국 Footprints)라는 시는 보이지 않는 동행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어느 날 밤 나는 한 꿈을 꾸었다. 나의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저 편으로 나의 생애의 순간 순간들이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한 장면이 지날 때마다 나는 발자국 두 쌍이 모래 위에 찍혀 있음을 보았다. 내 것과 주님의 것, 이렇게 두 쌍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지나갈 때 내가 보니 모래 위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찍혀 있지 않았다. 순간 나는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들고 슬프던 때였음을 기억했다. 나는 이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주님께 물어보았다. [주님, 내가 처음 주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주님은 제 평생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제가 보니 제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에는 발자국이 한 쌍밖에는 없군요. 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제게서 떠나 있었군요! 그때 주님은 내게 이렇게 속삭여 주셨다. [나의 사랑스런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가 그 어떤 고통과 시험을 당할 때에도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았단다. 네가 한 쌍의 발자국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그때에는 네가 가장 힘들어하고 고통하고 있기에 내가 너를 나의 등에 업고 걸어다녔던 때란다.> 그렇습니다. 동행할 때는 고통과 기쁨 모두와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녹 선조님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만 무드셀라는 창창한 세월을 살면서 한번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에녹과 무드셀라의 삶은 비록 부자지간이었지만 분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드셀라는 31 년만 더 사셨다면 거의 1000 년을 누리며 사셨는데 이 분은 그 오랫동안 사셨으면서도 인류사에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아니하셨습니다. 그저 오래 살았다는 것 외에 남는 것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류 최고의 수명의 복을 주셨는데 단 한마디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자고 일어나고 먹고 마시고 일하고 다시 자고 하는 육적인 생활만을 하다가 어떤 영적 귀감이나 교훈을 남기지 아니하고 그냥 가신 것입니다. 이 분은 그 오랜 세월을 사시면서도 자신을 이 땅에 존재케 해 준 하나님의 이름 한번 부르지 아니하였고 감사기도 한번 드리지 아니하였고 이 분은 그토록 오래 사셨으면서도 하나님께 번제 한번도 바쳐드리지 아니하였고 이 분은 그토록 오래 사셨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모파상이 쓴 “비계덩어리”라는 소설에서 비계덩어리로 치부되었던 그녀는 자신의 몸을 팔므로 결국 자신과 동행하는 일족들에게 자유를 부여합니다만 무드셀라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인간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은 비계덩어리 그 이하의 삶을 산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에녹 선조님은 어떻습니까? 에녹 선조님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동행하게 되면 서로의 이름을 같이 부릅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동행하게 되면 동행하는 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늘 기도로 대화하며 무슨 일이 있을 때에나 하나님께 묻고 물어보고 그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동행을 하게 되면 자신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눕니다. 에녹은 비록 짧은 시간을 살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에녹은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옆에 임마누엘 계셔주심에 대해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에녹은 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이런 에녹의 삶이 다시금 언급됩니다. 히브리서 11 장 5 절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다른 선조님과는 달리 하나님과 동행하였는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하나님을 끊임없이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동안 서울을 갈 때나 내려올 때 고속버스를 즐겨 타고 가는데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세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침묵형입니다. 제일 처음 탈 때 인사를 하면 그저 못마땅한 듯이 인사를 받고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내리는 형입니다. 한 100 번 탔다면 92 - 93 명이 그렇습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개중에 두세 사람은 술을 잔뜩 먹고 잠을 자는데 옆에 있는 사람을 베개로 삼고 잡니다. 술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오는데 3 시간 30 분이 걸리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과 같이 옆자리에 동석을 하면 3 시간 30 분이 지옥과 같이 길게 느껴집니다. 33 시간도 더 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옆에 동행한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와서 얘기를 하다보니 휴게소에서 내리는 것도 잊어버리고 계속 얘기를 나누었는데 30 분도 안되었는데 벌써 서울 터미널에 도착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상냥하고 얘기도 유머스럽게 잘하고 내가 얘기를 하면 공감을 표시해 주고 하여 무척 즐거웠습니다. 불과 3 시간 반을 동행하였는데 오랜 친구와 같이 느껴지는 친구가 있습니다. 시간의 상대성이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365 년을 살면서 65 년을 제외한 300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저 동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것입니다. 황수관 박사가 서울 한신교회에서 목회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을 때로 기억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는데 그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얘기를 하는데 그 앞사람에게 예수님을 전도하면서 무척 재미있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 앞사람이 자기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면서 명함을 주었는데 연세대학교 학장님이셨고 나중에는 그것이 접촉점이 되어 황수관 박사님은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한 에녹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5 장 24 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즉시 자신과 동행하고 자신을 기쁘게 한 에녹을 더 이상 땅에 놓아두지 아니하고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어디로 데려가셨습니까? 연세대학교로 데려가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늘나라로 직통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하시고 직통으로 하늘나라로 데려 가시어 분명히 하나님께서 에녹을 하늘보좌가 있는 중앙에서 천사로 쓰시거나 천군으로 쓰시거나 하늘나라에서 보직을 주시어 중용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창세기 5 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인생을 두 가지형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무드셀라형 인생>이 있습니다. 무드셀라형의 인생은 자신을 잘 돌보고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잘 챙기면서 장수를 즐기고 인생을 살 때 절대 손해 볼 짓은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인생을 잘 관리하여 장수하며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인생입니다. 무엇이든지 중심은 <나>이니 나를 잘 챙기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유익을 빼앗아가지 않도록 철저한 생활의 한계선을 정하여 누구도 침범치 않도록 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수도 하고 경제생활을 윤택하게 만듭니다. 행복을 누리며 삽니다. 이웃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삽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믿는다 하여도 내 생활이 유지되고 내 문화생활이 더 풍족해지는 한도 내에서만 하나님을 받아 드립니다. 이 사람에게 남는 것은 그저 족보에 이름 석자만 남습니다. 이 사람이 족보에 남는다면 “누구에게서 낳아 몇 년을 향수하다가 죽었더라!” 밖에 없습니다. 비계덩어리와 진배없게 됩니다. 그의 영혼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다는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장수도 하고 손해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아무 것도 남겨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아무리 오백년을 살고 천년을 산다 하더라도 남지 않습니다. 기록되지 않습니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은 살다가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외에 기록은 없습니다. 

또 하나의 형은 에녹형입니다. 이 형은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심을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함을 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기쁠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어렵고 힘들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찾을 때 마치 보석을 찾은 듯 기뻐하고 주님의 일을 위해 땀흘려 일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며 언제나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고 생각하면서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행동 하나를 할 때에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고 믿으면서 말하고 행동합니다. 무슨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그 짐을 다 가지고 가서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사람에게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인생의 가치기준이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였나를 인생의 보람으로 삼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인생의 행복의 척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은총을 기쁨으로 베풀고 바치고 드렸느냐로 자신의 생의 가치와 의미로 삼습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께 영광된 삶을 살려 합니다. 비록 불꽃과 같이 자신을 태우더라도 자신은 헌신하고 희생하여 주변을 환하게 하고 살았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생의 기쁨으로 여깁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무드셀라와 같은 사람을, 야렛과 같은 사람을, 마할랄렐 같은 사람을, 게난과 같은 사람을 에노스와 같은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에녹과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노아와 같은 사람을 이 시대 속에서 찾으십니다. 자신과 동행하려는 사람을 찾으시고 친히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하시고 그를 데려가시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맡기시고 하나님의 복과 은총을 베푸시고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주시어 세상 가운데서도 우뚝 세워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데려가셔서 하늘나라에서도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양식을 사실랍니까? 무드셀라입니까? 아니면 에녹입니까?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성경말씀을 주시고 저희에게 자유를 주시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택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희가 비록 짧은 삶을 살지라도 무드셀라를 본받지 아니하고 에녹을 본받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이 편만한 이 세상에서 그저 저희의 안일만 추구하지 아니하고 십자가 짊어지고서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잇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저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저희를 주님의 나라를 이루시는데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11-03 21:02:11 총무 칼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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