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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설교)예수의 흔적

관리자 2010-12-14 (화) 17:03 15년전 2666  

2003 년 12 월 16 일(수) 오후 7 시 광주가나안교회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갈라디아서 6 장 17 절 - 18 절

제 목 : 예수의 흔적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6 장 17 절에서 18 절입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 하였습니다.  

1. 흔적이 무엇일까? 예수의 흔적이 무엇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을 알기 전에 먼저 흔적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옵니다. 겨울밤에 눈이 소복히 쌓였는데 누군가 왔다가면 발자욱이 남습니다. 그러면 흔적을 통해 아하! 어떤 사람이 왔다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들은 겨울에 눈이 올 때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눈 위에 발자욱이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꼭 움직여야 할 때는 시냇물을 따라 움직였고 눈위를 밟을 때는 소나무 가지로 자신이 남기고 가는 흔적을 살살 쓸어서 버렸습니다. 어렸을 때 무협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적들이 습격한다는 것을 알고 주인공 가족들이 재빨리 도망칩니다. 적들이 방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이불 속에 손을 넣어 봅니다. 아직 온기가 있으니 멀리 도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말합니다. 이불 속의 온기는 그 사람이 방금 여기 누워 있었다는 흔적이 되는 것입니다.  

2. 성경이 말하는 흔적 성경에도 흔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로 상처, 표시 또는 소유주를 표시하는 소인 또는 도장을 말합니다. 고대에는 자신의 소유의 양이나 소에 대해서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하기 위해 불로 도장을 만들어 엉덩이에 찍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몰래 소를 가져가더라도 엉덩이에 찍힌 자기 인장 즉 흔적을 보고 자기 것임을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대에서 노예들에게도 그런 흔적을 몸에 남겨 놓았습니다. 노예들은 귀를 뚫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에 자기만이 아는 고리를 걸어 놓아 자기 소유의 노예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오늘날 여자들이 그리고 일부 젊은 아이들이 귀고리를 하는 것은 ”나는 노예다!“는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고대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이냐 할례입니다.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구약의 율법에 의해 할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할례란 남성 성기의 포피 끝을 잘라버리는 의식을 말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난지 팔일만에 이 예식을 행하여 누구든지 그 사람이 유대인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옷을 벗겨보면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할례 받은 흔적이 있으면 그 사람은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인이 되었습니다.  

3. 예수의 흔적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 하였는데 예수님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흔적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0 장 24 절에서 27 절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수님의 흔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입으신 상처가 그 흔적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입으신 상처가 어디 있습니까? 첫째는 채찍으로 맞았으니 등 뒤와 온 몸에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셨으니 머리둘레에 가시에 찔린 자국이 선명할 것입니다. 셋째는 양손에는 녹슨 쇠못 두개가 오른쪽과 왼쪽에 박혔고 넷째는 양발에는 못 한 개로 발을 모두어 놓고 박았으니 두 발등에 생긴 상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후에 옆구리에 창자욱이 있었으니 온 몸에는 상처 투성이였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심과 함께 온 몸에 상흔으로 가득하였습니다.  

4. 사도 바울의 흔적 사도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하였을 때 그 흔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것과 같은 어떤 고난의 흔적이 있었을까요? 물론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할 때 십자가에 달렸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떤 흔적을 말할까요? 중세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들이 예수님과 같이 고난당한 흔적을 가지고자 열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 십자가상에서 못 박히실 때 손과 발 네 군데에 자국난 상흔과 옆구리에 찔리신 흔적을 자신도 똑같이 그 흔적을 가지기를 열망하였습니다.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주님과 같이 고난당하는 그 고통을 느끼기 위해 그 흔적 - 당시 사람들은 성흔이라고 했습니다만 -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흔적을 가지기를 간절히 기도할 때 그런 상처의 흔적이 나타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성 프란시스가 스티그마를 가진 첫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기원후 1181 년부터 1226 년의 인물인데 그가 43 살 때인 1224 년에 알베르나 산에서 전심전력하여 기도한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한 제목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주께서 친히 당하신 고난을 자신의 몸과 영혼에 맛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께서 죄인을 위하여 받으신 그 고난을 기쁨으로 참으신 그 불타는 한정 없는 사랑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어느 날 기도에 깊이 빨려들어갔을 때 그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이 나타나셨는데 그 모습을 본 그의 마음에는 한없는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 후 그의 몸에는 두 손에 못자국이 새겨지게 되었고 두 발에도 못자국이 그리고 옆구리에는 창자국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이 예수님과 똑같은 흔적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흔 스티그마였습니다. 그 뒤에 많은 수도자들이 성 프란시스와 같이 그런 성흔을 갖기를 열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흔적은 성 프란시스가 받았던 흔적이었을까? 아닙니다. 사도 방울이 말한 예수님의 흔적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너무도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두 손과 두 발과 옆구리에 생긴 상처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너무도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매맞고 고문당하고 죽을뻔한 시껍한 경험과 옥에 갇히는 경험등 너무도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세 차례의 전도여행을 걸어 다니면서 하였으니 그의 발과 무릎만 해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부터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자 유대인들에게 배신자란 칭호와 함께 죽을 뻔한 경험을 수도 없이 당하였습니다. 또 전도하다가 수없이 많은 위협을 당하고 위험을 겪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 장 23 절에서 28 절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창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아마도 사도 바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매를 수도 없이 맞았습니다. 사십에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몇 번 맞았습니까? 39 곱하기 5 하면 195 대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때렸을까? 그동안 매를 많이 때렸는데 40 대를 넘어 때리면 죽더라! 그래서 39 대를 때려 거지반 죽게만들고 골병만 들게 만들자는 뜻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 이 매를 때렸는데 왜 때렸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때린 것이 아닙니까? 만약 사도 바울이 이 매를 맞고 이러다 나는 죽겠구나 하고 앞으로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정말 그말 그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매를 다섯 번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매를 맞고 복음을 전하고 또 매를 맺고 복음을 전하고 하기를 다섯 번이나 계속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오기와 깡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보통 3 -4 대 때리면 다 돌아서고 개심을 하는데 그러면 매가 그칠 수 있었는데 그 매를 39 대를 다 맞은 것은 단 한차례도 복음을 전하지 않겠노라 하고 다짐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때리는 태장 한대만 해도 상처가 생기는데 195 대나 맞았으니 골병이 들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복음을 전파하러 3 차례나 긴긴 전도여행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옥에 갇혔고 돌에 맞아죽을 뻔한 일도 있었으니 사도 바울의 몸에는 고난당한 흔적이 온 몸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사도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이 직접 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편지내용을 불러주고 그 사람이 쓰게 하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더디오라는 사람이 사도 바울의 편지를 대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대서케 한 것은 사도로서 권위가 있어서 비서를 둘만큼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가 아니고 아마도 너무도 많은 매를 맞았기 때문에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하여 대필하게 한 것일 것입니다. 손이 덜덜덜 떨리면 글을 쓰지 못하게 마련이지요! 사도 바울의 엉덩이는 분명 태장을 맞아서 피가 엉겨 붙어 앉을 때도 그저 바로 앉지 못하고 엉거주춤 앉았을 것이고 비가 오기만 하면 온 솩신이 쑤셔서 신음소리를 내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받은 고난으로 인하여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온 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맨 흔적들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5. 사도 바울의 예수의 흔적과 자랑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흔적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내가 예수 때문에 내 인생 조져버렸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예수 때문에 내 인생 망쳐 부렀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예수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예수 때문에 내 팔자 더럽게 되어 부렀구나! 그렇게 생각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 장 14 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자랑하되 자신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는 예수의 흔적을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받은 고난을 자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하였을까요? 이는 갈라디아 교회가 사도 바울에게 준 고통 때문입니다. 대략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갈라디아 교회는 다른 복음을 따라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 장 6 절에서 7 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준 복음을 버리고 구약의 율법주의를 따라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복음을 잘 가르쳐 놓았는데 사도 바울이 없는 틈을 타서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 구약의 모세의 법, 율법의 멍에를 다시 매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바울을 힘들게 했습니다. 둘째는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 사도의 사도권을 의심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1 장 1 절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자신이 가르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자 사도 바울에게 이는 무척 고통이 되었습니다. 만약 외부에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당한 박해와 핍박은 기꺼이 감수하였습니다만 교회의 내부에서 자신을 비판하고 자신을 의심하고 다른 이단적 가르침을 좇아가는 일은 바울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차라리 할 수 만 있다면 이 땅에 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안팎으로 강한 박해와 도전이 엄습해 왔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도전과 박해는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그러나 내부에서 주는 고통은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제는 너희들까지 괴롭게 하느냐? 이후로는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말하였습니다. 목회자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그저 복음을 전하는 일로만 해도 괴로운데 기타 등등의 일로 괴롭힘을 당한다면 사도 바울과 같은 울먹이는 심정이 됩니다. 히브리서 13 장 7 절에는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6. 예수의 흔적의 오늘 우리에게 의미 사도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까? 물론 성 프란시스가 지닌 흔적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지닌 흔적과는 다르겠지만 여러분에게는 어떤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제 아이에게는 손등에 흔적이 있습니다. 수유리에 살았을 때 다리미를 쓰고 놓아두었는데 아이가 그것을 만지다가 손등 엄지와 집게 손가락 부분의 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의 흔적이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것을 보고 부모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그 흔적을 볼 때마다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흔적이 있습니까? 꼭 보이는 흔적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흔적이 있습니까? 제가 송암교회를 다닐 때 고려대학교 법대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일년 선배였는데 고시공부를 하여 1 차에 합격하였을 때 제가 무득 그런 말을 했습니다. 형은 신학교를 가야해! 안가면 아무리 고시를 보아도 안될 걸! 그러자 그 선배는 고대 법대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갔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어 제주도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제주노회장 까지 하였습니다. 가끔 저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니가 한 말 때문에 목사가 팔자에 없는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불행해? 물어보면 아니 행복해! 하고 대답합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 전체에 흰머리가 가득합니다. 염색을 하지 않고 다닙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에 속썩는 일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속이 썩을 때마다 그것을 외부로 발산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그냥 담당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하소연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그 형의 흰머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통과 아픔을 인내하면서 신체적으로 생긴 스티그마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그마는 외적으로 새겨져 있을 수 있고 가슴 속 깊이 패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님이 “원수를 갚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 하였을 때 주님 말씀대로 그를 용서하였을 때 가슴앓이가 생겼다면 그 역시 예수의 흔적입니다. 어떤 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만일 주일날 장사를 하지 않다가 실질적으로 주일날 장사를 하여 얻은 이익보다는 많은 손해를 받았다고 합시다. 이 역시 예수로 인해 고난받은 흔적입니다.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자식은 자고 있었고 소방대원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구해 내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 듭니다. 마침 지붕이 무너져 내림으로 인해 온 몸에 상처가 생기고 뜨거운 불길 때문에 온 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결국 아이를 구해냅니다. 바로 어머니의 온 몸에 있는 상처는 그 이후로 언제까지나 남았습니다. 그 불에 덴 자국이야 말로 자식을 죽음으로 사랑한 흔적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상처는 바로 예수님이 인류를 향한 사랑과 구원의 표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흔적은 예수님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생긴 흔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주님을 위해 고난받은 어떤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스티그마는 무엇입니까?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로 예수의 흔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도록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사도 바울이 가졌던 예수의 흔적을 저희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때문에 상처를 입고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주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주님 때문에 오해를 받더라도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상처를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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