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2 월 1 일(주일) 오전 11 시 광주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창세기 13 장 14 절 - 18 절
제 목 :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강을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베스트셀러가 어떤 책이냐 하면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가지 습관“이라는 책입니다. 오늘날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고 그 어는 책보다도 더 잘 팔리고 있습니다. 왜 그 책이 잘 팔릴까? <성공>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성공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결국 그 사람을 살펴보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 대신에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사람 딱 한 사람의 이름을 들라면 누가 있겠습니까? 누군가 이 질문을 저에게 한다면 저는 즉각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 아브라함이 성공한 사람일까?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사람이 성공했느냐의 여부는 그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와 비례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자본주의적 개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엄청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재산이라 하였을 때 우리 식 개념으로 따지자면 부동산 플러스 동산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에게 동산이 얼마나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이 시간 창세기를 펼쳐 놓으십시오! 창세기 13 장 2 절입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함은 동산이 많았다 함 아닙니까? 6 절에는 동산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재벌들도 너무 재산이 팽창하면 분가하여 따로 회사를 차리듯이 아브라함이 가진 소유가 허벌나게 많아서 분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부동산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창세기 13 장 14 절에서 15 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였습니다. 17 절입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상무공원 팔각정으로 데려 가셔서 광주시의 동서남북을 둘러보게 한 다음에 그 땅을 너에게 다 주리라 한다면 그 땅이 내 부동산 등기부 등본에 등재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부자인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차지한 가나안 땅 동서남북은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의 땅이 되었으니 아브라함은 당대에도 얼마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입니까?
요즘 어느 재벌총수의 부인이었던 사람들이 책을 내었는데 재벌총수가 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아무리 재벌이다 하더라도 가정이 평온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성공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가정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과 살면서 한번도 가정불화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리따운 아내를 사랑하였고 사라는 믿음이 좋은 남편의 말을 잘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 하여 아브라함이 나이 75 세에 떠나려 하였을 때 사라가 “아니 여보, 지금 당신은 칠순이 넘었고 나는 환갑이 넘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집을 두고 친척을 두고 어디를 간다는 말이요 당신은 가시오! 나는 여기가 좋으니 못가요” 그렇게 반대하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에 묵묵히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또 사라는 심히 아리따왔습니다. 창세기 12 장 14 절에 보면 아내 사라의 용모가 나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름다움을 보았고!” 이 때 사라의 나이가 얼마입니까? 아브라함이 75 세에 떠났으니 사래는 65 세였을 때인데 그 용모가 아직 처녀와 같이 아리따웠습니다. 아브라함은 또한 자식의 복도 많이 받았습니다. 창세기 15 장 5 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의 자녀들은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아지고 뭇별과 같이 빛나는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종이 있었는데 종 역시 기도하는 충직한 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참으로 모범적인 가정이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공하였다고 하고 가정이 화목하다고 해도 건강이 쇠약하다면 성공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건강해야 성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브라함은 건강의 면에 있어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 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장 수천수만 KM를 여행할 있는 건강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4 장에 보면 75 세가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참가하여 사로잡힌 자를 빼앗아 데려 옵니다. 아브라함이 첫 아들을 언제 낳았습니까? 창세기 16 장 16 절을 보겠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세였더라” 팔십육세에서 아이를 낳는 기간 10 달을 뺀다고 해도 85 세인데 다른 사람 같으면 돌아가실 나이인데도 바로 그 나이에 첫 아들을 생산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14 년이 지난 99 세에도 아브라함은 사라와 동침을 하여 100 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100 세 아들을 낳고 그 이후에도 자식 낳는 것을 그친 것이 아니라 100 세가 지난 후에도 자식을 낳습니다. 창세기 25 장 1 절과 2 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 외에도 6 명의 자식을 더 낳았습니다. 100 세가 지난 후에도 자식을 낳았으니 건강적으로도 복 받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까? 창세기 24 장 1 절에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무리 육체가 건강하여도 마음이 병들어 있어 사람들에게 어둠을 색칠하고 다니고 공해를 유발시키고 다닌다면 그 사람을 성공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마음이 평강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과 롯의 종이 다투었을 때 아브라함은 땅의 선택권과 우선권을 놓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다는 넓은 도량을 가졌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을 잘하였습니다.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은 아브라함은 환경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2 장 9 절을 보겠습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남방이 무엇입니까? 점점 따뜻한 곳으로 이사했다 그 말입니다. 즉 주변의 환경이 점점 더 안온하고 평온한 곳으로 옮겨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환경을 지켜주시어 안정보장을 누리게 해 주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내를 강탈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주셨습니다. 창세기 15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니 그 어떤 창이나 칼이 그를 침투하지 못하였습니다. 안보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심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 아브라함의 보디가드를 붙여주셔서 그 어떤 때도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성공했다함이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이름이 널리 들어날 때 자신의 성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 인터넷 신문에 들어가면 인명사전이 나옵니다. 거기서 공로목사님 존함을 치면 수백 가지가 넘는 많은 자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배태진이라고 이름을 쳐 넣으면 “관련 기록자료가 없음”으로 나옵니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성공이라 한다면 아브라함과 같이 그 이름이 천하에 역사에 길이길이 알려지게 된 사람이 구주 예수님의 뛰어나신 이름 외에도 누가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이름은 성경에 가장 많이 그 이름이 나타나 있는 이름 중에 한 사람입니다. 성경 외에도 역사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름과 같이 타종교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람은 없습니다. 창세기 12 장 2 절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이름이 창대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믿음이 성공해야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건이 훌륭하다고 해도 믿음이 성공해야 정말 성공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0 장 17 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어제 밤에 무슨 얘기를 하던 중에 죽음에 대해 딸과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얘야, 만일 아빠가 돌아가시면 너는 아빠를 위해 눈물 한방울은 꼭 흘려야 한다 말하자 딸은 당연하지요 아빠 그렇게 대답하여 많이 웃었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였다 해도 그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될 뿐인 인생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이점에 있어서도 성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만 살고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천국에서 나사로를 안고 위로하고 있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도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위로하고 있는 천지간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과 같이 성공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야말로 땅에서도 부귀를 누리고 장수를 누리고 건강의 축복을 누리고 가정의 복을 누리고 아내와 자식의 복을 누리고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야말로 하늘나라에서도 위로하는 직책을 가진 중차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땅에서도 성공하고 하늘에서도 성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렇게 성공하게 하였을까요?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하신 은혜가 아닐 수 없겠지만 아브라함 편에서도 아무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입신양명하여 금의환향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반드시 그 배후에 그를 그렇게 만든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마슬로우라는 학자는 인간의 욕망의 다섯 단계로 유명한 학자입니다만 그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을 연구해 보면 반드시 그 배후에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현실중심적이다는 것입니다. 둘째 문제해결능력이 강하다 셋째, 커다란 용기가 있다 넷째, 수단과 목적을 구분한다 다섯째, 생활을 즐긴다 여섯째 환경과 문화에 영향받지 않는다 일곱째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여덟째, 민주적인 가치를 존중한다입니다. 성공한 사람을 연구해 보면 반드시 이런 특성이 그에게 있다 하였습니다. 스티븐 코비란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어떤 일정한 습관이 있는데 그 습관을 분석새 보면 일곱가지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상호간에 승리자가 되라! 먼저 경청하고 이해시키라! 시너지를 활용하라! 끊임없이 쇄신하라!” 이와 같이 성공하는 사람에겐 무엇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인류 역사에 그렇게 성공하기 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어떤습관이 있었을까? 이 시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성공하고 복을 받은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그가 순종하고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도 성공한 요인이었습니다만 그가 습관적으로 자식을 바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찾아온 천사들을 잘 대접하였고 천사로부터 축복을 받았으나 습관적으로 대접을 한 것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떠한 습관이 있었 길래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고 세상 가운데 뛰어나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나 하는 것을 연구해 봅시다. 아브라함 일대기가 나와 있는 창세기 12 장에서부터 25 장까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습관적으로 한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 둘이 사실상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만 하나로 하자면 무엇입니까? 단을 쌓고 이름을 부른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을 습관처럼 하였습니다. 정말 그랬나 살펴봅시다. 창세기 12 장 7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최초로 쌓았습니다. 그때만 쌓았습니까? 12 장 8 절입니다.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서도 단을 쌓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세기 13 장 4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또 아브라함은 자시하신 곳으로 옮겼습니다. 옮긴 그곳에서 최초로 무엇을 했습니까? 13 장 18 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창세기 22 장에도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바치려고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제일 먼저 한 것이 습관적으로 한 것이 바로 단을 쌓고 이름을 부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단을 쌓고 이름을 부른 일을 습관적으로 하였는데 바로 이 일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받게 하고 성공하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쌓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정결한 것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보통 아브라함이 물론 믿음으로 이삭을 바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것으로만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아브라함이 재산의 축복을 받고 자식의 축복을 받고 가정의 축복을 받고 건강의 축복을 받은 것은 자식 이삭을 바치기 전에 다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아브라함을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였고 아브라함의 인생을 성공하게 하였고 아브라함의 인생이 성경에도 제일 많이 언급되었을 뿐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 까지 연결되어 복을 누리게 되고 성공한 인생이 되게 하였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단을 쌓는 일과 이름을 부르는 일 즉 예배를 드리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 일로 그의 인생은 인류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공하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고 싶습니까?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분류하고 정리해 보자면 팔복을 받았습니다만 아브라함과 같이 가정적인 복, 재물의 복, 지켜주시는 복, 환경의 복, 육체가 건강한 복, 너른 마음의 복, 영생복락과 믿음의 복 등 팔복을 받으시고 싶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아브라함과 같이 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시는 일을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단을 쌓는 일은 바로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단을 쌓는 일은 오늘날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를 존중하는 인생, 예배를 소중하게 잘 드리는 인생이 복받고 성공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인생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예배에 실패하는 인생은 인생에서도 실패합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였다 해도 이 땅에서만 끝나는 물거품과 같은 헛될 뿐인 성공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씨를 뿌리지 않고 거기에다가 물을 주면서 싹이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예배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서도 성공하며 신앙생활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서도 성공합니다. 예배에서 실패하는 인생은 인생에서도 실패합니다. 어떤 습관이 생기는 것은 그 일을 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습관적으로 예배를 즐거운 마음으로 잘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아브라함과 같이 돌아보아 주시어 그 인생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시되 명작으로 만들어 주시고 그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주시고 그 인생을 창대케 해주시고 그 인생을 충만케 해주시고 그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중고등부 예배실에 가면 “예배에 목숨 걸자!”라고 표어가 되어있습니다만 이는 전 중고등부 부장이었던 이현란 집사님이 걸어 놓으신 표어입니다. 이 표어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함축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단을 쌓는 자의 인생을 돌아보시고 그 인생에 복을 주시어 성공하게 하시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4 장 23 절과 24 절을 보겠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자 예배를 받으시고자 인생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은 당연지사이십니다.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되 하나님께서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멤과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마침내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얼싸 안고 기뻐하시며 그의 인생에 간여하셔서 그 인생을 복되게 하고 그 인생을 행복하게 하고 그 인생을 성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면 기뻐하시고 그가 드린 예배를 받으시고 그를 복되게 하고 그를 잘되게 하고 그를 형통하게 하고 그를 평탄하게 하고 그를 행복하게 하며 그의 인생을 성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도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예배하는 다윗도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잘 쌓으므로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잘 쌓으므로 경제적으로도 성공했습니다. 은금과 육축, 동서남북의 땅이 다 그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잘 쌓으므로 가정적으로 성공했습니다. 아내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고 아들 이삭은 믿음의 후손을 번성케 하여 야곱 요셉 그리고 이스라엘로 연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잘 쌓으므로 육체적으로도 성공했습니다. 팔십 구십 100 세 그리고 100 세를 넘기면서도 자녀를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단을 잘 쌓으므로 그 이름이 창대하게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단을 잘 쌓으므로 받은 복은 그 자녀 그 자녀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에 자녀로 연이어 계승되어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이 단을 잘 쌓으므로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는 하늘나라에서도 위로하는 큰 사명을 맡았습니다. 단을 잘 쌓으시기 바랍니다. 주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 왜 태어났느냐? 바로 예배하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단을 잘 쌓아 반드시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받으시고 아브라함과 같이 이 땅에서도 성공하시고 저 하늘나라에 들어가시는 최고의 성공적인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는 인생이 성공하고 행복하기 바랍니다. 주님 저희가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배우게 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이 어디를 가든지 단을 잘 쌓은 것처럼 우리 역시 단을 잘 쌓아 복을 받게 해 주옵소서!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저희들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인생,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고자료 1>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품질이 있습니다. 같은 예배를 드리지만 예배자에 따라서 어떤 이는 저품질의 예배를 드리고 어떤 이는 중품질의 예배를 드리고 어떤 이는 고품위 예배를 드립니다. 요즘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에 학생들이 꼭 의무적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하나 하면서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학점을 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대리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아니면 예배시간에 딴 공부를 하고 예배시간에 밀렸던 잠을 해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또 예배를 드리되 부모가 가라고 하니까 억지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마음은 딴 곳에 있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는 저품질의 예배입니다. 그러면 고품질의 예배와 저품질의 예배는 어떻게 구분되는 것입니까? 예배시간에 언제나 5 - 10 분정도 늦게 오는 사람이 드리는 예배가 있고 30 분전에 나아와 기도로 준비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사에 자신을 담아 하나님께 올려 보내는 찬송이 있고 찬송은 부르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저 말씀 중 한 말씀이라도 꼭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지 하면서 눈빛을 집중하며 듣는 이가 있고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번 설교는 한 70 점 정도 줄 수 있겠다 하고 점수를 매기면서 듣는 이가 있습니다. 봉헌을 하면서도 있는 힘껏 정성을 다하여 새 돈을 미리 바꾸어 하는 봉헌도 있고 지갑을 꺼내어 그때 그 시간에 대충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 범위 내에서 내는 헌금도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백번 예배를 그저 그렇게 드리는 것이 한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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