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1 월 18 일 (주일) 오전 11 시 광주 가나안교회 주일낮예배 / 여신도주일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마태복음 5 장 13 절 - 16 절
제 목 : 너희는 세상의 소금!!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가나안 교회 성도들과 여신도 회원 모두에게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딱 한 말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집중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와 오늘 여신도주일에 여신도들에게 주는 뜻을 새겨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소금이 무엇입니까? 인도철학의 대가 중에 <라즈니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에 명상을 거듭하였는데 명상의 화두가 뭐였냐 하면 “신이 왜 인간에게 배꼽을 만들어주었는가? 배꼽의 진정한 용도가 도대체 뭔가?” 였습니다. 명상에 몰두하는 어느 순간 콧등에 불이 팍 튀기면서 그러면 그렇지!!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배꼽을 왜 만드셨느냐? 사람이 누워 감자를 소금에 찍어먹기 위해 배꼽을 바로 그 자리에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십시오! 누워 감자 먹을 때 배꼽에 소금을 얹어놓고 찍어 먹어보십시오! 맛이 기가 막힙니다. 여러분! 이것을 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소금이 많이 들어간 짠 김치나 오이소백이 같은 것을 너무 짜다고 버리면 되겠습니까? 이것들을 더 짠 소금물에 담궈 두면 맹물로 씻어내는 것보다도 훨씬 더 효과가 있습니다. 삼투압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을 여러분은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직장인들이 받는 봉급을 “샐러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들에게 봉급을 소금으로 주었는데 당시 병사들에게 주는 소금을 “샐러리움(salarium)"이라 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고대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금을 바로 화폐와 같이 거래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세금을 소금으로 내게 하였다고 합니다. 소금은 거래수단으로 나중에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소금은 사회경제적인 역할만 한 것이 아닙니다. 소금은 우리 인체에서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우리 인체에서 0.9 %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금의 성분 중 나트륨은 혈액과 세포액에 가장 중요한 전해질이어서 땀을 많이 흘리거나 설사를 심하게 했을 때 소금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가 되어 생명이 위태로워지기도 합니다. 소금은 이같이 중요하고 중요한 물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 말씀의 첫 번째 뜻은 너희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소금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여서 특별히 여름에는 기온이 32 도에서 37 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더운 날씨에 무슨 냉장고 같은 것이나 김치냉장고 같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음식을 그냥 놓아두면 높은 기온 때문에 금방 부패하고 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소금에 절여 놓거나 소금만 넣어 놓으면 장시간 보관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보다도 이스라엘에서 소금은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물질이었습니다. 소금이란 없어서는 안될 무척 귀중한 존재임을 예수님 아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보통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고 하였을 때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해라! 그런 뜻으로만 알고 있습니다만 그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너희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존재가 되라!! 그 말씀입니다. 이 세상사는 사람 중에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 하는 이 세상에서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 유형은 있으나 마나한 사람, 그 사람이 없어도 뭐 큰 문제가 없고 그 사람이 있어도 크게 해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셋째 유형은 있으면 그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넷째 유형은 없어서는 안 될 꼭 있어야 할 꼭 필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거라!는 멧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교회에서 종교적인 존재가 되어라! 너희는 세상에서 바리새파와 서기관과 같은 종교적 존재가 되어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너희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일터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간에 없어서는 결코 안될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김행균!!이란 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당 42 세로 서울 영등포역 열차운용팀장입니다.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영등포역에서 정차하기 위해 진입하는 순간 플랫폼 중간 안전선 밖에서 철로로 들어가는 10 세 가량 어린이를 발견하고 선로에 뛰어 내려 어린이를 안전선 밖으로 밀어냈지만 자신은 진입하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여 발목이 잘려진 사람입니다. 김행균 이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 뭔가 따스한 느낌이 들게 하고 환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사람의 기록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가 기독교인이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노모를 모시고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온 사람이었다고만 나와 있습니다. 어떤 초등학교 학생들이 편지와 함께 성금을 보내자 그는 그 성금에다 더 보태어 과자를 사서 보내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비록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살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옆에 사람에게 조용히 한 마디 합니다. “이런 말을 장례식장에서 내가 해서 될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잘 갔어! 진작 갔어야 되는데 말이여! 하이고 잘 가부렀어” 그런 말을 관 속에서 들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정반대의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 그런 고인도 있습니다. ”오매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은 다 가더라도 저 사람만은 가서는 안될 사람인데 말이야!! 그렇게 성실하더니 하늘나라에서 쓸랴고 하나님이 데려가셨나부네!” 그런 말을 들어야 안 쓰겄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그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세계 인구를 한명 더 있게 하는데 그치는 존재가 되어서야 쓰겄습니까? 그 사람이 존재해 있는 것이 마치 주변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고 아픔을 지속시키는 그런 존재여서야 쓰겄습니까? 요즘 중국에서는 사향고향이를 잡아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고양이가 조류독감을 유포시킨다고 믿어 그 고양이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독감을 유포시키고 흑암을 번지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쓰겄습니까? 그런가 하면 세계적으로 사스라는 질병이 퍼지면서 우리나라의 김치가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오리지날 김치를 먹으면 사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에 세계 사람들은 너도나두 한국김치를 수입해서 먹고 있습니다. 김치 중에 김치는 한국김치라고 믿어 김치를 수입해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국김치에 들어가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안 쓰겄습니까? 오늘은 여신도주일입니다. 저는 오늘 여신도회원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소금과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금과 같이 중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 하였을 때 1 차적인 뜻은 소금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너희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꼭 있어야 할 존재입니까? 이 세상에서나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 여러분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씀 속에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잘 감당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하신 말씀 중에는 없지만 평지에서 하신 설교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 장 50 절입니다. ”소금은 좋은 거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소금과 화목을 연결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소금과 화목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누구와 누구가 싸움이 벌어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싸움의 당사자들이 서로 자존심을 지키고 자기 주장을 계속 내세우면 결코 화해가 되지 않고 그 싸움은 점점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갈등과 분쟁을 할 때 한쪽이 먼저 소금과 같이 녹아지고 없어질 때 자기주장을 꺾을 때 화목케 됩니다. 소금이 쓰여질 때와 같이 먼저 자신이 녹아지고 없어질 때 화목케 됩니다. 로마서 14 장 19 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나니“ 그렇습니다. 화목하게 하고 화평케 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꺾을 때 바로 인생의 참 맛을 경험케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너희 이 분열되고 싸움하고 나누어진 이 세상에서 소금과 같이 고르게 하며 소금과 같이 자신을 주장하지 아니하여 화평을 일을 하라는 멧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싸움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싸움을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싸움을 덜 하겠습니다만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의 차이가 어디서 드러나느냐 하면 그리스도인은 싸우더라도 분명히 자기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자기가 먼저 용서를 구하고 자기가 먼저 지고 자기가 먼저 자기주장을 꺽고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평화가 찾아오고 그런 가운데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게 됩니다. 지지난주일 성광교회 조원태 목사님께 서류를 전달해 드리러 갔습니다. 조 목사님은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신데 언제나 목회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꼭 한마디씩 해주십니다. 그런데 그때도 귀한 한 말씀 해주셨습니다. 교인들하고 의견이 다를 때 교인들에게 이기려고 하지 말게! 교역자가 그냥 져야 하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나님이 해결하여 주신다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라 화목케 하는 일일세! 라는 좋은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알려면 그가 얼마나 종교생활에 열중하느냐가 아니라 그가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결정됩니다. 여러분 여신도회원들은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생호라 속에서 실천하시면서 맛을 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는 말씀 속에는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굳이 주장하지 말라는 멧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소금은 짠 맛을 냅니다. 짠 맛을 낼 뿐 아니라 짠 맛을 내어 박테리아의 성장속도를 정지시키거나 지연시켜 음식의 부패를 막습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기 위해서 소금이 부패를 막기 위해서 소금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여기에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소금 그 자체가 아니라 소금이 되는 과정입니다. 소금은 보통 네모꼴이거나 다섯모꼴로 생겼습니다. 그리고 소금의 살색은 눈부신 하얀색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어떻게 합니까? 먼저 소금 자신의 형체가 없어져야 합니다. 소금이 자신의 형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자신의 형체가 네모꼴이든지 육면체이든지 자신의 형체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소금의 소금성,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눈부신 하얀 살색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결코 맛을 내지 못합니다. 소금인형 이야기를 아십니까? <메마른 땅에서 오랜 여행을 끝낸 소금 인형은 바다에 이르러서, 전에는 본적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단단하고 작은 소금 인형은 딱딱한 땅위에 서서, 불안하게 움직이고 시끄럽고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새로운, 또 다른 땅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소금 인형은 물었습니다. "도대체 너는 무엇이니?" 그러자 그것은 철썩거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바다야." 소금 인형이 다시 물었습니다. "바다가 무엇이야?" "그건 나야." "난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알고 싶어. 어떻게 하면 너를 알 수 있지?" 바다가 말했습니다. "나를 만져봐." 그러자 소금 인형은 수줍은 듯이 발을 앞으로 내밀어 바다를 만졌습니다. 무엇인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들이 밀었을때, 소금 인형의 발가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금인형이 겁이 나서 말했습니다. "어쩌지? 내 발가락은 어디 있지? 너 대체 무슨 짓을 한거니?" 바다가 말했습니다. "너는 나를 알기 위해 무엇인가를 준거야." 점차로 바다는 소금 인형을 조금씩 가져갔고, 그녀는 점점 바닷속으로 들어감에 따라 바다를 알 수 있었으나, 무엇이라 표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도대체 바다는 무엇이지?" 하면서 그녀는 더 깊이 들어갔고, 그렇게 함으로써 점점 더 녹았습니다. 마침내 파도가 그녀의 마지막 부분을 녹여 버렸을 때, 소금인형은 깨달았습니다. "그래! 바다는 바로 나야.". 소금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기할 때 비로소 그렇습니다. ”너는 나를 알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준거야!“ 그렇습니다. 소금의 소금성은 자신을 줄 때, 자신을 포기할 때, 자신의 형체를 고집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질에 이르게 됩니다. 연필도 그렇습니다. 연필은 제 살인 나무 부분이 깎여져 나가고 제 중심 부분인 심이 닳아져 나가면서 유익하게 쓰여지게 됩니다. 연필과 친구인 지우개도 거의 같은 일생을 삽니다. 지우개는 지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꼬마의 손에 들려져서 잘못 쓴 글씨를 지울 때 자신의 몸이 마치 때가 벗겨지듯이 벗겨져 나가면서 꼬마아이의 잘못을 고쳐줍니다. 연필과 지우개가 친구라면 지우개에는 걸레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지우개와 걸레는 거의 같은 일을 수행합니다. 지우개가 연필자욱을 지운다면 걸레는 먼지와 때와 똥과 오줌을 훔치고 지우는 일을 합니다. 걸레는 쓰여지면 쓰여질수록 점점 자신의 몸이 헤어지고 찢겨집니다. 쓰여지면 쓰여질수록 점점 더러워집니다. 사람들은 걸레를 사용하다가 방을 닦는데 사용하다가 더 더러워지면 농 위에 있는 먼지를 닦는데 사용하다가 더 이상 더러워지면 걸레를 빨데 빨래 방망이로 오지게 때리기 때문에 걸레는 자기의 일을 수행하면서 오지게 터지면서 사용되어지다가 너무 더러워지면 사람들은 걸레를 나중에 말려서 불쏘시개로 사용합니다. 걸레는 성질이 더러워서 걸레가 아니라 걸레가 지나가면 주변이 깨끗해집니다. 방바닥을 지나가면 방바닥이 깨끗해지고 창틀위를 지나가면 창틀이 깨끗해집니다. 걸레는 참으로 거룩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걸레와 친구가 비누입니다. 비누 역시 걸레와 업종이 같습니다. 비누는 쓰면 쓸수록 사람의 몸의 때와 옷의 때를 지워갑니다. 지워갈 때 자신의 몸을 잠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살을 점점 깎아 나가면서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하고 옷을 깨끗하게 세탁합니다. 그런 점에서 촛불도 닮았습니다. 촛불은 자신을 위해 주변을 밝히지 않습니다. 주변을 위해 자신을 밝힙니다. 밝히면서 유익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몸의 형체가 녹아내리면서 자신의 키는 점점 적어집니다. 주변은 도움을 얻지만 자신의 존재는 점점 축소됩니다. 누룩도 그렇습니다. 누룩이 밀가루 서말 속에 들어갑니다. 누룩의 형체는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밀가루 서말 전체를 부풀게 하여 빵이 되게 하고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게 하지만 자신의 존재는 없어지고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소금도 촛불과 비누와 걸레와 지우개와 같은 동일한 공통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소금이나 누룩이나 촛불이나 비누나 걸레나 지우개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을 주고 자신은 점점 소멸되면서 이웃을 환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맛있게 하고 짜게 합니다. 저는 오늘 여신도들이 소금이 소금으로 쓰여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하는지 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신도 여러분들은 주의 일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을 드러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가 알아줄 것 같은 일에는 조명과 카메라 발을 받는 일에는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만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일에는 결코 나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무슨 일을 하면서 나팔을 불지 말아라! 이런 일을 했네! 저런 일을 내가 햅네! 나서지 말아라! 나서는 순간 이미 사람들로부터 상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 장 1 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여신도 여러분이 주의 일을 할 때 누구에게 상을 받아야 합니까? 주님한테 상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발을 불고 다녀서 사람들에게 상을 다 받아버린다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손해 아닙니까?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 변화시키는 일을 하면서 자기의 형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까? 누룩이 밀가룩 반죽 속에 들어갈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내가 이 일을 했네! 떠들썩거리면서 일을 합니까? 소금이 짠맛을 내면서 “난 소금!! 난 소금!! 난 현재 형체가 없어져 가고 있음!! 난 소금!! 난 소금 난 현재 그 정결한 내 하얀 색깔도 없어져 가고 있음!! 하면서 소릴 내면서 없어집니까? 아닙니다. 조용히 없어집니다.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없어집니다. 여신도회원들이 특별히 교회를 위하여 일을 할 때 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에게 상을 받아 불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이 없거나 적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 상을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게 하려 하였는데 피치 못하여 드러나게 된 것은 주님께서 아십니다. 소금이 자기가 죽어지면서 동료 소금에게 요란하게 나는 이제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없어진다 하고 말하고 없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없어지지만 사람들은 그 짠 맛으로 소금의 존재를 압니다. 저는 우리 교회 여신도들이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고 사람들에게 공치사를 많이 받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는 여신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알게 되서 칭찬을 받게 되더라도 동료 교우에게 공을 돌린다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은밀한 가운데 주의 일을 마치 소금과 같이 할 때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를 위하여 상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가나안 교회 교인들 뿐만 아니라 교회 여신도회원들이 주의 일을 할 때는 목사도 모르게, 교인들도 모르게, 가족들도 모르게 조용히 주의 일을 많이 하여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부분이 많기를 바랍니다. 소금과 같이 조용히 녹아지면서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일을 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내가 설령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상대방이 일을 하여 주님에게 상을 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 해도 조용히 그를 위하여 그가 일을 잘하여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아름다운 마음들은 모이게 되어 그 마음도 하나님의 상을 받게 됩니다. 그가 주의 일을 하여 더 많은 상을 타게 됨을 오히려 나의 기쁨으로 여기면서 내가 은밀하게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그런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몇 명이 있는지 아십니까? 천천만만이라 하였습니다. 계시록 5 장 11 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들르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천사의 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지요! 이 천천만만이 되는 천사가 있지만 그 중에서 이름이 있는 천사는 고작 해야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나머지 천천만만의 천사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일을 수행합니다. 지금도 천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파송을 받아서 천천만만의 천사가 활동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살짝이라도 드러내놓고 일하는 천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저 소금과 같이 녹아드는 일을 하고 명함 한 장 내놓지 않고 군중 속으로 표표히 사라져 버립니다. 천사들은 자신의 이름없이 익명으로 일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시고 상을 받을 줄 다 압니다.
2004 년은 특별한 해입니다. 2004 년에 여러분은 “이천사“, 이름없는 천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름없는 천사와 같이 여러분은 주의 일을 하고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소금과 같이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은 여신도회원이나 남신도회원이건 간에 이름없는 천사와 같이 사시기 바랍니다. 필 보스만스 신부님이 계십니다. 이 신부님은 이름없는 연맹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이 연맹은 장애인, 환자, 노인, 재소자, 전과자, 마약과 알코올중독자, 집없는 여성, 부랑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조용히 이름도 없이 녹아드는 소금과 같이 헌신한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의 책임자인 필 보스만스 신부님이 이런 글을 남겼는데 저와 여러분, 특히 오늘 여신도주일로 지키는 여신도들에게 주는 귀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천사란 종종 아주 예기치 않게 찾아옵니다. 천사란 때때로 바로 옆에 있으나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천사는 그대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곧 사라집니다. 이미 나는 수많은 천사를 만나 보았습니다. 때때로 천사들은 자신이 가던 길을 멈추고 수많은 군중속에서 자원하여 나타나서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각가지 문젯거리를 해결해 주고 곧 거리의 혼잡함 속으로 다시 사라졌습니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감사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군중속으로. 세상에는 아직도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적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어둠과 불행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에서 천사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하며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안테나는 손상되고 파손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안테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하며, 더 이상 아무런 소식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대가 천사입니다. 그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하여 그대가 천사입니다. 새해 2004 년 가나안 성도들 여신도들 남신도들 청년회원들 이름없는 천사가 되어 녹아지는 소금이 되어 사시면서 살 맛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를 소금이라고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희가 이 세상에 맛을 내며 이 세상에서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여 이 세상을 맑게 하며 살게 하시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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