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1 월 14 일 (수) 오후 7 시 광주가나안교회 삼일밤예배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성경본문 : 창세기 19 장 24 절 - 29 절
제 목 : 종말론 (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성도 여러분들 가운데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종말론 두 번째 강의입니다. 이전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패괴하고 강포하여 쓸어버리신 노아의 홍수에 관한 기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사건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롯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롯이 누구인가? 창세기 11 장 27 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더라!” 그러면 롯은 아브람에게 조카인 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본토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하였을 때 롯이 삼촌과 함께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창세기 12 장 4 절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롯이 왜 함께 갔을까? 아마도 삼촌인 아브람을 평소에 좋아하였고 존경하였는데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갔을 때 같이 가겠다고 나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넘치게 복을 내려 주셨고 따라 나선 롯에게도 넘치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복을 많이 받은 것은 그들의 신앙생활과 관계가 깊었습니다. 창세기 13 장 4 절에서 6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과 그들의 소유가 너무도 많아진 것과는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에게 단을 쌓아 예배를 드린 아브라함을 복 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왜 복을 받았을까? 아브람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떡을 만드는 사람 곁에만 가도 콩고물을 만지게 되지 않습니까? 노아의 가족들이 노아 때문에 함께 덩달아 구원을 받았듯이 롯은 아브람 때문에 덩달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롯은 서로 소유와 재산들이 불어나서 함께 동거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람과 롯이 서로 분가를 합니다. 분가를 하는 장면이 멋있습니다. 창세기 13 장 7 절에서 9 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선택권과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넘겼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열린 사람입니다. 바로 이 때 롯은 에이 아저씨도 아저씨가 먼저 선택하세요 그 다음에 제가 할께요! 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자기가 먼저 좋은 땅을 택하였습니다. 창세기 13 장 10 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급 땅과 같았더라”. 소알 땅이 어디 었느냐 하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 옆에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롯이 어디로 갔을까? 동쪽으로 옮겼습니다. 창세기 13 장 12 절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롯은 겉보기에 좋은 땅으로 옮겼습니다. 아브람은 상대적으로 겉보기에 덜 좋은 곳으로 옮겼습니다만 아브람에게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문제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축복해주시는 것이 크다고 믿었습니다.
롯이 소알 땅을 거쳐 나중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에 살게 되었는데 소돔은 지금은 멸망당하여 사해 안에 있는데 사해 수심이 약 1.8 M 부근에 있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왜 이 도시가 이렇게 소금바다 밑에 깔리게 되었을까? 오늘 성경 본문은 그렇게 된 연유를 가르쳐 줍니다. 롯이 소돔까지 가서 살았는데 소돔은 어떤 곳이었을까? 창세기 13 장 13 절입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여기서 보면 죄인 중에도 큰 죄인이 있는데 소돔 사람이 큰 죄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지고 난 다음 어느 날 아브람이 마무레 상수리 나무 아래 있었을 때 세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아브람은 극진히 이들을 대답합니다. 이 천사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고 하늘의 비밀을 일러줍니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전송하러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기를 누설하십니다. 창세기 18 장 17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20 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러자 아브라함은 디스카운트 작전을 시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지 마옵소서! 하면서 50 명이 있으면 멸하시겠습니까? 하자 하나님께서는 멸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인의 수를 계속 깍아나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의인 열명까지 내려 갑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계속 하나님과 딜을 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는 조카 롯이 있고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데 그 도성이 멸망하면 안되겠다 하고 계속 깍아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보하는 기도를 드려 10 명까지 하한선을 깍았지만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 열명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두 천사가 소돔에 사는 롯을 현장방문합니다. 롯은 한 눈에 그 두 사람이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보고 그들을 대접합니다. 우리말에 천사같은 사람이란 표현이 있습니다만 두 천사가 내려왔는데 아마도 무척 잘생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두 사람이 롯의 집에 온 것을 보고 롯이 살고 있는 집에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무엇이냐? 창세기 19 장 4 절에서 5 절입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야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상관하리라는 이는 남색을 말합니다. 즉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를 HOMOSEX 혹은 소돔에서 유래되었다 하여 SODOM SEX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종류를 용서할 수 없는 죄악으로 여깁니다. 먼저 레위기 18 장 22 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 20 장 13 절입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롯이 이를 막으려 하자 소돔주민들은 롯을 해하려고 집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천사들은 소돔사람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시각장애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때 천사들은 롯에게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묻고 사위나 자녀들을 다 이끌어 내라 하면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라 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롯은 서둘러 나가서 딸들과 정혼한 사위에게 말합니다. 19 장 14 절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사위들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롯의 말을 개가 짖는 소리쯤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늘이 이렇게 말짱한데 무슨 헛소리인가? 하며 아예 듣지를 않았습니다. 농담으로 여겨 결국 어떻게 됩니까? 피하지 못하고 결국 불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동이 틀 때에 롯은 거기를 떠나지 못하고 지체합니다. 왜 지체합니까? 딸이 사랑하여 정혼한 사위들이 같이 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명령을 비웃었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자 롯과 딸들은 눈물을 흘리며 설득하려 했지만 사위들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롯이 지체하자 천사는 어떻게 합니까? 16 절입니다. “그러자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천사가 롯의 가족을 이끌어 낸 다음에 신신당부를 합니다. 돌아보지 말고 들에 머무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천사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9 장 26 절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가 왜 뒤를 돌아다 보았을까요? 아마도 간신히 마련해 놓은 집과 터전 여러 가지 세간살림 등 애착이 갔던 것들이 너무도 아까와사 뒤를 돌아다 보지 말라는 천사를 통해 주신 말씀을 어기게 되어 그대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이 소알 땅으로 들어갔을 때 해가 솟았는데 바로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19 장 24 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유황불을 나리게 하시어 소돔과 고모라를 완전히 깡그리 태워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도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노아 때에는 물을 사용하셨지만 아브라함과 롯의 때에는 불과 유황을 사용하셨습니다. 유황이 무엇입니까? 유황은 노란색으로 생겼는데 이것이 탈 때 푸른 불꽃을 내면서 유독성의 질식할 듯한 아황산가스를 내뿜습니다. 유황은 화약, 성냥, 고무를 만드는데 사용합니다. 유황불은 불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불입니다. 성경에서 유황은 주로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할 때 사용하십니다. 신명기 29 장 23 절을 보겠습니다.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한으로 훼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말할 것이요“. 이같이 유황불은 죄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몇년전에 2001 년 영국 BBC 방송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이 두 도시가 실제로 사라진 것은 지진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습니다. 영국의 지질학자 그레이엄 해리스 박사는 사해 연안에 자리잡았던 두 도시가 사라진 것은 성경이 말하던 기원전 4500 년전 무렵에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위치한 사해 인근의 땅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지구의 두개의 판구조 사이에 위치해 지진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해 연안 하부에는 가연성 메탄 가스층이 존재했는데 지진이 일어나면서 이 가스층에 불을 붙여 대재앙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사해 밑에 땅에 구멍을 뚫어 확인해 본 결과 가스층이 매장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인위적인 설명이고 성경이 진리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 유황과 불을 내리셔서 심판하시겠다 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를 내리시고 유황불을 내리신 것은 뜻이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2 장 5 절에서 6 절입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작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성경은 홍수와 유황불의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치려고 하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 마지막 날 심판에 대해 말씀합니다. 심판 이후에 지옥과 천국이 있는데 지옥이 어떤 곳이냐 하면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곳이라 합니다. 우선 마가복음 9 장 48 절에 보겠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3 절에 지옥에 대해 말씀하셨고 49 절에 거기라 하였으니 지옥인데 지옥은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라 한 것입니다. 계시록 19 장 20 절입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지옥은 불이 타오르는 곳인데 유황불이 타오르는 곳이라 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기에 지옥은 캄캄한 흑암(유다서 1 장 3 절)이라 하였는데 지옥이 불이 타오른다면 환한 곳이 아니겠는가? 질문을 합니다. 여기에 대해 두가지로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 신성종 박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불이라고 하면 가시적인 불만 생각하지만 불에도 시각적으로 볼 수 없는 불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옥의 불은 어두컴컴하겠지만 지옥의 불이 타고 있을 지옥에 와있는 동료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이 불빛에 의해 비추어져서 더욱 지옥이 지옥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홍수심판과 불심판을 통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특별히 소돔과 고모라를 통해서 얻을 영적인 교훈이 많습니다. 1.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의 하나의 예시와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유황불의 심판이었듯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심판을 행하십니다. 심판 없이 역사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과 이 역사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다음에는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는데 지옥은 바로 유황불이 펄펄 끓는 곳입니다. 도무지 살만한 장소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은 우리가 현세에 받을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게만 지나치게 기울여 있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2. 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롯이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아브라함 때문입니다. 창세기 19 장 29 절입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셔서 아브라함이 사랑한 롯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심판하려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롯의 경우를 통해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가 친구를 가까이 하려면 믿음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덕을 입게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날 위해 중보기도를 하게 되고 나는 그 중보기도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사귀더라도 세상 친구를 사귀면 그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는 친구가 되고 그를 사랑하여 구원의 품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될지언정 세상 친구를 만나 더 세상적으로 떠나버리면 안되겠습니다. 3. 강제로라도 가족전도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가족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데 그를 전도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반드시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지옥의 불심판을 믿지 않은 경우입니다. 뭐 그딴 것이 있을랍디여! 하면서 도무지 믿지 않습니다. 지옥에 불심판이 있는 것을 믿는데 가족을 전도하지 않은 경우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니 전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사가 롯에게 말하였습니다. 창세기 19 장 12 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하였습니다. 이끌어 내라함은 강제로라도 끌어내 구원을 받게 하라는 천사의 배려입니다. 가족구원을 위해서는 강제로 끄집고 가서라도 꼭 구원에 이르도록 하라는 천사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사위에게 말을 하였으나 강권하여 사위를 끌고 가지 않았고 말로서 얘기하였는데 결국 어떻게 됩니까? 사위가 그저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롯과 롯의 아내, 그리고 딸들에게 확실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다면 우겨다짐이라도 하여 끌고 가서 사위들을 이끌어냈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도 사실은 롯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가자고 하니까 가다가 결국 따라가긴 따라갔는데 결국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결국 심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있음을 믿고 강제로라도 가족과 친지를 구원해야 합니다. 4.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로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물결이 흘러넘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보기에는 그 땅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외면상 좋은 것과 실제로 내면적으로는 죄와 악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전도하기 위해 가는 것 외에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에 가거나 거기서 살거나 거기를 자주 들락거리거나 거기에 안주해 있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뒤도 돌아보아서도 안됩니다. 시편 1 편 1 절을 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4 절과 5 절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우리는 죄와 악의 물결이 기승하는 곳에는 가지도 말고 붙잡지도 말고 거기 서 있지도 앉지도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 심판시에 꺼지지 않은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악한 것들에 대해서 5. 하나님이 심판이 꼭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이 역사에 종말이 있으며 인간이 패괴하고 강포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을 앞당기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이 오심과 함께 시작될 수 있고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 인생 중간에 올 수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은 죽음 이후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아니 이제 가까이 왔음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보다 훨씬 더 타락하고 강포가 충만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길이 인내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 저희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생각하면서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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